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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창조의 세계관적 의미(최용준)    
창조의 세계관적 의미(최용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16    
영역: 신학
카워드: 주재권, 개현과정, 책임성, 초월성과 내재성


창조의 세계관적 의미
The Significance of Creation from the Worldview Perspective


최용준
John Y. Choi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 Korean Church of Brussels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 / 브뤼셀한인교회)
Fosmark Centre, Trinity Western University
7600 Glover Rd., Langley, BC V2Y1Y1, CANADA/
Museumlaan 2, 1970 Wezembeek-Oppem, Belgium
E-mail: crosspower. choi@gmail.com


[Abstract] This article deals with the fundamental issue of the origin of the world. Especially the creation worldview is contrasted with the evolution worldview. It is argued that creation shows God's almighty power and absolute sovereignty. He created everything out of nothing by His word and wisdom. Created in God's image, human being is responsible for developing creation. Thus creation is a very dynamic process toward the final consummation. In addition, creation shows both God's transcendence and immanence and a covenantal character, too. Finally creation reveals that this world is orderly planned and God is the law-Giver.

I. 서론

만물의 기원에 관한 주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본 고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것과 모든 생물은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의 법칙에 의해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는 두 세계관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둘 중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가 하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의 큰 차이가 있다. 창조주께서 나를 지었다고 말하는 경우 삶에 관해 그 분이 제정하신 절대적 기준이 있지만 내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할 경우 상대적인 도덕기준만 남을 것이며 이 둘은 결국 전혀 다른 삶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경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그 세계관적 의미는 무엇인지 열 가지 중요한 점들을 설명해 보겠다. 이와 동시에 진화론적 세계관과도 비교하여 그 차이점들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1)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절대주권

먼저 창 1:1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한다. 즉 만물의 궁극적인 기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 만물도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 3:4에도 “어떠한 집이든지 어떤 사람이 짓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절대 주권을 보게 된다. 전능하심이 없이 이렇게 신비롭고 광대하며 오묘한 세계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유의해 보면 이 우주가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함을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창조주의 디자인이요 작품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동시에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는 넘을 수 없는 본질적인 경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 경계는 다름 아닌 피조물에게 적용되는 모든 창조의 법 또는 질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조주는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므로 그 모든 법을 초월한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뜻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만유의 주재가 되신다고 강조한다. 즉 만유를 창조하셨고(창 1, 시 33:6, 잠 16:4, 히 11:3, 계 4:11) 지금도 그 능력과 섭리 가운데 다스리신다는 것이다.(시 103:19, 104:24, 145:16, 사 28:2, 63:14, 마 10:29-31, 롬 11:36, 히 1:3)

나아가 인간도 그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과 인격성이 닮았기에 양자 간에는 친밀한 사랑의 교제가 가능하다. 이러한 사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 되심을 인정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의 주되심(Lordship)과 왕되심(Kingship)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잠 3:6) 우리의 사업, 가정, 교회, 학업 그리고 개인의 모든 삶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다. 다른 모든 우상들은 피조물을 인위적으로 절대화한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첫 계명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반면에 진화론은 궁극적인 만물의 기원에 대해 우연(chance, contingency)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고 최초의 물질이 어떻게 존재했는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불가지론(agnosticism)이다. 이 답변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한다.

2) ‘말씀’으로 창조하심

그렇다면 창조주께서 천지를 어떻게 지으셨는가에 대해 성경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시 33:6-9; 벧후 3:5-6). 여기서 말씀이란 하나님의 명령, 즉 창조적 진술로 그 자체가 능력이 있고 주권적임을 창 1장은 보여준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creatio ex nihilo'(무에서 유를 창조함)이다. 또한 시 147:18 및 148:8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말씀으로 이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러한 세계관은 다른 종교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철학에서 나오는 조물주(Demiurge)도 사실은 이미 존재하는 원물질(原物質)로 세상을 만들었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무에서의 창조는 아니다.

또한 진화론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진화 과정을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으로 설명한다. 환경에 맞지 않은 생물은 점차 사라지고 적응하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조물주의 개입이 전혀 있을 수 없다. 우연에 의해 시작된 생명체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결과가 현재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잠정적이고 불확실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반면에 크리스천들은 창조주의 전능하신 말씀과 그 분의 신실하신 언약을 신뢰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Wort)에 대한 응답(Antwort)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바다가 있으라고 하시니 그 응답으로 바다가 생겨난 것이다. 이같이 그 분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며 더욱 그 분을 의지할 수 있다.

3) 지혜로 창조하심

또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지혜로 만물을 지으셨다고 성경은 말한다(시 104:24). 기묘하게 생긴 동물들과 식물들 그리고 사람과 우주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걸작품들을 잠시 생각해보라.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주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찬양한다(시 139:14). 한 사람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은 것을 깊이 묵상해보면 너무나 신비롭지 않는가? 이렇게 아름답고 놀라운 창조의 세계를 이해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찬양’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가슴에는 우주에 대한 벅찬 감동이 없다. 우연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며 현재 세계는 치열한 적자생존과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그냥 그렇게 되어진 것이므로 아무런 느낌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사실 이 세상 만물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 또한 하나의 믿음일 뿐이다.

나아가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드러낸다고 성경은 말한다(롬 1:20). 이것을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와 구분하여 ‘자연 계시’ 또는 ‘일반 계시’라고 한다. 즉 창조 세계는 너무나 정교하기 때문에 그것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시 19:1; 행 14:17). 또한 잠언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분의 지혜와 법칙을 따라 지으셨다고 말한다(잠 3:19-20). 따라서 잠언의 결론은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를 잘 배우고 그 지혜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명철한 삶이라는 것이다(잠 1:7). 그러므로 전도서 12:1에도 젊을 때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청년의 때에 지혜의 창조주를 바로 알고 그 분을 온전히 섬기면 헛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

우리는 보통 창조를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잠 8:22-31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중보자로 함께 그 사역에 동참하며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 1:1-3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증거하며 골 1:16도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하면서 17-18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만물이 서 있고 또한 예수님이 만물의 으뜸이라고 말한다. 히 1:2-3에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고 예수님은 성부와 동일하게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자 하나님 또한 창조 사역에 전적으로 참여하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성령께서도 창조사역에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하심을 볼 수 있다. 창 1:2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고 말씀한다. 이는 마치 독수리가 고공을 비행하다가 먹이를 발견한 후 그 먹이를 발톱으로 움켜쥐어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 모습과 같다. 바다의 수면과 같이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chaos)으로부터 질서 정연한 창조의 세계(cosmos)가 조성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디스켓을 사용하려면 먼저 포맷을 하듯 성령께서 그러한 질서를 만드시고 나서 성부께서 구체적인 창조 사역을 집행하신 것이다.

나아가 성령의 생기로 인간을 창조하여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인간이 영적 존재가 된 근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영임을 알 수 있다(욥 26:13; 33:4). 시 104:30에도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라고 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도 창조 사역에 깊이 동참하셨음을 증거한다.

나아가 창 1:26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면서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여 사용하심을 볼 수 있다. 또한 창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엘로힘"도 문법적으로 따지면 단수 "엘"의 남성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창조사역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자 영역에서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다.
                              
5) 인간: 하나님의 형상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존귀할까? 어느 입장이 인권의 궁극적인 기원 및 인간의 존엄성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다음에 우리를 지으신 분이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라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진정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관이요 삶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듯,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았으나 한 몸이 된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다양성(삼위) 안에서의 일치성(일체)을 계시하듯, 사람도 남자와 여자라는 복수성과 동시에 남편과 아내로 하나가 된다. 이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형상의 한 면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닮았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속성 중 전지전능하심이나 영원하심 등과 같이 인간이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거룩하심이나 의로우심, 자비하심 등과 같이 인간이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속성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엡 4:24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는지는 창 1:26-28에 나온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땅에 충만하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면서 땅을 정복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을 소위 "문화명령 (cultural mandate)"이라고 부른다. 즉, 피조계에 담겨 있는 무진장한 가능성들과 잠재성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한 역사의 의미가 있다. 즉 역사란 하나님의 말씀(Wort)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응답(Antwort)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문화 명령에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다. 순종할 경우 그 문화는 발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문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결국 자체 모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통한 인간의 모든 활동을 문화라고 넓게 정의한다면 인간의 총체적인 문화 활동이 다름 아닌 역사이며 하나님의 이 문화명령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우연히 단세포 생물에서 수많은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 온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역사와 문화의 주체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암스텔담 자유대학교에서 은퇴한 헤르쯔마(Henk G. Geertsema) 교수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응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인간을 Homo Respondens, 즉 "응답적 인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 노동하는 존재(Homo Faber), 또는 유희하는 존재(Homo Ludens) 등 여러 가지로 정의했지만 인간의 존재 및 그 모든 활동을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 분이 제정하신 문화 명령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세계관 및 모든 활동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다. 즉 우리는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We cannot not respond). 그리고 그 응답에 대해 책임져야(Verantworten) 한다. 따라서 인간은 책임(Verantwortlichkeit)적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책임이라고 하는 단어의 영어는 'Responsibility'이다. 즉 책임이란 ‘응답할 수 있는 능력'(Response +ability)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삶에 대해 순종 또는 불순종으로 응답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이다.

하지만 진화적 세계관에서 인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하므로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궁극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사실상 이런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므로 결국 혼돈을 낳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6) 동적인 창조 세계

인간의 다양한 응답적 문화 활동을 이해하면 우리는 창조 세계가 정적(static)이 아니라 매우 동적(dynamic)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가령 창 1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지만 계 21장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예비된 신부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게 단장되어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동산(Garden)에서 도성(City)으로 변화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허락하신 동산을 잘 ‘개발’하는 동시에 ‘보존’하라고 말씀한다(창 2:15). 이 말씀은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피조계를 인간이 여러 문화 활동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창조는 완성을 지향한다(Creation points to consummation).

이런 뜻에서 사이어는 창조란 하나의 ‘오픈 시스템(Open System)’이라고 지적한다. 즉, 결정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과정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 의해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다양한 지하자원들이 인간에 의해 개발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과정을 네덜란드의 기독교 철학자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는 ‘개현 과정’(Unfolding/Opening process)이라고 말한다. 폴더형 핸드폰이 펼쳐지면서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듯, 튤립 꽃봉오리가 아름답게 열려 지면서 그 아름다움을 더욱 나타내듯 창조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져 간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과정이 인류의 역사요, 문화사이며 영적으로 보면 구속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다른 기독교 철학자 반퍼슨(Cornelius Van Peursen)교수는 문화를 "복수형 동사"라고 설명했다. 동사란 그 동적인 면을 말하고 복수형이란 그 다양함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은 ‘힘’과 ‘경쟁’이 사회의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상으로 역사의 과정을 단지 생존경재의 논리로만 이해한다. 따라서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은 제거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역사의 발전 과정은 단지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 여하에 좌우되고 따라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며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가속화되어 빈부 격차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와 역사의 발전 방향은 결국 하나님의 문화 명령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규범을 따르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어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자신을 위해 혹은 우상을 숭배하는 문화를 낳게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7) 창조의 선함

또한 기억할 것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점이다. 창 1:31에는 더 나아가 모든 피조 세계는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매우’ 좋았다고 말씀한다. 사도 바울도 딤전 4:4-5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하면서 혼인도 귀하고 식물도 폐하는 금욕주의자들의 오류를 비판한다. 물론 여기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윤리적이나 도덕적인 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좋음을 뜻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모든 종류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배격한다. 즉,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생각하여 지나친 금욕주의를 강조하거나 반대로 모든 육체의 정욕을 정당화하여 쾌락주의에 치우치는 것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정신은 고귀하고 물질은 천하다는 생각, 남자는 존귀하지만 여자는 비천하다고 간주했던 남존여비 사상, 성직은 고귀한 직업이지만 다른 직업은 세속적인 직업이라고 천시하는 것 또한 잘못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변형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죄에서 해방된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가장 좋은(best) 세계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단지 생존경쟁과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므로 이에 대해 어떠한 가치 평가를 내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계가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을 지에 대해서도 전혀 답할 수 없다. 단지 환경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생물들만이 생존할 것이다. 유물론자들이 쉽게 진화론의 영향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적인 요소까지도 물질적인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인간의 가치나 환경 보전, 윤리적인 삶에 대해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8) 창조주의 초월성과 내재성

창조에 관해 중요한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주권과 동시에 그분의 내재성, 즉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셔서 존재하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만드신 피조물들을 계속 다스리시고 특별히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사 57:15은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그 모든 것 위에 초월하시는 분이시만 동시에 겸손히 회개하는 사람과 함께 하셔서 그들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망각할 때 오류에 빠지기 쉽다. 하나님의 초월성만 인정하게 되면 이신론(Deism)이 된다. 이신론이란 초월적인 조물주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지만 그 후 스스로 운행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본다.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후 태엽이 감긴 시계와 같이 세상은 더 이상 조물주의 간섭 없이도 저절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창조주의 내재성이 부인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세상을 하나의 ‘닫힌 시스템’으로 보게 되며 따라서 ‘기적’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거기에 내재하시지도 않고, 완전한 인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으며, 인간사의 주재자도 아니다. 따라서 자연에 대해 결정론적 사고를 갖고 있으며 인간은 비록 인격체이지만 우주라는 기계의 한 부품과 같아 단지 우주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물질만 원래부터 존재해 왔으며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그 존재하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초월적 신이라는 것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연은 이미 존재하는 법칙에 의해 움직이며 인간도 하나의 고도의 복잡한 물질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둘러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신비는 어느 것을 막론하고 순수한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의 복잡성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창조주의 초월성과 내재성 모두를 배척하는 세계관이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세계관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이다. 이 세계관은 우주가 단지 물질만으로 구성되었지만 인간에게는 실재가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단지 인간에게만 그 존재가 본질을 선행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국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로 귀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내재성만 강조하면 범신론(Pantheism)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만물 속에 신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신적 존재의 초월성은 부인하는 것이다. 샤머니즘이나 정령 숭배 또는 애니미즘에도 이와 유사한 오류가 있다. 수많은 귀신들을 섬겨야 하므로 미신적 주술 행위를 통해 현세적 축복과 성공만 추구하는 왜곡된 세계관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그 만물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주님이시다. 가령 시 104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질서를 홀로 주장하시고(7-9절), 각종 짐승과 곡식과 식물들을 친히 기르시며(10-18절), 또 해와 달의 순환과 밤낮의 교체와 같은 우주의 순환을 주관하시고(19-24절), 바다와 그 밑의 동물들을 다스리시는 분임을(25-29절) 찬양한다. 시인의 눈에 비친 하나님은 단순히 이 우주 공간을 여시고 거기에 온갖 피조물들을 만들어 두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그 만드신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주관하시는 분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거기에서 손을 떼신 것이 아니다. 사실 피조된 만물들이 온전히 보존되고 질서 있고 조화롭게 운행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권능이 그 배후에서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온전히 순복함으로 비로소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

또한 엡 4:6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통일하시며 다스리시고 모든 피조물 안에 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조적인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 조각가는 그 작품을 초월한다. 따라서 다른 작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뛰어난 조각가일수록 자신이 창작한 작품 속에 자신의 혼을 담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작품 속에 조각가가 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같이 창조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균형 있게 이해하게 해 준다.

9) 창조의 언약성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말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그 신실한 말씀에 의해 법칙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렘 33:20-21, 25-26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에 대해 약정, 즉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시기에 주야가 일정하게 반복되듯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과 세운 언약 즉 메시아를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새 언약도 신실하게 지키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밤에 자면 내일 다시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오를 것을 아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과연 이러한 자연법칙의 궁극적인 확실성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흄은 지금까지 매일 아침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랐다고 해서 내일 반드시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회의론에 빠지게 되면 사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매일 걱정과 불안 속에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게 될 때 우리 마음은 평안을 회복하며 더욱 감사하게 된다.
  
10) 창조의 법칙성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나름대로의 ‘법칙’을 따라 하셨음을 알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나중에 여러 학문이 발전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우주 내의 법칙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여베르트는 이러한 질서 내지는 법칙이야말로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된다고 말했다. 즉 창조주는 법의 제정자(law Giver)이시므로 그 법을 초월하지만 피조물은 그 법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창조를 이야기할 때 창조주-법-피조물 이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창조라고 할 때 생각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도식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나아간 통찰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창조의 법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첫째는 자연법이다. 이것은 중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 열역학의 법칙, 광합성의 법칙 그리고 유전의 법칙 등과 같이 전 우주에 미치는 직접적인 창조 법칙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자들의 연구(research)는 사실상 세계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법칙을 다시(re) 발견하는(search)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모든 학문 활동은 창조의 각 분야와 영역에 담겨 있는 법칙들을 발견하여 논리적,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여베르트는 피조계에 존재하는 법칙 구조에는 구체적인 사물과 같은 개체 구조와 이러한 사물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양상 구조가 있는데 이 양상을 15가지로 구분하면서 학문적 지식 또는 이론적 사고가 가능한 것은 피조계의 각 양상이 논리적 양상과 종합되어질 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가령 생물학(biology)이란 이 세계의 생물적(bio-) 양상들만을 논리적(-logy)으로 연구하고 조직적으로 이론화시킨 학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학문이 가능한 근거는 이 창조 세계에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법칙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을 제정한 분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 사역도 창 1장을 자세히 보면 매우 질서 있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6일 동안의 창조기사가 첫 3일에는 배경적인 창조기사로 되어 있고 나머지 3일은 그 각각에 대해 보충해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후 넷째 날 보다 구체적으로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심으로 주야와 춘하추동 사시 및 연한을 나누게 한다. 그 다음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 즉 하늘을 만드시고 다섯째 날에는 물속의 생물들과 하늘에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한다. 셋째 날에는 땅과 바다를 만드신 후 이어서 땅에 풀과 채소, 그리고 과목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후 다섯째 날에는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모든 육축과 땅에 기는 생물들을 종류대로 만드신 후 마지막으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진화론을 배격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모든 생물들 중, 종과 종간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종안에서는 다양한 변이가 일어날 수 있지만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바뀌는 것은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만일 진화론이 맞을 경우에는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경우가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류에서 양서류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파충류에서 다시 조류로, 그리고 조류에서 포유류로 진화되는 케이스들이 지금도 계속 일어나야 할 텐데 인류 역사상 그러한 경우는 없었다. 이것을 소위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는다(missing link)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진화론은 사실 현 자연계를 지배하는 소위 열역학 제 2법칙에도 맞지 않는다. 이 법칙은 다른 말로 무질서도(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모든 만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질서도가 감소하고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새 자동차도 10년이 지나면 녹슬고 성능이 떨어진다. 반면에 진화론은 우연히 여러 물질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새 자동차가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진화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며 질서도가 증가하는 과정인데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그런 법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진화론은 사실상 허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조의 두 번째 법은 규범(Norm)이다. 이것은 십계명과 같이 인간의 사회와 문화에 적용되는 당위의 법칙으로 준수할 수도 있지만 어길 가능성도 있는 도덕법 또는 문화법이다. 여기에 인간의 책임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규범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창조의 법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지혜란 바로 이러한 규범적 법칙도 바로 분별하여 이 법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진화론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원숭이로부터 우연히 진화되었고 또한 앞으로 다른 생물로 바뀔지 모르며, 이 모든 법칙은 그저 우연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 속에는 어떠한 윤리도 없고 그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잔인한 정글의 법칙만이 유일한 법칙이며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도 파괴될 수밖에 없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는 무자비한 사회를 낳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실제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틀러는 진화론적 세계관에 사로 잡혀 독일 내 모든 장애인들을 몰살시키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면에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오묘하고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한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계속해서 신실하게 그 질서를 유지하시며 또한 인생들에게 자연 법칙들을 잘 연구하여 자연 세계를 다스릴 뿐 아니라 선한 청지기로서 잘 보존할 것도 말씀하셨으며 이 모든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섬기라는 최고의 법인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랑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서 창조세계를 더욱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창조는 성경적 세계관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경이감을 갖게 하며 조물주에 대해 찬양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우러나게 한다. 이 우주는 우연히 생겼거나, 진화된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설계되었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아가 이 우주는 동일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다스려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 분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과 모든 사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찬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시며 다른 아무 사람이나 피조물도 그 분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피조물을 경배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동시에 창조의 법칙이나 원리를 절대화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법칙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정하신 분이 계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분을 바로 알 때 우리는 그 법칙을 새롭게 발견할 때 마다 그 분을 더욱 경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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