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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카톨릭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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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교황/ 카톨릭사전
   1. 명칭과 직위 : 교황이라는 명칭의 원어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

   2.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 ①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 주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순전한 사상운동으로만 선포하지 않으시고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우셨다. 그는 교회의 이념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열두 사도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시어 파견하셨다.(마태 10:1-4, 마르 16:15, 마태 18:18, 28:19-20, 사도 1:8). 그리스도는 사도단을 구성하실 때에 그들 중에서 시몬을 베드로(반석)이라고 개명하시어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마태 16:15-19),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신 것(루가 22:31-32), 베드로에게 양들을 맡기신 일(요한 21:15-17) 등은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실 의향을 명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는 마티아를 사도로 보선하고(사도 1:15) 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고(사도 2:14이하),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 4:8, 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 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 15:7-22) 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행세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 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였고, 거기서 그의 첫째 편지를 썼으며(1베드 5:13),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글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으며, 2세기 말에 교황 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再洗禮)를 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전에 이미 고대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기복을 거쳐서 (교회사 참조)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신조(信條)로 정의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가 재확인하였다(교회헌장 22).

   ②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 :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는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교회헌장 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 교회(교구)안에서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 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 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된다. 주교단의 단체성은 세계 공의회에서 잘 나타난다. 공의회의 결의는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제에 대한 보편적인 사목지침이 되는 것이다.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교황도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에 다른 주교들과 함께 유일한 주교직에 참여하고 있다. 일찌기 치프리아노는 3세기에 다음과 같이 주교직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주교직은 하나이고 각 주교는 여기에 연대적으로 참여한다”(De unitate, 5). 전체 교황의 수위권은 모든 교회문제에 대한 완전한 것이고(plena),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 개인과 단체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이고(universalis), 공의회보다 더 높은 최고의 것이고(suprema), 직책상 당연히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것이고(ordinaria),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이고(immediata),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다(libera).

   3. 교황의 직무 : 교황의 직무도 교회의 직무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豫言職)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敎導權),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司祭職)과 신품권(神品權),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王職)과 통치권(統治權)으로 대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① 교도권(potestas magisterii) :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헌장 25).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이라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莊嚴) 교도권이라 한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해설, 사목교서, 교구회의 등으로 하고, 또 교황령(敎皇領) 회칙(回勅) 등 문서로도 하며, 교황청의 행정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한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 한다(무류지권 참조). 교황이 교좌에서(Ex cathedra)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하여 다음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다. ㉯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 권유 · 해설 · 반박 ·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다. ㉰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된다. 따라서 과학 · 예술 · 사회 · 경제 · 정치 · 기타 문제에 관한 교황의 선언은 무류하지 않다.

   ② 신품권(potestas ordinis) :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한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신품권을 받는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된다. 교황이 전례의 유효성에 관한 절차나 조건을 정하고, 전례문을 제정하거나 변경하거나 또는 전례상의 관면이나 제한을 하는 것과 성년을 선포하고 시성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주교보다 더 큰 신품권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에 말할 더 큰 교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③ 통치권(potestas jurisdictionis) :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기관(법원, 행정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이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분립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장엄 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하고, 교회의 현세적 조건(정교조약, 재산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교황직 약사(略史)

   ① 고대 교회 : 초대 교회에서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전체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으므로, 이단자들도 자기네 주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로마로 갔으며(마르치온, 노바시아노, 몬타노, 그노시스 이단파의 지도자들), 교부들도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하여 로마의 보호를 청하였다(아타나시오 등).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틴(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칭)으로 옮긴 후부터 로마의 정치적 비중은 줄었지만 로마 주교의 종교적 권위는 더욱 커졌다. 박해 후에 신학적 사색이 발전하면서 동방에서 논쟁이 분분할 때에 로마 황제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개최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주로 동방 주교들이 참석하여 결의하였지만 그 결의는 언제나 교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야만 공의회로 인정되었으며, 칼체돈 공의회(451년)는 성 레오 1세 교황의 사절들이 사회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명실공이 교황의 수위권이 확립된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무렵부터(476년) 서유럽의 정치적 혼란에 즈음하여 교황은 교회뿐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하였고, 게르만민족을 교화시키고 수도회와 성당을 통하여 로마 문화를 전수하였다. 6세기 말에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영국을 개종시키고 로마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세유럽의 형성자가 되었다.

   한편 동로마 황제의 후광을 입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은 계속하여 로마 교황과 대등한 동방에서의 수위권을 요구하여 사소한 교리 해석의 차이와 전례의 차이 등을 핑계로 삼아 교황의 수위권에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교회가 분리될 소지를 만들어 갔다.

   ② 중세 교회 : 중세는 로마 교황과 신흥 세력인 게르만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게르만 민족들이 개종하고 교화되면서 서유럽에 많은 왕국이 형성되었고, 교황은 이들 신생 국가들의 왕권에 교회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시초에는 교황이 왕권의 후견인이었으나, 왕권이 비대해지고 교회를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왕권이 교권에 간섭하게 되자 양자의 충돌이 일어났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은 강력해지고 칼 대제는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하여 서유럽의 황제로 대관식을 받아서(800년) 교회를 옹호함과 동시에 교권에 깊이 간여하였다. 그 동안에 동프랑크(독일)도 개종하여 오토 대제가 교황 요한 12세에 의하여 황제로 대관되고(962년) 소위 신성 로마제국을 형성함으로써 교권에 간섭하였다.

   이렇게 7 · 8 · 9 · 10세기의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고,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정권의 동요와 경제의 불황으로 사회는 혼란하였으며, 교황권의 약화는 성직자들의 기강 문란과 주교 서임권에 관한 왕권과의 다툼을 초래하여 서유럽 사회와 교회는 암담한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시기에 편승하여 동방교회는 해묵은 수위권 시비로 결국 1054년에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로마 교회는 꾸준히 복음 선포에 힘써서 7세기에 스페인, 8세기에 독일, 9세기에 슬라브족과 스칸디나비아족, 10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 11세기에 유럽의 대부분을 그리스도교화 하였다. 동방교회의 이교(離敎) 후에는 교황의 권위는 서방 교회에 국한되었다. 11세기에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집요한 투쟁으로 교권을 왕권에서 해방시켰고, 12~13세기의 교황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열어서 교회의 개혁과 분리된 동서방 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하였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활약과 새로 등장한 대학의 노력으로 13세기에는 중세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전성기는 쇠쾨기의 시작이었으니 14세기에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하여 소위 대이교(大離敎, 1378~1417년) 사태가 벌어져서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피렌체 공의회(1438~1445년)로 이교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교황의 지위는 약화되고 때마침 일어난 문예부흥 사조와 지리상의 대발견 등으로 서유럽의 통일과 정신적 일치의 구심점으로서의 교황의 위치는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신학의 퇴조와 교회생활의 타락은 새로운 사조의 발흥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종교개혁이라는 정신적 대혁명을 겪게 되었다. 14 · 15세기의 교황들 중에서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 한 분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③ 근세 교회 : 종교개혁 운동으로 독일 · 영국 · 북유럽의 여러 교회들이 로마와 절연하는 와중에서 교황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개혁에 착수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하여 개혁론자들의 이단을 배격하고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조처를 취하였고, 성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들은 정력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를 실시하였다. 활력을 다시 찾은 교회는 신생 예수회를 비롯한 많은 선교수도회를 통하여 극동 선교에 나섰으며, 로마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설립하여 포교사업을 지휘하였다(1622년). 17세기에는 프랑스에, 18세기에는 독일에 국수주의적 교회관이 생겨서 소위 정교분리 사상(政敎分離思想)이 강력히 대두되어(갈리카니즘, 페브로니아니즘, 요세피니즘) 교황의 수위권은 또 한 번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로써 속사에 대한 교황의 간섭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는 전반적인 교황권의 실추를 초래하였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통일 기운이 성숙하여 1870년에 근 천년 동안 유지해 온 교황영토가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속권(俗權)은 영구히 무산되었다. 한편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에 심취하고, 과학만능주의 · 유물론 등이 성행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을 때에, 교황의 교권이나마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비오 9세 교황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신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오류를 배척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속권에서 벗어난 위대한 교황들이 속출하여 교회뿐 아니라 현대의 사회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문제에 빛을 던졌으며, 성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고 전례운동을 촉진하였다. 베네딕토 15세는 교회법을 개혁하였고(1917년), 비오 11세는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세계의 선교사업을 크게 촉진하였으며,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달성하였다(1929년). 또 비오 12세는 성모승천 교리를 선포하고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고통을 겪었다. 위대한 교황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탈(脫)그리스도교화하는 과정에 있는데,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과 개방을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바오로 6세와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교황의 위신은 교회 내에서는 물론 교회 밖에서도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5. 교황의 법적 지위

   ①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Ordinarius)이다 : 이 점은 다른 교구의 주교의 경우와 같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티칸이 아니고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교황은 로마 교구 사목을 위하여 총대리 추기경의 보좌를 받고 있다.

   ② 교황은 로마 관구의 수도(首都) 대주교(Metropolita)이다 : 로마 교구와 그 주변 7교구를 합한 로마 관구의 관구장이며, 7개 속교구에는 전통적으로 주교급 추기경을 두고 있다.

   ③ 교황은 이탈리아의 수좌(首座) 대주교(Primas)이다 : 이탈리아의 모든 교구 중에 수석 교구의 교구장으로서의 명예직이다.

   ④ 서방(西方) 교회의 총주교(Patriarcha)이다 :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모교회(母敎會)로 하여 발전한 라틴식 전례를 가진 모든 교회들을 총괄하는 대주교를 뜻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예직이다.

   ⑤ 교황은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원수이다 :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영토는 몰수되고 교황의 주거지인 바티칸 언덕과 몇 개 기관들만 교황의 관할로 남았었는데, 1929년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바티칸 시는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었고, 교황은 국가원수로서 불가침 특권과 외교특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이 파견한 교황대사는 주재국에 대하여 교황의 전권대사이며, 주재국의 교회에 대하여 감독과 연락의 책임을 지고 있다. (鄭夏權)

   [참고문헌] O. Karrer, Pape, in Encyclopedie de la foi, t. 3 / K. Rahner-J. Ratzinger, Episkopat und Primat, Freiburg 1961 / J. Colson, L'Episcopat catholique, Paris 1963, O. de la Brosse, Le pape et le concile, Paris 1965 / Y. Congar-J. Dupont, La collegialite episcopale, Pari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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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30 -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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