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기사입력 2008-03-06 17:56
노팅엄대학교 신학부 교수 앤서니 티슬턴(Anthony C. Thiselton)은 이름 앞에 '백과사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그만큼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는 해석학계의 세계적 대가이다.
그가 가진 육체적 핸디캡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름 자체가 인간승리라 할 만하다. 어릴 때 뇌수막염을 앓아 눈이 심하게 나빴던 그는 대학 진학도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성공회 목사 임직을 위한 신체검사에서 '교구 목회에 필요한 만큼의 책을 읽어낼 수 없음'이라는 소견서가 첨부됐다. 그러나 그는 돋보기 안경에다 확대경까지 들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
교수직은 1964년 브리스톨대학에서 시작했다. 신약과 언어철학 쪽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는 1970년 셰필드대학으로 옮겨가면서 신약과 현대사상의 두 지평을 아우르기 위한 해석학 쪽으로 길을 잡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였다. 1980년 출간된 셰필드대 박사학위 논문 '두 지평(Two Horizons)'으로 그는 단숨에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두 지평'이란 말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해석학자인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에게서 따왔다. 티슬턴 교수는 사상적으로 가다머에게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고, 타자 존중과 경청의 자세를 높이 말하곤 했다. 외삼촌인 어네스트 케반은 런던 바이블 칼리지의 학장이었고, 청교도 신학의 전문가였다. 티슬턴 교수 자신은 칼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칼뱅주의자로 여겨지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티슬턴은 1985∼1992년 노팅엄 지역의 세인트존스칼리지(성공회 신학교)와 더럼대학의 세인트존스칼리지의 학장을 각각 맡기도 했는데 이때 '해석학의 새 지평들'을 출판한다. 이 책은 현대 해석학의 동향을 폭넓게 망라한 책으로, 이 분야에 관해 대학원 과정 교과서로서 손색 없는 대작으로 꼽힌다. 그는 여기서 해석학의 동향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의 결과를 목표로 하는 성경읽기의 사상적 뿌리를 집대성하고 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목회적 해석학'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는 성경해석학이 상아탑 이론의 벽을 넘어 목회적 삶을 빚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티슬턴 교수의 학문적 활동의 꽃이 활짝 핀 시기는 1992년 노팅엄대 신학부 학장으로 부임한 이후부터다. 이때 여러 나라에서 박사학위 후보생들이 몰려들었다. "학위를 위해 공부하지 말고 진리를 위해 공부하라"고 강조하던 그는 논문 지도와 행정의 바쁜 와중에도 1400쪽이 넘는 고린도전서 주석을 출판했다. 분량이 방대해 그 뒤 압축된 형태로 줄이고 목회적 관심을 더 많이 살려서 300쪽 분량의 고린도전서 주석을 따로 내기도 했다.
2002년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만 이후 5년에 걸쳐 교수직을 유지하도록 초청을 받았고, 지금까지 노팅엄대학과 체스터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저술 활동을 계속해 '교리의 해석학'을 펴냈다. 이로써 그가 평생 추구해오던 삼각편대가 완성됐는데 첫째는 성경주해 분야(고린도전서 주석)이고, 둘째는 조직신학분야(교리의 해석학), 마지막은 철학적 해석학과의 대화 부분(해석학의 새 지평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교리의 해석학'을 탈고할 즈음 심장발작을 일으켜 현재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다.
티슬턴 교수의 장점은 복잡한 사상들의 저변을 꿰뚫어보고 그것이 성경의 해석과 그리스도인의 고백적 삶에 끼칠 유익과 해악이 무엇인지를 간파해냈다는 점이다. 그는 교회 활동과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간 배아 및 수정위원회, 영국 성공회 교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신학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은 3개 도시의 주교좌교회의 캐논 신학자(신학적 권위를 가진 성공회 직제)로 봉직하면서 노팅엄의 한 교구 교회에서 설교 사역을 하고 있다.
최승락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