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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신학을 찾아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과 미학
손호현(연세대학교 겸임교수, 조직신학, 연세대 신학과와 하버드 대학 신학부(M.T.S.)에서 공부하였고, 밴더빌트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하나님,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합니까?』등의 지은 책과 빌라데서의 『신학적 미학』 등의 옮긴 책이 있다. )
I. 들어가는 말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백치』에서“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라고 예언한다.1)1) 이 소고는 어떻게 이러한 진술이 가능한지, 어떻게 아름다움이라는 미학(美學)의 개념과 악으로부터의 세상의 구원이라는 신학(神學)의 개념이 함께 사용되어져 하나의 깊은 진실을 전달하는 진술을 이룰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미학과 신학의 만남에 관한 여러 가지 담론들이 신학적 미학, 예술신학 등으로 불리고 있는 사실을 고찰한 후, “미학신학”(美學神學)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미학신학의 하위 개념으로서“미학적 기초신학,”“미학적 조직신학,”“미학적 실천신학”이라는 구조화가 종전의 구분들보다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다양한 저작들을 이해하고 분류하는데 보다 도움이 된다고 제안한다. 둘째로, 필자는 화이트헤드의 악에 대한 미학적 접근법, 즉 과정신학의 미학적 신정론을 미학적 기초신학의 한 구체적인 예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학적 신정론이 어거스틴의 교리적 접근으로 환원적으로 해석되어지는 현실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미학적 신정론은 신학과 철학 사이의 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Ⅱ. 미학신학
하이데거가 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불렀듯이,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는 신학사를 하나님 존재의 신성한 아름다움을 망각한 역사라고 본다.2) 신학의 논리적·윤리적·미학적 차원이 서로에게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상실증은 하나님을 단지 엄격한 우주적 도덕주의자 혹은 최초의 부동의 동자 같은 일종의 논리적 가설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가져왔다. 신학과 미학이 서로를 만날 때 이러한 망각과 편식의 역사가 수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초월적 본성에 있어서 참되시고, 선하시고, 아름다우시다.
신학과 미학의 만남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유럽과 미국에서 이를 널리 “신학적 미학”(theological aesthetics)이라 부르고 있는 사실은 또 다시 발타자르의 영향력을 잘 드러내어 준다. 사실 이러한 이름의 기원에는 철학적 미학과 신학적 미학을 구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학이 단지 이 세상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철학적 미학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러한 성찰은 조만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학적 미학”이기를 그치고 오히려 당시 유행하는 철학적·미학적 사조에 신학의 본질을 팔아넘기는“미학적 신학”(aesthetic theology)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발타자르는 본다.3)
리차드 빌라데서(Richard Viladesau)는 이 세상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미학적 신학”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신학적 미학”이라는 발타자르의 다소 교의학적인 구분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다시 일종의 방법론적인 구분으로 재해석한다. 신학과 미학의 만남의 방향성이라는 문제를 성찰할 때, 우선 우리는 미학에서 출발하여 신학을 향해 움직여나갈 수 있다. 즉 미학의 다양한 가치, 개념, 방법 등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이용해 신학의 주제들을 설명하고자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발타자르의 철학적 미학으로서의“미학적 신학”비판을 보다 중립적인 방법론으로 변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빌라데서는 자신의『신학과 예술』에서 “수사학”(rhetoric)이라는 미학적 장르를 통해 설교와 신학이 지니는 목회적 순기능 혹은 이데올로기적 역기능을 분석하고자 시도한다.4) 미학적 신학이란 미학에서 신학으로 움직여나가는 방향성을 가리킨다.
반대로, 우리는 신학에서 출발하여 미학을 향해 움직여나갈 수도 있다. 즉 신학의 다양한 관심, 가치, 교리 등에서 출발하여 미학의 주제들을 설명하고 그 종교적·신학적 함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발타자르의“신학적 미학”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빌라데서의 저작『신학적 미학』은 ‘계시’(revelation)라는 교리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여 미학적 담론이 제기하는 상상력, 아름다움, 예술의 문제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통로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학적 미학이란 신학에서 미학으로 움직여나가는 방향성을 가리킨다. 요컨대, 포괄적 의미에서의 빌라데서의 신학적 미학이론은 이러한 신학과 미학의 만남이 지니는 두 방향성, 즉 미학적 신학과 신학적 미학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이다.
신학적 미학이론은 신학의 대상들인 하나님, 신앙, 그리고 신학 자체를 미학적 연구 의 방법론을 통해 해석하는 “미학적 신학”과, 미학의 대상들인 감각적 인식, 아름다 움, 예술을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방법론적 출발점에서 접근하는 보다 좁은 의미에서 의 “신학적 미학”을 둘 다 포함한다.5)
신학과 미학의 만남을 발타자와 빌라데서가 “신학적 미학”이라 명명하였다면, 폴 틸리히와 소금(素琴) 유동식은 “예술신학”(theology of art)이라는 또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틸리히의 예술신학은 그의 문화신학의 한 구체적 형태이다.6) 그는 현대문화 너머의 어떤 초월적 지평에만 존재하는 ‘너머의 하나님,’ ‘간격의 하나님,’ ‘틈의 하나님’을 추구하기보다는 현대문화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저변에 흐르며 다양한 민족적·문명적·예술적 표현을 통해 표출되는‘깊이의 하나님’을 추구한다.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종교는 문화의 심층적인 핵심의미를 구성하고 있으며, 세속적 문화는 그런 종교적 본질이 다양한 외부적 형태로 표출되어진 것이라는 논지이다.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고, 문화는 종교의 표현형식이다.”7) 틸리히는 종교적 본질을 표현하는 문화의 다양한 형식들 가운데 예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바로 여기에 예술의 신학적 함의가 있는 것이다. 그는 “예술신학”을 “예술적 행위와 예술작품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교리”라고 정의한다.8)
서양의 예술신학에 틸리히가 있었다면, 한국의 예술신학에는 유동식이 있다. 유동식은 자신의 풍류신학의 여정이 예술신학이라는 항구에 도달하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예술신학은 풍류신학의 본론인 동시에 결론이기도 하다.”9) 최근 유동식은 자신의 신학을 하나의 포괄적 체계로 모아들이기 시작한다. “삶”의 민중신학, “한”의 종교신학, 그리고 “멋”의 예술신학이 “한 멋진 삶”의 풍류도를 이루며, 여기서 예술신학은 분명 시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그 결론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0) 유동식의 예술신학은 틸리히의 예술신학의 흐름을 잇고 있다.11) 틸리히가 예술과 종교의 관계를 ‘표면-깊이’의 구조를 가진다고 보았다면, 유동식은 그것을 ‘전경- 후경’의 구조로 재해석한다.12) 드러나는 전경으로서의 예술적 표현이 그 배후의 깊은 신학적인 함의에서 분리될 때, 예술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과 종교의 ‘전경-후경’의 구조분석은 유동식의 미론(美論)에서도 재확인된다. “아름다움”이란 마치 밤알이 영글어서 밤송이를 열고 자신을 드러내듯, 후경의 “불변의 진실”이 전경의 예술작품으로 “표현”된 진여(眞如)이다.13) 틸리히와 유동식 모두 예술의 계시적 기능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학과 미학 사이의 만남을 신학적 미학, 미학적 신학, 예술신학, 기독교미학, 종교미학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는 이들에 대한 포괄적인 이름으로 “미학신학”(美學神學)을 사용하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서구에서“신학적 미학”(theological aesthetics)이라는 이름이 주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신학자들의 이러한 작업을 지칭하는 명사적 실체의 자리에 “미학”을 두는 것은 한국 신학계의 언어사용의 역사를 고려할 때 결코 편안한 용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문화신학, 예술신학, 종교신학, 토착화신학 등의 모범을 따라서 신학적 미학을 “미학신학”이라 번역하여 부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둘째로, “예술신학”이 그 주제적 특성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영미권에서 이 용법은 더 이상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예술의 범주에 들지 않지만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엄함 같은 주제들이 최근의 생태신학적 고려를 통해 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다양한 예술적 혹은 예술 외적인 관심들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 의미를 지닌 미학이 보다 적절해 보인다. “미학”은 그 문헌학적 용례를 볼 때 감각적 직관과 상상력 등과 같은 “감각적 인식의 학문”을 의미하거나 (예를 들어 바움가르텐, 칸트의『순수이성비판』의 용법), “ 미론”을 의
미하거나 (바움가르텐, 칸트의『판단력비판』, 쉴러, 헤겔), 혹은 “예술론”을 의미한다(칸트의『판단력비판』, 쉴러, 헤겔).14) 마지막으로, “신학적 미학”과 “미학적 신학”은 그 구분이 지니는 중요한 신학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다소 혼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학과 미학의 만남에 있어서 방향성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자는“미학신학”이라는 상위개념과 그 밑에 “미학적 기초신학,” “미학적 조직신학,” “미학적 실천신학”이라는 하위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조화는 빌라데서가 강조한 신학과 미학의 만남의 방향성(directionality)이라는 문제를 신학과 미학의 만남의 차원(dimension)의 문제로 재해석한 것이다. 미학에서 신학으로 나아가든 신학에서 미학으로 나아가든 그 결과물은 기초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이라는 전통적 신학의 차원들에 대한 구분을 통해 볼 때 신학적으로 보다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15) 또한 이러한 구조화는 미학신학의 실천적 차원을 독립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1. 미학적 기초신학
미학적 기초신학이란 발타자르가 철학적 미학이라 비판하였고 빌라데서가 미학적 신학이라 방법론적으로 규명하였던, 신학과 미학의 철학적 차원에서의 만남을 가리킨다. 옥덴(Schubert M. Ogden)은 신학이 한편으로 “인간 경험에 의해 보편적으로 설립되어지는 진리의 상관적 조건들”이라는 “신빙성”의 척도와, 다른 한편으로 “규범적인 기독교 증언의 ‘데이터 담론’에서 표현되어지는 신앙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적합성”의 척도를 둘 다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16) 전자가 기독교 신앙을 현대인에게 이해시키고 신앙할 수 있게 만드는 철학적 변증(apologetics)의 과제에 집중하는 기초신학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기독교 교리적 전통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해석학(hermeneutics)의 과제에 집중하는 조직신학적 접근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다른 패러다임과의 대화는 화자들 간의 공통된 어떤 선이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초신학은 변증의 과제를 위해 철학, 인류학, 심리학, 비교종교학 등의 세속적 학문들을 중요한 대화의 상대자로 생각한다. 이처럼 미학적 기초신학도 철학적 미학을 단지 외부로부터의 이질적 요소의 침투로 여기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데 중요한 언어, 방법론, 계기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대화의 상대자로 여긴다. 따라서 비록 발타자르가 철학적 미학을 미학신학의 하나의 타락한 형태로 보았지만, 미학적 기초신학은 미학신학을 “단지 순수하게 ‘텍스트- 내재적’(intratextual) 미학 작업”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철학적 미학과의 생산적 만남을 축하한다.17)
다시 말해, 미학적 기초신학은 기독교의 고전적 텍스트를 해석하는 순수하게 ‘패러다임- 내재적인’(intraparadigmatic) 접근이라기보다는, 철학적 미학의 텍스트를 포함한 서로 다른 미학적 전통들 사이의 ‘간-패러다임적’(interparadigmatic) 접근에 가깝다. 이러한 철학적·학제적 접근은 단지 기독교의 내재적 분석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종류의 문제들을 훨씬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미학적 기초신학이 종교 간의 대화, 현대문화의 분석, 성서의 문학적 구조, 과학과의 관계, 신학의 방법론 자체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새로운 미학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희망한다. 이중 두 가지만을 살펴보도록 하자.
기독교와 타종교 간의 대화는 이제까지 교리적 차원이나 실천적 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학적 기초신학은 ‘종교 간의 미학적 대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종교 간의 대화가 단지 교리적 차원에서의 담론체계의 비교로만 이해되어진다면, 이러한 진리에 대한 논리적 접근은 종교 간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교가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종교는 불가피하게 진리를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종교적 배타주의의 논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혹은 종교 간의 대화가 단지 실천적 차원에서의 윤리적 공동 행동의 추구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핵심적인 종교 신념은 논의에서 제외시킨 채 구체적인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연합을 추구하는 한시적 대화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종교 간의 대화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 없이, 완전한 무관심의 태도 없이, 혹은 자신의 진리에 대한 확실성을 희생함 없이 다른 종교의 환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진정 축하해 줄 수 있는 미학적 태도이다. 콜만(Earle J. Colemann)이 주장하듯,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들 혹은 딸이라는 이상하고도 비(非)교리적인 진리를 잘 알고 있다. 미학적 감수성은 종교 간의 대화에 필수요소이다.
한 화가가 다른 회화 양식들을 진정 존경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는 것 처럼, 한 종교의 신봉자도 다른 종교들을 존중하지만 자신의 종교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다원주의가 다양한 유파들, 장르들, 운동들이 지닌 미학적 가치를 인식하듯이, 종교의 다원주의도 모든 신앙에는 고유한 통찰이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 할 수 있는 것이다.18)
또한 미학적 기초신학은 한편으로 종교·신학과 다른 한편으로 예술·미학이 가지는 관계성에 대한 보다 방법론적인 성찰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종교에 대한 예술의 “기능”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종교에 대한 “창문”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Clive Bell) 기독교와 경쟁하며 이 세상적 구원을 제공하는 “질투의 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Max Weber).19) 또한 미학적 기초신학은 종교를 미학적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나아가 신학의 방법론 자체에서도 미학적 함의를 읽어낸다. 구성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로 유명한 카우프만(Gordon Kaufman)은 신학이 그 본질에 있어 “상상적 구성”이라는 매우 미학적인 활동으로서, 그 “신화 시적”(神話詩的, mythopoetic) 뿌리를 예술이나 문학과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20) 예술이나 문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미리 존재하는 진리의 파편들을 단지 조직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제까지 없었던 진리에 대한 창조적인 구성작업이라는 것이다.
2. 미학적 조직신학
미학적 조직신학이란 발타자르와 빌라데서가 신학적 미학이라 불렀던, 신학과 미학의 교리적 차원에서의 만남을 가리킨다. 미학신학은 삼위일체론, 창조론, 구속론, 성례론 등의 전통적인 교리적 주제를 미학적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학적 기초신학이 신빙성의 척도에 초점을 맞추며 여러 가지 현대적 패러다임들과 생산적 대화를 지향한다면, 미학적 조직신학은 적합성의 척도에 초점을 맞추며 기독교 패러다임 안에서의 교리적 전통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미학적 조직신학은 ‘간- 텍스트적’이기보다는 ‘텍스트- 내재적’이고, ‘간- 패러다임적’이라기보다는 ‘패러다임- 내재적’인 특성을 가진다. 발타자르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미학적 조직신학의 내재적 독립성을 잘 드러내준다: “만약 우리가 좋고 중심적인 신학을 한다면, 우리는 좋은 변증신학을 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학을 효과적으로 성찰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변증신학을 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기고자 하는 자는 “그것을 듣게 만들고자 (기초신학이라 불리는) 또 다른 학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21) 발타자르의 대작『주님의 영광』(The Glory of the Lord)은 어떻게 교리적이고 텍스트-내재적인 미학적 조직신학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예이다. 여기서는 미학적 조직신학의 두 예로 바르트와 발타자르만을 살펴보도록 하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영광”(구약의 kabod와 신약의 doxa)이라는 성서적 개념을 미학적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영광이란 하나님 존재의 내적 즐거움이 시간 속으로 표출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신적 완벽성의 총체적 자기 계시”이며, “하나님 신성의 충만함”이며, “하나님 됨의 자기 표현적, 방출적, 자기 계시적 실재”이며, “하나님 사랑의 자유”의 표현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영광이 단지 “권세”(power)만으로 적절하게 표현되어질 수 없으며, “아름다움”(beauty)의 개념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신학은 “독특하게 아름다운 학문”이며, 나아가 “모든 학문들 중 가장 아름다운 학문”이다. 그래서 신학은 “수도사의 일곱 가지 죄 중의 하나인 지루함(taedium)의 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학은 그 본질에 있어 “환희”(delectatio)의 작업이며, “논쟁과 변증”은 오직 이차적인 과제일 뿐이다. 하지만 바르트는 신학에 있어서의 미학주의적 위험성도 동시에 경고하며, 아름다움이 하나님 본질에 대한 여러 신학적 범주들 중 “하나의 적합한 괄호 속 삽입구”라고 제안한다.22)
발타자르는 하나님의 세 번째 초월적 범주인 “아름다움”(pulchrum)을 신학의 중심에 다시 회복시키고자 시도하는 동시에, “신학의 역설적인 ‘미학화’” 혹은 “신학으로부터의 미학의 철저한 제거”를 둘 다 피하고자 한다.23)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발타자르의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편으로 신학이 미학적 범주들을 채용하지만 유비적이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채용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미학신학이 하나의 자족적 신학이 아니라 보다 큰 신학적 체계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첫째로, 발타자르는 “철학적 미학과 신학적 미학 사이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보는데, 아름다움이 결코 “단순한 표면”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신학적이고 초월적인 “높이와 깊이”를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4) 이것이 바로 신학적 미학이 단지 철학적 미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유이다. 발타자르의 다음의 진술은 필자가 미학적 조직신학이라 부르는 것을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것은 [발타자르의 “신학적 미학”은] 세상적인 철학적 미학(무엇보다도 詩)의 비신 학적인 범주들을 가지고 주로 작업하는 신학이 아니라, 계시 자체의 데이터로부터 진 정한 신학적 방법론을 통해 스스로의 미론(美論)을 발전시키는 신학을 의미한다. 따 라서 오늘날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듯, 신학이 미학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약함 때문이든 망각 때문이든 혹은 거짓된 학문성의 태 도 때문이든 말이다. 만약 그렇게 포기한다면, 신학은 자신의 한 중요한 부분을－어 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포기하는 것이다.25)25)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기독교 계시의 데이터 속에서 자신의 근거와 완벽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발타자르의 기독론적 미학신학은 “기독교 미학의 원천이고, 따라서 모든 미학의 원천”인 역사 속에 성육화된 아름다움을 보는 이론이다. “피조된 전체 사물의 존재론과 미학”은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으로서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린 아름다움”을 통해 심화되고 완성되는 것이다.26)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아름다움의 정점이며 원형”으로서, “모든 미학의 풍부하고 능가되어질 수 없는 원리”를 제공한다. 바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기독교를 “가장 지고한 미학적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27) 결과적으로, 철학적 미학과 신학적 미학 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적의에 찬 대립의 관계나 철저한 무관심의 관계라기보다는 유비적인 대결의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철저히 기독론적 미학신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발타자르의 신학은 “유비의 항존하는 오용의 가능성”에 대한 바르트주의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의 유비(analogy of beauty)를 긍정한다.28) 위험한 길도 여전히 길이며, 유비의 오용이 그 적합한 사용을 배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발타자르는 자신을 단지 “신학적 미학자”라고 부르는 것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발타자르의 주 관심은 “신학적 미학”(theological aesthetics; pulchrum), “신학적 드라마학”(theological dramatics; bonum), 그리고 “신학적 논리학”(theological logic; verum) 사이의 적합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9) 한편으로 발타자르는 분명 신학적 미학 혹은 미학신학을 자신의 신학적 삼부작의 출발점으로 아주 중요하게 강조한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미학적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그 변혁적 능력을 경험함 없이는, 우리가 왜 진선미에 대항하는 사탄의 깊이를 추구해서는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발타자르에 따르면, “아름다움이 부재한 세상”에서는 “선함도 그 자신의 매력성, 즉 왜 그것이 행해져야 하는지의 자명성을 잃게 되고,” 나아가 “진리의 증거들도 그 설득력을 잃게 된다.”30) 다른 한편으로, 발타자르는 미학적 봄과 미학적 관조의 신학이 신학의 전체는 결코 아니며, 단지 그 시작 혹은 출발점임을 동시에 강조한다. 미학신학은 윤리신학의 드라마적 참여와, 나아가 논리신학의 방법론적이고 후험적인 성찰로 이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성한 드라마에 주목하는 윤리신학에서, “인간은 오직 배우인 한에 있어서 또한 관객이기도 하다.”31) 나아가 학문적 성찰로서의 논리신학에서, “인간은 단지 관조자나 배우일 뿐 아니라 사상가, 연설가, 창의자이기도 하다.”32) 미학적 봄과 윤리적 행함이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협소한 인간의 논리라는 그릇을 통해 계시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성찰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선미에 대한 미학신학, 윤리신학, 논리신학의 삼중주를 함께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3. 미학적 실천신학
미학적 실천신학이란 신학과 미학의 실천적 차원에서의 만남을 가리킨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술에 둘러싸여 예배드리지만, 이러한 예술활동 자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특히 개신교에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폴 틸리히는 어릴 적 건축가가 되고자 꿈꾸었으나, 십대 후반에 와서 철학적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틸리히는 이러한 변화가 “중세의 성당 건축”과 “중세의 스콜라신학”의 관계에서처럼 “돌, 철근, 유리”대신에 “개념과 명제”를 사용하였을 뿐이지, 무엇을 만드는 건축에 대한 자신의 열정은 여전히 동일하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33) 어쩌면 이제 우리는 개념과 명제의 건축뿐 아니라 돌, 철근, 유리의 실제적 건축에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예술은 신학의 잊혀진 텍스트가 아닐까? 많은 이들이 21세기를 “미학적 세기”가 될 것으로 진단한다.34) 이러한 시대정신을 읽으며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미학적 실천신학을 모색할 때만이 우리는 신학의 게토화와 주변화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교육학은 미학적 학습론을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담학은 예술치료에 관심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현장에서 건축, 음악, 그림 등의 예술적 실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종교적 이미지가“마음이 가난한 자의 책”으로 역할을 한다는 중세의 미학적 학습론만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음이 가난한 자의 책”(biblia pauperum)으로서의 종교적 이미지라는 생각은 보통 그 자신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레고리 1세(Pope Gregory I)에게 돌려진다. 사실 이러한 명칭은 개인적 묵상을 돕기 위해 성서 구절 옆에 다양한 그림을 함께 병행한 종교서적을 발행한 15세기의 인쇄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35) 하지만 신학자들의 논의에서 이러한 생각은 교회의 벽면에 위치한 성자들과 사건들에 대한 그림을 옹호하기 위해 그레고리 1세가 쓴 두 편지에 관련되어졌다(599년 7월, 600년 10월). 교회 내 예술작품을 파괴하는 자들을 질책하며 그레고리 1세는 목회적 관심에서 이미지의 제한적 사용을 다음과 같이 옹호하였다.
글자를 모르는 자가 최소한 벽화를 봄으로써 책으로는 못 읽는 것을 읽을 수 있기 때 문에 교회에서 그림이 허용되어진다.
읽을 줄 아는 자에게 글이 제공하는 것을 읽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림이 제공한다. 읽 지 못하는 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이 따라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고, 읽지 못 하는 자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방인들에게는 그림이 독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방인들 가운데 거주하는 당신들은 이것에 유의하여서, 올바른 열정에서 부주의하게 불태웠지만 야만인들의 마음에 스캔들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36)
그레고리는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 라틴어를 모르는 자, 기독교 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등 다양한 계층을“읽지 못하는 자”라고 불렀다. 기독교 교육을 위해 이미지 사용을 옹호하였던 그레고리의 이러한 견해는 중세에 와서 예술의 “세 가지 이유”(ratio triplex)로 반복되고 발전되었다. 보나벤투라(St. Bonaventure)는 종교적 이미지가 지니는 교훈적(didactic), 정조적(affective), 연상적(mnemonic) 기능을 제안한다: 그림은 읽지 못하는 자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읽을 수 있게” 만들고, “게으른 감정”을 고양시키고, “순간적인 기억”을 도와준다.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도 그림이 “단순한 자의 교육,” “우리의 기억력,” 그리고 “헌신의 감정”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옹호한다.37)37) 미학적 실천신학은 이처럼 신학의 잊혀진 텍스트인 예술을 재발견하고 그 실천적 유용성을 새롭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Ⅲ. 과정신학과 미학
우리가 지금까지 미학신학의 풍경을 그려보았다면,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과연 미학신학이 생산적인 신학적 방법론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선택한 주제는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신정론(aesthetic theodicy)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방식으로든 악의 문제를 대답한다는 신념에서는 고전적 유신론자인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이나,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우주 만들기’가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하나님 만들기’(God-making)라는 과정신학의 새로운 미학적 신정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악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은 우리가 미학적 기초신학이라 부른 것에 가깝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시간 속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 안에서 불멸하는 가치로 수용되고, 이렇게 실현된 가치의 영원불멸성이 바로 하나님 존재의 진화적 팽창(God’s evolutionary expansiveness)을 가능케 한다. 아름다움의 전진(前進)이 곧 하나님의 존재론적 구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가을적 소멸이라는 궁극적 악을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전진으로 극복하신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신정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인류는 세계 속에서 아름다운 가치의 실현이라는 존재 이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렇게 실현된 가치를 객체적 영원불멸성으로 전환하여 영구히 기억하심으로써 소멸이라는 궁극적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구한 호흡으로서의 아름다움의 전진이다.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신정론을 몇몇 해석적 명제들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명제 1: 우주는 단지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미학적 느낌이라는 존재의 보편적 경험으로 구성되어진다.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물질 덩어리로 이론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화이트헤드는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 즉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38) 물질이라는 개념도 이미 하나의 추상인 것이다. 오히려 우주에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도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은 물질의 지속이라기보다는 미학적 사건으로서의 느낌이다: “현실적 사실이란 미학적 경험의 사실이다”( an actual fact is a fact of aesthetic experience).39)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에 따르면 “자연은 그 미적 가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40)
명제 2: 미학적 느낌으로서의 존재 경험은 수학적 아름다움인 조화(harmony)와 가을적 아름다움인 강도(强度intensity)라는 양극적 가치를 추구한다.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은 피타고라스가 보았던 영원한 “수학적 아름다움”으로서의 조화와 에코가 소멸하는 “가을적 아름다움”이라 불렀던 강도의 두 미학적 가치를 중재하려는 시도이다.41) 수학의 추상개념들은 단순성, 영구성, 질서정연함 등과 같은 일종의 미학적 조화의 가치를 지향한다. 피타고라스는 “수(數)나 형상(形相)과 같은 수학적 존재들(mathematical entities)이 우리의 지각 경험에 나타나는 현실적 존재들을 구성하는 궁극적 질료”(ultimate stuff)라고 가르쳤던 것으로 전해진다.42)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의 이데아 혹은 형상의 사상도 그 기원에 있어 피타고라스에게로 소급시킨다.
하지만 존재의 미학적 느낌은 미학적 구체성(美學的具體性)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관심축이 요구한다. 전체의 조화와 함께 개체의 강도가, 평화와 함께 모험이 추구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중세 후기 이러한 사물의 구체성이 지니는 강도에 대한 관심은 예술에 있어 “자연주의”의 도래로 대변되었다.43) 그것은“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직접적인 기쁨”을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경험들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짐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44)
요컨대,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은 조화와 강도로 대변되는 양극적 구조를 가진다: (1) 자연에 내재하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질서, 달리 말해 화이트헤드가 “논리적 합리성의 조화”(the harmony of logical rationality) 혹은 “논리적 조화”(the harmony of logic)라고 부르는 것과, (2) 냉엄한 사실에 대한 구체적 관심, 달리 말해 그가 “미학적 성취의 조화”(the harmony of aesthetic achievement) 혹은 “미학적 조화”(the aesthetic harmony)라고 부르는 것.45) 화이트헤드가 말하듯, “논리적 조화(論理的調和)는 우주가 가지는 냉혹한 필연성(an iron necessity)을 드러내는 데 반해, 미학적 조화(美學的調和)는 보다 섬세하고 미묘한 것들을 산출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우주의 진보가 좌절될 때 이러한 흐름을 다시 가능케 하도록 살아 있는 이상(a living ideal)으로서의 역할을 한다.”46) 만물의 본질에는 이렇게 두 가지 형이상학적 미학원리가 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두 거대한 미학적 흐름이 삶의 모든 차원들에 침투해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명제 3: 조화의 지나친 독점적 추구는 사소함(triviality)의 미학적 악을 가져오고, 강도의 지나친 독점적 추구는 부조화(discord)의 미학적 악을 가져온다.
조화(調和, harmony)와 강도(强度, intensity)의 두 대조적인 미학적 가치는 거기에 상응하는 미학적 선과 미학적 악을 가진다. 조화라는 가치를 단지 독점적으로 추구할 때, 우리는 왜곡된 형태의 저속한 조화, 즉 ‘사소함’(triviality)의 미학적 악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조화의 추구가 강도의 추구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평화’(peace)라는 미학적 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오직 강도라고 하는 미학적 가치가 추구될 때, 우리는 왜곡된 형태의 파괴적인 강도, 즉 ‘부조화’(discord)의 미학적 악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강도의 추구가 조화의 추구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모험’(adventure)이라는 미학적 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미학적 상황은 ‘조화-사소함-평화’의 축과 ‘강도- 부조화-모험’의 축 둘로 구성되는 것이다.47)
명제 4: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이 궁극적으로 가치를 두는 것은 조화의 보존이라기보다는 강도의 획득이다.
화이트헤드가 조화와 강도 둘 모두를 요구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강도의 획득과 모험의 중요성이다. 문명은 강도 높은 모험이 없이는 권태의 화석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모든 느낌이 서서히 굳어가는 ‘마비 현상’(anaesthesia)이나 그 전조 혹은 징후로서 느낌이 ‘생기를 잃고 길들여지는 것’(tameness)보다는, 차라리 느낌의 ‘부조화 혹은 대립’(Discord)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보다 저차원에서의 완성은 고차원에서의 미완성보다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48) 화이트헤드는 보다 고차원적인 느낌의 개별적 강도를 획득하려 시도하다 실패하고만‘부조화’(Discord)의 악이, 어떻게 보면 그 폭에 있어 아주 지협적이고 거의 강도를 가지지 못한 저등한 느낌의 사소한 조화(triviality)를 성공적으로 획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제안하는 듯하다. 위의 진술은 화이트헤드가 기존의 고전적인 수학적 존재론의‘조화의 축’보다는 가을적 아름다움이라는 ‘강도의 축’(모험·창조성·진보)에 형이상학적 우선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진리가 세계 내에서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반복이 아닌 발견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듯, “가장 아름다운 진리는 언어의 사전적 의미(the dictionary meanings of words) 너머에 존재한다.”49) 아름다움의 확장이라는 문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과거의 사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상을 찾아 나설 때 가능하다. 바로 이 때문에 가치의 완전성을 단지 정적(靜的)으로 보존하려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고, 플라톤의 아름다움에 대한 수학적 개념조차도 다소 결함이 있는 것이다 :“초기 사상에 있어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완전성(unchanging perfection)에서 드러나는 수학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mathematics)에 현혹되어서, 영원히 완전하고 영원히 상호연관된 관념들(이데아 ideas)의 영역이 세계 너머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50) 플라톤의 생각은 가치의 정적 보존(靜的保存)이라는 오류의 한 예인 것이다. 하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원초적으로 욕구하고 추구하는 목적은 강도(强度, intensity)의 획득이지, 보존(保存preservation)이 아니다.”51)
명제 5: 조화와 강도라는 우주의 양극적인 미학적 존재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악은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화이트헤드는 우주의 형이상학적 상황 혹은 구조가 하나님이라는 단일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주어진 것으로 본다. 만약 우주의 시작에 하나님 홀로 존재하였고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모든 선의 근원뿐만 아니라 모든 악의 근원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52) 반면,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옹호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하나님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일일이 책임을 갖는 유일무이한 형이상학적 궁극자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화이트헤드가 하나님, 창조성, 그리고 영원적 객체들이라는 하나가 아닌
다수의 형이상학적 궁극자들을 제안함으로써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들이 구체화되는 데 있어 그 과정을 지배하는 범주들(the categories governing the determination of things)이 바로 왜 악이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들이다.”53) 이러한 진술에 대해 그리핀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한다: “과정 신정론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진정한 악의 가능성은 세계가 지니는 형이상학적 (따라서 필연적) 특성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54) 신정론이라는 종교적 상황에서 볼 때, 일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비판적 거부는 존 캅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선하심”(goodness)을 옹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궁극성”(形而上學的窮極性, metaphysical ultimacy)을 희생시키거나 제한하려고 한 시도라는 데 많은 해석자들이 동의한다.55)
명제 6: 존재의 보편적 자유는 악의 발생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의 전진도 가능케 한다.
일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거부가 하나님의 책임 없음을 강조한다면, 우주의 보편적 자유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긍정은 개개 존재하는 것들의 악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한다. 과거 고전적 신학의 섭리론은 세계가 가지는 불완전성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 경험”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전달하지 못하였다.56) 하지만 이러한 궁극적 책임의 경험은 우리의 삶 전체에 근본 색조로 퍼져있다. 밖에서 주어지는 여건, 느낌, 목적이라는 세계의 공공성만으로는 합생의 전체 과정이 결코 설명되어질 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의 결정에 가지는 인과적 작용력을 넘어서서, 거기에는 항상 주어진 데이터나 여건에 대한 우리의 자유로운
반응 혹은 사적인 느낌이라는 궁극적인 측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반응은 작용인(作用因, efficient cause)이 전달하는 이미 결정되어진 것들 위에다가 창조적 강조(創造的强調creative emphasis)라는 자신의 결정적인 마지막 도장을 찍음으로써 자기-창조적 활동을 완결짓는다.”57)
모든 존재하는 것의 자유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긍정은 전통적으로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려졌던 ‘자기 원인’(自己原因, causa sui)이라는 사상을 어떻게 보면 존재론적으로 보편화시키고 민주화시키고 있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자기 원인자이다. 따라서 과정철학의 우주에서 완전한 결정론이란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여기에는 도덕적 악과 자연적 악을 구분할 논리적 이유도 없다.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현실적 존재들이 우주의 창조적 진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작업에 참여하는 것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의미 혹은 중요성은 나중에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기억 속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주에서 아름다움이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들이 선물처럼 가지고 오는 새로움과 놀라움 없이는,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한 반복의 지루함 혹은 권태 속으로 서서히 붕괴되어질 뿐이다. 모든 현실적 존재는 그 자신의 결정이유이다. 또한 여기에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다자(多者)는 일자(一者) 속으로 들어오며, 다시 그 일자에 의해 증가되는 것이다”(The many become one, and are increased by one).58) 이러한 방식으로 우주는 긴, 어쩌면 영구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우주 전체가 한 단일한 존재 속으로 모아지고, 다시 우주 전체는 그 존재가 가지고 오는 새로운 ‘느낌의 사적인 색조’에 의해
보다 더 시적(詩的poeticized)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어쩌면 다음과 같은 미학적 화두가 지금까지의 우리의 논의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란 자유로운 아름다움의 진화적 팽창이다.
명제 7: 하나님은 우주의 아름다움의 전진을 자신 속에 받아들여 하나님 존재의 아름다움의 전진으로 변환시키고, 바로 이러한 신적 아름다움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이 궁극적 악으로서의 소멸(消滅)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나는 가치를 실현시켰고 아름다움을 전진시켰다. 하지만 내가 소멸한다면 내가 실현시킨 가치도 그리고 나도 소멸하고 마는 것인가? 화이트헤드는 개인의 불멸성이란 하나님 속에 존재하는 이미 실현된 가치의 불멸성에 대한 단지 한 구체적인 예라고 본다.59)태어남에서 죽음까지 한 인간의 삶이 마감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시간적 개인성”(temporal personality)을 가치의 관념세계에서, 즉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의 “불멸하는 개인성”(immortal personality)으로 보존하시는 것이다.60) 요컨대, 사람은 자신이 실현한 가치로서 불멸한다.
하나님의 태초의 혹은 원초적인 목표가 우주 내에서의 가치의 창조적 진보에 있듯이, 이러한 목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실현된 가치가 완전히 잃어지는 것이다. “시간적 세계에 있어서, 궁극적 악(ultimate evil)은 어떤 구체적인 악(specific evil)보다도 그 뿌리가 더 깊다. 그것은 과거가 사라져 간다는 사실, 시간(時間)은 ‘끊임없는 소멸’(perpetual perishing)이라는 사실에 있다.”61)
끊임없는 소멸이라는 궁극적 악은 모든 현실적 존재를 조금의 상실도 없이 기억하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극복되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주가 진보해 감에 따라, 하나님도 또한 진보해가는 것이다. 전자는 물리적 세계가 하나님의 결과적 본성 속에서 그 자신의 개념적 완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고, 후자는 하나님의 원초적 혹은 개념적 본성이 세계로부터 물리적 느낌 혹은 미학적 색조를 받아들여 확장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가 객체적 불멸성을 지니도록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세계를 보존하는 것을 화이트헤드는 신학에서 말하는 “세계의 신격화”(the Apotheosis of the World)라고 본다.62) 문자적으로, 세계는 하나님 존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세계는 하나님의 영속적인 기억을 통해 끊임없는 소멸에서 구출되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단지 개념적인 현실태가 가지는 결여성”을 세계의 물리적 느낌을 통해 보완하고 완성시키게 되는 것이다.63) 결과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할 수 없는 것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 즉 불멸성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64)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 속에서 발생하는 삶의 고통, 실패, 그리고 황폐뿐 아니라 또한 함께 발생하는 삶의 새로운 가치의 창조와 그 아름다움을 물리적으로 같이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하나님은 “부동의 동자”(the unmoved mover)가 아니라, “참 좋은 동반자-이해하며 같이 고통받는 자”(the great com-panionthe fellow-sufferer who understands)이다.65)
결론적으로, 스쳐지나가며 강렬하게 소멸하는 세계의 가을적 아름다움이 하나님 존재의 기억 속에서 영원불멸하는 수학적 아름다움으로 모아들여진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신정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미학신학은 악의 문제에 대해 종래의 보복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라는 전통적인 도덕적 접근법과는 다른 새로운 미학적 접근법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보복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전진이다: “우주의 목적론적 구조는 아름다움의 생산을 지향한다”(The teleology of the Universe is directed to the
production of Beauty).66)
Ⅳ. 나오는 말
글을 마치며 화이트헤드의 사유에 잠시 돌아가 보자. 흔히 그의 신학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비판받는다. 역사의 슬픔은 그 자체의 비극성을 넘어서 가을에 하나님의 존재 속으로 추수되기 때문이다. 악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정당화는 세계의 슬픔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완성되어진다”(God is completed)는 엄청난 사실에 놓여있는 것이다.67)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화이트헤드의 신학이 충분히 낙관적이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화이트헤드의 ‘하나님 만들기’(God-making) 신정론은 하나님 존재를 창조성의 “비시간적”(non-temporal) 혹은“비역사적” 일례로 이해함으로 악의 극복은 결과적으로 비시간적이고 비역사적인 사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68) 악은 아름다움의 전진으로 극복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의 전진은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여전히 폐허로 남는다. 결국 세계의 가을적 아름다움이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진 것이 아닐까?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 사유 중 하나는 역사에 대한 파토스, 즉 하나님이 역사적 세계와 존재론적 교제를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 속에서 진입하셔서 시간적 훼손을 직접 경험하심을 통해 악을 극복하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신학에서는 역사의 십자가가 평가절하되고, 역사 자체도 아무런 플롯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새로움의 권태’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과 인간의 신학적 드라마에서 플롯이 부재하다면, 의미조차도 부재하지 않을까? 의미는 농도 혹은 강도와 함께 플롯과 구조를 요
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전적 신론과 화이트헤드의 신고전적 신론을 넘어서, 헤프너가 제안하듯 제3의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기독교 철학자는 어떤 문제들에 있어서는 화이트헤드보다 헤겔을 보다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다.”69)
21) Balthasar, “In Retrospect,” in The Analogy of Beauty: The Theology of Hans Urs von Balthasar, ed. John Riches (Edinburgh: T & T Clark, 1986), 227. 이와 유사하게 조지 린드벡도 후기자유주의 신학의 세 척도를 “텍스트- 내재성으로서의 충실성”(faithfulness as intratextuality), “미래학으로서의 적용가능성”(applicability as futurology), “기술로서의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 as skill)으로 제시한다. George A. Lindbeck, Nature of Doctrine, 112-138.
47) 하트숀 또한 이와 유사하게 우리의 미학적 상황을 분석하였다. Charles Hartshorne, Creative Synthesis & Philosophic Method (La Salle, Illinois: The Open Court Publishing Co., 1970), 303-321을 보라. 이러한 미학적 두 축에 대한 보다 간략한 논의로는 그리핀의“조화”對“부조화,”그리고“강도”對“사소함”이라고 하는 구조적 분석을 들 수 있다. David Ray Griffin, God, Power, and Evil: A Process Theodic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76), 282-285를 보라. 여기에 대한 화이트헤드 자신의 텍스트 분석으로는 손호현,『하나님,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합니까?: 화이트헤드의 신정론』, 61-8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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