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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종교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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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조로아스터교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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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1 [영문 위키피디아(번역)] by DreamersFleet 2012/12/02 21:31 dontnomuch.egloos.com/2999918 덧글수 : 0
(1. 참고문헌은 이 곳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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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ˌzɒroʊˈæstriənɪzəm/) 또한 Mazdaism과 Magianism으로도 불리는데 예언자 조로아스터(Zoroaster) (또한 아베스타어Avestan에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로 알려짐)의 가르침에 기반한 종교(religion)이자 철학(philosophy)이며, 전에는 세계 최대 종교들 중에 있었다.[1] 이는 아마도 때때로 BCE 6세기 이전 고대 대이란(Greater Iran) (페르시아Persia)의 동쪽 부분에서 발견된다.[citation needed] Part of a series on
Zoroastrianism

The Faravahar, believed to be a depiction of a fravashi
Primary topics
Ahura Mazda
Zarathustra
aša (asha) / arta
 
Angels and demons
Amesha Spentas · Yazatas
Ahuras · Daevas
Angra Mainyu
 
Scripture and worship
Avesta
Gathas · Yasna
Vendidad · Visperad
Yashts · Khordeh Avesta
Ab-Zohr
The Ahuna Vairya Invocation
Fire Temples
 
Accounts and legends
Dēnkard · Bundahišn
Book of Arda Viraf
Book of Jamasp
Story of Sanjan
 
History and culture
Zurvanism
Calendar · Festivals
Marriage
Eschatology
 
Adherents
Zoroastrians in Iran
Parsis · Iranis
• • •
Persecution of Zoroastrians
 
 Zoroastrianism portal

조로아스터교에서, 조물주(creator)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는 전적으로 선(good)이며 악(evil)은 전혀 그에게서 유래되지 않는다. 이렇게, 조로아스터교에서 선악은 다른 원천을 갖아서 악(druj)은 마즈다의 창조(asha)과 이를 지속하는 선을 파괴하려고 한다.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가 세계에서 내재(immanent)하지 않은 반면, 그의 창조는 아메샤 스펜타(mesha Spentas)와 다른 야자타(Yazatas)의 주인(host)으로 대표되며, 그들을 통해 "신(神)의 작업이 인간에게 자명해지며 그들을 통해 마즈다에 대한 숭배가 궁극적으로 지시된다. 이 종교에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은 아베스타(Avesta)인데, 그 중요부는 실전되었고 대부분 겨우 그 전례(liturgies)만 살아남았다. 실전된 부분들은 겨우 후대 저작들의 레퍼런스와 짧은 인용으로 알려졌는데 주로 9세기에서 11세기의 문헌에서다.
몇몇 형태에서, 이는 많은 세기 동안 이란 인민(Iranian people의 민족적 혹은 국교(state religion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실했다. 이 종교는 첫째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도 3세(Alexander III of Macedon)에게 침략받을(invaded) 때 위축되었다가 그후 붕괴화 해체되었다가[2] 7세기 후 사산제국(Sassanid Empire)의 쇠퇴로 이슬람(Islam)에게 더욱 점차 무시되었다(gradually marginalized).[3] 선이슬람(pre-Islamic) 이란 조(朝)들의 정치적 세력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 고대 광대한 명망을 차용했고 그 지도적 교의 몇몇은 다른 종교체계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주요한 신학적 분파(유일한 종파주의는 역법차에 근거함)는 전혀 없지만 균일하지 않았다. 현시대 영향은 개인과 지방의 믿음, 관습, 가치, 어휘에 중요한 임팩트를 주어서 때때로 전통과 합쳐지고 다른 경우 그를 대치했다. 대략 추정으로, 124,000에서 190,000의 조로아스터교도가 세계적으로 있다.[4]



1. 용어(Terminology)


 

Oxford English Dictionary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란 용어 사용을 1874에 Archibald Sayce의 Principles of Comparative Philology에서 보였다.[5] 서구학계에 조로아스터(Zoroaster)에 관한 그 첫 살아남은 참고자료는 토마스 브라운(Thomas Browne) (1605–1682)의 작으로 돌려지는데, 그는 짧게 그의 1643년 Religio Medici.에서 그 예언자(prophet )를 언급했다.[6] OED는 1743년 (Warburton, Pope's Essay)를 조로아스터에 대한 최초 참고자료로 기록한다.

Mazdaism /ˈmæzdə.ɪzəm/ 이란 용어는 전형적 19세기 용어로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란 이름에서 왕 Mazda-를 취해 접미사 -ism을 추가하여 한 믿음체계를 제안한 것이었다. 2001년 4월 of the OED 의 초고판 또한 대안용어인 Mazdeism을 기록했는데 아마도 프랑스의 Mazdéisme,에서 유래한 것으로 1871년에 처음 나타났다. 이 종교의 조로아스터적 이름은 Mazdayasna인데, Mazda-와 "숭배(worship), 헌신(devotion)"을 의미하는 아베스타어(Avestan language)의 단어 yasna를 결합한 것이다.
영어(English)에서 이 신앙의 지지자가 보통은 사신을 조로아스터교도(Zoroastrian) 혹은 짜라투스투트라교도(Zarathustrian)라 칭한다. 더 오랜 하지만 여전히 널리 퍼진 표현은 Behdin으로 "Daena의 추종자"를 의미하는데 그에 대한 "좋은 종교(Good Religion)"가 한 번역이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전례(liturgy)에서, Behdin란 용어는 또한 Navjote 의식으로 ceremony에 가입되는 개인에 대한 칭호로 사용된다.




2. 눈에 띄는 특징들(Distinguishing characteristics)




기본 믿음들(Basic beliefs)
This section needs additional citations for verification. (February 2010)


조로아스터교인들(Zoroastrians)은 하나의 보편적(universal)이며 초월적(transcendent)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한 피조되지 않은 "창조자(Creator)"라 모든 숭배가 무제한적으로 그를 향해진다.[7] 아후라 마즈다의 창조—asha 즉 진실과 질서로서 명증적이다—는 혼돈(chaos)의 대조(antithesis)로 druj 즉 오류와 무질서로서 명증적이다. 결과되는 충돌은 그에서 활동적 역을 하는 인류를 비롯한 전 우주를 수반하게 된다.[7]

이 종교는 선한 행위를 통한 생에의 적극적 참여 행복을 보장하는 것과 혼돈을 구석에 몰아는 것을 위해 필요하다고 진술한다. 이 적극 참여는 조로아스터의 자유의지(free will) 개념의 중심요소이자 조로아스터교는 모든 형태의 수도주의(monasticism)를 거부한다. 아후라 마즈다는 궁극에 악자(惡者)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혹은 아흐리만(Ahriman)보다 우세하게 된는데 이 점에서 우주는 우주적 혁신을 경험하면서 시간이 끝나게 될 것이다. 최후변혁에서 모든 피조물들—"암흑"으로 당초 추방된 사자(死者)의 영혼들 마져—이 아후라 마즈다와 재결합하게 되어 불사형태의 삶으로 귀환할 것이다. 시간의 끝에서, 구세주적 인물(savior-figure: 한 사오시얀트Saoshyant)이 마지막 세계 변혁(frasho.kereti)을 가져와 거기서 사자(死者)들이 부활할 것이다.[7]

조로아스터 전통에서, "혼돈(chaotic)"은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또한 "아흐리만Ahriman"으로도 언급됨) 곧 "파괴 원리(Destructive Principle)"로 대변되는 반면 자비로운 자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Spenta Mainyu 곧 창조 행위의 도구 혹은 "너그러운 원리(Bounteous Principle)"를 통해 대변된다. 초월적 아후라 마즈다가 인류안에 내재하는(immanent) 것과 "창조자(Creator)가 세계와 항호작용하는 것이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 )를 통해서다. 조로아스터교 우주론(cosmology)에 따르면, 아후라 바이르야(Ahuna Vairya) 공식을 말하면서 아후라 마지다가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에 대게 명백한 그의 궁극적 승전을 한다. "창조(Creation)"의 표현들과 견지에서,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는 아메샤 스펜타(Amesha Spentas) ("너그러운 불멸자Bounteous Immortals")를 조명하는데 이는 각각 그 "창조"의 한 면에 대한 히포스타시스(hypostasis)와 대표이다. 이들 아메샤 스펜타는 차례로 그보다 소 원리들의 연맹인 야자타(Yazatas)의 조력을 받든데 후자들 각각은 "숭배의 가치가 있음(Worthy of Worship)"이며 각각 다시한번 창조의 도덕 혹은 물리적인 관점에서의 일개 히포타시스(hypostasis)이다.

다른 특성들


조로아스터교에서, 물(apo, aban)과 불(atar, adar)은 의례적 순수성의 대리자로 그 협력한 순수화 의식들은 의례적 삶의 기초로 간주된다. 조로아스터교의 우주진화론(cosmogony)에서는, 물과 불인 각기 두번째와 마지막 피조된 근본원소들(primordial elements)이며 경전(scripture)은 불을 물속에서 그 기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물불 양자 모두 삶을 지탱하는 것으로 간주되면 불물 양자 모두 한 첫 사원(fire temple)의 성소구역(precinct)내에서 대변된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은 흔히 불의 몇몇 형태의 앞에서 빌며(어떤 빛의 원천 내에서 명백하다고 생각됨t), 이 숭배 행위의 원리의 정점의 의식(culminating rite)이 한 "물의 강화(strengthening of the waters)"를 구성한다. 불은 영적 통찰과 현명함이 그를 통해 얻어지는 매체로 간주되며 물은 그 현명함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인도(India)의 P파르시들(Parsees: 인도의 조로아스터교 구성원)가 전통적으로 아마도 역사적 이유에서 개종함(proselytizing)에 반대하고 그 장본인이 축출에 직면할 수 있는 번죄로 이를 간주하기까지 했다면,[8] 이란계 조로아스터교도들은 그런 전환에 반대하지 않고 그 관습은 테헤란(Tehran)의 모바드들의 의회(Council of Mobeds)에 의해 지지되었다. 이란 당국이 이란내 개종을 허락하지 않은 반면, 추방중의 이란계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양대 중심으로서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의 짜라투스트라 조직(Zarathushtrian Assembly)과 파리(Paris)의 국제 조로아스터 센터(International Zoroastrian Centre)와 함께 왕성히 선교활동을 고무했다.

다른 많은 신앙들에서 처럼, 조로아스터교도들은 같은 신앙의 다른이들과 결혼하도록 장려되었지만 이는 필수요건은 아니었다. 차라리, 이는 인도산이다. 인도 조로아스터 공동체의 몇몇 성원들(the Parsis)은 아이가 그 신앙에 입문할 자격이 있기 위해서는 파르시(Parsi) 아버지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은 다수에게[according to whom?] 성평등에 관한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위반으로 간주되었으며 파르시(Parsi)에 대한 옛 인도 법적 정의의 잔재(기각된 이래)였을 수 있다. 이 논점은 파르시 공동체 내의 논쟁된 문제지만 증가하는 현대 사회의 글로벌한 속성과 조로아스터 교도수의 위축과 함께 이런 의견들은 수그러든다.

조로아스터교 전통에서, 삶은 비불멸자가 참과 거짓사이의 끊임없는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기대되는 잠정적인 상태다. 태생이전, 개인의우르반(urvan)(영혼)은 여전히 그의 프라바시(fravashi)(수호령)와 통일되어 있으며 마즈다가 우주를 창조한 이래로 존재해 왔다. 프라바시(fravashi)는 수호자나 보호자로서 행동한다. 사후 나흘째에 영혼은 그이 프라바시(fravashi)와 재통일되는데 그 속에서 물질 세계에서의 삶의 경험이 영적 세계상의 끊임없는 전투를 위해 수집된다. 대부분, 조로아스터교는 윤회(reincarnation),란 관념을 자지지 않는데 적어도 세계의 최후 변혁까지는 그렇다. 이에 불구, 인도의 Ilm-e-Kshnoom의 추종자들은 윤회(reincarnation)와 채식관습(vegetarianism)을 믿는데 정통 조로아스터교(Orthodox Zoroastrianism)엔 알려지지 않은 두 원리들이다.[9]

조로아스터 경전과 전통에서, 사체는 예컨대 druj 같은 것 사멸을 위한 숙주다. 따라서, 경전은 사자(死者)의 "안전한" 처리를 사체가 "선한" 창조를 오염치 못할 방식으로 명했다. 이런 명령이 소위 "침묵의 탑들(Towers of Silence)"라고 경전이든 전승이던 표준 기술용어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과 흔히 동일시되는 "제의적 노출"의 급격히 쇠멸하는 전통관습의 교의적 기초였다. 이 제의 관습은 오로지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의 조로아스터 공동체에 의해 실행되었는데, 그 지역엔 불법은 아니지만 대안적 처리법이 쓰레기청소 새들의 실제 절멸을 이끌어낸 이후 격렬하게 찾아졌다. 다른 조로아스터 공동체는 사자를 화장하거나(cremate) 석회 모르타르(lime mortar)가 있는 무덤에 매장했다.




3. 역사(HIstory)


기원(Orgins)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은 이른 기원전 제2 밀레니엄기까지 거슬러 편년되는 인도 아리안족의(Indo-Iranian) 공통 선사 종교 체계로 부터 나왔다.[10] 조로아스터적 전승에 따르면, 조로아스터(Zoroaster)는 "현명(Wisdom)"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최고존재(Supreme Being)와 창조자(Creator,)의 지위까지 끌어올리며 극찬한 반면 다른 다양한 신들은 강등시키고 어떤 제식들은 거부한 개혁가였다

고전적 고대(Classical antiquity)
This section needs additional citations for verification. (November 2011)





Farvahar. Persepolis, Iran.
 

The Behistun Inscription, Iran.


See also: Western Perceptions of Zoroastrianism
비록 더 오랜 것일지라도, 조로아스터교는 오직 5세기 중엽에나 BCE에 기록된 역사상에 들어온다.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역사(The Histories) (c. 440 BCE에 완성)는 대이란(Greater Iranian( 지역 공동체에 대한 묘사를 사자 노출을 포함한 조로아스터 특징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들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역사(The Histories)는 아케메네스 시대(Achaemenid era) (648–330 BCE)의 이른 시기 특히 마구스들(Magi)의 역할에 대한 정보의 주요 원천이다. Herodotus i.101에 따르면, 마구스들(Magi)은 메디아인들(Medians) 중의 여섯번째 부족(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 하의 페르시아 제국 통일까지, 모든 이란인들이 "메드Mede" 혹은 "마다Mada"라고 "고대세계"의 사람들에게 불려졌다)으로, 오늘날 주르만교(Zurvanism)라고 알려진 조로아스터교의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지류에서의 사제적 카스트(caste)로 보이는 자들이며 메디아 황제들의 궁정에허 상당한 영향력을 휘두르던 자들이었다.

550 BCE의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제국의 통일에 따라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과 훗날의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Cambyses I)는 그들 영향력 상실에 따라 불만을 뿌리려고 시도한 후에 마구스들의 권력을 축소했다. 522 BCE에, 마구스들이 반란을 해서 왕위를 주장하는 경쟁자를 세웠다. 이 찬탈자는 키루스의 작은 아들 스메르디스(Smerdis)을 가장하여 그후 짧게 권력을 취했다.[1] 캄비세스(Cambyses)의 d전제통치(despotic rule)와 그의 이집트에서의 오랜 부재 때문에, "전 민중, 페르시아인 메디아인과 모든 나른 민족들"이 이 찬탈자를 인정했는데 특히 그가 삼년의 세금 면제를 부여함에 따른 것이었다(Herodotus iii. 68).


베히스툰 비문(Behistun Inscription)에 따르면, 위-스메르디스(pseudo-Smerdis)는 다리우스 1세(Darius I)에 의해 521 BCE에 타도되기 전 칠개월간 다스렸다. "마구스들(Magi)"은 박해되었어도 계속존속했다. 첫 위-스메르디스(Gaumata란 이름)의 죽음 일년 지나, 두번째 위-스메르디스(Vahyazdāta란 이름)이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 쿠데타는 처음에는 성공적이었으나 실패했다.

키루스 2세(Cyrus II)가 조로아스터교도인지는 논쟁적 주제다. 이는 허나 그에게 그의 제국의 인상적이지 못한 종교가 될 정도로는 영향을 주었고 그 믿을들이 훗날 키루스가 539 BCE에 바빌로니아(Babylon)를 취했을 때 유대인(Jews)을 해방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들을 유대(Judea)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게 하였다. 다리우스 1세(Darius I)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열혈신도로 베히스툰(Behistun) 비문에 여러번 적힌바에 증명되는 바와 같다. 하지만, 그가 조로아스터 추종자인지는 결정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는데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헌신은 (때로)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대한 지지의 표시가 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1세(Darius I)와 훗날의 아케메네스조 황제들(Achaemenid emperors)은, 비문상에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헌신을 인정하지만 신앙들이 공존하게 허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조로아스터교가 모멘텀을 얻은 것은 아케메네스조 기간중이었다. 오늘날 아베스타(Avesta)의 더 큰 개요서(compendium) 부분인 수많은 조로아스터 텍스트들이 이 시기 소산이었다. 또한 원-인도-이란계(proto-Indo-Iranian) 종교의 많은 신성과 신성한 개념들이 조로아스터교로 합쳐졌는데 그 시기가 후기 아케메네스 시대였으며, 조로아스터력(Zoroastrian calendar)의 월일(月日)이 봉헌된 자들에게 특히 그러했다.이 역법은 여전히 오늘날도 사용되는데 아케메네스 기간의 소산이다. 게다가, 신성 혹은 야자타(yazatas)는 현시대의 조로아스터교의 천사들(angels)(Dhalla, 1938)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330 BCE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침입 이후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셀레오코스조(Seleucids)와 파르티아인(Parthians) 치하의 조로아스터교의 지위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다. 훗날 조로아스터 전설(Denkard와 Book of Arda Viraf)에 따르면, 많은 신성한 텍스트들이 알렉산더의 군단들이 P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침입하고 잇따라 거기의 왕가의 도서관을 파괴했을 때 유실되었다. 디오도로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의 Bibliotheca historica는 c. 60 BCE에 완성되었는데, 이 조로아스터교 전설을 입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Diod. 17.72.2–17.72.6). 한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Xerxes) 궁전의 폐허는 타버린 흔적을 담고 있다(Stolze, 1882). 덴카르드(Denkard)가 제안하는 바처럼 광범히하게 수집된 "양피지에 금색 잉크로 쓴" (반半-)종교적 텍스트들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숙고의 문제로 남았지만 그럴법하지 않다. 많은 덴카르드들(Denkards)의 팩트로서의 진술들(statements-as-fact)이 그 이래 학자들 중에 반박되었음을 감안하면, 그 도서관의 전설은 널리 픽션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Kellens, 2002).

후기 고대(Late antiquity)


사산조(Sassanid dynasty)가 228 CE에 권력을 쥐었을 때, 적극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주르반교적(Zurvanite) 형태를 장려하고 어떤 경우엔 기독교도(Christians)를 박해했다.[11] 사산조는 영역을 장악해서 종종 부르이 사원을 거기에 지어 그 종교를 장려했다.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이후, 사산조는 기독교도들에 대해 의혹을 품었는데 그들에 지각된 기독교도의 로마제국(Roman Empire)과의 관계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페르시아 교회(Persian Church) (동방교회Church of the East)는 공식적으로 로마 기독교(Roman Christianity)와 결별하고 사산조에게 관용되고 심지어 때에 따라 선호되었다.

조로아스터교의 한 형태는 선기독교기(pre-Christian) 코카서스(Caucasus) 지역에서 또한 지배적이었다(특히 현대 아자르바이잔Azerbaijan). 코카서스(Caucasus)에 대한 종주권(suzerainty)을 가진 기간에서, 사산조는 그곳에서 그 종교를 장려하려는 시도를 했다.

6세기 이전에도 역시 조로아스터교는 S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해 북부 중국(China)으로 뻗어서 많은 중국 국가들에서 공식적인 위상을 얻었다.[citation needed] 조로아스터교 사원의 잔여물이 개봉(開封: Kaifeng)과 진강(鎭江, Zhenjiang)에서 발견되었다. 13세기까지, 이 종교는 중국에서의 유행에서는 수그러 들었다. 하지만, 조로앗스터교는 (훗날의 Manicheism은 물론하고) 여전히 불교의 요소들 특히 광(光) 상징주의면에서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citation needed]

중세(Middle Ages)

See also: Persecution of Zoroastrians



A scene from the Hamzanama where Hamza ibn ‘Abd al-Muttalib Burns Zarthust’s Chest and Shatters the Urn with his Ashes


7세기와 적어도 16년의 경과를 통해(몇몇 속주의 경우는 수십년), 사산제국은 아랍인들에게 전복되었다. 비록 그 국가의 행정은 U우마이야 칼리프조(Umayyad Caliphate) 아래서 급히 이슬람화되고 총괄되었지만, "별 심각한 압력"이 이슬람을 채택하도록 새로이 신속된 사람들에게 부과된 것은 없었다.[12] 이슬람 법률가들은 오직 무슬림만이 완적히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부당함에 남겨지는 것이 이들이 지배자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한 당연했다".[13]
또한 실용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들의 수(數)때문으로 정복된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딤미(dhimmis) (수세기 내려 계속되는 의문[이 정체성에 대한 유효함에 대한]에도 불구)로 처리되어야 한다"[13]고 했는데, 이가 그들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게 하였다. 이리하여 주된 면에서 일단 정복이 끝난고 "지방적 조건들이 합의되면", 아랍 총독들은 조공을 댓가로 지방인구들을 보호했다.[13] 아랍인들은 사산조의 세제를 토지 소유자에 부과하는 토지세와 개인들에 부과하는 인두세(poll-tax) 양면에서 채택했다.[13] 이는 지즈야(jizya)라 하며 무슬림 칼리프제 속에서 사는 비무슬림들에 부과되는 세금이었다(i.e., the dhimmis). 이윽고, 이 인두세는 비무슬림들을 천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게 되어서 수많은 법과 제한들이 그들의 하등한 지위를 강조하도록 진화하였다. 초기 정통 칼리프들(caliphs)아래, 비무슬림들이 세금을 지불하고 딤미(dhimmi) 법들을 지키는 한, 행정가들은 비무슬림들을 "그들 종교와 그들 토지"에 남겨두게 명받았다" (Caliph Abu Bakr, qtd. in Boyce 1979, p. 146).

이렇게 해서, 새 지도력에 신속되고 지쳤지만, 일단 정복의 공포가 지나자 조로아스터교도들은 그들의 전의 방식을 계속할 수 있었다. 허나, 느리고 꾸준한 종교전환을 위한 사회·경제적 압력이 있었다.[14][15] 귀족과 도시거주자들은 첫 전환자들이어서 이슬람은 더욱 느리게 농민과 토지소유귀족에게 받아들여졌다.[16] "권력과 세계적 잇점(Power and worldly-advantage)"은 지금 이슬람 추종자에게 있었고 "공식 정책은 냉담한 멸시였으나 개별 무슬림들로 개종하기를(proselytize) 갈망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모든 갖가지 것을 사용할 준비가 되었었다."[17]


마침, 한 전통이 그가 이슬람이 부분적으로 이란적 종교로 나타나게 만든 것으로서 진화해 갔다. 이 한 예가 4대 칼리프(caliph) 알리(Ali)의 아들이자 이슬람(Islam)의 예언자(prophet) 무하마드(Muhammad)의 손자인 후사인(Husayn)이 이름이 샤르반누(Shahrbanu)인 포로 사산조의 공주와 결혼했다는 전설이다. 이 "전적으로 꾸며낸 인물"[18]이 역사적 시아파(Shi'a) 이맘(imam) 4대 후사인을 아들로 베었다고 말하는데, 그는 칼리프직(caliphate)이 정당하게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속하여야 한다는 것과 우마이야조(Umayyads)가 그릇되게 그들에게서 그것을 탈취해 갔다는 것을 주장했다. 사산조 가문의 후손 주장은 우마이야조의 아랍민족주의에 상쇄하여 이란 민족과 조로아스터교의 과거와의 관계를 무장해제하였다. 이리하여 학자인 마리 보이스(Mary Boyce)에 따르면, "과거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옹호하는 쪽은 조로아스터교도들 만인 것은 더 이상 아니었다."[18] 무슬림이 되는 것은 비이란인(Un-Iranian)이 되는 것과 동등하였다는 "고발장"은 오직 조로아스터 텍스트들상의 한 관용구로 남았다.[18]

이란계(특히 페르시아인)의 지지로 아바스조(Abbasids)는 750년 우마이야조(Umayyads )를 타도했고,이어지는 칼리프제 정부—명목상으로 1258가지 존재—에서는 받아들인 무슬림 이란인들이 새 정부에서 이란과 바그다드(Baghdad)의 수도 양쪽에서 선호되었다. 아랍인과 이란인간의 적대감을 완화시켰지만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차이를 뚜렷이 했다. 아바스족는 열성으로 이단들(heretics)을 박해했고, 이가 주로 무슬림 종파주의자(sectarians)를 겨냥한 것이지만 또한 비무슬림들에 대한 더 가혹한 기후를 창출했다.[19] 아바스조가 치명적인 조로아스터교의 적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이란 곳곳에 퍼뜨린 이슬람의 류는 차례로 더욱 "조로아스터교화"되면서 이란인들이 이슬람을 껴안기가 더 쉽게 했다

9세기는 조로아스터교가 대규모상으로 창조적인 작품에 관여한 의미를 가진 마지막이며, 9세기는 8세기 9세기에서 10세기 중에 짓거나 다시 씌여진 거대한 수의 조로아스터 텍스트(사본이나 덜한 수정본은 제하는데 그런 것들은 때대로 그후로도 계속되었다)들을 정의하게 되었다 . 이 모든 작품이 그 시기 중세 페르시아어(Middle Persian) 방언(아랍어 단어가 없음)으로 쓰여졌고 어려운 팔바비어 스크립트(Pahlavi script)(그런 까닭에 "팔라비어(Pahlavi)"란 용어의 변종언어와 조로아스터교 책들에 대한 장르에 대한 이름으로서의 적용)로 쓰여졌다. 크게 읽히면, 이 책들은 여전히 평신도(laity)에게 이해가 쉽웠다. 이들 텍스트들의 많은 것이 이 시기 시련에 대한 반응이며 ㅡ 모든 것이 신앙적 믿음으로 정진하라는 강론을 포함했다. "덴카르드(Denkard)"와 같은 몇몇은 이 종교에 대한 교의적인 방어였으며 반면 다른 몇몇은 신학적 관점의 설명(분다이신Bundahishn 작품 같은 것들)이나 그에 대한 관습적 관점(예, 의식에 대한 설명)이다. 대략 60의 이런 작품들이 존속하고 있다고 알려지는데 그 중 언떤 것들은 오직 다른 작품속에 언급됨으로써만 알려진다.[citation needed]

두개의 제안 법률이 특히 이슬람 우세적 사회로의 이행을 고무했다.[citation needed] 첫 칙령은 아르사케스(Arsacid)와 사산(Sassanid) 왕조에서 채택된 것으로(하지만 조로아스터교도의 이익을 위해서였음), 무슬림만 자신의 무슬림 노예들이나 고용살이indentured servants)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로아스터교도에 의해 소유된 속박된 개인은 자동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한 칙령은 조로아스터 가정의 한 남성 구성원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그는 자동적으로 그 재산 전부를 상속했다는 것이다.

아바스조 통치하에, 무실림 이란인들(그 때까지는 다수였다)은 점증적으로 조로아스터교도들을 조롱하는 방법을 찾았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인기있는 스포츠였다. 예를들어 9세기에 깊이 공경되었던 호라산(Khorasan)의 사이프러스 나무(cypress tree)(파르티아시대 전설로는 조로아스터 자신이 심었던 것이라 함)가 2,000 마일(3,200 km) 떨어진 바그다드 궁전 건설을 위해 베어졌다. 10세기에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이 많은 어려움과 지출로 완성된 어느 날, 무슬림 관리는 그에 타는 것과 벽에서부터 아잔(adhan) (무슬림들이 기도문 복창)을 부르는 것을 획책했다. 이는 건물을 병합하려는 한 구실이었다.[20] 또다른 조로아스터교를 괴롭히는 인기있는 수단은 개들을 학대하는 것인데 이 동물들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신성한데 따른 것이다. 이런 미끼는 수세기간 계속 내려온 거인데 모두가 탐닉한 것이라 고위 관리는 물론 일반적으로 비교육받은 인구들 역시 그랬다.

종교 변환을 위한 이런 경제사회적인 유인책에도 불구 조로아스터교는 몇몇 지역에서 강하게 남았는데 특히 바그다드에 있는 칼리프의 도읍에서 가장 멀리 있는 지역이다. 부하라(Bukhara)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에 대한 저항은 9세기 아랍 사령관 Qutaiba이 그의 속주를 네 번 변환시켰다. 처음 세번 시민들은 그들의 옛 종교로 재귀하였다. 마지막으로, 총독이 그들의 종교를 "모든 면으로 그들에게 곤란하게" 만들었고 지방의 배화 사원을 모스크(mosque)로 만들어 지방인구들이 출석자 당 두 디르함(dirhams)을 지불하는 것으로 금요 예배에 출석하도록 장려했다.[17] 아랍 총독들이 거주하는 도시들은 특히 이런 압력에 취약했으며, 이런 경우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따르던가 더 원만한 행정이 있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17]

이런 이주들 중에 거대 염류사막(의 끝)의 도시에로의 것 특히 야즈드(Yazd)와 케르만(Kerman)으로의 것이 있는데 이란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으로 이때가지 남았다. 야즈드(Yazd)는 몽골 일한국(Mongol Il-Khanate) 체제에서이란의 고위 사제들의 자리가 되었는데 이 때 "[비무슬림들의] 생존에 대한 최상의 희망이 이목을 끌지 못했다."[21] 오늘날 조로아스터교의 생족에 핵심적인 것은 북동이란 "남서 호라산의 산잔(Sanjan in south-western Khorasan)"의 소도시[22]로부터의 서부인도의 구자라트(Gujarat, in western India)로의 이주다. 그 그룹의 후손이 오늘날 파르시(Parsis)—"구자라트인(Gujaratis)으로 오랜 전승으로 부터 이란에서 온 자들로 불림"[22]—로 알려져 조로아스터의 두 그룹 중 큰 쪽을 오늘날 대표한다.


또한 북동 이란의 호라산(Khorasan)에서 10세기 한 이란 귀족이 Book of the Lord (Khwaday Namag)란 제명의 사산조 시대 중세 페르시아 작품을 팔라비어(Pahlavi) 문에서 아랍문으로 전사하도록 네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모아들였다. 이 전사는 중세 페르시아어 산문(아랍어 버젼은 al-Muqaffa의 것이 또한 존재)에도 남았는데 957년 완성되어 결과적으로 피르다우스(Firdausi)의 "왕들의 책(Book of Kings: 샤나메)"의 기초가 되었다. 이는 조로아스터교도 무슬림 양자들 사이에서 광대한 인기를 갖게 되었고 아르사케스조를 쓰러뜨린 사산조의 정당성을 퍼뜨리는데 봉사하였다(i.e., 사산조는 헬레니즘적 아르사케스조가 조로아스터교가 썩어바지도록 허용한 이후 그 "정통" 형태에 대한 신앙을 회복했다는 것).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의 투쟁은 10세기와 11세기에 쇠퇴하였는데 그때까지 대부분의 나라[which?] 이슬람이었던 데 따른 것이다. 지역적 이란계 왕조들 "모든 왕성한 무슬림"[22]이 칼리프들(Caliphs)의 대개 독립적인 속국(vassals)으로 나타났다. 16세기에 이란계 조로아스터교도들과 그들의 인도의 동교인 사이의 치른 편지들에는 야즈드(Yazd )의 사제들이 "[인류사의] 어떤 시기에도 알렉산더기(Alexander) 도 물론하고 '이 분노이 악마(demon of Wrath: 아에슈마)의 밀레니엄(millennium)'보다 더 믿는자들에게 통한스럽고 힘겨운 때는 없었다"라고 한탄했다.[24]





The Zoroastrian Achaemenid Empire at its greatest extent was the largest ancient empire in recorded history at 8.0 million km2 (480 BC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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