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해석을 통한 목회자의 영성 개발
한국교회정보센터 주관: '목회자의 날' 기념 목회자 세미나 특별 강의
윤철원
I. 들어가는 말
영성(靈性)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이해는 영성 신학의 몫일 테지만, 신약 연구자로서 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도행전의 본문에서 그 본래적인 의미를 추적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모든 역사에서 되돌아 가야할 고향은 성서의 세계이며 역사적으로는 초대교회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답변을 찾아야 할 영성에 대해서는 먼저 텍스트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교회는 영성의 세계를 너무나 협소화 내지 단순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카리스마적인 운동(Charismatic movement)을 영성의 적자(嫡子)로 제한하면서 그렇게 성도들을 교육해 왔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적을 비판하고 성서적 지침을 찾아내기 위해서 본 세미나가 기획되었다고 본다.
성서 해석학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해석은 하나의 유행이나 풍조를 따른다. 그래서 텍스트(text) 해석은 언제나 콘텍스트적(contextual)이라는 말은 타당해 보인다.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 왜, 어떻게 남미에서 성서이해와 해석의 주류를 형성할 수 있었고,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 1970-80년대 이 땅에서 그 적용성을 나름대로 발휘할 수 있었는지 심각하게 묻지 않아도 그 해답은 명료하게 드러난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성서를 그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방 신학자나 민중 신학자는 오히려 독재 정권에 감사(?)해야 할 지 모를 정도다. 물론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좀 과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 해석이 역사의 현실인 목회 현장과 결코 뗄 수 없다는 지적은 항상 정당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의 본문을 중심으로 영성의 지평이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 분석하고, 짚어보려고 한다. 이러한 해석 작업은 목회자의 영성 개발에 많은 제안점과 현장에서 적용하는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믿어 마지않는다.
II. 교회와 목회자의 관계
어느 목사님이 한 도시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셨는데, 집회가 시작되기 전 식사를 마치고 마을 어귀를 돌아보려고 담임 목사님과 함께 산보를 했다고 한다. 두 목사님이 한참 동안 산보를 하다가 마을 중심에 있는 수백 년이나 된 고목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고, 담임 목사님은 그 마을의 역사에 대해서 소개했다. 한 동안 말씀을 듣고 있던 강사 목사님이 '얘(고목을 지칭), 너는 목회도 안 하는데 왜 그렇게 속이 팍 곯았냐?'고 독백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힘들고 고된 길이 바로 목회자의 길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 사명에 이끌려서 이 곳까지 달려온 사명자들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만족하며 주님의 종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사뭇 흥분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의 상태가 언제나 이렇지는 않다. 본인은 언젠가 누군가가 이렇게 거들어줄 때 행복을 느낀 적이 있다. '목사님도 사람인데...' 이 얼마나 다정스런 말인가? 그러나 이런 상황은 목회자로 하여금 자칫 잘못 생각하게 하고, 나태하게 만들며, 혹이나 전혀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어 가게 할 수 있는 유혹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영성이고, 주목해야 할 내용이 바로 목회자의 자기 정체성이라고 본다. 목회자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이고,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임을 잊지 않을 때 영성적 사역자로서 목회자가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성이 목회자에게 왜 뜨거운 감자처럼 뗄 수 없는 관계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영성이란 목회 사역에 긴급한 영양소(營養素)이고, 목회자가 영성이 부족할 때 더 이상 목회자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목회 사역을 다른 말로 하면, 영성적 사역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성이 메마른 상태의 목회는 이미 목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목회 사역의 터전인 교회는 성령과 무관할 때 이미 교회일 수 없듯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성령과 일치할 때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의하면, 성령이 충만할 때 교회는 증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고, 그 증인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가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마지막 시기를 책임지도록 그분이 친히 세운 기관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일치하는 영성적 삶이 교회의 근거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교회의 주도적인 일꾼인 목회자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가장 주목할 것은 성령과 일치하는 영성적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다양한 직무 가운데서 가장 급하고도 신속하게 수행할 직무는 영성의 회복일 것이다. 성령의 역할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감지하지 못할 때 이미 목회자일 수 없다는 분명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은 무턱대고 믿는다고 고백하거나 성직자로서의 권위를 세우는데서가 아니라 '성서의 바른 독서와 해석'에서 출발한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와의 만남을 위한 성령의 인도를 자각하지 못했을 때 세 번씩이나 하나님의 지시를 자신을 향한 하나의 시험(temptation)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듯이, 목회자가 영성적 사역자가 되지 못할 때 베드로의 경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를 향한 하나님의 지시가 유혹이 아니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임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성서에 대한 바른 해석에서 시작된다. 신약성서, 특히 사도행전의 여러 사건이 제시하는 초대 교회와 성령의 일치된 관계는 목회자의 영성 이해의 지평을 점검할 수 있는 가치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III. 영성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논의를 위해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일 것이다. 오늘날 수 많은 저서나 신앙의 선언들 가운데 등장하는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성이란 용어는 바르게 정의되거나 그 의미가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개신교 내에서는 '경건'이라는 말이 영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내세우면서 영성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건운동이 시작될 때의 경건 개념이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주의적인 시대 정신 가운데서 일종의 도덕주의라는 개념으로 변질되었다는 반성과 더불어, 롸이스(Howard L. Rice)는 경건이란 본래의 뜻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영성의 의미와 일치하지만, 교회사를 통해서 인각(印刻)된 상(像)은 편협하며 독선적이며 또한 도덕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됨으로 영성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영성이란 용어 사용의 타당성을 옹호한다.
그러므로 경건과 영성이란 말이 상호 교환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성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영성이 경건보다 더 수용적일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경향을 반영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즉 경건이 개인적인 신앙의 입장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용어라면, 영성은 보다 포괄적인 입장에서 개인으로부터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를 아우르는 신앙적 반성이라는 특정한 형식을 지시하는 전문 용어(technical term)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영적 관계를 통해서 얻게되는 신앙적 삶의 특정한 태도나 행동을 형성하는 준거틀'이라고 영성을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특정한 형식의 하나님 체험이 특정한 형태의 삶의 모습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형식의 하나님 체험이 있으며, 이런 체험은 공동체의 삶에 대한 특정한 형식의 해석학적 관점을 형성하게 만들고, 특정한 형태의 실천적 삶을 만들어 낸다. 즉 성서적 영성이란 말은 성령의 역사가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보여주는 특별한 삶의 모습이 있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을 말할 때, 성령을 인간이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대해서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인간에게 무한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지만(계시),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영성 개발은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실존적 체험을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노력일 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그 범위도 확대하려는 시도이다. 즉 목회자가 영성을 개발한다는 말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신적 체험을 말씀 연구를 통해서 확인하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영성개발을 마치 인위적인 조작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우려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즉 영성이 인간의 능동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IV.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사역에 대한 영성적 이해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는 성령이 근거하고 있다.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이 '세례-기도-성령의 임재'(눅 3:21-22)라는 패턴이듯이, 초대교회의 출발점도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이었다(행 1:5; 2:1-13). 예수가 공사역을 통해서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실천했는지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야말로 영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성령이 충만한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뿐 아니라 예수를 본받아 담대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의 주제 구절인 1장 8절의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초대교회는 언제나 향도(嚮導)인 성령을 좇아서 행동했다. 이런 측면에서 사도행전이 '성령 행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타당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도행전의 3장 1-10절, 8장 14-17절, 그리고 16장 6-10절을 선택해서 영성 개발에 대한 성서 해석학적 시안(試案)을 마련하려고 한다. 먼저 3장의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가 치유되는 사건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 사건이후 맨 처음으로 세운 놀라운 성과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앞으로 펼쳐갈 세계를 미리 맛보게 한다. 이것은 예수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가버나움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한 것처럼(눅 4:31-37), 사도들 역시 스승 예수의 사역을 빼 닮아서 사역에 매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우리는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행 8장)에서 드러나는 영성의 구체적인 내용, 즉 화해(和解)와 협력(協力)의 공동체를 세워 가는 초대교회의 실제적인 영성을 만나게 된다. 스데반의 순교가 몰고 온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나름대로 그들이 거하는 도시마다 펼쳐지는 선교의 장에서 복음을 선포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괄목할 성공은 사마리아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사마리아 교회가 체험한 영성적 이해를 알아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유럽 선교의 장이 열릴 때(16장) 예수의 영이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예수의 영은 바울에게 분명한 책임과 사명 인식을 촉구하면서 그의 선교 방향을 이끌고 있다. 이제 3장부터 우리의 논의를 시작하도록 한다.
1. 영성적 사역의 기초는 성령충만이다(행 3:1-10)
성전에서 행한 베드로와 요한의 치유 사역은 사도행전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다. 우리가 주목하는 사건의 무대는 성전이다. 거룩한 장소로서의 성전과 청결하지 못한 인간 군상의 대표자격인 앉은뱅이가 나란히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이 장면의 배경을 보고 영감 있게 느낄 수 없는 독자라면 차라리 사도행전 읽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선생이 했던 것과 똑같이 앉은뱅이에게 자기들을 바라보라고 한다(4절).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의 해프닝은 사도들의 관심과 그 앉은뱅이의 관심의 차이에서 생긴다. 5절에서 앉은뱅이는 여느 때와 같이 무엇인가를 얻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무엇인가 금전적인 것을 바라는 앉은뱅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6절에서 '일어나 걸으라'는 베드로의 선언에 이 장애인은 그다지 솔깃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베드로의 치유 선언에 이 장애인이 걸을 수 있음을 직감한다. 예수의 치유 사역을 통해서 수 많은 장애인들이 고침을 받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치유의 중요한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발로 뛰고 건강을 회복하자 사도들은 다시 성전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중요한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게 되는데, 완쾌된 거지가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온 것이다(3:8). 결국 이 사건은 관례적이기보다는 더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도들과 다른 신자들이 정해진 기도 시간에 일상적으로 성전을 찾는 것보다는 그 거지가 엄격한 성전 경계를 넘어선다는데 더 초점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는 제의적 성결과 육체적 완전은 깊은 관련이 있다. 모세의 율법은 희생 제물로 다리를 절거나 다른 흠이 있는 동물을 드리는 것과 다리를 절거나 다른 불구자인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레 21:16-24; 신 15:21; 말 1:8, 13). 그러한 율법은 제사장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장애인들은 '죽은 개' 즉 가치가 없고, 무능하며, 비열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삼하 9:8; 4:4).
따라서 누가복음서에서 앉은뱅이를 시력 장애자와 청각 장애자들과 문둥병자들과 죽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7:22; 14:21), 즉 전형적으로 사회-종교적인 소외 계층으로 분류하는 것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누가가 이러한 사람들을 예수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특별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 즉 확대된 가족이라는 연대감으로 예수와 그 제자들의 동역자들로 높인다는 점이다(5:17-26; 7:21-23; 14:7-24).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미문에서 그 앉은뱅이에게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와 함께 성전에 들어간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부적절하고 부정한 것들에 대해서 경계를 허물고 공동체를 세우려는 예수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성령충만의 체험이 없이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명 수행, 즉 영성적 행동은 성령과 일치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 이후 베드로와 요한을 필두로 하는 초대 교회는 예수의 사역과 동일한 패턴으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사역을 개시한 예수를 닮아감으로 자신들의 사명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성전의 미문 앞에서 벌어진 치유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 모습은 성전(혹은 율법)의 기능이 정지되고, 이제부터 예수의 이름(복음)이 그 기능을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율법의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 즉 초대 교회는 제일 먼저 부자유한 인간(앉은뱅이)을 치유하는 행동을 기점으로 사역을 시작하는데, 이런 담대한 능력은 곧 성령충만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적 사역으로서의 목회의 탄탄한 기초는 성령충만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 영성적 사역의 과정은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는 것이다(행 8:14-17)
이제 사마리아의 빌립 선교와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 가운데 나타나는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영성적 사역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막힌 성과를 사도행전 8장에서 찾아보자.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를 분리시키는 적대적인 장벽은 빌립의 선교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제거된다. 예수가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엘리야처럼 불로 보복하려고 하고, 예수는 그것을 저지했다(눅 9:51-56; cf. 왕하 1:9-18). 이와는 다른 장면이 사도행전 8장에서 벌어진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서 빌립은 심판과 파괴 대신 축복과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사마리아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다.
독자들은 사마리아에서 빌립을 보려고(8:6) 몰려드는 열성적인 사마리아 군중들과 더불어 그들 속에 끼여있는 마술사 시몬을 만나게 된다. 이제 잠재적인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자기의 지지자들이 빌립의 메시지를 듣고 그의 기적을 보기 위해서 몰려들고 궁극적으로 세례를 통해서 기독교 공동체에 가입하게 될 경우, 시몬은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나 시몬은 자기의 명성을 지키거나 빌립에게 대항하기는커녕,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며 빌립의 충실한 동료가 된다(8:13).
그때 분명히 빌립의 능력은 소위 '큰 능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몬의 능력보다 양적으로 훨씬 더 컸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했다. 빌립과 시몬의 경우에서, 빌립은 그의 능력을 질병과 마귀에 붙잡혀 고생하는 사마리아인들을 구원하는 데 활용하고 이러한 사례를 메시야인 예수에 관한 복음과 결합시킨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사마리아 군중들은 빌립의 인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감화를 받고 그의 이름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 그들은 빌립이 말하는 것을 열심히 들었다(8:6). 한편 시몬은 그의 능력을 사람들을 이롭게 하지 않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데 사용함으로 '자기가 위대한 자라고 말하면서' 오직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8:10). 비록 시몬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빌립의 능력있는 사역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생각하면서 몰두하는 것은 그의 개종의 신실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빌립의 사역의 본질과 시몬이 돈을 주고 사도들의 능력을 사려고 시도하는 부정적인 모습(행 8:18-19)은 베드로와 요한과 관련되어 더 명백해진다. 예루살렘에서 두 명의 사도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은 교회의 확장되는 선교에 대한 사도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낸다.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뒤에 머물러 있으면서(8:1b) 그들은 또한 그 도시 경계선 밖의 새로운 신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성령이 사마리아에서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기도와 안수를 통해서 즉시 성령을 받게 한다(8:14-17). 일반적으로 바울과 요한 신학에 따른다면, 종종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는 것(개종-입교)과 성령을 받는 것 사이의 시간차로 인해서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사도행전에서 이상하지 않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회개와 세례와 성령을 받는 것 사이의 분명한 관계를 언급하지만, 반드시 동시적인 사건은 아니다(2:38). 사도들은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받고(1:5) 얼마 후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았고,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회중들과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또 한번의 성령충만을 경험했다(4:31). 그렇다면 이것은 2장 41절에서 세례받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처음 임재하고 난 이후 성령의 일부가 부족한 성도들에게 더 추가되었다는 의미인가? 물론 이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성령은 사도행전에서 규범화된 엄격한 공식에 매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인간은 성령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는 사마리아에 성령이 늦게 임재(臨在)한 것보다 더 특별한 것은 7인의 협력자(전통적으로 지칭되는 집사가 아님, cf. 행 6:3) 중 빌립이 자기의 사마리아 회심자들에게 성령을 전달해주는 데 있어서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도들이 중심부에 등장하자 빌립이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증인으로서 빌립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누가는 더 긍정적으로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사역은 특히 물 세례와 성령 세례와 관련하여 선구자(요한)-완성자(예수) 패턴에서 서로 연관성을 갖는다.
이 패턴은 예수 사역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이 요한의 예비적인 사역을 모독하거나 '주 앞에 큰 자'라는 자격을 갖춘 성령 충만한 예언자로서의 그의 평판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눅 1:15-16, 76-80). 전반적으로 누가복음서의 요한과 예수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경쟁적인 라이벌이기보다는 협력자이며 동역자다. 우리는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선교는 물로 세례를 준 선구자 빌립과 성령을 제공한 완성자인 베드로/요한 사이의 유사한 협력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사도들이 안수하는 것은 빌립의 식탁 봉사에 대해 그들이 이전에 연대했던 것을 상기시킴으로 빌립과 그의 회심자들이 선교의 동반자로 하나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6:6). 이와 동시에 빌립과 베드로/요한의 관계는 사마리아 교회와 예루살렘 모교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패턴임을 드러내준다. 여기서 다시 한번 지적할 사항은 성령이 이 일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사마리아에서의 이 모든 사건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곳에 참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사마리아라는 지역과 그 땅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개나 돼지 새끼'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불순하고 더러운 존재였다. 그런 곳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고,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으키는 참된 화해와 일치가 빛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성적 사역의 과정에서 실현되는 내용이다.
3. 영성적 사역의 경계 설정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행 16:6-10)
성령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작용이지, 인간의 그 어떠한 작용으로는 결코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영성을 자주 언급하고, 성령을 기대하면서, 규범이나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성숙도는 흔히 상실한다. 이것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사건에서 잘 나타난다(행 10장).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침에 일치할 때 우리는 규범이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참된 자유자로서 영성적 존재가 된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성령은 환상이나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선교 여정을 지속적으로 주관한다. 이 경우에 성령이 저지하는 기능은 아주 돋보인다. 바울 일행의 계획이 두 번이나 제지당하는 모습은 특징적이다. 처음에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시도를 막고, 그리고 나서 비두니아로 가려는 시도도 허락하지 않는다(16:6-7). 어느 누구도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할 수 없는 반면(11:17),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어긋나는 어떤 시도도 좌절시킬 수 있다. 6절에 쓰인 동사로서, 사람과 관련해서 방해하는 것을 뜻하는 '콜뤼오'가 그렇게 저지하는 것을 의미해준다. 바울의 비두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로의 전도 여행을 성령이 왜 저지했는지 그 계획이 좌절된 실제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갑작스런 선교 계획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한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신비한 체험을 경험한 바울이 아닌가? 이방인의 전도자 바울의 예상치 못한 선교 여정을 성령이 주관한다. 성령이 금지한 지역을 지나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에게해의 항구인 드로아에 도착한다(8절). 여기서 밤을 지내면서, 바울은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다음 목적지에 대해서 불명확했던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부르는 분명한 비전을 통해서 그의 주저함을 결정적으로 극복하게 된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9절).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마게도냐 사람의 외침은 바로 복음을 수용해야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한계 상황을 반증해주는 것으로 해석되며, 또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일지라도 그것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암시해 준다.
또한 이 환상은 복음을 증거하는 여정이 단순히 편안한 과정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복음은 그것이 요청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비록 그 여정이 편안한 과정이 아닐지라도 담대함으로 전파해야 할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그 여정을 하나님이 주관하고(10절), 복음을 선포하는 여정이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다. 복음 전도자들은 그들의 사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하고, 비단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도자의 발에 묻은 티끌을 떨어낼 만큼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cf. 행 13:51).
누가는 결국 마게도냐로 향한 바울 일행이 도달한 곳이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라고 명시한다(12절). 우리가 여기서 조심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점은, 마게도냐와 같은 로마의 식민지들에 대한 언급은 제국의 여러 지역들이 복음으로 편입/통합되어 복음을 수용해야할 대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게도냐의 한 남자가 전도자 바울을 부르는 것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 지역은 로마의 힘이 지배하는 곳일지라도 복음이 절실히 요청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성령을 통한 복음 증거가 로마 제국을 포함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것은 황제보다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이동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로마제국이 복음 앞에서 이렇게 무력(無力)하다는 관점에서 사도행전을 읽을 수 있다면(the anti-Roman reading on Luke-Acts), 이 본문은 그것을 더욱 더 명쾌하게 제시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도행전의 반 로마적 읽기를 타당하게 하는 것이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성령의 역할인 셈이다. 그러므로 영성적 사역의 한계 설정을 인간의 몫으로 제어하는 것은 비성서적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V. 결론: 성서 해석을 통한 목회자의 영성 개발은 가능한가?
한국 교회는 성서에 정통해 있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만 한다. 한국 교회에는 수 많은 성서 연구 프로그램과 교단 신학교가 있어서 성서에 대한 연구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산술적 증거만으로 그렇다고 전제하면 낭패이고, 천만의 말씀이다. 성서에 대한 강조보다는 신학적 이론의 설명과 이해에 치중하는 것이 신학교의 일반화된 커리큘럼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직도 일반적인 추세이다. 물론 신학의 다방면에 걸친 수업이 무슨 문제일까마는, 성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 연구는 그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너무 많은 논리가 횡행하는 시대에서 사역하기에 어떤 때는 고달픈 게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목회자의 영성 계발은 맨 먼저 성서에 대한 바른 연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성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향한 끊임없는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투자(고전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읽는 성서 연구와 출판물 구매, 나아가 목회자의 연구 활동을 위한 연구비 조성 단계)가 동반되지 않을 때 영성 개발은 한낱 구호에 그칠 수 있음을 유의하자는 것이다. IMF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된 구조조정(構造調整, Restructuring)이라는 용어를 교회와 목회자 역시 심사숙고할 시간이 되었음은 당연하다. 기업에서는 성장성이 희박한 사업분야의 축소 내지 폐쇄, 중복을 띤 사업의 통폐합, 기구 인원의 감축, 부동산 등 소유 자산의 매각처분 같은 방식을 선택하지만, 목회 현장에서는 새로운 목회 패턴을 개발한다거나 전략적으로 다른 교회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방법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목회자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발을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이라도 한국 교회가 유럽 교회의 수적 감소를 반복하지 않을까 두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추세와 발맞추어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이 바로 목회자의 성서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라는 것이다. 전문적인 성서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진정한 영성은 성서에서 나오고, 참된 성서적 영성은 삶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그 삶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삶과 분리된 목회자의 영성은 그 자체가 모호할 수 있고 사역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스스로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고 자부하는 목회자일지라도 성도들을 위험한 수준으로 몰고 가서 영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영성은 목회 현장이라는 삶의 자리에 늘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큰 흐름을 주도하는 영성에 대한 강조가 혹이라도 상황적 변화로 인해서 소멸돼서는 안 된다. 특히 성서가 강조하는 영성의 특징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현대 사회는 보편적 합리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근대 세계가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했다면,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이성이 그 힘을 상실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추세는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그 정도가 증폭되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직시하고 선교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영성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성서에 대한 주석적 작업이 빈약하고, 깊은 신학적 이해 없이 기계처럼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한다는 지적을 이제는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변해야 교회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는 한국 사회는 변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대이다. 그래야 한국 교회가 소망이 있다. 이 곳에 함께 자리한 목회자님들에게 한국 교회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강의를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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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저자들의 해석의 영성/ 조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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