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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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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도여베르트와 볼렌호븐의 생애와 사상 최용준 박사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9MZM&articleno=9498156


도여베르트와 볼렌호븐의 생애와 사상

  

  

최용준(쾰른한빛교회 목사)

  

현대의 기독교 철학자들 중, 화란의 헤르만 도여베르트와 디르크 볼렌호븐은 빠뜨릴 수 없는 두 사람이다. 따라서 이들의 기독교 철학 체계는 반드시 한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본 장에서는 좀더 많이 알려진 도여베르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그리고 볼렌호븐에 대해서는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생애와 사상

  

1)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생애

  

헤르만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는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칼빈주의적 신앙 환경에서 자라나 암스테르담에 있는 개혁교회의 김나지움(Het Gereformeerd Gymnasium)에서 공부하면서 처음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설립한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고 ‘화란 헌법에서의 내각’(De ministerraad in het Nederlandsche staatsrecht)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17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화란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1922년 헤이그에 있는 반혁명당(The Anti- Revolutionary Party)의 연구 센터인 카이퍼 연구소(Kuyperstichting)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4년을 근무하면서 도여베르트는 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카이퍼 연구소에서 자신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도여베르트는 1926년 자유대학교의 법철학교수로 임명되어 거의 40년간 재직하면서 자신의 기독교 철학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나아가 그의 동료인 동시에 자형이었던 볼렌호븐과 함께 1936년에 칼빈주의 철학협회(Vereniging voor Calvinistische Wijsbegeerte)를 설립하였고 Philosophia Reformata라고 하는 학회지를 발간하면서 1976년까지 편집장을 맡아 수고하였다. 또한 1948년에는 화란의 왕립학술원의 인문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그의 철학 수준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음을 뜻한다. 그의 기독교 철학은 화란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사상 전개

  

도여베르트의 사상은 그의 초기 생애 기간 중 점진적으로 그리고 연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철학에 대해서는 그가 대학 시절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카이퍼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그는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중심 명제, 즉 ‘이론적 사상의 종교적인 뿌리’에 관한 통찰력을 얻었고 자유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된 후 자신의 사상을 더 깊이 전개했다.

  

의미로서의 실재(Reality as Meaning)

  

도여베르트 사상의 출발점은 성경의 창조 기사에 근거한다. 그의 철학적 이념인 ‘의미(zin: meaning)'는 바로 이 창조 동인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성경은 우주의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중심은 창조주이신 주권자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씀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Arche: Origin)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 피조계를 다스리고 개발하라는 소명을 받았다(창 1:28). 이러한 의미에서 도여베르트는 모든 실재를 ’의미‘라고 규정한다.

  

피조물은 의미가 ’있다‘라고 하기보다 피조물 자체가 의미’이다‘라고 하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도여베르트가 이러한 표현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자충족적(self-sufficient)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시는 하나님(God as the meaning-Giver)에게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롬 11:36, 즉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말씀에 의미의 목적이 분명히 나오며 만물의 기원, 존재의 근거, 그리고 궁극적 목적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도여베르트 이후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현대철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요한 반 데어 후븐(Johan van der Hoeven) 교수는 이 부분을 좀더 자세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여베르트가 이 ’의미‘라는 보다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용어를 도입하는 이유는 희랍 철학에서 연유한 ’존재(being)'라는 단어가 가장 포괄적인 단어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며 나아가 현대의 무의미한 경험들이 증가하면서 ‘의미’에 관련된 철학적 문제들 그리고 ‘소외’되어 가는 실존적인 상황을 직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도여베르트 사상 입문서를 저술한 깔스베이끄(L. Kalsbeek)는 이에 덧붙여 도여베르트가 ‘의미’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인간 이성 및 철학적 사고의 자율성에 근거한 전통적인 내재 철학에서 사용된 ‘실체(substance)'라는 형이상학적 용어가 너무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재의 기본 구조(The Basic Structure of Reality)

  

도여베르트에게 있어서 의미로서의 피조계는 혼돈스럽거나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잘 정돈되고 구조적인 전체이다. 그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재의 기본 구조를 ‘세 가지 선험적 이념들(three transcendental ideas)'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첫 번째 이념은 만물을 그의 주권적인 뜻대로 창조한 하나님으로서의 ’기원‘(Origin)이다. 모든 존재는 이 분에게 의존한다. 두 번째 이념은 모든 현상의 다양한 면들과 양상들의 ’뿌리가 되는 통일체‘(root-unity)이며 의미의 총체(meaning-totality)인데 이는 제 2의 아담이며 모든 시간내적 실체의 종교적 뿌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된다. 각 개인은 존재의 종교적 중심 또는 집중점인 ’마음‘을 통해 이 의미의 총체에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념은 ’우주적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의미의 다양성‘(meaning diversity in the coherence of cosmic time)이다. 도여베르트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처음에는 ’법이념(wetsidee: cosmonomic idea 또는 the idea of law)‘이라고 불렀으나 나중에는 수정하여 ’선험적 기본 이념(transcendentaal grondidee: transcendental ground idea)‘이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철학과 학문은 이러한 ‘법이념'을 형성하는 전이론적 전제들(pre-theoretical presuppositions)에 의존한다.

  

이어 도여베르트는 창조계에서 두 가지 종류의 기본 구조를 구별한다. 즉 ‘개체 구조’ (individuality structure)와 ‘양상 구조’(modal structure)이다. 전자는 창조에 의해 주어진 구체적 사물의 법적 질서를 의미하며, 후자는 각 의미의 모멘트, 즉 예기, 회기, 그리고 의미의 핵을 가진 특정한 양상을 의미한다. 그는 볼렌호븐과 함께 실재의 양상 이론(the theory of modal aspects of reality)을 발전시켰는데 처음에는 각기 독특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받는 14가지의 ‘법칙 양상들’ (wetskringen: law-spheres, 다른 말로 modal aspects 또는 modalities)을 구별했으나 나중에는 15가지로 발전시켰다. 즉 수적(arithmetic), 공간적(spatial), 운동적(kinematic), 물리적(physical), 생물학적(biotic), 감각적(sensitive), 분석적(analytic), 역사적(historical), 언어적(linguistic), 사회적(social), 경제적(economical), 미적(aesthetic), 법적(juridical), 윤리적(ethical), 그리고 신앙적(pistic) 양상이다. 도여베르트는 이 15개의 양상을 구별하면서 각 양상들이 서로를 지시하고 있으며 하나의 정합성(coherence)을 이루어 의미의 총체성을 지향하며 다시 이것은 만물의 기원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해야 할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도여베르트가 단순하고 구체적인 경험을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사고와 분리시켰다는 것이다. 전자는 구조적이고 이론적인 분석 없는 일상적 삶의 경험을 말하는 반면 후자는 시간내적 실체를 여러 가지 다양한 추상적, 이론적 관점에서 본다. 도여베르트에게 있어서 의미 그 자체는 구체적인 경험과 이론적인 사고 양자를 가리키지만 존재의 의미성을 말할 때에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사고의 문맥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각 이론적 학문 영역은 실재의 구조적 정합성(structural coherence)을 자신의 관점에서 연구함을 뜻하며 철학은 이 관점들 전체를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뜻에서 도여베르트는 우리의 이론적 활동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항상 종교적 전제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론적 사고로서의 철학적 사고는 의미의 총체성(meaning- totality)을 지향한다고 정의한다. 이 지향의 방향성은 철학적 사고를 선행하는 인간의 자아(selfhood)에 의해 결정된다. 도여베르트는 여기서 인간 존재의 종교적 뿌리 및 집중점으로서 ‘마음’의 중심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 마음은 결코 자충족적이 아니며 항상 기원(Origin)에 의존한다. 따라서 도여베르트는 사고란 의미를 부여하는 기원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도여베르트는 내재적이고 인본주의적 철학을 그토록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철학의 출발점은 철학에 내재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미의 ‘역동적인’ 성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도여베르트와 쌍벽을 이루던 화란의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반퍼슨(C.A. Van Peursen) 교수는 바로 이 점이야말로 도여베르트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의 하나라고 인정했다. 의미의 역동성은 정적이 아니라 항상 잠재성을 구현시키는 과정에 있는 사물의 양상 구조와 개체 구조의 상호 수평적 지향(referring) 및 수직적 표현(expressing) 운동을 뜻한다. 도여베르트는 이러한 동적인 진행 과정을 개현 과정(opening process)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특히 그의 기독교 문화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진정한 문화 발전은 창조주의 말씀(Wort)을 순종할 때에만 이루어지며 이것은 바로 인간의 응답(Antwort, response)이요 인간은 여기에 대해 책임(Verantwortlichkeit, responsibility)을 져야 한다. 인간의 삶 전체를 광범위하게 문화로 정의한다면 인간의 본질적인 면은 말씀하시는 창조주에게 응답하는 존재(Homo Respondens)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법과 종속체(Law and Subject)

  

도여베르트 철학에 있어서 또 한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경계로서의 법(wet: law)과 그 법에 종속된 모든 피조물이다. 도여베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과 그 종교적 통일성과 의미의 정합성 내에서 시간내적 다양성을 따르는 개별적 종속체의 기원은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주권적인 창조적 의지이다. 우리의 우주는 법칙면과 종속면 모두 하나님의 동등한 피조물이다. 법칙면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절대적 경계이며, 모든 피조물들은 본래부터 법칙에 종속되어 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법칙의 제정자’이시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의미의 뿌리이시며 충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고 그 안에서 모든 종속적 개체는 그 의미의 충만함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의 시간내적 우주는 어떠한 것도 그 분을 벗어날 수 없다... 의미의 양상적 다양성에서의 법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개체 구조의 보편타당한 결정 및 제한이다. 종속체란 sujet로서 법칙 영역들의 양상적 다양성의 법칙에 종속된다. 종속체가 없는 법이 없고 그 반대도 없다.”

  

따라서 도여베르트는 각 양상 영역에서 두 가지 면을 말한다. 즉 법칙면과 종속면이다. 법의 가장 심원한 본질은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및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그 분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종속적이란 결국 “하나님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법-종속의 관계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소중하며 본질적 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이러한 법-종속 개념 역시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 세계에 매우 친밀하게 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과 실재(Time and Reality)

  

도여베르트의 시간관은 매우 독특하다. 1930년부터 그는 시간을 ‘우주적’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시간이 모든 실재의 양상들과 구조들을 포함하며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간은 창조와 함께 주어졌다. 모든 피조계는 시간 내에서 실재한다. 모든 시간내적 실재의 구조들, 즉 다양한 양상 구조 및 개체 구조는 우주적 시간 질서에 근거한다. “시간은 그 양상 구조 내에서 양상화되고(modalized), ... 개체 구조에서 전형화된다(typicalized).” 도여베르트에 의하면 우주적 시간이란 하나의 양상이 아니라, ‘전후(before and after)'의 질서로서 양상들간의 관계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각 양상의 구조 안에서 자신을 표출한다. 즉, 각 양상 내에서 우주적 시간은 양상의 ’회기(retrocipatory)' 또는 ‘예기(anticipatory)'의 모멘트라는 의미로 다른 모든 양상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전 양상들은 이후 양상들의 기초가 되며, 이후의 양상들은 이전 양상들을 개현한다. 나아가 그는 양상 구조에서 15개 양상은 상호 환치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시간내적 실재는 상호 환치될 수 없는 존재 양식의 다양성 내에서 기능한다.

  

또한 도여베르트는 우주적 시간의 법칙면과 종속면을 구별한다. 법칙면에서 시간은 ‘질서’이며 종속면은 ‘지속’이다. 반 데어 후븐 교수는 이 부분을 좀더 정확히 설명하면서, 우주적 시간은 의미가 다양성으로 전개되는 궤도(track) 또는 과정(course)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의 정합적인 것이며 계속되는 질서와 단계들의 지속이다.

  

도여베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시간의 개념(concept of time)은 알 수 없고 다만 시간의 관념(idea of time)만 알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자아에서 시간의 정합성과 다양성을 초월함으로써만 시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이론적 지식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론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의 정합성으로부터 한 양상을 분리하여 추상화시킨 후 그것을 논리적 또는 분석적 양상과 연결시킬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한 양상이 아니므로 시간을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며 단지 그것에 관한 관념만 알뿐이다.

  

양상들이 서로 다른 이유는 각 양상이 시간 내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상들은 모두 시간의 양상들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을 도여베르트의 표현으로 설명한다면: 우주적 시간은 다양한 시간-양상들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가령, 산수 양상은 전후(earlier and later)라는 회기될 수 없는 시간 질서에 의해 규정되며, 공간적 양상은 동시성(simultaneity)에 의해 제한되고, 운동적 양상에서 시간은 운동의 연속에 의해 특징지워지며, 분석적 양상에서 시간은 논리적 전후(prius and posterius)의 동시성에서 표현되고 경제적 양상에서 시간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나아가, 다양한 양상들간의 상호관계 또한 시간적 질서이다. 가령 운동적 양상은 분석적 양상보다 앞선다.

  

각 양상은 그 자신의 독특한 법칙들에 의해 질서 지워지고 결정된다. 그러므로 도여베르트는 양상들을 ‘법칙 영역들'이라고도 불렀다. 분석적 양상에서 신앙적 양상까지를 도여베르트는 ’문화적인 면‘이라고 부르며 그 법칙들은 ’규범들‘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법칙들은 사람들에 의해 ’인정되어지고‘, ’실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이 법칙들은 지켜질 수도 있고 어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석적 양상 이하 양상들의 ’자연법‘은 ’자연적인 면‘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 법칙들은 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각 양상들은 상호 환치될 수 없는데 이것을 도여베르트는 ’영역 주권‘(souvereiniteit in eigen kring: sphere sovereignty)의 원리라고 불렀다. 이것은 도여베르트가 카이퍼의 영역 주권 사상, 즉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역의 주인되심을 철학적, 우주론적 원리로 확장한 것이다. 각 양상은 그 ’의미의 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각 양상의 특징을 규정한다. 가령, 생물적 양상의 의미의 핵은 생명력(vitality) 혹은 생명(life)이다. 각 법칙 영역에 있어 다른 법칙 영역을 지향하는 의미의 모멘트 또한 구분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유추(analogy)'라고 한다. 바로 이것을 도여베르트는 각 양상의 ‘영역 보편성’(sphere-universality)이라고 불렀다.

  

마음(heart)

  

1932년에 도여베르트는 ‘마음’이라고 하는 단어를 처음으로 성경의 잠언 4:23과 연결시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조물의 초시간적인 뿌리는 시간내적인 실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추론적 기능에 있는 것도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뿌리인 마음에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도여베르트에게 있어 ‘마음’은 모든 양상들을 초월하는 집중점 내지 초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음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며, 인간의 삶에 있어 중심적인 ‘관계’, 즉 인간의 근원(Origin)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바로 이 절대적인 근원을 향한 인간의 마음에서 전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의 인간학에 있어서 기초석이 되며 그의 철학이 독특한 성경적 철학이 되게 하려는 부분이다.

  

도여베르트는 원래 신칸트주의 그리고 나중에는 훗설의 현상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사고 자체의 종교적 뿌리를 발견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다른 철학으로 자신의 사상들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꼈다. 오히려 그는 철학적 사고의 내적인 개혁, 즉 인본주의적이며 자율적인 내재 철학을 철저히 단절해야 할 필요성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도여베르트는 ‘법이념', '의미’, '법칙 영역', ‘법칙면과 종속면’, ‘마음’, ‘우주적 시간’, ‘개체 구조’, ‘근본 동인’ 등 자기 나름의 철학적 용어들을 새롭게 개발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론적 사고 및 서양 문화에 대한 선험적 비판(Transcendental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and Western Culture)

  

1965년 도여베르트가 화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교수직을 은퇴할 때 ‘철학과 기독교(Philosophy and Christianity)'라는 제목의 기념 논문집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이 책에 기고했던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리차드 크로너(Richard Kroner)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제 우리는 모든 철학적인 작업이 문화의 배경 하에서 이루어지며 그 문화는 본질적으로 종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약간 과도하게 단순화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종교, 철학, 과학 그리고 문화간의 관계를 분석하려고 노력한 도여베르트 사상의 가장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가 단순히 삶의 한 영역이 아니라 인간 생활 전체의 뿌리임을 강조하면서 도여베르트는 종교적 전제가 모든 학문 활동 및 문화적 노력에 작용하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해 도여베르트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구분될 수 있는 자신의 고유한 기독교 철학적 체계를 개발했다: (1) 그의 첫 번째 주저인 De Wijsbegeerte der Wetsidee (우주법 사상 철학)에 진술된 이론적 사고의 종교적 뿌리 발견, (2)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이론적 사고의 신비판)에서 형성된 이론적 사고의 선험적 비판, 그리고 (3) Reformatie en Scholastiek in de Wijsbegeerte (철학에 있어서의 개혁과 스콜라주의)와 Vernieuwing en Bezinning: om het reformatorisch grondmotief (갱신 및 반성: 개혁주의 근본동인에 관하여)에 요약된 서양의 사상 및 문화에 나타난 종교적 근본 동인이다.

  

도여베르트의 기독교 철학 배후에는 그의 연구에 동기부여를 해 준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화(dialogue)와 대립(antithesis)이라고 하는 개념이다. 카이퍼가 말했던 기독교적 원리와 비기독교적 원리간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 사상을 계승하여, 기독교적 근본 동인과 비기독교적 동인들 간에는 분명한 대립이 있음을 도여베르트는 명쾌하게 지적한다. 다른 한편, 도여베르트는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 간에 서로 대화하며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철학적, 학문적 사상의 공동체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유지하기를 원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여베르트는 그의 첫 번째 주저인 De Wijsbegeerte der Wetsidee를 수정, 보완하여 철학적 사고에 필요한 조건들 또는 전제들에 관한 탐구로서 이론적 사고에 대한 선험적 비판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저에서 그가 시도했던 방법론을 ‘첫 번째 방법(the first way)’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주저에서 그가 시도한 방법론은 ‘두 번째 방법(the second way)’이라고 부른다. 전자에서는 도여베르트가 철학의 정의, 즉 의미의 총체성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이론적 사고의 종교적 뿌리를 밝혔으나 이러한 정의에 대해 비기독교 철학자들이 동의하지 않자 후자, 즉 이론적 사고 자체의 분석에서 시작하여 선험적 근본이념을 통해 종교적 뿌리 및 기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방법에서 그는 단순 경험과 이론적 사고를 구분하면서 이론적 사고를 통한 학문적 지식이란 비논리적 양상들과 논리적 양상간의 이론적 종합에 의해 획득된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인식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종합이 일어나는 곳은 역시 인간 존재의 집중점인 마음이며 이 마음 또한 자충족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기원을 지향하기 때문에 결국 이론적 사고 또한 종교적 전제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도여베르트의 관심은 철학적 그리고 학문적 영역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그가 이론적 사고의 선험적 비판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그는 종교적 근본 동인이라고 하는 사상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기본 동인은 이론적 사고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발전 과정 및 방향까지도 결정한다. 그가 이전에도 기독교적 문화관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보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유럽의 문화적 위기를 극복하고 그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서양 문화의 뿌리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의 세속화된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종교적 기본 동인 사상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 종교적 기본 동인으로 그는 서양 철학 및 문화 전반에 대해 선험적 비판을 시도했다. 왜냐하면 이 동인이야말로 선험적 근본이념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도여베르트는 희랍 철학 및 문화의 종교적 기본 동인을 ‘질료(matter)와 형상(form)’으로, 기독교적 동인은 ‘창조(creaion), 타락(fall into sin), 구속(redemption)’으로 중세 철학 및 문화의 근본 동인은 ‘자연(nature)과 은혜(grace)'로, 근대 서구의 인본주의 철학 및 문화의 기본 동인은 ’자연(nature)과 자유(freedom)'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적 동인을 제외한 세 동인들은 그 자체가 변증법적 모순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어 이론적 사고 및 문화현상에서 갈등과 문제를 피할 수 없음을 논증하면서 이를 위한 해결책은 성경적 기본 동인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음을 강조한다. 즉 모든 인본주의적 기본 동인에 의한 학문적 사고 및 문화 개현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조화를 가져오지 못하지만 기독교적 동인에 의한 이론적 사고 및 문화 발전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3)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영향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비판은 여러 후계자들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그 중의 대표적인 네 명을 들면 요한 반 데어 후븐(Johan Van der Hoeven), 야콥 끌랍베이끄(Jacob Klapwijk), 봅 하웃즈바르트(Bob Goudzwaard), 에그버트 스휴르만(Egbert Schuurman)이다. 이들의 사상을 간략히 소개한 후 다른 사람들을 덧붙이고자 한다.

  

깜펜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레이든대학교에서 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반 데어 후븐 교수는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서 현대 철학을 가르친 후 은퇴하였다. 그는 박사 학위 논문에서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현상학을 비판한다. 훗설(Husserl)과 쉘러(Scheler), 하이데거(Heidegger), 싸르트르(Sartre)와 메를로-퐁티(Merleau- Ponty)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현상학적 이성은 결코 이성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도여베르트가 말한 바 절대적인 자율적 확실성(자유 동인)과 자율적 이성을 통한 완전한 통제(자연 동인)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맑시즘도 동일한 관점에서 비판한다. 나아가 그는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비판이 가진 문화적 함의 또한 충분히 인정한다. 그에게 있어 종교적 근본 동인은 이론적 사고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의 근본적인 추진력이다. 그에 의하면 도여베르트의 ‘근본 동인’은 항상 ‘종교적’이며 이것은 그의 인간관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보다 현대적인 서구 사상 및 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반성 및 성찰을 통해 현대 서구의 사상 및 문화적 분위기를 후형이상학적(postmetaphysical), 포스트모던, 허무주의적, 다원주의적, 그리고 유목민적 우연성(nomadic contingency)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는 비기독교적 사상이나 문화에 대해 직접적인 부딪힘(confrontation)보다는 보다 지혜로운 전략, 즉 ‘만남(encounter)', '초대(invitation)', '개방성(openness)' 등을 제시한다.

  

자유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자유대학교에서 조직철학을 가르치다 건강상의 이유로 일찍 은퇴한 끌랍베이크 교수는 자신이 도여베르트보다는 카이퍼와 볼렌호븐, 그리고 자우데마(Zuidema)와 스미트(Smit) 교수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기본적인 사상인 ‘변혁적 철학(tranformational philosophy)'은 도여베르트의 기본적인 관심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끌랍베이크는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비판이 이론적 사고의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도여베르트의 문화 철학에 대해서는 그의 유럽 중심적 경향을 지적하면서 보다 지역적 상황에 관심을 둘 것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철학이란 피조계의 구조를 탐구하는 보편적 학문인 동시에 지역적이고 구체적인 이슈들에 대해 고민하는 특정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도여베르트의 철학 체계는 유럽 상황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으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상황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도여베르트의 종교적 기본 동인에 대해 끌랍베이크는 근본적인 면에서 보면 두 가지 종교적 기본 동인만 있으며 도여베르트의 네 가지 종교적 기본 동인은 오히려 서양 문화에 지배적인 네 가지 세계관이라고 본다. 나아가 끌랍베이크는 도여베르트의 기독교 철학을 주로 대립(antithesis) 철학으로 간주하고 그 반대적 입장은 종합(synthesis) 철학으로 보면서 이 두 가지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비기독교적 사상과 문화에도 하나님의 보편 은총을 인정하면서 나름대로의 ’변혁 철학(transformational philosophy)‘을 추구한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그의 사상은 모든 사상과 문화에 하나님의 임재를 주장했던 반 퍼슨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웃즈바르트 교수는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서 경제학 및 사회 문화 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한 때 화란의 수상 후보로 떠올랐으나 자신이 속한 기독교 민주당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어 자유대학교의 교수로 남아 있었다. 그는 도여베르트의 선험 철학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함의에 관해 충분히 공감하면서 도여베르트가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에 의해 영감받은 학문적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대화 및 대면(conversation and confrontation) 사상을 더욱 발전, 적용시켰다고 본다. 나아가 그는 실재의 규범성 및 응답적 구조를 확신하였고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비판의 문화적 함의를 인정하면서 특히 경제적 양상의 규범성을 강조했다. 하웃즈바르트에게 있어 사회 경제적 질서는 문화의 표현이며 각 문화에는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뿌리가 있다. 그리고 사회의 개현은 “사회 전체에 대한 관점의 변화(종교적 차원), 라이프스타일 및 사회적 가치의 변화(문화적 차원), 그리고 사회 내에서 임무와 책임의 분배의 변화(구조적 차원)를 포함한다”고 본다. 경제생활의 규범은 역시 ‘청지기 정신(stewarship)'이다. 하웃즈바르트는 이 청지기적 사명을 창조의 응답적 구조와 인간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는 서구 사회-경제 제도가 ’진보‘라고 하는 세속적 믿음에 의해 세워져 있다고 분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고 또한 완성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러한 세속적 믿음을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러한 진보 모티브는 사실 도여베르트의 자연과 자유 모티브에서 추출된 것이다. 하웃즈바르트는 서구 사회는 마치 “터널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터널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폐쇄성을 지양하고 보다 개방된 소유의식과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현대 서구사회의 권력/안전, 번영, 혁명 그리고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우상으로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우상들을 과감히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희생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스휴르만 교수는 델프트(Delft) 공대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한 후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에서 도여베르트와 반 리슨(Van Riessen)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델프트 공대, 아인트호벤(Eindhoven) 공대, 그리고 바허닝엔(Wageningen) 농대에서 기독교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 델프트 공대에서는 은퇴했으며 화란의 국회 상원의원(기독교 연합당: Christen Unie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의학 윤리 연구소인 린더봄 연구소(Prof. Dr. G.A. Lindeboom Institute)와 문화 윤리 연구소(Institute for Cultural Ethics)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도여베르트가 문화 비판으로서 선험적 비판을 충분히 발전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휴르만은 도여베르트가 “문화 발전의 전반에 걸쳐 인본주의적 근본 동인의 구조적 결과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별히 현대의 기술 문화 및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주의(technicism) 현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미 도여베르트의 선험 철학적 방법을 기술 영역에 적용하면서 현대 서구 문화 및 그 미래는 매우 심각한 정도로 기술에 의해 지배받고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관련된 학자들을 두 부류로 나누고 각각의 이론적 약점들을 비판한 후, 대안을 제시한다.

  

아인트호벤 공대 교수 취임 연설에서 그는 현대 서구 문화가 단지 기술주의뿐만 아니라 ‘과학주의적이고 기술주의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이 매우 심각한 위기를 낳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환경 위기, 핵의 위협, 자원의 고갈 등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위기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그는 도여베르트의 선험 철학을 적용하는데 현대 서구 문화는 특정한 철학적 관점에 기초해 있고 그것은 다시 종교적 확신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스휴르만은 “현대 과학의 출현이 현대 기술의 출현보다 앞선다”는 도여베르트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도여베르트가 말한 과학 이상을 “과학-기술 통제 이상(the ideal of scientific-technological control)”으로 그리고 인본주의적 근본 동인도 “과학-기술적 통제 또는 권력에 집중한 인간의 창조력 동인(the motive of the creative power of man concentrated in scientific- technological control or power)”으로 수정한다. 나아가 스휴르만은 현대 인본주의 근본 동인을 “기술주의적 문화와 유기적 자연”으로 재수정한다. 전자는 인간이 기술로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자율적 확신으로서 그는 이것을 ‘기술주의(technisicm)'라고 하며, 후자는 모든 실재를 유기적으로 해석하는 자연주의, 즉 ’반문화적 환경중심주의(ecocentrism of a counter-culture)'라고 규정한다. 그는 도여베르트가 비판한 과학주의(scientism)와 하웃즈바르트가 비판한 경제주의(economism)가 현대 문화의 위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기술주의(technicism)라고 본다. 그는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원리가 출현한 이후 과학적 세계관은 이제 설득력을 많이 상실했고, 경제 절대주의도 특히 전쟁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현대 인본주의적 세속 문화의 근본 동인은 기술주의라고 강조한다. 기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스휴르만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언하지만 기술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건재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기술주의 문화를 그 근본 동기면에서 ‘바벨 문화’라고 부른다. 이렇게 인간이 기술의 주인이 되면 기술은 궁극적으로 저주가 되어 인간이 오히려 이 무의미하고 위협하는 기술 및 과학적 힘에 대한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스휴르만은 경고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기술이 책임의식이 있는 인간에 의해 창조주의 규범적 원리에 따라 바로 개발된다면,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기 위한 기술로 개발된다면 이 기술은 축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기술의 의미는 역사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방향에 의해 개현되고 심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도여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많다. 캐나다 토론토의 기독 학문 연구소(ICS: 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들, 온타리오주에 있는 리디머 대학(Redeemer College)의 철학부 교수들 대부분은 도여베르트의 영향를 직접 간접으로 받았다. 특히 리디머 대학에는 최근 도여베르트 센터(Dooyeweerd Center)를 개관했는데 대니 스트라우스(D. Strauss) 박사가 소장으로 도여베르트 저작들의 영문 번역과 같은 의욕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는 손 봉호 교수에 의해 그의 사상이 주로 소개되었고 깔스베이끄가 쓴 책이 한글로 번역되어 소개서로 많이 읽히고 있으며 본인의 학위 논문은 도여베르트의 선험적 비판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한 후 이것이 과연 한국 사상 및 문화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시도한 것이다. 일본에도 교또신학교 교수들과 동경기독교대학의 이나가끼 교수에 의해 도여베르트 사상이 소개되고 있다. 남아공에도 포체프스트롬(Potchefstroom) 대학과 블룸폰테인(Bloemfontain) 대학 등에서 도여베르트의 제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물론 화란에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도여베르트 석좌 교수로 도여베르트 철학 강의를 전담하고 있는 헹크 헤르쯔마(H. Geertsema) 교수, 사회철학을 강의하는 산더 흐리피윤(S. Griffioen) 교수, 그리고 제 4세대로 젊은 르네 반 바우든베르그(Rene van Woudenberg) 교수가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고 그 외에도 화란 내 주요 대학교에서 기독교 철학 석좌 교수들이 강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칼빈대학(Calvin College), 도르트대학(Dordt College) 등 여러 곳에 도여베르트의 제자들이 활약하고 있으며 도여베르트 재단 (Dooyeweerd Foundation)에서도 여러가지 출판 및 연구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2. 디르크 볼렌호븐의 생애와 사상

  

디르크 볼렌호븐(Dirk Hendrik Theodoor Vollenhoven: 1892-1978)은 도여베르트와 함께 화란 기독교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도여베르트가 보다 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반면 볼렌호븐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지나치게 도여베르트로부터 접근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왜냐하면 볼렌호븐 역시 도여베르트 못지않게 독창적인 기독교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1) 디르크 볼렌호븐의 생애

  

그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볼텨(J. Woltjer) 교수의 지도로 철학박사 과정을 시작했으나 지도 교수가 도중에 사망하여 그 후부터 바빙크(H. Bavinck) 교수의 지도에 따라 '유신론적 관점에서 본 수학 철학'(De wijsbegeerte der wiskunde van theïstisch standpunt)이라는 제목으로 191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화란의 남쪽 오스트까뻴레(Oostkapelle)에서 그 다음에는 헤이그(Den Haag)에서 목회했는데, 그가 헤이그에 있을 때 도여베르트도 카이퍼 연구소에 재직하면서 함께 기독교 철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도여베르트가 자신의 철학을 ‘법사상 철학’ (De wijsbegeerte der wetsidee)라고 부른 반면 볼렌호븐은 ‘칼빈주의 철학’(Calvinistische wijsbegeerte)이라고 불렀다.

  

그 후 1926년 볼렌호븐은 도여베르트와 함께 자유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도여베르트가 법학부의 법철학교수로 임명된 반면 볼렌호븐은 철학 개론, 조직 철학, 철학사, 그리고 나중에는 심리학 기초를 가르쳤다. 볼렌호븐은 매우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로서 통찰력과 단순성, 그리고 인간성으로 인해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1963년에 은퇴할 때까지 봉직하면서 칼빈주의 철학협회에서도 초대회장으로 27년간 재임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을 때, 2차 세계대전 후 화란의 여러 종합대학교에 기독교 철학 석좌 교수제를 창설하였다. 최초로 임명된 네 명의 교수는 그와 도여베르트의 제자들인 자우데마(S.U. Zuidema), 메케스(J.P.A Mekkes), 포프마(K. J. Popma) 그리고 반 리센이었다. 이것은 한때 그가 화란철학협회(Algemene Nederlandse Vereniging voor Wijsbegeerte)의 회장도 역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많은 접촉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남아공, 미국, 캐나다를 방문하여 제자들과도 교류하였다.

  

볼렌호븐은 은퇴한 후에도 제자들에게 몇 년간 강의를 계속했다. 이 때 그에게는 새로운 통찰력이 생겨 몇 가지 주제에 관해서는 도여베르트와 다른 입장을 표명하였다. 철학의 개혁자로서 그는 제자들에게 세상 철학자들과는 달리 성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깊은 질문들을 다루었으며 매우 명료하고 단순한 단어들로 이것들을 규명했던 기독교 철학자였다.

  

2) 디르크 볼렌호븐의 사상 전개

  

볼렌호븐 역시 화란 개혁교회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세기 중반에 화란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흐룬 반 프린스터러(Groen van Prinsterer), 그의 뒤를 이어 화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해 애썼던 카이퍼 그리고 자유대학교의 세 교수인 바빙크, 헤이싱크(W. Geesink), 볼텨의 영향 등이 그것이다. 볼렌호븐은 이들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하나님의 주권을 개인적인 삶과 사회-문화 영역뿐만 아니라 학문 영역에도 인정해야 함을 강조했다. 즉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길 원하였고 따라서 철학에서도 성경 중심적 철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칼빈주의와 철학의 개혁

  

볼렌호븐의 주저는 Het calvinisme en de reformatie van de wijsbegeerte (칼빈주의와 철학의 개혁)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는 조직적인 면으로 칼빈주의, 성경적 철학의 근본 동인 그리고 비성경적 철학의 근본 동인에 대해, 제 2부에서는 역사적인 면에서 기독교 철학사를 중세시대까지 기술했다. 그는 여기서 철학의 개혁이란 중세의 종합 철학을 배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세계를 객체화시켜 보려고 한 데까르트적 입장에 서있는 현대 철학도 거부하면서 이것과 기독교 철학은 결코 혼합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 대신 말씀과 법으로 전 세계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철학을 시작한다. 즉 하나님은 실재하시며 그의 법은 우주 전체에 유효하고 인간과 우주는 그 법에 종속된다고 그는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너무나 다양하지만 동시에 이 다양성은 무질서하지 않고 철저한 질서 속에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다양성과 질서를 둘 다 존중하면서 볼렌호븐은 매우 신중하고도 함축적인 철학적 표현들을 구사했다.

  

먼저 그는 ‘칼빈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면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면서 그것과는 구별되는 주권적 하나님에 대한 계시, 언약 사상, 그리고 타락의 영향에 대해 논증한다. 이 세 가지가 곧 성경적 철학의 근본 동인인데, 타락의 영향에 대해서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 죄의 형벌로서의 사망 그리고 구세주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계시로 다시 세분된다. 도여베르트와 용어는 약간 다르지만 실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볼렌호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 즉 경계로서의 법, 우주적 영역, 양상, 주체 및 객체적 기능, 상호 정합성 및 유추, 종교적으로 규정되는 마음 그리고 타락과 은혜 등이 나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성경적 철학의 근본 동인은 먼저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부인하는 일원론 및 기타 사상들을 비판한다.

  

볼렌호븐은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한 말씀의 계시(Word- revelation)와 그 결과 주어진 성경 계시(word-revelation)로 구분하면서, 후자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피조물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경의 독특성에 관해 볼렌호븐은 두 가지를 언급하는데 첫째로 성경의 언어는 단지 그 언어가 가리키는 피조물들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을 지으신 창조주에 대해서도 말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성경의 독특한 영감성으로 성경의 기자들은 그들이 이해하는 단어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은 이 말씀을 따라 산다는 말이며 이 믿음은 우리 마음 중심의 문제이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성경 계시는 학문적 사고의 전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계시는 일상적인 용어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시며 피조물은 창조주와 어떤 관계인지를 말해 준다. 따라서 종교란 창조주와 피조물 특히 인간과의 관계를 의미하며 이 관계는 언약적이다. 즉, 창조주를 향하여 두 가지 방향 선택이 가능하다. 말씀에 순종하는 방향과 불순종하는 방향이다. 이 두 방향은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관계(antithesis)이다. 종교에서 이러한 대립적 관계는 전기능적(prefunctional)이며, 이 부분의 방향 설정이야말로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다.

  

조직철학개론(Isagoogè Philosophiae)

  

본서는 볼렌호븐의 조직철학 강의안으로 여러 차례 개정되었는데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은 앞에서 언급한 그의 주저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즉, 후자에서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들어가는 반면 전자에서는 반대로 세부적인 것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먼저 그는 개체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수, 그림, 무생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진행하며, 두 번째로는 이러한 개체들 간의 양상적 차이를 설명한다. 가령 동물과 인간의 심리적 양상, 인간의 경제적, 윤리적 양상 등이다. 마지막으로는 발생적 현상에 대해 논하는데 이것은 사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의 발생 및 발전을 의미한다.

  

볼렌호븐에게 있어 전체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포함하면서 동시에 모든 가능성들까지도 포함한 피조계를 뜻한다. 이것은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하는 모든 피조물이 속해 있는 종합적 실재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실재의 다양성 속에서 그 다양한 부분들을 서로 구분하면서도 연결시켜 주는 관계 또는 질서를 연구함으로 전체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아가 인간 자체도 이러한 전체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전체 피조계도 자체적으로 목적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모든 피조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해 나가는 사명을 주었으며 인간의 삶과 역사는 이러한 사명 및 책임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철학자 또한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그에게도 사고의 방향 감각을 형성하는 틀이 필요하다고 볼렌호븐은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틀의 핵심 개념으로 하나님, 법, 그리고 우주를 말한다.

  

볼렌호븐 역시 도여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법이란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경계로 이해한다. 그런데 Het Calvinisme에서는 법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설명했지만 나중에 Isagoogè에서는 ‘유효한 나름대로의 존재방식’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그 법을 설정하셨는데 이 법이야말로 볼렌호븐이 전체 실재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 된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이중적 관계성을 말한다. 즉 하나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계의 관계성이며 또 하나는 입법자로서의 하나님과 그 법에 의해 세워진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결코 신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에 의해 하나님께 응답되어지는 존재이다. 인간은 종교적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으로 인간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법에 대해 선(순종)과 악(불순종) 두 가지로 응답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에 대한 이해는 부분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해 준다. 볼렌호븐은 여기서 통일성과 다양성을 구별한다. 법의 통일성(eenheid, unity)은 인간의 마음을 향한 사랑의 계명이다. 인간은 이러한 ‘전기능적’ 마음에서 모든 기능과 행동들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이 통일성에서부터 인간의 다양한 기능적 삶이 나오는 것이다. 사랑의 법은 모든 양상적 법질서의 ‘머리’요 중심이다.

  

도여베르트가 ‘법’을 보다 우주적으로 이해하면서 학문적 지식의 대상으로 이해한 반면 볼렌호븐은 피조물들간의 기능적 연관성이 가지는 우주적 특성 및 규칙성으로 보고 이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볼렌호븐은 이 부분을 철저히 성경과 연결시키면서 성경의 사랑의 계명에 바로 응답할 때에만 모든 기능적 삶이 올바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1952년말에 볼렌호븐은 ‘하나님-법-우주’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면서 특별히 ‘법’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창조의 법’으로 양상 기능적 존재방식 뿐만 아니라 개체의 발생 및 성장도 결정한다. 두 번째로 ‘계시의 법’인데 이것은 신적인 규범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의미라고 말씀하신 사랑의 법이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법’이 있는데 이것은 앞의 두 법의 중간 다리역할을 하는 인간에 대한 법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동으로서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서 사랑의 법에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달려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행동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증화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볼렌호벤은 사고 자체가 자충족적이지 않으며 사고보다 삶이 앞서고, 삶에는 우리의 방향 설정(orientation)에 따라 그 의미의 유무가 결정되는 ‘길’이 있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하나의 방향 설정은 모든 삶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믿을 수 있는 확고한 것에 삶과 사고의 근거를 두기 원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방향 설정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근원은 성경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바른 길, 즉 삶을 향한 하나님이 계획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경을 통해 인간은 어떤 철학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참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철학은 지식의 제 일 원리와 존재의 최종 근거 그리고 인간의 깊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여기에 대한 열쇠를 어떤 ‘이즘(-ism)'에서 찾는다. 이것은 진정한 열쇠를 찾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며 전체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과 인본주의적 철학은 양립할 수 없다.

  

연속적인 문제-역사적 방법

  

철학의 역사를 보면 많은 방향 설정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포기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주제들이 ’역사적‘으로 ’문제‘라는 것을 어떻게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볼렌호븐의 철학 방법론인 ‘연속적인 문제-역사적 방법(Consequent Probleem-Historische Methode: Consequent Problem-Historical Method)’이다. 이 방법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성경적 철학의 역사 전체를 다시 쓰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그 결과, 1950년에 볼렌호븐은 철학사(Geschiedenis der Wijsbegeerte) 제 1권을 집필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서구 철학의 역사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목표는 난해한 철학적 개념들을 알기 쉽고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1권은 플라톤 이전의 희랍철학을 다루었으며 2권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다루려고 했으나 재정 지원 및 조교를 얻지 못해 출판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1945년부터 1964년까지 발행된 오스트훅 백과사전 (Oosthoek's Encyclopedie)에서 볼렌호븐은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각 철학자들을 사고 유형 및 사조로 규정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학문과 신앙

  

볼렌호븐에게 있어서 인간의 지식은 비학문적 지식과 학문적 지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일상생활에서 무엇에 대해 또는 누구에 대해 알게 되는 지식이다. 학문적 지식은 이와 달리 구체적인 사물에 대해서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의된 추상적인 영역에 대해 특정한 방법적 접근을 통해 획득하게 된다. 특히 그는 학문적 지식이란 결코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선행하는 비학문적 지식에 의해 계속해서 뒷받침되고 추진된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 자신, 우리의 필요와 결핍, 다른 사람들, 그들의 기대 등에 대한 비학문적 지식이 모든 학문 활동을 향한 ‘실존적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즉 볼렌호븐에게 있어서 학문적 사고는 하나의 인식을 위한 방법인데, 그것은 비학문적 지식에 기초한 것이다. 학문하는 주체는 인간이며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해 순종 또는 불순종하는 마음에 의해 학문이 이루어진다. 한 학자가 연구 분야 내에서 유사성, 차이성 그리고 관계성에 관해 방법론적으로 생각하면 그 연구 분야는 학문마다 다르지만 각 분야는 그 분야에 해당하는 독특한 성격과 법칙을 가진 영역을 포함한다. 개별 학문을 위한 분야와 그 한계가 정해지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 분야 내에서 구조적이고 생성적인 다양성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볼렌호븐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학문의 정체성, 즉 타학문과 다른 고유한 영역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한 학문을 연구하려면 그 분야와 다른 분야간의 경계를 엄격히 정한 후 그 분야 이외의 요소들은 일단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각 학문 분야의 분석적인 활동은 서로 동일하지만 각 학문의 방법은 분야의 특성상 서로 다르다고 볼렌호븐은 주장한다. 그는 비학문적 분석은 주로 ‘전체’를 구별하지만 과학적 분석은 제한된 탐구 영역에만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그 영역에서도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로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탐구하는 방식이고 둘째로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분석이라고 하고 후자는 종합이라고 부르지만 볼렌호븐은 전자를 "분해(resolution)"라고 부르고 후자는 "구성(compositio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그는 데카르트적인 학문관, 즉 모든 것을 파괴시킨 후 다시 건설하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실재 세계는 하나의 주어진 것이며 우리의 지식은 인간의 구성의 결과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분해와 구성은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세부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지적 과정이며 이것은 다시 전체적인 연관성 속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과학이 통찰력있는 도구이긴 하지만 항상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는 세부적인 것들과 그 연결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철(prosthesis)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볼렌호븐은 또한 각 학문 영역에도 종교가 기능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심리학을 연구할 때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심리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심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문 사회 과학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그 분야에 주어진 하나님의 규범을 순종하는지 불순종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볼렌호븐은 주장한다. 나아가 학문적인 활동 자체 내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규범을 준수하는지 않은지 나타난다고 말한다. 학문적 분석의 결과 바른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간의 대립적인 차이는 ‘그에 선행하는 사고와 해당하는 법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의 대립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개별 학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종교적 대립은 각 학문 분야에서의 진위 및 선악의 대립과 연관된다고 본다.

우주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있어 그는 세 가지 종류의 상호 환치될 수 없는 차이를 언급한다. ‘이것과 저것의 차이(이것은 저것이 아니다)’, ‘이렇고 저렇고의 차이(한 존재 양식은 다른 존재 양식이 아니다)’ 그리고 ‘선과 악의 차이’이다. 따라서 볼렌호븐이 종교가 과학적 분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말할 때 그는 단지 선한 의도로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영역에서 실제적인 차이들을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가령 철학에 있어서는 ‘철학이 모든 다양성을 올바로 다루어야 하는 규범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단정적-비판적 방법(thetical-critical method)

  

볼렌호븐은 성경적 철학 또는 성경에 근거한 사고는 하나님의 주권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법,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어떤 사고와의 종합도 단호히 배척한다. 물론 그도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모든 이론적 지식을 준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그가 학문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충고는 ‘개혁’이다. 볼렌호븐에게 있어서 ‘개혁’이란 먼저 하나님과 그의 법과의 관계성에 있어서 ‘회심 (conversion)’이다. 이론적인 추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재고, 수정 그리고 재형성 등과 같이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기본 범주와 개념적 틀은 이미 완성된 폐쇄체계가 아니라 열려 있는 잠정적 체계이다. 그래서 그는 단정적-비판적 방법(thetical- critical method)라고 하는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단정적'이라는 말은 탐구하고자 하는 문제나 질문들을 나름대로 실증화된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 작업은 제기한 이슈에 관해 가능한 간결하고 명료하게, 성경에 기초한 기본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 정도 사물에 대해 정의된 개념을 전제한다. 동시에 이러한 성경적 기초 위에서 이론적인 작업을 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문 활동은 언제나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볼렌호븐은 강조한다. 즉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론뿐만 아니라 평가하는 자신에 대해서도 늘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볼렌호븐은 결코 독단주의자가 아니었으며 항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기를 원했고 또한 실제로도 베르그송(H. Bergson)이나 러셀(B. Russell)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또한 칼빈주의 전통에 대해서도 그는 무조건적인 수용보다는 항상 비판적 검토를 거친 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나아가 자기비판도 매우 엄격하여 자신의 견해도 나중에 오류가 있다고 발견되면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 디르크 볼렌호븐의 영향

  

1922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스토커(H.G. Stoker)가 헤이그에 있던 볼렌호븐에게 와서 학위논문 지도를 요청하여 학위를 받은 후 남아공 포체프스트롬(Potchefstroom) 대학교 철학교수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나중에 볼렌호븐은 남아공의 포체프스트롬, 프리토리아(Pretoria) 그리고 블룸폰테인(Bloemfontein) 대학교에서 일련의 강의를 하였다. 볼렌호븐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이외에도 남아공의 딸야르드(J.D.L. Taljaard)와 미국의 런너(H.E. Runner) 및 제어펠트(C.G. Seerveld)이다. 특히 런너는 볼렌호븐과 도여베르트의 철학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그 결과 캐나다 토론토에 '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기독학문연구소)'를 세워 자유대학교와 협력관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돌트대학의 죤 콕(John Kok) 교수가 볼렌호벤의 전반기 철학사상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자유대학교 내에서는 물론 앞에서 언급한 교수들 외에도, 현재 현대철학을 가르치는 안토니 톨(A. Tol) 교수, 브릴(K.A. Bril) 박사 그리고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본스트라(Piet Boonstra) 등이 계속해서 볼렌호븐의 저작들을 정리하여 출판하고 계속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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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5.08 -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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