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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신앙동지 51인 조직과 명단
** 창동교회 개척자 김문영 목사님에 대하여 **
 
창동교회를 개척하신 김문영 목사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사실 창동교회 성도들은 그 분에 대하여 잘 몰랐던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분의 신학과 신앙의 큰 발자취만을 간단히 요약해 놓고자 한다.  
 
1. 한국 개혁교회의 신학을 지킨 51인 신앙동지회
 
해방 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는「남부총회」라는 이름으로 복구되고 그 총회의 직영신학교로서 자유주의 신학을 대변해 온 조선신학교가 김재준 교수를 중심으로 일부 교수들이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어 정착된 정통보수신학에 반(反)한 성경관과 신학을 주장하고 가르쳤다.
그 같은 자유주의 신학에 저항하여 투쟁하므로 장로교의 정통신학을 지킨 그룹이 바로 박형룡 박사와 함께한 ‘51인 신앙동지회’였다.
해방 직후 신학적으로 가장 혼란했던 시기에 박형룡 박사와 ‘51인 신앙동지회’가 자유주의 신학과 투쟁하여 한국장로교회 정통신학의 정체성을 지키고 확립하여 정통신학을 계승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해방 후(1946-1947) 조선신학교 내에서 나타났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전투적으로 논쟁하고 투쟁했던 그 중심에 ‘정통을 사랑하는 학생모임’인 ‘51인 신앙동지회’가 있었으며, 신학생 중심의 ‘51인 신앙동지회’가 1948년 6월 남산의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 ‘신앙동지회’로 결속하면서 1959년(합동과 통합의 분열)까지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계속된 자유주의 신학과 WCC 신학에 맞서 투쟁하였다.
동지회는 초기 선교사들과 박형룡 박사가 제시한 정통신학을 변호하고 투쟁하여 오늘의 한국장로교회의 정통보수신학을 계승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신앙동지회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이제야말로 자다가 깰 때다. 내 마음대로 취급하고 내 임의로 해석할 수 있는 성경이라면, 교리라면, 신조라면 천조대신이 하나님 될 수도 있다. 단군할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모실 수도 있다. 귀에 걸면 귀 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인본주의 자율주의로 취급할 수 있는 성경이라면 성경 들고 무슨 소린들 못하랴! 우리는 오늘 부끄럽던 우리의 과거를 참회하고 청산하는 의미에서 이 혼란한 현실교계에 서서 우리 신앙을 다시 바른 터 위에 세워야한다. 옛날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바른 교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성경의 권위 앞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동지회, “창립 선언문”「불기둥」창간호(신앙동지회 출판부, 1947. 12. 9), 1.)
51인 신앙동지회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경기노회 : 김덕수 김백수 전상성 박충락
전남노회 : 정규오 김일남 박요한 차남진 김인봉 안동수 이병연 김 익 김상규 강택현
황해노회 : 이치복 박창환 박신규 손치호 손두환 장세용
함남노회 : 엄두섭 하종관
전북노회 : 이로수 정희찬 이병선 박학래 최석홍 김문영 임창희
군산노회 : 한완석 조원곤 정진철 최성원 윤영한
평동노회 : 강용서 강용준
평양노회 : 안도명 이양화 박윤삼
경북노회 : 박종삼 유문열
경안노회 : 오승연 양문석
함북노회 : 권태용
북만노회 : 김준곤
인천지방회 : 윤광섭
옹진지방회 : 정효근
용천노회 : 한성옥
의산노회 : 백예원
안주노회 : 최인원
황해노회 : 이성원. 이상 51명.
기타 신복윤 최윤조
 
김문영 목사는 한국교회의 바른 신앙과 신학을 지키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 분의 신학 사상은 매우 보수적이었음을
보게 된다.
 
2. 한국교회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세계기도동지회
196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일단의 사람들이 <세계기도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는데 김충기목사는 총무를, 김문영 목사는 그 단체의 서기의 일을 보며 부흥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1961년도에 계룡산 양정고개 기도원에서 "세계기도동지회"의 목회자들이 산상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부산 시온중앙감리교회 목사이던 정영문 목사는 성경 영해를 통해 은혜를 끼침으로 일명 정 영해라 불리웠고, 세도장로교회의 정덕진 목사는 성령론을 강조하며 성령의 은사와 불을 받으라고 부르짖었다. 또한 목회자들의 부흥사라 할 수 있는 평신도  김형태 강사가 경건한 인격을 본보이며 한국교회 제 2 부흥의 불을 지폈던 것이다.
이 들은 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함으로 침례교 목회자들과 유대를 가졌다.
양정고개 현장로님의 기도원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오관석 목사와 삼신당 집회의 금잔디밭 집회에서 성령의 권능을 받은 김충기 목사는 1960년대 초반부터 침례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부흥회의 주역이 되었다.
 "세계기도동지회"의 영향력은 계속 확대되어 침례교단의 고승혁 목사, 최보기 목사, 안중로 목사, 이창희 목사 등의 영향력있는 부흥사들을 배출하였다.
이 때 이 동지회원들은 각 교단에서 아니 한국교회에서 내로라 하는 일류 부흥사로 할약하였던 인물들이었다.
"세계기도동지회"의 3대 신학 강조점은 성령론, 인격론, 종말론이었는데 종말론은 전반적으로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골격을 유지하였다. 휴거의 시기가 환란 전기냐 환란 중기냐의 약간의 시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골격은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기도 동지회는 결국 교단과 개인의 개성들이 강하고, 각 개별 회원들의 부흥회 활동이 바빠, 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회원들은 한국교회의 부흥 리더로써 60~70년대의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주역들 이었던 것이다.
김문영 목사님은 이렇게 침례교 목사들과 영적 유대를 가짐으로써 그가 떠난 후 창동교회가 침례교회로 소속하게 된것은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김문영 목사님의 신앙은 오순절적 성령주의였으며 신비적 체험주의, 영성 기도주의로 매진 하셨던 분이었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창동교회는 이런 세계기도 동지회회원들과 김문영 목사님의 지도로 영적 교류를 하며 기도의 교회로 한국교회 부흥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회고 : 김영익(길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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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29 -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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