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A. J. 제이콥스 지음｜이수정 옮김
세종서적｜상·하 각320·296쪽｜각1만2000원
박영석 기자 yspark@chosun.com
입력시간 : 2008.08.22 22:10
"베토벤 음악도 못 들어보고 사랑 한 번 못 해본 사람처럼 소중한 부분을 놓치고 생을 마감할까봐, 종교적 무지를 어린 아들한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에도 그는 밋밋한 이유를 댔다. "스스로의 지적 박약을 견딜 수 없다"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A부터 Z까지 3만3000쪽을 완독해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원제 The Know-It-All·김영사)를 펴냈던 제이콥스(Jacobs) 미국 패션잡지 〈에스콰이어〉 편집자가 그보다 강도 높은 기행(奇行)을 꿈꾸다 '성경대로 살기'에 도전했다.
유대인인 그는 반(反)종교까지는 아니더라도 비(非)종교적인 뉴요커였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힌두교도로 개종해 히피 광신교주가 됐다가 기독교인이 됐다가 중간에 잠시 신도(神道)에도 빠졌다가 현재 예루살렘에서 극단 유대교인으로 살고 있는 옛(이모와 이혼한) 이모부로부터 가족들 눈을 피해가며 조언을 구했다. 여러 성경본을 참조하되 구약을 위주로 했고, 계율·지침·조언·금언 700여 가지를 381일 동안 실행했다.
제이콥스는 면도하지 않은 털북숭이 모습으로 381일간 성경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았다. /세종서적 제공
제이콥스는 2005년 9월 1일, 첫날부터 벽을 절감했다. 무심결에 아내 줄리의 대학 티셔츠를 입으려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선 안 된다"는 구절이 떠올라 멈췄고, 동네 문구점 계산대 앞에서 꾸물대는 여성 고객 때문에 짜증이 나서 "노하기를 더디 하라"는 잠언을 어길 뻔 했다.
면도를 안 해 털북숭이인 데다 샌들을 신고 손에 은행나무 지팡이를 든 그는 체험 62일째 70 넘은 노인과 시비가 붙었고, "내가 간음했다. 어쩔래" 하는 그 노인 가슴팍에 십계명대로 돌을 던졌다. 50일째엔 뉴욕 노숙자 무료 음식제공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기괴한 풍모를 못마땅해 하며 "저기 구석에 처박혀 일하라"는 연장자 동료를 보며 이렇게 푸념했다. "의로운 분개는 키우고 사소한 울분은 삭이라 했거늘, 반반씩만이라도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성경의 고향인 이스라엘 방문 중이었던 198일째, '예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표현이 떠올라 베두인족 목자를 설득해 직접 양을 몰아도 봤다.
34일째, "여자가 생리를 시작하면 일주일간 그녀와 신체 접촉을 말라"고 한 《히브리 성경》대로 30㎝쯤 거리를 두고 아내에게 집 열쇠를 건네 불쾌감을 안겼다.
급작스런 신심(信心)이란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특정 방식으로 계속 행동하면 결국 믿음이 그 행동에 조화를 이루도록 바뀐다'는 대학서 배운 '인식의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론으로 나한테 주문을 건다"고 했던 이틀째나, "폄하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한 내가 성경이든 기도문이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은 늘 어색하다"는 204일째나, 회의(懷疑)는 계속됐다.
영적 모험을 마치고 평범한 뉴요커로 돌아간 그의 결론은 이렇다. "내가 사랑하는 백과사전은 수만 가지 모임을 만들지 못했고 세 차례 밀레니엄 중 사람들의 행동·가치관·죽음·사랑·전쟁·패션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백과사전에 손을 얹고 취임 서약을 하는 대통령도 없다. 성경은 과연 책 중의 책이었다."
원제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