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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키에르케고르-안명진
키에르케고르-안명진



키에르케고르


1813년 5월 5일 코펜하겐에서 7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1830년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헤겔철학에 심취.
1840년 신학시험에 합격 -왕립전도학교에 들어감.
1841년 코펜하겐에 있는 교회에서 첫 설교.
1855년 10월 2일 코펜하겐 한 거리에서 쓰러졌고, 이듬해 2월 2일 세상을 떠
났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흔히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말하여진다. 그러면 키에르케고
르가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불리워지는 연유는 무엇인가 ?
키에르케고르가 자기 자신에게 물었던 가장 큰 물음은 누가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가하는 것이였다. 키르케고르가 살았던 시대에는 크게 두 가지의 조류가 있
었다. 첫째, 인간 그 스스로가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간다는 논리와 둘째,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즉 사회적 노동을 통하여 인간이 자기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 두 주장은 동일한 측면에 있는 것 같지만, 한 쪽은 내
면적인 것을 강조하고 다른 한 쪽은 사회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이
본질을 형성하는 데 있어 내면적인 면을 강조하는 철학자로서 키에르케고르와 포이
에르바하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나 인간의 삶의 과정으로서 규정하는
이는 칼 마르크스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본질을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 가의 구분에
관해서 인간이 스스로 규정한다는 키에르케고르를 염두해두자.
인간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바로 인간 그 스스로의 내적인 조건에 의해서 형성한다는 측면이다. 이 측면은 유럽
의 일반적인 사고인 합리주의와 전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이 합
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케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입장이 비슷하다. 일단 니체는 접어두
고, 키에르케고르가 어떤점에서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서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가를 살펴보자.
서유럽의 합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이성을 강조하되 그 이성이 개관적인 세계에 일
정한 법칙을 부여 또는 발견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져있다. 인간이 자기자신의 본성
을 규정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세계에 주목하여 그 세계의 구조를 설명
하려는 그런 이성은 혹은 외부 세계의 일정한 법칙성을 확립하려는 그런 이성에 대
해 키에르케고르는 일단 비판적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인식의 주체성이 아니
라 바로 자기 삶을 스스로 결단하는 윤리적 주체성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인식의
주체성이라는 말과 윤리적 주체성이라는 말이 구분되는 셈인데, 전자는 테카르트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테카르트는 외적 세계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수행하며, 그 결과로 코기토를 발견한다.코기토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인식의 주체이고 이성의 주체이다.그런데 이 때 인식의 주체로서의 코기토는 즉 자
아라는 것 혹은 인간 존재라는 것은 객관적 세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묻는 것으로
만 존재하는 셈이다. 그래서 결국은 칸트에 이르러서는 인식의 추체성이 논리적 주
체성으로 등장한다, 다시말해 객관적 세계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인간 실존이 종국에
는 (살아 숨쉬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는 결과를 초래한
다.키르케고르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해서 인간이 인식의 주체성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결단하는 윤리적 주체성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첫
출발 부터 서구의 합리주의와 대립된다고 한 것이다. 이런 것을 염두해 두고 키-가
물은 인간의 본질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난 이후에, 인간은 윤리적 주체성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이 윤리적 주체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식의 주체성임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인 인간의삶
은 배제하고 인간 바깥에 있는 자연적인 세계즉 물리적인 세계만이 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인간이 자기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원초적
으로 외적 세계에 관심을 쏟는다고 볼 수 있는 데, 외적 세계의 보편 타당성을 입증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인간의 실질적인 삶은 외각으로 밀려나고 인간이 부차적으로
생각해야 할 외부적 세계가 가지고 있던 논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키에르케고르가 한번 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일단 추상적인 논의는 젖혀두고 예를 들어 추상성을 설명해보자. 인간
이 최초로, 최초의 인간이 이 지구상에 출현했다고 말한다면, 그 인간이 우리와 같
은 이런 문화적 상황에 살지 않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각종 자연의 예속에 인
간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짐승의 위협,자연 재해로 인한 위협 등의 인간에게 가
하여지는 직접적 간접적 위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니 변화하는 자연
적인 세계를 관통하는 일정한 법칙에 관심을 가지게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관
심을 가졌던 시기를 신화의 시대로 부터 어떤 인식의 시대로 역사의식으로 넘어온다
고 평가해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자연이 가하는 각종 재해에 대하여 인간 스스
로가 설명할 수 없으면 결국 어떤 초월자에게 밀어붙이고 인간은 그 속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관하여 많은 부분을 인간이 설명하게되면 더 이
상 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예전에는 자연적인 제 조건을 신이 가지고
있었다. 곡물의 신, 하늘을 지배하는 신 --- 등 자연적인 대상마다 신이 있었다. 자
연적인 대상을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자연의 이해로 부터 어떤 위안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신을 거기에 접목시켰을 것이다.그러나 인간의 정신이 그것을
설명하고부터 더 이상 어떤 자연적인 질서에 대하여 신의 이름을 논하지 않게되었
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설명하려 할 것 같으면
변화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을 설명할 어떤
보편적인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즉 변화하는 것을 붙들어 두어야하는 데,그냥 변화
하는 것을 붙들어 둘 수는 없고 어떤 일정한 보편을 상정하고 난 뒤에 이 보편에다
변화하는 것을 모두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혹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다양성을 보편
으로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삶에서 자연이 가하는 각
종 재해로 부터 빠져나가기 위하여 인간은 보편을 세웠던 것이다. 실지로 보편이라
는 것은 인간의 자기 삶에 있어서의 생명의 보존이다. 행복의 추구와 맞물려서 설정
되고 세계를 설명했던 것인 데 일정시간이 지나다 보니 인간의 삶이 역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논리에 붙들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질적인 삶속에서도 그렇고 논리적인
삶속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위의 설명은 근대 철학, 서구의 합리주의를 예증해 보면 이해될 수 있다. 데카르
트도 객관적인 세계를 파악하는 일정한 양식에 보편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코기
토를 말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적인 세계를 파악하는 이성 능력을 가지고 있
는 데, 파악되는 내용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파악되어진 것에 관한
필연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 필연성을 확보하면 자연적인 필연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므로 자연히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
간의 삶은 무한히 진보하게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측
면, 즉 자연적인 세계에 지나치게 많은 가치를 두고, 또한 자연적인 세계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갖는 필연성을 자꾸 확보하려다보니 인간의 주체성은 인식의
주체성으로만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코기토라는 것이 결국은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해주는 논리적 주체로 환워하는 단계에 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는 인간의 삶은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주체성이 아니다.인간 이외의 모든 조건은 인간의 삶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인간의
주체성은 바로 자기의 삶을 결단하는 데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
서 본다면 키에르케고르는 이미 자본주의 혹은 산업사회의 변이 현상을 미리 진단한
셈이다. 그는 시대를 앞질러 가면서 니체와 더불어 인간이 소외당하는 현상, 인간의
주체성이 논리적 주체나 기능적 측면으로 전략하는 측면을 노증시키고 비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실질적으로 객관성을 지향함으로서 말미암아 일정한
기능이나 논리 주체로 환원되어진 인간의 주체성을 윤리적 주체성으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기독성이라 한다. 종교적인 측면에 의존하여 인간의 주체성
을 회복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먼저 인간의
삶의 주체성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종교까지도 합리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서 객
관화하려는 헤겔을 비판한다.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전형적인 유형이 근대의 합리주의이다. 이 합리
주의가 실지로는 과학이나 철학의 기초를 제공해 준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
에 그 합리주의가 추구했던 보편성이라는 것은 관념,형상 등의 개념으로 표현되었
다. 객관적인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고 말하고,거기에서 보편으로 파악된것에
인식의 정도를 필연성의 정도로 까지 높히려고 했던 것이 합리주의이다. 그러다 보
니 코기토라는 것이 인식의 주체나 인식의 심리적 주체, 칸트에 이러르서는 논리적
주체로 환원되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심리적 주체나 논리적 주체로 환원되었
다는 사실속에서 외부 세계의 객관성을 외부세계의 필연성을 확보하는 주체성으로
전략했다고 본다.그래서 인간의 원초적 삶이 자기 자신의 스스로의 결단이라고 선언
하고 인간 본래의 삶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문화의 선
구자 이자 실존철학의 선구자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한 개인의 결단 주
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종교이다. 유럽의 종교는 기독교이고 종
교가 윤리적으로 결단하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 데, 그 종교를 궁구해 보
니 기독교도 실질적으로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추구하는 합리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보면 헤겔이 종교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혹은 보편적
으로 타당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이 기독교를 이성화
하거나 헤겔의 이성철학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가 보편화하는 모두를 비판하면서 새
로운 의미의 기독성 회복을 주장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기독교를 말했던 것은
그냥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발전시키려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측면이 아니라 바로 그
시대적 상황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택했던 것
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가 헤겔을 비판했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헤
겔에 의하면 절대정신이 있고 인간의 삶은 절대정신의 현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살고 있는 세상의 발전을 역사라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을 사회라
말한다면 사회이거나 역사이거나 상관없이 이 모두를 헤겔은 절대정신이 나타난 모
습이라고 한 것이다. 사회를 설명하거나 역사를 설명하거나 그 속에 절대정신의 일
정한 틀이 있다는 것이다. 그 틀을 뽑아낸것을 헤겔은 논리학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헤겔의 논리학은 전통적인 논리학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자기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적 구조는 절대정신의 구조와 같다고 말한다. 이 절대정신의
구조로서의 논리학이 한 개인의 정신에 구체화되어지는 것이 정신현상학이라 말한
다. 그럼 법철학이니 역사철학이나 정신현상학이나 논리학이나 헤겔에서 보면 전체
적인 연계과정을 그려 볼 수 있다. 그런데 헤겔철학의 전체적인 뼈대는 바로 절대정
신을 해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헤겔에게 있어서 논리학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
다. 그래서 우리는 헤겔을 일컬어 범논리주의라 한다. 이렇게 말해두고 보면 키에르
케고르가 왜 헤겔을 비판했는지는 자명해진다. 헤겔에게 있어서 인간의 주체적인 삶
은 실질적으로는 논리적 틀에 의해서 압사하는 한 측면에 불과하다. 바꾸어 말하면
헤겔이 갖고 있는 논리적 측면은 구체적인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한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행복할 것인가. 한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결
단을 내려야 하는 데, 한 개인에게 어떤 결단의 조건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키에르
케고르는 헤겔이 죽어있는 논리적 체계에 대해서 말하고 살아있는 개체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특히 헤겔의 종교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헤겔철학에 있어서는 전체, 보편, 국가, 사회,, 교회, 종교라고 말하는 것만 있고
개인의 실존적인 삶은 없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비판한다. 이런 측면에 이르러 키에르
케고르는 단적으로 객관성과 주관성을 가르고 객관성을 비판하면서 주체성 혹은 주
관성 내에서만 진리가 있고 인간의 삶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해보면 키에르
케고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분명해 진다. 합리주의나 헤겔을 비판 측면에 있어
서는 전면적으로 그 동안에 합리주의가 존중해 왔던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은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하는 철학체계속
의 핵심은 주체성이거나 주관성으로서, 실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연과학에 있어서 객관성은 가능하다고 인정하지만, 인간에 의해
규정되는 윤리 도덕 종교에 있어서는 그런 객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인간의
삶은 한 사람 사람마다 독특하고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이 항상 구체적
이고 독특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체적으로 보편성으로 엮어낼 것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주 개별적인 물질적인 것 전체를 묶어
낼 보편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물질이 보편에 환원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
로 인간의 삶을 그렇게 환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어 봤을 때, 전혀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보편 즉 윤리나 도덕적인 체계에 있어서
보편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혹은 우리의 사회
에 있어서 객관성이니 보편성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제약하려고 하는 전체적인 경향
성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해 볼려고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있어서 보편
성이 갖는 의미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부분을 제쳐두고볼 때, 키에르케고르의 참뜻
은 인간의 삶을 일정하게 규정지을 만한 객관성이나 보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과 같은 것을 통해 알아보자.
Ethos Ethics(윤리) 희랍어
Mores Moral(도덕) 라틴어
ethos는 바탕.자리란 뜻이고, Mores는 습관이다. 정말 윤리라고 말하는 것에 객관
성이나 보편성이 있는 것일까 ? 삶의 양식이 다르므로 사람을 대하는 풍속이 다른
것이다. 우리가 일정하게 갖고있는 도덕관 - 한 사람이 살고있는 테두리 - 을 가지
고 있다고 한다면 이 도덕관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Mores라고 말하는 것이 일정한 지역이 갖고 있는 풍속이라 말한다면,그것
이 그 사회에서 가장 충실한 삶을 영위하는 도덕감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어느것이
더 도덕적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예컨데, 인디언 부족의 풍속이 그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는 다른 사람이 데려가든
지 굶어 죽든지 해야하는 데 설령 아들이라해도 데리고 가서 부양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데리고 가면 같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개인 이라도 부족을 계승
하기 위한 인디언의 풍속이다. 이것을 배제하고 Mores를 말해본다면 서양에서말하는
보편타당, 누구나 보아서 동의할 수 있는 도덕감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객관성에 있어서 인간의 심성을 규정해보고 이 전체적
인 것에 도달하려고 하는 그런 전체적인 규정에 관한 키에르케고르의 비판이 어느정
도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
인간의 삶이 주체성이라 할ㄹ 때 그 주체적이라는 것을 노증시키고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삶이 어디에 근거하여 객관적인 삶인가하고 물
어볼 때, 결국은 인간 바깥에 있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선하다, 객관적
으로 옳다, 객관적으로 의미가 있다,객관적으로 내 삶이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이것을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우리가 객관적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Mores라는 개념을 염두해두고 말해보자. Mores라는 것은 일정한 풍속에 의해
서 만들어지는 생활의 관습들이고 Ethos라는 것은 생확관습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심
성이다. 그래서 바탕이 나쁜 사람이라 할 때 바탕은 마음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런
데 그 바탕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삶의 토대이다. 그렇다면 키에르케고르가 살았던
시대가 자본주의가 일정한 단계까지 와있는 상황이다.그러면 산업사회를 규정할 때
평균규격을 말하는 데, 예컨데 분업의 효율성은 작업공정의 동일화이고 제품의 획일
화 균등화 공정 시스템의 속도등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객관화라고 말
한다면 이런 삶이 지배하는 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객관적인 기준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척도라는 것은 원초적인 인간의 삶과
는 거리가 멀다.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적인 기준치에 걸어서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현재가 인간의 제조건을 폐기처분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회적 삶을
떠나서 살수 있을까 ? 이것은 앞으로 논의해보기로하자.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성이라
고 말하는 부분에 관해서 부정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인간의 삶이 결단이라는 사실에
촛점을 둔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에게 진리일 수 있는 것은 주체성밖에 없
다고 한다. 즉 인간의 일정한 조건속에서 어떤 삶의 체험을 갖든지 그 체험에 있어
서는 항상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갖는 고유한 감정을 막을 수 있는 권리를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 의하면 한 인간의 감정 내지 감동은 막연한 것이 아
니다. 그것은 상황의 전체적인 총체이다. 우리가 어떤 특정 상황속에서 우리가 갖는
감정은 내 삶의 총체성 혹은 일정한 부분의 맞물린 상태이다. 주체성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진리이다. 주체성에 들어와 있다는 말은 내가 일정한 자연
적 사회적 환경에 만나는 체험전체는 어떤 경우라도 오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다. 내가 어떤 흉칙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
는 한에 있어서는 진리이다라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순박하거나 귀하거나 비천하다
해도 상관이 없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한 인간의 실존속에 나타나는 모든 결단들
이 전부다 진리이다.
이 근거위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심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윤리적 실존 으로 나
눈다. 이런한 상황에서 키에르케고르가 객관성을 부정하고 주관성을 설정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것이 공교롭게도 합리주의를 부정하게 되는 데 합리주의를 부정한다
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갖고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이다. 왜냐하면 서구의 자유주의
가 그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은 합리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근저에는 공
리성이라든지 보편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리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면
그것은 합리주의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가 합리주의
를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에 일면적으로는 아주 강하게 자유주의나 시민사회 비판에
관련된다. 이것은 니체나 사르트르에 있어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소위 시민 계급이
갖고 있는 즉물성 속물성 물신성 등을 똑같이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주
의와 통하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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