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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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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랍 북부 스타기라에서 BC 384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민타스 2세에게 고용되었던 의사였으며, 프록세노스라는 후견인에게 그를 남겨놓고 죽었다.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 그는 의사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18세 때인 BC. 367∼366년에 아테네에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플라톤이 죽자(BC. 348)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그 학파의 수장으로 임명받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아시아의 연안에 위치한 아쏘스로 옮겼다.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딸인 피티아스와 결혼하였다.
BC 342년 경에 필립 왕으로부터 13세의 어린 알렉산더의 교육을 담당하도록 초대받은 그는 마케도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뤼케이온(뤼케이온이라 불리는 아폴로 신전 옆에 있었기 때문에)또는 페리파토스(차폐물이 있는 도로라고 알려진 새로운 학교를 창립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BC. 323)은 아테네에 혁명을 일으켰고, 그런 와중에 마케도니아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은 협력자로 고발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건하지 못한 글들을 썼다는 죄로 고소당했다. 그는 어머니의 출생지였던 에우보에아에 있는 칼시스의 마을로 은퇴했다가, 여기서 곧 병이 들어 6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BC. 322) 그는 슬하에 피티아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같은 이름의 딸 피티아스와 그녀가 죽은 후 헤르필리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니코마코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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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2500년 전에 살았고 활동했던 사람이지만 그의 사상은 플라톤의 그것처럼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서양 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무비판적인 추종자는 아니었다. 그는 객관적인 지식 전반을 그의 학문적 범위로 삼아 개별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구성과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는 또한 소위 “제 1 철학”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존재(있음) 그 자체에 대한 과학으로서 모든 개별 과학들을 거느리며, 그렇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다. 그는 논리학, 물리학, 자연사, 심리학, 정치학, 윤리학, 예술 등 폭 넓은 분야에 걸쳐 글을 썼다.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했던 논문과 강의 안 들이 전해져서 약 12권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그것들은 다소 엄격한 학문적 형태로 쓰여졌다. 유감스럽게도 일반 독자를 위한 그의 글이나 대화의 기록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읽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이 문학적인 형태로 쓰여진 것이었다는 것과, 키케로 같은 사람조차 “황금의 언변”이라고 경탄할 정도로 칭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북부의 스타기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서 기원전 347년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 다음에 그는 소아시아의 앗소스로 가서 몇몇 학자들과 철학 및 생물학적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며 5년을 보냈고, 특히 그 중 마지막 두 해는 레스보스의 미틸레네에서 지냈다. 기원전 342년 그는 마케도니아로 돌아와 어떤 소년을 교육시켜달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그 소년이 후에 알렉산더대왕이 된 바로 그 소년이었다. 그는 기원전 335년에 마케도니아를 떠나 아테네로 돌아와 그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그 학교를 리케이온Lyceum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에서 그는 12년간을 가르치며 지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나자, 아테네에는 마케도니아에 대한 강한 반감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마케도니아와의 관계 때문에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불경죄로 고발되었지만 소크라테스의 예를 생각하고는 아테네를 떠나 칼시스로 갔다. 그 이유는 그의 말에 의하면 아테네 사람들이 “다시 한번 철학에 대해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 그는 1년 후 칼시스에서 62세로 사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9세기까지 모든 논리적 연구의 기반이 되는 논리학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는 논리학을 모든 종류의 연구와 지식의 습득을 위한 일반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런 주제에 관한 그의 글의 제목으로 알려진 “오르가논Organon”도 도구 혹은 수단이라는 뜻의 말이다. 그의 논리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삼단논법으로 그는 이것을 “어떤 것들이 주어지고, 주어진 것과는 다른 어떤 것들이, 그들이 그러함 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삼단논법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세 개의 명제로 구성되는데, 그 가운데 둘은 전제가 되고 그 나머지는 하나는 결론이 된다. 전형적인 삼단논법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만일 전제들이 참이고 그 형식이 타당하면 그 삼단논법의 결론은 참이고 또 참이어야만 한다. 참인 전제들을 가진 타당한 삼단논법도 결국 그 결론이 주장하는 것의 증명을 이루어낸다. 위의 예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 대체로 쓰여지는 삼단논법과 명제의 형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형태도 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열 개의 범주category 또는 판단형식predicament을 열거하는데, 이것은 위의 삼단논법의 첫번째 전제가 되는 문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같은 명제의 주어가 “죽는다” 와 같은 술어와 관계되는 방식을 열 가지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성질의 범주 category of quality에 속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이 유사하다는 것, 즉 “죽는 운명에 있다.” 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실체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범주들에는 양 quantity, 관계relation, 장소place, 시간time, 위치 position, 상태 state, 능동 action, 수동 passivity 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관해 많이 거론되는 질문은 “그것의 주어가 되는 것 subject-matter이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고의 진행 과정을 서술하는 것인가, 언어에 대한 문법적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실재하는 사물들간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주석가들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이 세 가지 모두가 얽혀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상당히 흥미있는 것으로서 논리의 본성과 발전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 1 철학의 주된 관심은 실체substance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연에 의해 형성된 실체 외에 다른 실체가 없다면, 자연 과학이 제 1학문 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실체가 있다면 그것에 관한 학문이 가장 우선적이어야 하고 가장 첫번째 철학이 되어야 하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존재로서qua being 존재를 생각하는 것-그것이 무엇이라는 것과 그것에 속하는 속성을 모두 존재로부터 생각하는 것이 속한다.





실체의 첫번째 의미는 속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 또는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술어가 적용되는 대상이다. 그 두 번째 의미는 특별한 종류의 실체를 가리킨다.,즉 범주에서 나타난 바로 그 실체를 말하는데,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명제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떤 종류의 실체,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종류의 실체를 말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 현실 태actuality와 가능 태 potentiality라는 두 쌍의 개념의 전개와 4원인론에 의해 분석을 진행한다. 그는 모든 개별 사물들은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하나의 나무 탁자의 경우, 질료인 나무가 그 한 측면이며 나무를 탁자로 만드는 구조가 그것의 형상으로서 또 하나의 측면이 된다. 이러한 구분은 상대적인 구분이다. 왜냐 하면 탁자와의 관계에서 질료로 취급되는 나무도,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 보면, 흙, 공기, 불, 물 등으로 다시 분석되는 훨씬 더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로부터 나무로 “형상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이런 4가지 요소들을 질료 자체와 같은 어떤 것으로 궁극적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는 이 4가지 요소들을 질료의 가장 기본적인 형상, 제 1질료, 인간의 사고로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질료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질료에 형상이 부과되는 것을 시간적 진행과정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쌍, 즉 현실 태와 가능 태의 측면 아래서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민들레 꽃이 씨앗에서 자라나는 경우에서 질료와 형상이 작용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들레는 그 씨앗이 가능 태가 되어 나타난 현실태로 그것은 마치 도토리가 가능 태가 되어 떡갈나무라는 현실태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여기에 원인론의 시각을 덧붙여보면, 우리는 실재의 본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과 어떻게 질서 있는 변화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그의 해명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4가지의 원인을 구분하여 어떤 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한 것인지를 설명한다. 질료인 material cause은 그것을 구성하는 질료를 말하며, 형상인 formal cause은 그것의 전개를 규정하는 방식 또는 법칙을 말하며 능동인 efficient cause은 진행 과정의 수행자 또는 발생자이며 목적인final cause은 그것의 목적 또는 결과이다. 다시 민들레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질료 인은 그것의 씨앗이고, 민들레 특유의 성장방식은 형상 인이 되며 능동인은 그 씨앗을 만든 어미식물이며, 목적 인은 완전히 자란 민들레의 모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사용되는 그리스어 “아이티aitia”는 우리에게 “원인cause” 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그것은 원래 우리가 오늘날 원인이라는 말에 부여한 의미와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다. 그리스어 “아이티아” 는 원래 어떤 것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원인이라는 말보다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4가지 원인이 갖는 서로 다른 의미만을 승인할 수 있다.

지식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지식에 관한 플라톤의 견해와 관련해서 이해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플라톤은 지식이란, 의견이나 믿음과는 달리 실재적이고 변화하지 않으며 영원한 것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감각에 의해 얻어진 세계는 항상 변화하게 되므로 알려질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지식은 지성에 의해 파악되는 비감각적인 이데아, 또는 형상의 세계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수학적 지식은 이것의 가장 좋은 모범이다. 완전한 삼각형이나 완전한 원은 개념 또는 정의를 통해서 지성에 알려질 수 있는 것이며 감각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처럼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알려질 수 있으며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의 형상론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하고, 지성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완전한 형상이나 이데아로 이루어진 세계가 따로 완전하게 실재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그는 개별적인 물질적 사물의 본질이 그 사물들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사물의 존재가 꼭 형상의 존재로만 설명되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견해에 대한 그의 중요한 반박은, 만일 우리가 어떤 대상의 본질을 그 대상과 별개인 어떤 것으로 허용한다면 그 본질도 다시 그것과 별개의 그것만의 본질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하며, 이런 상황이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그리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또 때때로 플라톤의 견해에 대한 그의 중요한 반박은, 만일 우리가 어떤 대상의 본질을 그 대상가 별개인 어떤 것으로 허용한다면 그 본질도 다시 그것과 별개의 그것만의 본질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하며, 이런 상황이 끝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그리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또 때때로 플라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해진다.그는 모든 학문의 명제들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으로 참이며, 필연적으로 참인 전제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무한한 문제를 야기한다. 즉 필연적으로 참인 전제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필연적으로 참임을 증명해줄 것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분석론 후편 Posterior analytics>에서 과학의 “직접적인 최초의 전제”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다룬다. 그는 여러 번 반복된 사물에 대한 감각 경험은 결국 보편자로 하여금 마음 안에 나타나게 만들고 보편자로 하여금 지성에 의해 보편자로서 인식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는 실재에 대한 지식은 귀납에 의해 얻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귀납은 결론의 정확성에 대한 지성적 직관에 의해 확실성을 보장 받는다. 여기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록 보편자가 개별자와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지기는 했으나, 그 보편자라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형상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안에서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은 나중에 이성적인 그리스도 철학과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고, 동시에 그와 그리스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이성과 지성에 대한 존경과도 일관된 것이었다. 그의 <자연학Physics>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이 운동 중에 잇고 그것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어떤 영원한 운동자가 있어서 영원한 운동을 만들어내 주어야 하는데, 그 운동자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또 그것을 움직여준 운동자를 찾아야 하기 EOANSDLEK. 그러므로 신이 그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자 unmoved mover가 된다. 그는 영원하고 비질료적이며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자이다. 그는 가능 태가 없는 현실태여야 한다. 왜냐 하면지성은 인격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이 사고는 사고 그 자체로서 있을 뿐이고, 모든 사물에 대한 그의 완전한 지식 안에서 무한히 행복해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사물의 운동을 산출해냄에 있어 어떠한 물리적인 방법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우주의 목적인으로서, 모ㄷ근 사물이 그것을 향하여 가는 궁극적 선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립적이고 영원하며 지성적인 부동의 원동자 개념은 나중에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윌엄 오컴 등과 같은 사람들의 신개념, 즉 사랑의 신, 의지를 가지며 육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창조해낸 존재자들과 교류도 할 수 있는 신으로서의 개념과 부합된다.

영혼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한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당시의 독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것이다. 플라톤은 가르치기를, 영혼과 육체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육신을 통일적인 존재로서 자연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프쉬케”, 즉 영혼은 육신 안에 있는 생명력이다. 그는 그것을 “유체의 형상”이라고 하고 “그 안에 생명을 가능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적 육체의 일등급 현실태”라고 하였다. 그것은 육체의 능동 인이자 형상 인이고 목적인이며,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살아 남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관한 의문들을 무의미하다고 지나쳐버리면서, “마치 밀랍과 그 밀랍에 주어진 모양이 하나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는 생명체 안에 있는 식물적 활동에 대응하는 것은 영혼의 식물적 측면이라고 하고, 감각적 측면은 마찬가지로 생명체 안에서 감각을 갖는데 해당한다고 한다. 인간의 경우에 마음은 역시 “그것으로부터 마음이 생각하고 알고 하는, 마음의 일부분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식물적, 감각적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물리적 나타남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그것이 생각을 하기 전에는 아무런 실재적인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고를 마음에다 형상을 부과하는 것, 즉 “내적으로 형성하는in-forming”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는 능동적인 마음과 수동적인 마음을 구분한다. 마음은 사고에 의해 “내적으로 형성함”을 받는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 능동성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빛과 같은 적극적 상태이다. 빛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능적인 색을 현실적인 색으로 만들어낸다. 마음은 이러한 의미에서 분리될 수 있고, 투과할 수 없으며 복합되지 않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속성상 거의 신과 같은 측면이 있는 영혼의 존재를 가정했다. 주석가들은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가 일반적인 상식과 경험적 접근에서 벗어났거나 일찍이 그가 받았던 플라토니즘의 영향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분석상의 비인간성과 독립된 사상으로서의 실패로 비쳐진 것을 조명하는 데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간의 매끄럽지 못한 동반관계를 포함하는, 인간에 대한 극도로 이원론적인 플라톤의 견해를 받아드릴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물리적, 감각적인 것과 거의 일치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일관성과 설득력을 위하여 물리주의를 구축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인간존재가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본성상 가지고 있는 복합적이고 불가사의한 관념에 대해서 민감한 성실성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다루고자 했던 철학적 문제, 즉 육체와 마음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범위는 광대하다. 그것은 천체도에서 물고기 분류에 이르기까지, 바람과 바다와 날씨에 관한 연구에서 비극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바람과 바다와 날씨에 관한 연구에서 비극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전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실로 큰 것이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였던 테오프라스투스는 그를 이어 리케이온의 지도자가 되어 직접 스승의 이론을 전파하였다. 3세기 경, 플로티노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뽑아서 조합해 신플라톤주의를 만들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관한 자세한 연구가 행해졌지만, 13세기에 이르러 그의 저작에 대한 아랍적 시각의 연구가 이슬람 주석서 들과 함께 라틴지역으로 유입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새롭고 강렬한 흥미는 싹트지 않았다. 그리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대한 가장 앞서가는 보급자가 되었다. 그는 그것을 심오하게 인식된 학문적 작업으로 생각하고 따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 공정하지 못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끼워 맞추고 변형시켰으며, 어떤 때는 아예 알려진 것과 다르게 둔갑시키기도 하였다. 자연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리고 측량측정 수단이 개선됨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관찰은 그 결함이 드러났고 16세기 이후부터는 천문학을 비롯한 그이 과학 일부는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었으나, 그의 철학적 역량이나 형이상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미학 등의 위력은 약화되지 않고 남아있다. 그는 18세기까지 “그 철학자 the philosoppher”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내용출처: http://www.aristotle.pe.kr/data/aris_intr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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