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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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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김정훈
Subject   칼빈예정론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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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예정론 (Calvin's Doctrine of Predestionation) /

김정훈 (光神論壇, Vol.9 No.1, [2000]) 칼빈의 예정론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Calvin's Doctrine of Predestionation

김정훈 (Kim, Jung Hoon ) 광신대학교 신약학 조교수 2-637-0001-04 pp.119-141  





I.서론

칼빈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회복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의를 전가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칼빈의 칭의 사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의 예정 교리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칭의 개념은 그의 예정 사상의 조망 아래 있기 때문이다. 칼빈의 신학체계에 있어 그의 예정 사상은 다른 교리들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많은 칼빈 연구가들은 그의 예정론을 그의 중심 교리로 취급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한 것은 이 교리의 신봉자라고 할만한 사랑들조차도 이 교리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불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칼빈이 말하는 예정이란 무엇인가? 그에게 있어 예정이란 창조될 모든 것에 대한 존재의 결정을 의미한다. 2)

그는 예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decree)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바로 이 뜻에 의해 하나님이 친히 인간 각 개인의 장래를 정해 놓으셨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1.5) 3) 칼빈은 부패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논하는 가운데 육의 본체나 영혼의 본체 자체에 오염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받은 은사를 상실하고 그의 후손이 이 일의 영향을 받도록 작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Institutes, Ⅱ.1.7).

 

칼빈은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을 논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구원에 어떤 사람은 멸망에 예정되었다고 하는 것만큼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칼빈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 예정 교리는 매우 어려운 논제이다(Institutes, Ⅲ.21.1), 칼빈은 우리가 이 예정의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이미 신적 지혜의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ibid.). 그는 누구든지 조심성없이 이 문제에 뛰어들면 호기심도 채우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ibid.).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숨겨 놓으신 것을 삼가지 않고 들추어내려 한다거나 그의 지극히 오묘한 지혜를 영원계로부터 노출시키려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ibid.). 하나님은 이 오묘한 지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앙모함으로써 기쁨과 경이감을 갖게 되기를 원하신다(ibid.).




칼빈은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하여 "주의 말씀이야말로 그에 대해 마땅히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탐구하기 위한 유일의 길이요, 그에 대해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비치는 유일의 빛"이라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1.2: cf Klooster, op. cit, p. 23). 그는 계속 어거스틴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허용하는 이외의 예정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길도 없는 거친 들로 나가거나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탈선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정에 대한 모든 논의 를 회피하는 것도 비성경적임을 지적한다(Institutes, Ⅲ.21.3).

그는 성경이 명백히 계시하고 있는 것을 신자에게 숨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성경을 따라가는 한 안전을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Institutes, Ⅲ.21.4) .

 

필자는 본고에서 칼빈의 예정 교리에 비추어 본 인간의 구원 문제를

그의 선택 교리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 보고자 한다.

 

II.제한된 인간 선택

우리가 선택의 교리를 명백히 깨닫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교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관, 인생관, 우주관, 그리고 구원관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5) 선택의 교리는 총괄적 예정론의 특수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6) 다시 말하여 그것은 예정 교리의 구원론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교리는 죄인의 구원 문제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선택은 인간의 구원과 관련돼 있다. 7)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총괄적으로 섭리하실 뿐 아니라 실제로 개인의 구원 문제에 간섭하시며 특정 개인의 영생을 위한 모든 수단까지 선택하신다. 8) 선택이란 절대적, 도덕적, 인격적 행위이므로 그것은 구원의 대상에 대한 영원불변의 유효적 결정인 것이다. 칼빈의 선택 교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택의 차별성이다. 그는 "실제에 있어 생명의 약속이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전파되고 있지 않으며 그 약속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도 시간적으로 혹은 정도상으로 그것을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다양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깊이를 드러내 준다"고 말한다(Institutes, Ⅲ.21.1). A.선택의 차별성 칼빈은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를 생명 혹은 죽음에로 예정하시어 어느 한 쪽의 결말을 향하게 하셨다는 것이다(Institutes, Ⅲ.21.5). 그는 인간의 차별적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진술한다.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부르는 바,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은 친히 각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을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상태로 창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벌이 작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은 각각 혹은 이런 종말에, 혹은 저런 종말에 이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생명, 혹은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ibid.) 이 주장은 칼빈이 선택과 유기라고 하는 이중예정(二重豫定) 교리를 견지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9) 그는 궁극적 의미에 있어서 인간은 선택된 인간이거나 아니면 버려진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Institutes, Ⅲ.21.1; cf. Klooster, op. cit, pp. 17-19). 만인이 동등한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파멸로 예정된 것이다(Institutes,111.21.5). 칼빈의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밝히 드러난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그의 영원불변하신 계획에 따라 구원에 이르게 할 자들과 멸망에 이르게 할 자들을 결정하셨다. 우리는 선택된 자들에 관한 한 이 계획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공정하고 비난할 수 없는, 그러나 불가해한 판단에 의해 그가 파멸에 넘겨준 자들에게 생명의 문을 폐쇄시키셨다. 지금 선택된 자들 중에 우리는 소명을 선택의 증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성취되는 영광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칭의를 또 다른 표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을 소명과 칭의로써 보증하시듯이, 유기된 자들을 그의 이름을 아는 지식과 혹은 성령의 성화로부터 차단시켜 버리심으로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계시하신다(Institutes, Ⅲ.21.7). 칼빈에게 있어서, 인간을 구원의 소망 가운데로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만인 무차별적 선택이 아니다(Institutes, Ⅲ.21.1).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거부하시고 어떤 사람은 허락하심으로써 그의 선택의 차별성을 보여주신다. 바로 이러한 차별 선택에 의해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밝히 드러내신다(ibid.) 그러므로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희생하게 하신 사랑은 만인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일반적, 무차별적 사랑이 아니라 선민만을 위한 특정적, 신비적, 절대적 사랑이다. 10)




 그리스도는 무작위적 전체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백성, 자기의 신부, 자기의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일한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차별없이 구속 받는 자들은 불특정한 모든 사람이 아니라 선택된 모든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연에 의해 비치는 태양처럼 아무에게나 그의 사랑을 전할 필요가 없다. 그는 지적 행위자이며 사람의 대상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 주권자이다(ibid.: cf. Klooster, op. cit, pp. 30-31),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만인을 자신에게로 초청하면서 그중 일부만을 피택자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자기모순이라고 반론하고 싶을 것이다(Institutes, Ⅲ.22.10).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한 곳에는 비가 내리고 다른 한 곳에는 가뭄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신다(암 4:7). 하나님은 결코 만인을 평등하게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일반법칙에 매이지 않으신다(ibid.).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금하시고(행 16:6) 그를 비두니아로부터 돌이켜 마게도니아로 데려가신(행 16:7ff 하나님은 복음의 보배를 기뻐하는 자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실 권리를 갖고 계신 것이다(ibid.).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구원의 약속이 어떻게 선택된 백성에게만 주어지는지를 분명히 선포하신다. 전인류가 차별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사 8:16).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소식이 널리 전파되고 있으나 믿음의 선물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ibid.). 바울의 경고대로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다툴 수 없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Institutes, Ⅲ.23.1). 칼빈은 "인간이 약하고 하찮은 이성의 척도 아래 무한한 것을 가두려고 할 때만큼 심한 광기를 부릴 때도 없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3.4). 그는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우리의 이성은 왜 그것이(차별선택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탐구하도록 허락 받고 있지 않다. 칼빈은 우리의 이성은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Institutes, Ⅲ.23.5). 과연 인간이 신에 대하여 왜 그렇게 작정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왜 자기가 소나 말이 아니고 사람인가를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Institutes, Ⅲ.22.1). 하나님은 그를 개로 만드실 수 있었으나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인간이 자기의 의(義)의 척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義)를 측량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될 행위인 것이다(Institutes, Ⅲ.24.17).

 B.성경적 논증 칼빈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또 어떤 이들은 멸망에 버려두기로 작정하신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1.7).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혹은 영원한 계획은 인간의 선택보다도 선행하며 아담의 타락보다도 선행한다(cf. 엡 1:4) 11) 먼저 인간의 개별 선택에 대한 칼빈의 성경적 논증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 얼마를 제거하셨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보호하시며 지켜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Institutes, Ⅲ.21.6). 이스마엘은 처음에 이삭과 동등한 자격을 허락 받고 있었다. 할례의 상징에 의해 그는 영적 계약을 공유하고 있었다(창 17:23ff). 그러나 이스마엘은 끊겨졌으며(창 21'12ff) 마침내 수많은 무리 곧 거의 모든 이스라엘이 끊겨졌다(사 6:9ff). 이스마엘과 그의 동류들이 끊기게 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 주어졌음에도 불성실하게 그것을 어겼던 것이다(ibid.).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야곱은 선택되었으나 에서는 끊겨졌다(창 25:23). 에서는 본래 선택된 민족에 속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언약을 깨뜨리므로 자신이 구원에 관해서는 선택된 자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예시는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사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삼상 15:23; 16:14).

칼빈의 제한 선택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그의 영원 불변하신 계윽에 의해 구원에 이르게 할 자와 멸망에 이르게 할 자를 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은 선택된 자에 관한 한 자유롭게 시행되는 그의 자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가치와는 전혀 무관하다(Institutes, Ⅲ.21.7, cf. Klooster, op.cit, p. 18) 하나님의 계획에서 유기된 자들은 그의 공정하고도 비난할 수 없는 판단, 곧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의해 생명의 문을 폐쇄 당한 것이다(Institutes, Ⅲ.21.7). 선택된 자들은 무엇으로 자신들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것을 명하셨으므로 복음 전파가 그 증거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듣는 것은 아니며 듣는 사람 가운데도 반응은 각기 다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 자체를 선택의 증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칼빈은 "복음 전파가 선택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악한 자들에게도 증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서 충분한 선택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1.1).

칼빈은 선택의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는 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롬 8:30에 언급된 신자의 소명은 "말씀 전파뿐 아니라 성령의 조명도 선택의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4.2). 칼빈에겐 있어 이 유효적 소명은 선택의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택하실 때에 이미 그들을 자기의 자녀로 삼으셨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부르심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보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얼마간의 선택의 몫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Institutes, Ⅲ.24.1).

 

칼빈은 복음 전파를 선택의 작정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그는 주장하기를 "선택된 자들이 소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양무리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시는 데 따라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Institutes, Ⅲ.24.10)이 내적 소명은 하나님의 무상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또한 성령의 유효적 사역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이 내적 소명은‥‥‥ 우리를 기만할 수 없는 구원의 증표"라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4.2)하나님은 소명과 칭와에 의해 그의 택하신 자들을 보증하신다. 그러므로 칼빈은 "이제 선택된 자들 중에서 우리는 소명을 선택의 증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의 완성으로서의 궁극적 영광에 이를 때까지 칭의를 또 다른 증표로 생각한다"고 하였다(Institutes, Ⅲ.21.7).

 

유기된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그리고 성령의 성화 사역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이는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암시해 준다(ibid.). 한편 하나님은 한 민족 전체를 자신의 예정의 대상으로 삼으시기도 한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한 민족의 장래가 좌우된다(Institutes, Ⅲ.21.5). 이는 한 민족 전체가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의미한다. 이러한 예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分定)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基業)이로다"(신 32:8-9).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다 말라버린 고목나무 같은 데서 단하나의 민족만이 아브라함 안에서 특별히 선택되고 다른 민족은 거절된다(ibid.). 이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왜 하나님이 이 은혜를 전인류에게 적용하시지 않는지 충분히 계시되어 있지 않다(ibid.). 모세는 다만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오직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존귀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다(ibid.).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신 4:37). 이 사실은 다른 곳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바, 신 7:7-8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의 수효보다 많은 연고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함이라"고 말한다. 신 10:14-15에서도 그는 "보라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은 본래 주 너희의 하나님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지닌 가치나 행위의 공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심에 있어 하나님은 그 어떤 법칙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의 은혜의 평등 분배란 강요될 수 없다(Institutes, Ⅲ.21.6) 이 불평등성 자체가 피택이 진정 그의 값없는 은혜임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거절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택하시는 데서 하나님의 넓으신 자비가 나타나는 것이다(Institutes, Ⅲ.21.7). 하나님은 그의 숨겨진 계획에 의해 자유로이 그의 원하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물리치시는 것이다(ibid.). 그러나 민족 전체의 선택이 반드시 항상 견고하고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계약을 맺은 그들에게 계약 엄수의 힘이 되는 중생의 영을 동시에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ibid.). 그 계약이라는 것은 외면적 변화일 뿐이지 그들을 힘있게 붙잡아 두는 내면적 은총의 효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ibid.). 이를테면 계약상태는 인류일반이 버려져 있는 것과 소수의 경건한 자들이 선택된 것과의 중간상태와 같은 것이다(ibid.).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지칭된다(신 ,32:9; 왕상 8:51, 시 28:9, etc.).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외도자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무의미하게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구속주가 되실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불성실한 배반보다는 자신의 값없으신 은혜에 비중을 두어 끝까지 진실을 버리시지 않으셨던 것이다(ibid,). 하나님이 오염된 여러 민족 중에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자손 중에서 사람들을 자신에게 계속해서 모으시는 것은 자신의 약속을 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이 계약이 다수에 의해 파기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 약속의 완전 폐기를 막기 위해 이것을 소수 가운데 한정시키셨던 것이다(ibid.).

III.인간 선택의 근거

우리는 앞 절(節)에서 칼빈이 인간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선택이 차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차별 선택론은 그 선택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본절(本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A.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칼빈에 의하면 선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칼빈은 하나님은 그의 원하시는 자에게 은혜를 주심에 있어 항상 자유로우시다고 힘주어 말한다(Institutes, Ⅲ.22.1),

그는 아브라함 자손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들의 특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ibid.),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그가 그렇게 원하시기 때문이다(Institutes, Ⅲ.22.8).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자기 자녀로 삼고자 원하는 자들을 자유로이 선택하신다(Institutes, Ⅲ.22.7 cf. Klooster, op. cit, pp. 39-40). 하나님이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흘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고 하시는 말씀은 마치 은혜 베풀기를 원하는 것 외의 어떤 이유로도 은혜 베풀고자 마음을 움직이시는 일이 없다는 말과 같다(Institutes, Ⅲ.22.8).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계획에 의하여 스스로 모든 일을 통어하시는 것이다(Institutes, Ⅲ.23.7).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의 뜻만이 유기의 원인이라면 왜 하나님은 그가 유기하신 자들의 죄악 행위를 반대하시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이 질문은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칼빈은 이러한 질문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비난에 대해 책임이라도 져야하는 듯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대절한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이렇게 질문한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이기에 전에 그 어떤 잘못으로도 그를 노엽게 한 일이 없는 피조물에 대해 무슨 권리로 분을 내시는가?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자를 멸망에 내버린다는 것은 법을 중히 여기는 심판자의 합법적 판결이라기보다는 폭군의 횡포와 같은 것이 아닌가?'(Institutes, Ⅲ.23.2). 칼빈은 인간의 모든 공로가 무시된 채 오직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 영원한 죽음에 예정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과 쟁론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러한 질문을 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의 원인을 캐묻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만일 이와 같은 생각들이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떠오른다면 하나님의 뜻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악한 행위인가를 일고해 보는 것으로도 그러한 생각들을 제거하는데 충분한 무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원인이며 또한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ibid.). 만일 하나님의 뜻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그의 뜻에 선행하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 선행하는 것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는 바, 이러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ibid.). 그러므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뜻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러나 질문자가 계속해서 "왜 하나님이 그렇게 뜻하셨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끈 것, 더 숭고한 것을 묻는 것이기에 그것은 무모한 질문일 뿐 아니라 사실 그와 같은 것은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용을 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존재자를 찾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는 존재하는 자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ibid.). 칼빈은 우리가 결코 하나님 자신에 대해 법이 되시는 하나님을 법없는 하나님으로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플라톤이 말한대로 악한 욕망에 의해 압제를 당하는 인간들은 법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전혀 오류가 없을 뿐 아니라 완전한 최고의 규범이며 모든 법들 중의 법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다른 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ibid). 칼빈은 "하나님의 뜻은 의(業)의 최고의 규범이기 때문에 그가 뜻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뜻하신다고 하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의(義)로 여겨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ibid.).

하나님은 책임을 추궁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왜 태초부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자에게, 다시 말하여 죽음의 판결을 받을 수 없는 인간에게 죽음을 예정하셨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 대신 "하나님이 자신의 본성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고자 하셨다면 그가 인간에게 잘못을 범한 것인가?"라고 반문해야 할 것이다(Institutes, Ⅲ.23.3). 우리는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고의 공의에 의해 - 폭군적 횡포에 의해서가 아니라 - 다스림을 받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ibid,). 또 어떤 사람은 "정죄의 이유가 되는 인간의 타락이 그 전에 벌써 하나님이 작정해 놓은 일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의 예정에 의해 타락하게 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니냐?"고 반론할것이다(Institutes, Ⅲ.23.4). 칼빈은 이에 대해 아담의 후손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비참한 상황에 빠진 것을 명백히 인정하면서 "우리는 항상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의 결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결정의 이유는 하나님 자신 안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ibid,).

칼빈은 "온 땅의 심판자이신 그 분께서 어떻게 사소한 부정이라도 범할 수 있단 말인가?"고 반문한다(ibid.). 만일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에 적합한 일이라면 본질상 그는 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실 것이다(ibid.). 칼빈은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비난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뜻의 공의로움을 강조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은 멸망할 것을 예지하셨던 자들을 창조하셨다. 이는 그가 그렇게 뜻하셨기에 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왜 그렇게 뜻하셨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탐구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논쟁거리로 삼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거론될 때는 언제나 최고의 의의 규범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Institutes, Ⅲ.23.6).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소망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죽음을 예정하신 일을 불의한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예정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예지(豫知)를 예정의 원인으로 생각한다(Institutes, Ⅲ.21.5). 하나님은 각 사람의 공로를 미리 아시고 이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구별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받을 자들을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어 그들을 자기의 자녀들로 받아들이시고, 사악함과 불경건에로 기울어질 자들을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어 죽음의 정죄에 내어 맡기신다는 것이다(Institutes, Ⅲ.22.1). 칼빈도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는 하였으나 성결적 근거에 의해 그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것들이 그렇게 일어나도록 작정하신 사실에 의해서만 미래를 예견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예지에 대해 논쟁을 제기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모든 일이 오직 그의 결정과 명령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명백하다(Institutes, Ⅲ.23.6) 칼빈은 예지와 섭리 그리고 예정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토대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 문제의 해결점을 찾았다.

그는 잠 16:4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라! 모든 일의 처분권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고 구원이냐 파멸이냐의 결정권이 그의 권세 아래 있으니 그는 자신의 계획과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모태로부터 분명한 죽음에 내맡기시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이름에 영광이 돌아 가도록 정하신 것이다‥‥‥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의 예지의 행위라기보다는 그의 의지의 행위인 것이다(ibid.). 물론 예지와 예정이 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Institutes, Ⅲ.21.5). 그러나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ibid.). 우리는 예지와 예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예지는 예정을 전제로 하나 그 자체가 예정은 아니다. 12) 인간의 행동은 그것이 예지된 까닭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때문이며 또한 예정 가운데 확실히 발생할 것이기에 예지되는 것이다(ibid.). 하나님이 예지하신다고 할 때 이는 만사가 항상 영속적으로 그의 눈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식에는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고 오직 현재만 있다(Institutes, Ⅲ.21.5).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에 기억하는 것들을 생각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단지 개념만을 통해 사물들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실제로 자기 앞에 있는 사물들로서 바라보시고 식별하신다(ibid.).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지는 완전하며, 어떤 사건이 예지되어 있는 이상 그것은 불변적이며 확정적이다(Beettner, tr. 홍의표, op. cit p. 63). 하나 님의 예지는 다만 현세에서 사람이 무슨 일을 하기로 마음먹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아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 이전부터 그의 운명을 낱낱이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ibid.). 하나님은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예지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기 작정의 근거는 예지가 아니라 예정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담의 타락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아담의 타락에 대해 "그것은 실로 무서운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그에게 어떤 결말이 올 것인지를 예지하셨으며 이 예지는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정하신 계획에 의거한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3.7).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하신 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졌기 때문"이라고 한다(Institutes, Ⅲ.23.8). 사람들은 이에 대해 (1)왜 하나님은 그와 같이 판단하셨는가? (2)그렇다면 타락의 책임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첫째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판단의 이유는 인간에게 가리어져 있으며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인간에게 허락되어 있지도 않고 또 정당하지도 않다고 말한다(ibid.). 그는 둘째 질문에 대해 인간의 파멸은 그 원인과 근거가 그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방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Institutes, Ⅲ.23.7).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인간은 자기의 의사를 따라 행동하나 그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며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예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뜻한다. B.성경적 논증 칼빈은 성경에 호소하여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의지가 인간 선택의 궁극적 근거임을 주장한다. 그는 바울이 개인의 선택에 대해 명백히 언급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창세 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고 그의 뜻의 기쁘신 의도를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양자가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 사랑 받으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엡 1:4-6. 필자의 역). 칼빈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선택의) 유효적 원인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실제적 원인은 그리스도이며,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미이다‥‥‥ 또한 형식적 원인은 복음전파이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에게 흘러나온다"고 하였다. 13) 칼빈은 바울이 "창세 전"의 선택을 말함으로써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어떤 고려도 배제한다(Institutes, Ⅲ.22.1)주장한다. 칼빈은 바울이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는 대신 "하나님의 기쁘신 의도"를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의 사역을 행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가 선택의 근거로서 자신 외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Institutes, Ⅲ.22.3).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의 후손 전체를 통해 선택할 만한 그 어떤 가치도 발견하지 못하셨기에 그의 눈을 자신의 아들에게로 향하셨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2.1). 하나님은 생명에 참여하도록 미리 정하신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선택하고자 하셨다(ibid.). 칼빈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함으로써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들에 대한 구별의 근거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2.2). 하나님의 선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샘이며, 구원의 닻이며, 천국의후사이기 때문이다(Institutes, Ⅲ.24.5). 14)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피택자가 자신을 근거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그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 고 하는 것이다(Institutes, Ⅲ.22.2).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하는 구(句)는 선택을 예지로부터 추론(推論)하는 것을 분명하게 거절한다(ibid.), 왜냐하면 이 말은 인간이 나타내는 모든 덕은 선택의 결과라고 언명하기 때문이다(ibid.). 하나님이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선택하셨다면 이는 분명 그가 그렇게 되리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에 선택하셨다는 말이 아니다(Institutes, Ⅲ.22.3).

만일 하나님이 子원받을 자를 선택하심에 있어 그의 장래 행위가 어찌 될 것인지를 생각하셨다면 선택은 값없이 주시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ibid.). 예수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요 15:16)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예수는 인간의 과거의 공로를 배제시킬 뿐 아니라 자기의 인자(仁慈)가 아니면 그가 선택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구원에로 선택된 자들이 유기된 자들보다 더 가치가 있어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기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신 것이다(Institutes, Ⅲ.22.1).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주권이상의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그에게 왜 그가 소나 나귀가 아닌 인간이 되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그를 개로 만드실 능력이 있었을지라도 그를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칼빈은 롬 9:20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그의 영원하신 작정이 그 근거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예정에 의해 각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을 친히 결정하셨던 것이다(Institutes, Ⅲ.21.5).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공로에 대한 예지에 의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는 인간의 선택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실예를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7s7'totes, m.22,4). 두 사람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한 어머니의 태에 있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특기할 사실은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로 옮겨졌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스런 사건으로서 한 사람은 택함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는다는 증거이다. 왜 야곱은 선택을 받고 에서는 버림을 당하는가? 이는 하나님의 예정이 인간의 행위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Institutes, Ⅳ.22.11). 선택에 관한 한 행위는 장래의 것이든 과거의 것이든 추호도 개입될 수 없다(Institutes, Ⅳ.22.4). 야곱과 에서가 구별된 것도」그들에게 공로상의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었다(Institutes, Ⅳ.22.6). 또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물리치실 때에도 이삭을 그의 마음에 두셨다(창 21.12), 하나님은 므낫세를 버리실 때에도 에브라임을 더욱 내세우셨다(창 48:20). 개개인에 대한 그의 주권적 선택은 그의 무상의 자비를 강조한다. 신자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의 결정에 기초를 두며 이 은혜는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부르심의 은총에 의해 획득되어진다(Institutes, Ⅳ.22.5)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예정하신 자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왜 그렇게 예정하셨는가?"라고 묻는다면, 바울은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흘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대답할 것이다(롬 9:16).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하나님 자신의 일임을 분명히 하신다(ibid.). 하나님은 오직 자기 자신안에서 인간의 구원을 확정하신다(ibid.). 칼빈은 그리스도께서도 선택의 기초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하신다고 주장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온 것이요"(요 6:33),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요 6:39). 그리스도의 보증과 보호 아래 인간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은사에 의해서이다(Institutes, Ⅳ.22.7). 그리스도는 오직 중보의 직분만 취하신다 할지라도 아버지와 함께 선택권을 공유하심이 분명하다(ibid.). 그는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요 13:18)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나의 택한 자들"은 인류 가운데 특수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며 또한 이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은 이들의 힘이나 자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의거한다(ibid.).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선택권자로 지정하시는 이상 아무도 자기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 구별된 위치에 오를 수 없다(ibid.).

어떤 사람은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선택 안에 들게 되었다면 무엇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선택은 부르심에 의해 확증된다"고 대답한다(Institutes, Ⅳ.24.1 ; Institutes, Ⅲ.21.7).

하나님은 부르심에 의해 선택여부를 표명하신다. 그렇지않다면 하나님은 선택의 사실을 자기 자신 안에 감추어 두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바울은 롬 8:29-30에서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로 그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다고 외치고 있다.

 

IV.요약 및 결론

칼빈은 그의 독특한 예정 교리를 통해 인간의 구원 문제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있음을 강조한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으로서 각 사람의 운명이 이에 의존되어 있다(Institutes, Ⅲ.21.5).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선택 혹은 유기로 작정해 놓으셨다.

그는 창조 전에 이미 어떤 사람은 생명의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죽음의 파멸로 영원히 결정해 놓으셨다. 그는 인간을 차별적으로 선택하신다. 그의 선택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 곧 그의 기뻐하시는 공의로운 뜻이다(Institutes, Ⅲ.22.1 ; 22.7 ; 23.2).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에게 원인이 되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에 대한 그의 예지가 그의 영원한 작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렇게 뜻하셨는가? 칼빈에게 있어 이것은 인간에게 "숨겨진 일"이다(Institutes, Ⅲ.23.4,7,8).

칼빈은 아담의 타락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다 타락이 하나님의 예정의 결과라면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칼빈은 타락의 책임은 아담 자신에게 있게 하는 방식으로 그의 타락을 예정하셨다고 주장한다(Institutes, Ⅲ.23.7,8).

칼빈의 예정론은 인간 구원의 객관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이신칭의의 주관적 측면만을 보지 않고 다른 한 쪽의 하나님의 객관적 선택의 측면도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예정론은 그가 이신칭의의 사상에 집착해있던 당대의 종교 개혁자들을 능가하는 신학자였음을 반증해준다.











 



(이글은 다음카페 `푸우도사자료실`에서 퍼온것임을 밝힙니다!~~~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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