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종교는 왜 존재하는가
[이인식의 '멋진 과학']
인간이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나
종교 없인 도덕성이 진화할 수 없어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입력 : 2007.10.05 23:34 / 수정 : 2007.10.06 11:42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비판하는 책들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2004년 미국의 신진 철학자인 샘 해리스가 펴낸 ‘신앙의 종말’(The End of Faith)을 비롯해서 2006년 2월 인지과학자인 미국 터프츠대의 대니얼 데닛이 내놓은 ‘주문 깨기’(Breaking the Spell), 같은 해 9월 진화생물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7년 5월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히츤스가 출간한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와 같은 문제작들이 꽤나 잘 팔리고 있다.
이러한 책들은 한결같이 종교를 경멸하고 신을 조롱한다. 종교는 일종의 폭력행위이며(해리스), 나쁜 역할도 많이 했고(데닛),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생각일 따름인데다가(도킨스), 인류 역사에 지은 죄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히츤스)고 주장한다. 심지어 히츤스는 성경이 인종청소, 노예제도, 대량학살의 명분을 제공해왔다고 맹공한다.
특히 무신론자의 대표격인 도킨스 교수는 저술 활동에 머물지 않고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그의 웹사이트에서는 무신론자를 뜻하는 영어(Atheist)의 첫 글자가 주홍색으로 인쇄된 티셔츠를 판매할 정도이다. 또한, 무신론자들에게 ‘커밍아웃’을 요구하고 있다. 커밍아웃은 본래 밀실 밖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이다. 도킨스는 무신론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종교를 공격하는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무용론 내지는 유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인류가 도덕관념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8월 인지심리학자인 하버드대의 마크 하우저가 펴낸 ‘도덕적 마음’(Moral Minds)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뇌 안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도덕성을 타고나는 존재라면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일삼는 종교가 구태여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무신론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의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학자들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가령 2007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9월호에 실린 연구논문에서 심리학자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아짐 샤리프 교수는 종교적인 개념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종교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에서 종교는 번창하고 있다. 그 이유를 탐구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영국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 9월1일자 커버스토리에 소개되었다. 먼저 영국 퀸즈대의 인지과학자인 제스 베링은 종교와 도덕성 모두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도덕성은 종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종교와 도덕성이 별도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뉴욕주립대의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 교수 역시 집단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종교와 도덕성이 함께 진화했다고 말한다. 버지니아대의 심리학자인 조나단 하이트 교수도 인류가 도덕적 본성을 진화시키는 데 있어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한다.
요컨대 이들은 종교를 도덕적 행위의 유일한 근원으로 보지 않고, 종교와 도덕 둘 다 인간의 뿌리 깊은 본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가 없이는 도덕성이 결코 진화할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성직자들이 자신을 초월하는 신비체험을 할 때 뇌에 비정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하고 신이 인간의 뇌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이런 맥락에서 ‘뉴 사이언티스트’의 커버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이 유일한 합리적 방법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종교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는 아직도 도덕적 가치를 강화하며 우리의 타고난 도덕관념과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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