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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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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에밀 브루너의 신학 방법론 - 계시와 이성을 중심으로 /허호익
에밀 브루너의 신학 방법론 - 계시와 이성을 중심으로
 주제어  부룬너
 자료출처  허호익 교수  성경본문  
 내용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고 기독교 신앙의 독자성을 하나님이 자기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으려고 한 두 스위스 신학자 K. Barth 와 E. Brunner는 그들의 신학의 내용에 있어서는 매우 근접해있었으나, 그 방법에 있었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어 거센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글은 양자의 신학 방법론을 약술하고 그 차이를 살핀 후 부룬너의 입장을 ‘계시와 이성’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이해를 중심으로 파악해 보려고 한다.


1. 바르트와 부룬너의 신학방법론

 

바르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이 자기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지 않는 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자로써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며 근거로 파악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할 때 인간이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식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바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말씀이 인간에게 들려진 말씀이지만, 인간이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계시의 인식가능성 자체까지도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에 혼합 시켰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자신을 알려주실 때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계시 인식 가능성이나 준비성 마저도 하나님의 가능성과 준비성에 종속시켰다. 그러므로 인간의 하나님(말씀, 계시)의 인식가능성이나 준비성 마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인간에게 초월적으로 주어지는 특수한 계시의 일부라는 것이다. 하나님 인식 가능성도 하나님 자신의 것이므로 계시에 대한 선행적 단계로써 보편적 일반적 자연계가 있을 수 없으며,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접촉점이 없으며,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존재의 유비’도 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계시 수용의 주체로써 수동적이나마 독립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상호 규정성의 관계(a relation of mutral conditionedness)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바르트의 주장의 방법론적 전제는 신학이 교회의 선포에 대한 학문적 자기검증일 뿐 교회 밖의 문제에 대한 변증적 기능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입장을 그는 ‘교회교의학’ 이라는 의미로 일관성 있게 주장하였다.   부룬너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학적 사고를 출발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바르트와 근본적인 사이를 들어내어 보여 주었다. 첫째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피조물 속에 주어져있다는 성서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계시사건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적절한 관계를 성서적으로 개혁파들의 신앙전통에 따라 바르게 설명하려고 하였다. 즉 역사적 특수계시와 일반적 창조의 계시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보았다. 둘째로 배타적인 계시를 주장하는 여러 타종교의 계시주장과 비교하여 성서가 말하는 계시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려고 했으며, 기독교 계시의 특수성을 계시의 인격성과 역사성에서 찿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계시의 진리는 만남으로써의 진리로써 인격성(인격적 교통, 만남) 역사성을 지닌다. 이점이 또한 이성의 진리와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물론 부르너도 신학의 자리가 교회이며 신학이 교회의 한 기능임을 인정하지만 신학의 역사적 뿌리를 신학사적으로 살펴볼 때 교회안에서 세례준비를 위한 교리문답과 성서해석의 기능 이외에도 교회밖의 거직 교리에 대한 투쟁 즉, 논쟁적, 변증적 동기가 더윽 강조되어 왔다고 한다. 물론 논쟁적 변증적 동기가 중세기처럼 사변적 동기로 전락한 적도 없지 않지만 이러한 교회밖을 향한 변증적신학을 바르트 처럼 제외해서는안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적 기능이 선교이므로 선교의 메시지에 있어서 으리가 그것을 받아 들이든지 말든지 간에 이방인, 비개종자, 인간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교회교의학’을 신학의 방법론적 전제로 채택하고 신학을 오로지 교회와 관계시켜 해명하려고 한 반면에 부룬너는 그의 신학을(교의학) ‘선교의 신학’이라고 방법론적으로 전제하고 선교를 통해 신앙과 불신앙의 대화를 모색했으며,부룬너에게 있어서 대화의 주도권은 어디까지아 교회에 두었다. 그리하여 여기의 대화의 의미는 신앙이 블신앙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신학’의 입장을 취하느냐, ‘선교의 신학’의 입장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신학방법론의 결정적인 ㅊ차이를 드러 낸다고 보여진다. 바르트와 부룬너의 신학벙법의 차이는 위에서지적한 두 측면 즉, ①계시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와 ②계시의 성서적 의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그 내용을 그의 주제 ‘계시와이성’을중심으로 간단히 약술하려고 한다.


2. 계시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 창조의 계시에 관한 논쟁    

 

부룬너는 비록 계시가 새로운 이해를 창조할지라도 결코 자연적 이해에 기초하지 않을 없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할 때 인간세계의 형상과 인간의 말과 인간의 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대화에서 인간의 위치가 수동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위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을 들을 수 있음’은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죄에 불구하고 그 형식적인 형상은 남아있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에게 결정적인 요소로써 사소한, 그래서 바르트처럼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계시에 있어서 이러한 인간의 위치(이성)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소위 창조의 계시와 역사의 계시, 그리고 일반계시와 특수계시사이의 열띤 논쟁을 야기 시켰다. 흔히 이 논쟁을 ‘자연신학’에 관한 논쟁으로 설명하지만 부룬너 자신은 분명히 성서가 말하는 창조안에서의 계시와 일반계시는 ‘자연신학’이 아니며 바르트는 ‘자연신학’과 ‘기독교적 자연신학’을 구분치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부룬너는 주관적의미로 일반계시 또는 창조의 계시를 말했으며 그것은 객관적 의미의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 또는 이성적 지식’과 엄연히 구분된다고 하였다. 전자는 성서와, 초대교부,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이지만, 후자는 카톨릭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창조안에서의 계시에 관한 논쟁은 하나님의 형상, 접촉점, 존재유비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파생시켰다. 부룬너는 하나님의 형상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첫째로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지배로써 인간을 인간으로 구별하는 점이며 둘째는 인간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올바른 관계로서의 인간의 본성이다.

 

전자는 인간의 이성적 구조이며 후자는 인간의 믿음과 사랑이다. 양자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으나 죄의 결과로 분리되어 이성의 사용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죄의 결과로 양자가 분리됨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의 본래적 의미, 즉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하나님의 형상의 형식은 그대로 남아있다. 부룬너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존재론적 모습이며, 하나님이 형상이 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졌다 해도 여전히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죄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책임성과 말을 건낸 즉 말을 주고받는 대화의 능력에서 찾으려고 한다. 창조의 계시 즉 일반계시를 통해 주어져 죄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한 형식인 인간의 책임성을 부정한다면,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대한 실재적 근거가 부정되고 죄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인간에게 회개의 선포와 구원에로의 호소가 불가능해 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또 다른 한 형식인 인간의 말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써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이미 지니고있는 것이다. 창조의 계시를 통해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식적 형상인 책임성과 말의 능력으로 진실한 한 분 하나님을 알 수 있으나 이러한 만남과 지식은 죄로 인해 왜곡되어 있어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되지 못하고 인격적인 만남이 되지 못하며 단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왜곡하고 비인격적으로 만나게 할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역사적 특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주어질 때 우상으로 왜곡되어 비인격적으로 만났던 하나님과의 만남과 지식이 참된 인격적 만남과 지식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부룬너 창조의 일반 계시를 역사적 특수계시의 전제로 보며 양자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부룬너는 이러한 창조의 계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1) 인간으로써 하나님과 연관을 맺는 인격이 되며

      2)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적이 되며

      3)예수의 구원이 게시의 전제가 되며

      4)예수의 계시와 연관을 맺으므로 세계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낸다.

부룬너는 하나님의 형상의 형식을 계시의 접촉점으로 긍정하였다. 따라서 ‘신앙의 유비’와 ‘존재의 유비’ 사이의 관계도 일반계시와 특수계시의 관계처럼 전제와 변증법적 관계로 설명한다.


3. 성서의 계시의 의미

 

바르트 계시의 초월성만을 강조하고 지식의 상대성이 주장되는 세계 속에서 계시의 계시됨의 의미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단지 계시가 계시임을 선포하였다. 부룬너 하나님의 말씀의 신비한 계시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고 그 궁극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신학의 긴급한 과제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외적으로 현대과학, 세속문화, 대중적 무신론은 과거에 교회가 계시의 진리로 주장해 준 예를 들면 지동설이나 창조론을 과오로 증명하였으며 둘째로 교회 내적으로도 성서의 계시를 성서영감론으로 동일시하거나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로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19계기 이후 성서에 대한 역사비판적 연구와 더불어 축자영감설과 정통교리의 부오성이 붕괴되로 성서적 계시를 이성으로만 설명하려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 셋째 설교의 확장을 통해 이방종교의 만남이 각 종교들이 그들의 진리를 계시의 진기로 주장하는 사실은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계시와이성 사이의 차이를 물어야 하다면 타종교가 주장하는 계시의 진리와 기독교의 성서적 계시의 독자성을 밝혀야 할 과제가 절실해진다. 부룬너는 이러한 기본문제를 염두에 두고 ‘계시와 이성’ 차이와 기독교적성서의 계시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부룬너는 먼저 계시늬 지식화 이성의 지식 즉 두 지식의 하이를 여러방식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양자의 가장 큰 차이는 이성의 지식은 주객도식에 근거해있어 주객의 일치를 진리로 보며 사실과 이념, 현상과 실재의 일치를 진리로 파악하려고 한다. 철학사의 두 줄기인 idealism 과 naturalism 공리 이러한 주객도식에 근거해 있다. 이러한 이성의 지식이 통일된 형식이나 추상적 관점을 추구하나 그것은 극본적으로 상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지식을 대상화하며 ‘그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지식의 축적이 나의 인격의 궁극적 변화를 가져와 주지 못한다. 부룬너는 에브너와 마틴부터의 만남의 철학을 받아들여 계시의 진리를 만남의 진리로 설명하여 성서의 계시의 특성은 절대적 인격, 절대적 주체, 절대적 신비와의 만남에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의 진리는 여타의 진리와 다른 근본적, 무제약적 진리로써 인간의 궁극적 변화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인격의 변화가 가능한 것은 계시의 진리가 지닌 personal character 에 기인한다. 부룬너는 성서의 계시의 다양성과 역사적 과정을 바탕으로 하여 성서의 계시가 통일된 형식, 추상적 관점이 아닌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계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성서의 계시의 특성은 부룬너에 의하면 ① 절대성(ahsoluteness) ②인격성(personal character) ③역사성(bistorical) 에서 찾아진다. 부룬너 계시진리의 이세가지 특성을 자지고 타종교의 계시주장을 일일이 반박한다. 여러 종류와 신비주의, 불교, 유교는 모두 게시를 주장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성서가 말하는 계시의 절대성, 인격성, 역사성을 모두 갖추지 못했다. isram이나 judaism 구약에선 종교의 전통을 이어받고 성서적 계시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절대적, 인격적, 역사적, 계시의 최종적 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기독교신앙의 계시이해와 결정적 인 차이를 지닌다. 현대의 사상가들은 종교를 심리적,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나 이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성서의 계시가 ??? 계시의 절대성, 인격성, 역사성이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4. 끝으로

 

바르트는 자연신학을 바람직하고 불가피하다고 하는 까닭이 소위 교육적 목회적 이유에서 교회와 세계, 신앙과 불신앙과의 대화의 기반을 자연인에게 교회의 복음선포를 접촉시키며 불신앙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라고 주장하나 그것은 결국 헛된 노력이라고 반박한다. 자연신학은 자연인의 노력이 결국 헛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불신앙을 우선 신앙의 전 단계로 허용하고 신앙에 이르기까지 대화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자연인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 장난이라고 했다. 인간이 신앙이냐 불신앙이냐를 결단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부룬너는 일반계시, 창조의 계시를 역사적 특수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전제로 받아들인다. 바르트는 계시의 주관적 실재는 성령이며 계시의 객관적 실재는 예수그리스도이며 계시의 내용은 삼의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했으나 부룬너는 계시의 3가지 의미 계시의 초월 절대성, 계시의 인격성, 계시의 역사성을 성서의 계시의 규범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종교와 종교철학을 비판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기독교와 한국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오랜 이방종교의 역사를 지닌 곳이며 피선교지로 이방종교와의 대화와 선교의 확장이 교회의 본질적 과제로 부각하므로 부룬너의 신학방법론이 시사하는 정이 더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전래로 자연을 신성시해도 동양문화의 특수성에 비추어 ‘창조의 계시’를 무시하여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E. Brunner, Revelation  and  Reason, 1946.  
Christion  Doctrine of God, 1949.            
Man in Rerolt, 1963.
           , Truth as Encounter, 1963.
P.k. Jewett,  Emil Brunner Concept of Revelation, London : James Clarlce, 1954.
K. Barth, The Epistle to the Romons, 1972.
         , Church Dogmatics, Vol, I-1, 1936.
         , Church Dogmatics, Vol, I-2, 1936.
         , Church Dogmatics, Vol, II-2, 1936.
 H. Zahrnt, The Question of God - protestant Theology in the 20th century, trans, by R,A,Wilson, New york : Hcercourt, Brace & World, 1969.
 김균진, 헤겔철학과 현대신학, 1980.
      , 헤겔과 바르트, 1983.
김광식, 기독교신학 개론,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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