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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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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ahn
Subject   [유럽교회8] 제네바의 칼빈

http://www.cbs.co.kr/chnocut/show.asp?idx=1507063


[유럽교회8] 제네바의 칼빈
 
 
임태수(전 호서대 교수)


1) 제네바를 향하여

아내와 나는 1997년 4월 10일 아침 7시경에 김준호 집사댁을 출발해서 제네바(Geneva)로 향하여 차를 달렸다. 왼쪽에 Leman호수를 끼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레만호수 위쪽으로는 말로만 듣던 알프스의 몽블랑(Mont Blanc)이 하얀 눈에 덮인 채 길게 가로 누워 있었다. 우리는 레만 호수를 끼고 제네바(Geneva) 까지 70여km를 달렸다. 제네바로 가는 길 좌우 경치가 아름다웠다. 길 좌우에 파란 목장들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서 풀을 뜯는 젖소들의 모습이 전원적인 풍경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고속도로 좌우의 밭들도 잘 가꿔져 있고, 산과 강들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산의 나라 스위스, 그러나 그 자연을 잘 이용하여 세계 제1의 부국으로 만든 스위스가 부러웠다. 파란 잔디, 갓 피어난 꽃들, 연한 나뭇잎들, 새싹들.....모두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유명한 로잔(Lausanne)을 바로 왼쪽에 두고 스쳐 지나가야만 했다. 들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약간은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 여행이 관광목적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준비 노트를 보면서 제네바에서 방문할 곳들을 메모했다.

2. 제네바 대학의 종교개혁연구소

제네바에 도착해서 제네바 대학 안에 있는 종교개혁연구소를 찾았다.


소장인 히그만(F. Higman) 교수를 만나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1536년부터 1538년까지 2년 동안 살다가 추방당했고, 1541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서 1564년까지 살았단다. 모두 합해서 26년간 제네바에서 산 셈이다. 그의 생애(1509-1564)의 절반 가까이를 제네바에서 산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목사와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강의하고 교회를 조직하는 활동을 정력적으로 하였다. 1559년에 아카데미를 설립하였고, 그의 사후에 이 아카데미가 발전하여 오늘의 제네바 대학이 되었다. 제네바 대학은 17세기까지는 신학이 중심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신학부 뿐만 아니라, 법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공들을 가르치는 종합 대학이 된 것이다. 히그만 교수는 칼빈이 독재자(dictator)가 아니었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칼빈이 제네바에서 독재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의식하고, 그 사실을 시정하기 위하여 칼빈이 독재자가 아니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간단한 증거로서 1541년에 칼빈이 제네바에 왔을 때 인구가 10,000-12,000명이었는데, 그가 죽을 때인 1564년에는 23,000명이 된 사실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만약 칼빈이 제네바에서 독재를 했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제네바로 몰려왔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네바로 몰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제네바를 살기 좋은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의미하고, 이는 칼빈이 제네바를 독재의 도시가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히그만 교수는 말했다. 히그만 교수는 칼빈을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내가 히그만 교수에게 “칼빈의 생애를 살펴보았으나 그가 신학을 공부했다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히그만 교수는 “칼빈은 신학을 공부한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칼빈은 독학으로 신학 공부했다고 하면서 칼빈은 천재라고 히그만 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칼빈은 신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아버지가 반대해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법률을 공부했단다. 칼빈은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독창적인 신학사상을 가진 창조적 사상가요 신학자라고 히그만 교수는 강조했다. 칼빈은 루터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멜랑히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루터를 알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칼빈의 글 가운데 이런 저런 것들을 루터의 영향이라고 말하나, 이것은 확실히 알 수 없는 추측일 뿐이라고 히그만 교수는 말했다. 히그만 교수는 칼빈이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독자적인 사상가임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칼빈에 관한 히그만 교수의 저서 두 권 사가지고 나왔다.

그와의 면담을 끝내고 그의 조교인 켐프(Dr. Kemp) 박사의 안내로 종교개혁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은 크지는 않았지만,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필사본 성서들, 불어판 첫 성서번역본 등이 있었다. 이곳에 칼빈의 초상화들과 그의 필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물 가운데는 후스가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자리의 흙을 가지고 만든 후스의 작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루소의 방이 칼빈 전시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이는 루소(1712년에 제네바에서 출생)가 칼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란다. 켐프 박사는 뒤낭의 적십자 운동, UN운동, 크롬웰의 청교도혁명 등이 칼빈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칼빈은 그의 조국 불란서가 개신교국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해서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3.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활동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칼빈의 다른 유적들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먼저 제네바 대학 운동장 한쪽 벽면에 새겨진 종교개혁자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벽면에는 왼쪽에서부터 파렐(Farel), 칼빈, 베제(Beze), 녹스(Knox)의 순서로 그들의 전신상이 실물보다도 크게 돌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에는 이들 네 인물들보다는 작은 모습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운동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조각상들이 새겨져있고, 루터와 츠빙글리의 이름도 좌우에 새겨져있었다. 칼빈을 종교개혁의 길로 들어서도록 권유한 사람은 그의 친구 파렐(G. Farel)이었다. 파렐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칼빈에게 개혁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파렐이 여러 차례 강권하자 칼빈은 파렐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네바의 개혁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 때 칼빈의 나이 27세였다(1536년). 파렐은 그보다 20세 많은 47세였다.

칼빈은 1536년부터 1538년까지 제네바에 머물면서 정열적으로 제네바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개혁을 서두른 나머지 시의회와 갈등이 야기되었고, 그 결과 칼빈과 파렐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었다(1538년). 칼빈은 스트라스부르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칼빈과 파렐이 떠난 제네바는 혼란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혼란상태를 벗어나기 위하여 시의회는 갖가지 수단을 써보았으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다. 그래서 시의회는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바로 잡을 사람은 칼빈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칼빈에게 제네바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칼빈은 제네바에서의 일이 너무나 힘들어 많이 망설였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하고 제네바로 다시 돌아왔다. 그 때가 1541년 11월 13일,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4. 생피에르 교회와 아카데미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조각상을 본 다음 생피에르(St. Pierre) 교회로 향했다. 생피에르 교회로 가면서 우리는 “칼빈 거리”(Rue Jean Calvin. 1509-1564. 제네바의 신학자요 종교개혁자)라는 거리표지판을 보았다. 칼빈이 이 거리를 26년 동안 걸어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제네바 대학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생피에르 대성당(St. Pierre Cathedrale)이 있었다.


아주 웅장하고 큰 교회였다. 여기서 칼빈은 설교하였다. 칼빈은 1년에 250번 설교하였다. 한번 설교할 때마다 1시간 정도 하였다. 칼빈이 설교할 때는 하루에 2-3절씩 성경을 차례로 설교하였고, 원고 없이 설교하였다고 한다. 설교할 때마다 속기사가 설교를 받아 적었다. 그 가운데 3/4은 유실되었고, 1/4인 600편만 후대에 전달되었다.

생피에르 교회를 떠나 칼빈이 세우고 강의한 아카데미로 향했다. 아카데미로 가는 길 좌우 거리들의 이름이 녹스, 파렐 등 종교개혁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거리가 16세기에 스위스의 개혁을 주도한 개혁자들의 거리였다. 여기에서 전 세계로 종교개혁이 번져나갔던 것이다. 생피에르 교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칼빈이 1559년에 설립했던 아카데미(Academy of Calvin)가 있었다.


이 학교에 유럽의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녹스(J. Knox)가 있었다. 지금 이름은 칼빈 칼리지(Calvin College)다. 칼빈 아카데미 운동장 안으로 들어와 보니 한 낡은 건물이 있고, 그 건물에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인 헬라어 “ΙΗΣ”라는 표식과 “1558” 이라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 건물이 칼빈 당시의 것이란다. 이 건물이 아까 히그만 교수가 말한, 1559년에 칼빈이 세운 아카데미인 것이다. 가운데 있는 2층 건물만이 칼빈 시대의 것이고 좌우의 것은 새로 지은 것이란다. 이 아카데미가 발전하여 오늘의 제네바 대학이 된 것이다.

칼빈은 생피에르 교회 옆에 있는 Auditoire와 이 아카데미에서 목사, 평신도,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였다.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강의를 속기로 받아 적어 칼빈의 감수를 받은 다음에 출판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칼빈주석이다. 한 여선생에게 물어보았더니 칼빈과 아카데미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칼빈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네바에서 우상숭배, 간음, 미신, 마술, 음주, 탐욕, 춤, 천박한 노래, 오락, 도둑질, 사기, 주문 등 부정한 행위를 철저히 근절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였다.

칼빈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제네바에 돌아올 때(1541년)는 여기서 영구히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제네바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죽으면서 자기를 성자로 숭배하지도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고 일반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고 1564년 5월 27일에 서거했다. 그래서 수백년이 지나도록 그의 무덤을 찾지 못하였다. 그의 무덤을 찾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칼빈의 무덤을 찾다가 I.C.(Iohan Calvin)라는 이니셜이 있는 무덤을 발견하고, 이것이 칼빈의 무덤이라는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1997년에는 이 무덤을 보지 못했으나 2005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의 무덤을 참배할 수 있었다.


5. WCC와 WARC 방문

4월 10일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캠핑카에 들어와 잤다. 4월 11일에는 WCC와 WARC를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내와 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건물을 찾아갔다. WCC 건물은 생각한 것 보다는 크지 않았다(사진9). 우리는 먼저 WCC 건물 안에 세 들어 있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을 방문하였다. 체코 출신의 오포첸스키(Opocensky) 총무가 친절히 맞아주었다. 그는 종교개혁자 후스(Jan Hus: 1369-1415)의 추종자들 가운데 일파가 모여 결성한 보헤미아 형제단교회(Die Evangelische Kirche der Böhmischen Brüder)에 속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방문하려고 하는 체코 프라하의 후스 유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주었다. 그는 후스의 종교개혁을 제1종교개혁이라 부르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제2종교개혁이라고 불렀다. 그는 내가 얻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얻지 못하고 포기한 발두스(Valdus)의 후예인 발덴저(Valderser)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들은 지금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토레 펠리체(Torre Pellice)에 있다고 약도까지 그려주며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만약 그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발데제(Valdese) 교회를 찾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아주 친절한 분이었다.

WARC 방문을 마치고 나와 WCC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콘라드 라이저(Korad Raiser) 총무는 여행중이서 만나지 못하였고, 한국에서 와서 WCC에서 일하고 있는 박경서 박사도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독일인 안내원인 프라우 발(Frau Wahl)이 약 4시간에 걸쳐 WCC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자세히 설명해 주고 맛있는 점심까지 사주어서 잘 먹고 프랑스 리용 북쪽에 있는 테제(Taize) 공동체로 향하였다.

yimtaesoo@hanmail.net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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