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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이수영 목사 “호킹의 주장, 과학 영역 넘어선 오만”
이수영 목사 “호킹의 주장, 과학 영역 넘어선 오만”

크리스천투데이 이지희 기자 jhlee@chtoday.co.kr  이지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입력 : 2010.09.14 06:12“창조 이전에 중력과 양자이론 논할 수 있겠나”
새문안교회 담임 이수영 목사가 최근 스티븐 호킹 교수가 새로 출간한 저서에서 “우주는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이 목사는 12일 주일예배에서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로마서 1:18~25)’이라는 주제로 설교하며 “과학자 아닌 신학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주장(신이 없다는)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그 문제는 이미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스티븐 호킹에 대해 “뛰어난 과학자이겠지만 과학이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답하는 오류를, 아니 오만을 저지를 것”이라며 “물리학자는 존재하는 것들 즉 유(有)의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 있지 무(無)의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고하는 신앙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수영 목사의 설교 전문.

[새문안강단]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로마서 1:18~25)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늘 본문은 <자연계시>논쟁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성경말씀의 하나입니다. <자연계시>논쟁이란 “우리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된 논쟁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물음에 대해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답하기 전에 <계시>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분명히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행위’를 가리켜 <계시>라고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대로 사람이 깨달아 아는 ‘사건’을 가리켜서 <계시>라고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켜서도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은 어떠어떠한 존재시라고 자신을 알려주시는 ‘내용’을 가리켜서도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시>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고려하고 “우리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겠습니까? <계시>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수단’이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 질문에 답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은 그 답을 잘 뒷받침해주기 때문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러나 <계시>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대로 사람이 깨달아 아는 ‘사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 물음에 답한다면, 그 답은 부정적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전체적으로 사실상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이 우주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신성과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신데 사람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의 것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것 아닙니까?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깨달아 아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사건으로서의 계시는 성령에 의해 우리의 믿음의 눈이 떠질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자연계시>라고 하는 모든 인간 앞에 놓인 대단히 중요한 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현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게 긍정적인 현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안타깝고 두려운 현실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매일매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자연과 인간과 역사가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의 명백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펼쳐 보이시는 당신의 주권과 의지와 의와 지혜와 능력과 사랑과 공의를 체험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너무나 가슴 벅찬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 세상에서 매일매일 순간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고 고백하며 그에게 돌려야 할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돌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을 지배하는 현실은 매우 어두운 것입니다. 그 어두운 현실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폭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인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합니다. 먼저 이 18절의 뜻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18절은 오늘 본문의 핵심구절이고, 오늘 본문의 나머지 모든 구절은 이 18절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9~25절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행위가 무엇인지, 그런 자들이 저지르는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19~20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만드신 만물과 당신이 주관하시는 매일매일의 역사 속에서 당신의 신성과 영원하시는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심으로써 정상적인 감각능력과 인식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광대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조화롭기 그지없는 천체, 변화무쌍한 모습과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하늘과 땅,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으로 우리를 부르는 저 산과 바다, 날마다 밤마다 번갈아가며 모습을 드러내는 해와 달과 별, 빛과 공기와 물과 바람, 나무와 꽃과 풀, 쉬지 않고 철따라 자라나고 무르익어 우리에게 공급되는 곡식과 과실과 채소, 공중에서 땅위에서 물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온갖 새와 짐승과 물고기들, 각양각색의 보석과 진귀한 물질들, 그리고 수십억명의 인간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와 그 가운데 벌어지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주권자 되심과 의지와 의와 지혜와 권능과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 신성과 능력을 모를 수 없으며 마땅히 알아야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하여져서 그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따라서 인정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리를 막는 일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21~22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라고 말한 것입니다.

최근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스티븐 호킹 교수가 새로 출간한 저서에서 “우주는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자 아닌 신학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주장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이미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뛰어난 과학자이겠지만 과학이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답하는 오류를, 아니 오만을 저지를 것입니다. 물리학자는 존재하는 것들 즉 유(有)의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 있지 무(無)의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고하는 신앙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슨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을 논할 수 있습니까?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이 있고 그것들이 다 맞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실 때 그 창조세계에 부여하신 법칙이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있는 법칙과 이론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사고입니다. 끊임없이 이런 스스로 지혜로운 줄로 알지만 오만하면서 미련한 자들이 나와 진리를 막을 줄 아시고 미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현혹되지 않도록 밝혀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행위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과 당신께서 주관하시는 이 세상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의 뜻과 지혜와 권능과 사랑과 공의를 깨달아 알지 못하고 그에게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인류역사의 창조주이시고 주이심을 믿고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명백한 이 세상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이 미련하여져서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자들이 저지르는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먼저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의 의미상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음’은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면인 예배에 관련된 것으로 본다면, ‘불의’는 잘못된 예배로부터 기인하는 신앙의 실천적인 문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잘못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불의’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기인하는 사람들 사이의 잘못된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23절부터 25절 상반절까지를 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이 말씀 가운데서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구별하여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본다면 ‘경건하지 않음’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과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상숭배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란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는 것” 즉 예배의 대상, 신앙의 대상을 바로 잡지 못하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데서 기인하여 우리 개인의 삶이 더렵혀지고 우리의 사회적 관계성이 잘못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리를 막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본문 24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라고 합니다. 어떤 구체적인 형벌을 열거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표지라는 것입니다. 이 24절의 말씀을 머릿속에 기억하며 20절부터 25절 상반절까지를 다시 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매일매일 하나님의 창조세계로부터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으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피조물과 거짓된 세상의 영광과 바꾸며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가운데 삶을 더럽히며 사는 데 내버려두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요점이고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이 영원히 찬송할 분이시며 그가 곧 만유의 주이신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내버려진 것입니다.

<자연계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비관적인 현실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복음 안에서 이런 비관적인 현실을 극복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17절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불경건과 불의로 대하는 자들에게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진리에 믿음과 경건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살리시는 놀라운 의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에게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전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줍니다. 매일같이 순간순간 눈만 뜨면, 아니 눈을 감고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게, 부인할 수 없게, 핑계할 수 없게,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살아계심과 그의 섭리와 그의 사랑과 그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게 산다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을 전하는 우리가 됩시다. 오늘도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우리가 됩시다. 이 순간도 이 세상을 유지시키시고 보호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오늘도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 순간도 이 세상에서 생명과 질서와 법과 정의를 유지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이름을 높입시다. 이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와 영광을 돌리게 하며 감사를 올리게 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영원히 찬송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믿은 우리가 할 마땅한 일입니다.

출처: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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