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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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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평북노회 선천교회
  발췌 : 방 석 기 목사 (노회서기)  

 평북노회는 1911년 9월 7일 대구 남문교회(제일교회 전신)에서 제5회 독노회가 회집되어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창립하기 위하여 일곱 대리회를 일곱 개 노회로 개칭하기로 하고 해당 지역에서 그대로 노회를 창립하도록 함으로 1912년 2월 15일 선천남교회당에서 선교사5명, 목사13명, 장로 11명으로 평북노회를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제187회를 맞이하는 평북노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 64개 노회중 장자노회로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1. 서론
 평북노회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 먼저 우리나라 장로교회의 기원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것을 기점으로 장로교회는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보다 앞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교회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1834년 9월에 네덜란드인 구출라프 선교사가 충청도 서해안 홍성군 고덕도 금강 어구에 상륙하여 40일 동안 머물렀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1866년 9월2일에는 영국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 대동강으로 들어왔다가 숙섬에서 순교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교령(禁敎令)으로 믿음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중국으로 갔습니다. 이미 중국 만주 우장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소속인 로스 선교사와 맥킨타이어 선교사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1873년에서 1876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신자인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종기 등 네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들 중에 이응찬과 백홍준은 1874년부터 로스 선교사와 함께 성경번역에 착수 하였습니다. 그 후에 서상륜은 그곳에 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맥킨타이어 선교사의 기도를 받고 치유가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경 번역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번역된 복음서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오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수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복음서를 들고 와서 비밀리에 유력한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그렇게 전도하는 사람들을 매서인(賣暑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상륜은 복음서를 들고 평북 의주에 들어가 매서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쇄국정책으로 금교령이 내려진 상태임으로 신분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송천(소래)에 있는 삼촌 집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니 그 동네에 58호 중에 50호가 복음을 믿어 그들의 힘으로 지은 교회가 한국의 최초 교회인 송천교회입니다. 1885년 송천교회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처음으로 세례를 집례 하였습니다. 그 후에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이 평북 의주에 들어가 순교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자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평북의 지방 행정구역은 시(市)가 1개, 군(郡)이 19개입니다. 그 중에서 교세가 가장 큰 지역은 평북노회의 모체가 되는 선천지역으로 훗날 기독교 문화가 확산되어 선교사들이 많이 거주하고, 교육기관들이 설립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 평북에는 초읍교회, 후창읍교회, 위원읍교회, 운천교회, 자성읍교회, 강계읍교회, 벽동교회, 삭주읍교회, 선천남교회, 선천동교회, 선천북교회, 선천중앙교회, 신의주제일교회, 신의주제이교회, 신의주제4교회, 신의주제5교회, 오산학교교회(교산교회), 의주읍교회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과 6.25 사변의 격동하는 세월 속에서 월남하게 될 때 미처 모든 노회 회의록을 간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6.25사변으로 인하여 전국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니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공산치하를 거부하고 남하하여 노회 회집이 72회로 끝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총회가 남한에 남하한 목사와 장로들을 통하여 노회를 복구하도록 허락하여 무지역노회로 인정받아 73회로부터 계승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73회 노회가 1952년 3월19일 부산평북교회당에서 모임으로 남한 땅에서 새롭게 시작된 평북노회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태동기
① 개국 전 시대(1865년-1884년)
1865년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가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1866년 천주교도 학살 때 평양대동강에 상륙하려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1876년 “맥킨타이어” 선교사가 의주로부터 만주에 들어간 한국사람 수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1881년-1884년까지 “로스" 선교사가 서간도에서 한국사람 85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② 공의회 시대(1884년-1887년)
1884년 9월20일에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인 알렌 선교사 부부가 내한 하였고, 1884년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 같은 해 6월21일에는 의사인 헤론 선교사 부부가 내한하여 북 장로교 선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886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고 처음으로 성찬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또1887년 중국 봉천에서는 로스선교사가 한글로 번역한 성경을 인쇄하여 발간하였습니다.
③ 선교사 공의회 시대(1887년-1906년)
 1889년 호주장로회에서는 데이비스 선교사를 파송 하였고,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와 연합하여 “미션” 연합 공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893년에는 전국에서 세례 받은 자가 141명이었고, “예수교서회”를 설립하였습니다. 1894년에는 캐나다 장로회소속 “멕켄지” 선교사가 황해도 송천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901년에는 선교사와 한국인 총대가 합하여 조선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를 조직하였는데 당시회원은 장로3명, 조사6명, 선교사 25명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평양, 경성공의회 위원과 전라 공의회 위원, 경상 공의회 위원을 추가로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장로회 헌법 번역위원을 선택하였고, 호주 장로회 선교회 건의에 의하여 조선 자유 장로회 설립위원을 선거하였습니다.
④ 독노회 시대(1907년-1911년)
1907년 9월17일 평양 장대현 교회당에서 조선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가 조직 되었습니다. 미국 남북 장로회와 미국, 캐나다와 호주 장로회 4교파 선교사들이 공의회 결정에 의하여 조선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를 조직하니 회원은 선교사 38명, 한국인 장로 40명 합계78명이 었습니다. 독노회에서 중요한 안건을 결의했는데 전국 지역이 광활하고 거리가 멀어 회집이 어렵기 때문에 경충(경기,충청), 평북,평남,함경,경상,전라,황해지방에 일곱 대리회를 설치하여 노회의 위탁 사건을 처리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1911년 9월17일 대구 남문예배당에서 모인 제5회 독노회가 결의한대로 독노회는 총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7대리회를 7노회로 변경하여 이후 각자 지역에서 노회를 창립하니 1912년 2월15일 선천남교회당 (평안북도 선천읍)에서 선교사5명, 목사13명, 장로11명 계29명이 역사적인 평북노회가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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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01 -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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