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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종교학 :::


113 23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안명준
Subject   수메르인의 기원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HV1XKzLJ8rjZ/cnkIrZvULaFHJhIKHh4&qb=vLPH/LmuwNo=

수메르인의 기원
 heliconmoon 답변채택률  70.7%
2007.05.24 05:01  
질문자인사 감사합니다..^^

수메르는 인류 최초로 문자를 기록하였다는 민족인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초입니다

혹설에는 이 수메르가 우리나라 배달국의 수밀족이 대륙이동을해 이곳으로 이동 정착한 문명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근거한것은 수메르족의 문자인 쇄기문자가 우리의 매듭 형태와 같다는 것과 인종적문제를 근거한것이라 합니다 며칠전  역사학자 신용하 교수가  우리의 부여국이 대륙이동하여 유럽의 불가리아 를 건국했다는  동아일보기사를 참고하세요 만약 이 교수의 논리가 가능성이 많다면 수메르도 수밀족일가능성이 높은것이겠지요

 

유물은  유명한 독수리 석비와 쇄기문자판이 있습니다

(이유물은 프랑스 탐사반이 방사능 탄소연대측정을 한결과 수메르 유물임을 확인)

 

수메르에대한  자료인데 참고하세요

 

수메르(Sumer)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이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기원전 3500년 부터 수메르 지방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기원전 2000년 쯤에 메소포타미아 북쪽의 아카드지방에 살던 셈족 계통의 아카드 사람들이 수메르 지방을 점령하고 바빌로니아를 세웠다.

수메르의 어원
"수메르인"이란 말은 그들의 뒤를 이은 아카드인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상기가(sag-giga) "검은 머리 사람들"[1]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땅은 키엔기르(Ki-en-gir) "수메르말을 쓰는 사람들의 땅"[2][3][4]이라고 불렀다. 아카드어 "슈메르"는 아마도 이 것의 방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왜, 아카드인들이 이 남쪽 땅을 "슈메루"[2][4]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의 "시날"(Shinar), 이집트의 "신그르"(Sngr), 히타이트의 "산하르"(Sanhar)는 모두 "수메르"의 서방 방언으로 볼 수 있다.[2]


 
 배경
수메르인은 솀어족이 아니고, 언어학자들이 수메르어의 바탕이 된 기저 언어를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때 침입자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고고학적 기록은 초기 우바이드기(기원전 5200년~4500 또는 6090~5429)에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한 이후에 문화적 단절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 지방에 정착한 수메르 사람들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풍푸한 충적토로 비옥해진 땅을 경작하였다.

당시에는 강우량이 현재 보다 적었기 때문에, 척박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려 한 모든 인종들의 도전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잘 관리하여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수메르어에는 운하, 제방, 저수지등에 관련된 단어가 많이 발견된다. 수메르 인들은 북부지방에서 농업 기술을 습득한 뒤에 남쪽으로 내려온 농부들이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바이드 토기는, 북부의 사마라 유적(기원전 5700년~4900)의 토기와 연속성이 발견된다. 사마라 사람들은 티그리스 강 중류 지방에서 최초로 원시적인 형태의 경작을 시작한 부족들이다.

우바이드 유적과 사마라 유적의 유사성은 라르사 근처의 텔 아웨이리 (1980년에 프랑스 발굴단에 의해 발굴됨)에서 발견된 사마라 토기와 유사한 전기 우바이드 토기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북부 지방의 농부들은, 신전 중심의 사회구조를 만들어 내고, 수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남쪽의 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면서,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국가
기원전 4세기후반 까지, 수메르는 10여개의 독립된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도시국가들은 대체로 수로와 경계석으로 둘러쌓여 있고, 중앙에는 도시의 수호신이나 수호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위치하였다. 도시는 엔시라고 불리는 성직자나 루갈이라고 불리는 왕이 통치하였다.

다음은 수메르의 주요 도시들 위치순서대로(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나열한 것이다. 괄호 안은 현재의 도시 이름이다.

마리
아가데
키시 (Tell Uheimir & Ingharra)
보르시파 (Birs Nimrud)
니푸르 (Nuffar)
이신 (Ishan al-Bahriyat)
아다브 (Tell Bismaya)
슈루팍 (Fara)
기르수 (Tello)
라가시 (Al-Hiba)
바드-티비라 (Al Medina)
우루크 (Warka)
라르사 (Tell as-Senkereh)
우르 (al Muqayyar)
에리두 (Abu Shahrain)
중소 도시:

시파르 (Abu Habba)
쿠타 (Tell Ibrahim)
딜바트 (Tell ed-Duleim)
마라드 ((Wanna es-) Sadun)
키수라 (Abu Hatab)
자발라 (Tell Ibzeikh)
움마 (Tell Jokha)
키시가 (Tell el-Lahm)
아완
하마지
에쉬눈나
악샤크
짐비르
 역사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은 선사시대의 우바이드기와 우루크기에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9세기경 초기 왕조 시대부터 역사적 기록들이 드물게 발견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6세기경 라가시기부터는 많은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 수메르는 기원전 24세기에 아카드 제국이 들어서면서 막을 내린다. 이후 구티인 지배 시기를 지나, 기원전 22세기 "수메르 부흥기"를 맞았다가, 20세기경에 아모리인이 침입한다. 아모리인의 이신 왕조는 기원전 1730년, 메소포타미아가 바빌로니아 지배하에 들어갈 때까지 유지된다.

 우바이드기期
우바이드기 동안에 특징적인 양식을 갖는 양직의 도기류들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만 영역에 분포되고 있다. 당시 수메르인의 종교적 중심지는 에리두였으나, 인근의 도시인 우루크가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에리두를 추월하게 된다. 고고학적으로 우바이드기에서 우루크기로의 이동은 느린 물레에서 만들어진 채색 토기에서, 빠른 물레에서 양산하여 만든 비채색 토기로 바뀌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제4우바이드기에서 초기우루크기로의 이러한 변화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대략 기원전 4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루크기期
우루크기 (기원전 4500년~3100년)에 이르러, 대량의 물품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운하와 수로를 통해서 거래되면서, 거대한 신전중심 도시들이 많이 세워졌고, 집권화된 관료층이 전문화된 일꾼들을 고용하였다. 이 시기에 노예 제도가 시작되었다는 많은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많은 공예품과 우루크의 식민지들이, 터키의 타우루스 산맥과, 지중해 서안, 이란 중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수메르 상인들과, 이민자들에 의해서 우루크기의 문명은 모든 주변세력에게 영향을 미쳤고, 점차 주변세력들도 경제적으로네 문화적으로 비교될 만큼 성장하였다. 그러나 수메르의 도시들은 먼 거리의 식민지를 무력으로 제압할 만한 군사력은 갖추지 못했다.

우루크기의 끝은 기원전 3200년~2900년 경의 기후 변화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에 홀로세 최적기후(Holocene climatic optimum)라고 불리는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기후가 끝나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었다.

역사적 기록들은 대체로 수메르인이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루갈안네문두(Lugal-Anne-Mundu)와 같은 왕은 지중해, 타우루스, 자그로스까지 영역을 넓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보다 조금 전에, 에리두 문화가 우루크 문화로 넘어가는 역사적 과정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 엔메카르와 길가메시와 같은 왕들도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다.

 

우르의 군기(軍旗)에 그려진 초기 전차, 기원전 2600년
초기 왕조
고대 수메르의 왕들의 목록이 초기 왕조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많은 고대 왕명표와 마찬가지로, 전설적인 이름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목록에서 다른 문서에서 찾을 수 있는 첫번째 왕은 에타나(Etana)로, 키시의 첫번째 왕조의 13번째 왕이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첫번째 왕은 키시의 엔메바라게시(Enmebaragesi)로 왕조의 22번째 왕이자, 끝에서 두번째 왕이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당시 패권이 키시에서 우루크로 넘어갔던 것으로 미루어, 길가메시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움마의 제사장-왕, 루갈작게시(Lugal-Zage-Si)는 라가시 왕조를 전복시키고, 우루크를 정복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고,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제국을 세웠다. 그는 솀어족의 아카드왕 사르곤[5]이 등장하기 이전의 마지막 수메르인 왕이었다.

라가시 왕조
라가시 왕조는 많은 유적들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중 기록상 최초의 제국은 에안나툼의 제국으로, 그는 수메르의 키시, 우루크, 우르, 라르사 등 모든 도시들 실질적으로 지배하였고, 경쟁 도시였던 움마로 부터는 조공을 받았다. 또한, 그의 영토는 페르시아 만을 따라 엘람의 일부까지 미쳤다. 그는 통치를 위하여 공포(terror)정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독수리 석비에서 적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카드 왕조
솀어족의 아카드어는 기원전 2800년경 부터 사용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500년경 부터는 완전히 고대 아카드어로만 씌어진 책을 찾을 수도 있다. 고대 아카드어가 가장 널리 사용된 기간은 사르곤왕 때에(기원전 2350년~2330년) 경이지만, 그 기간에도 대부분의 행정관련 서판에서는 서기들이 주로 사용하던 수메르어로 씌어져 있다. 겔브(Gelb)와 베스텐홀츠(Westenholz)는 세가지 고대아카드어 방언--사르곤이전, 사르곤시대와 아가데지방, 우르 제3 왕조기--을 구별해 냈다.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는 대략 1000년정도 (기원전 2800년~1800년) 지속되다가 결국에는 수메르어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소르킬드 야콥슨(Thorkild Jacobsen)은 사르곤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의 역사적 연속성의 단절이 거의 없다고 보고, 솀어족과 수메르어의 충돌이 너무 많이 강조되었다고 주장한다.[6] 그러나, 적어도 사르곤이 엘람을 정복했을 때 엘람인들에게 아카드어를 잠시동안이나마 강요했던 것은 분명하다.

구티족 지배
아카드 제국이 구티족에 의해 무너진 뒤, 새로운 수메르의 지도자, 라가시의 구데아(Gudea)가 부흥하기 시작하였고, 예술이 발달하고, 사르곤을 따라 신권 정치를 표방하였다.

수메르 부흥기
그 후로, 우르-남무 왕, 슐기 왕 등의 우르 제3 왕조가 북부 메소포타미아 까지 영향력을 미치면서 마지막 수메르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미 수메르 지역은 아모리족이 대거 유입되면서 솀어족의 성격이 더욱 진해져 있었다. 아모리족은 후에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한다. 중세에 라틴어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 처럼, 설형문자가 계속해서 쓰이는 동안에는 수메르어도 여전히 학교에서 종교적 언어로 가르쳐졌다.

생태학적으로는, 수메르 땅의 염분의 증가로 인하여 농업 생산력이 감소하였다. 농업 용수의 증발량이 많아 지면서 토양에 녹아있는 염분이 증가한 것이 농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원전 2000년경 부터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규모가 작은 도시 부터 서서히 수메르 문화가 와해되어 간다.

 
쇠망
엘람인의 침략과, 이비-신 지배 하(기원전 2004년)에서의 약탈 이후, 수메르는 다시 아모리 족의 지배하여 들어간다.(이 때 청동기시대로 접어든다.) 기원전 20세기~18세기의 아모리족 도시국가는 수메르의 왕명 목록에 "이신 왕조"로 기록되어 있고, 기원전 1730년 함무라비왕의 바빌로니아로 넘어간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토양의 염분 증가로 인한, 남부 이라크 지방으로부터 북부 지방으로 의 인구이동 시기와 일치한다. 이 지방에서 토양 염분 증가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경작된 토지에 배수가 잘 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조한 기후로 인한 수분의 증발은 토양 속에 소금 결정을 축적시키고, 결국은 수확량을 결정적으로 줄어들게 만들었다. 아카드 왕조와 우르 제3 왕조 동안, 밀 보다 염분에 더 강한 보리를 많이 경작하기 시작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기원전 2100년~1700년 사이 인구는 거의 3/5로 줄어들었다.

 

 

수메르어는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고대 수메르족이 쓰던 언어이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000년대 말 경에 점토에 문자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웠으며 단순한 행정기록만을 남길 수 있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문자체계를 수정하고 형성하여 아주 양식화된 순수한 표음문자 체계로 발전하여 기원전 2500~2000년 사이에는 가장 복잡한 역사적, 문학적 작품도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충분한 감각과 유연성을 갖춘 설형문자(楔形文字,쐐기문자) 체계가 되었다. 기원전 2000년대가 끝나기 전에 수메르 인들이 점토판, 기둥, 원주 등에 당시까지 구전되어 내려오던 문학적 창작물들을 새겼다.

기원전 2000년 말기에 셈 족인 아카드 인들이 점진적으로 수메르를 정복하면서 수메르 문자를 받아들이고 수메르어가 구두언어로 사멸한 지 오랜 뒤에도 그들은 그것을 공부하고 모방했다. 따라서 수메르의 단어와 어구를 아카드어로 번역한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전이 편찬되어 수메르어의 단어 의미, 문법, 소리를 알아내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점토판에 설형 문자로 새겨진 수메르어

 

출처 : 자료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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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10.22 - 10:45
LAST UPDATE: 2008.03.26 -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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