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교수님 신과초월 연재 /손봉호/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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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6 16:08
손봉호 교수의 신과 초월
3.종교적 신앙과 과학적 지식
종교에 대한 종교외적 반성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진리"는, 대부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상식과도 다르고, 과학자들의 주장과 모순되는 내용이 많다. 나아가서, 종교들 사이에도 의견의 차이가 엄청나다. 이런 차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교의학이 아닌 종교철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 가장 손쉬운 해결은 종교들이 주장하는 "진리"들은 모두 거짓이요, 허황한 것들이며, 과학적 지식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무식에 기인된 것이거나 비과학적인 환상의 산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철학자 Comte는 사람이 경험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이 역사적으로 세 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고 보고, 모든 사건이 신의 뜻과 작용이라고 이해하던 소위 신학적 단계는 가장 원시적인 사고방식이고, 그 다음은 모든 것을 본질, 원칙, 혹은 실체 등으로 설명한 형이상학적 단계였으며,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실증주의적 단계가 가장 발달되고 올바른 관점이라 주장하였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Feuerbach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인간자신의 投影(Projektion)에 불과한 것으로, 신에 대한 모든 이론은 실재로는 인간에 대한 이론이라고 주장하였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Marx는 그런 환상을 갖게 된 원인을 사회의 잘못된 생산관계에 의한 疎外의 결과로 보았다. 종교는 결과적으로 대중으로 하여금 주어진 현실을 直視하지 못하게 하고 환상에 빠지게 하는 아편의 역할을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미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제노파네스 (Xenophanes of Colophon)는 많은 현대인들의 생각을 대변하였다: "만약 사자나 소가 손이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인간처럼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말은 말처럼 생긴 신들을 그릴 것이요, 소는 소같이 생긴 신들을 그릴 것이다.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을 새까맣고 코가 납작한 것으로 생각하고, 트리키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에게 발간 머리와 파란 눈을 제공할 것이다." 그와 비슷한 종교관은 많은 다른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고, 현대에도 무수한 무신론자들에게서 그런 입장을 찾아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을 시창한 프로이드 (Sigmund Freud)도 역시 종교를 비과학적인 환상으로 보고, 천재지변과 죽음의 위협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방어수단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하며, 가장 끈질긴 소원의 환상적인 성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과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현실적 세계를 직면하게 될 때 그런 환상은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단한 신임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적이 아닌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 신비로운 것이 없지 않으며, 지금의 과학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으나, 과학적 방법은 모든 진리추구의 유일하고 정당한 방법이며, '언젠가는' 지금 신비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L.Wittgenstein)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과학적 언어의 바깥에 있고, 따라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고통과 슬픔, 죽음이 왜 사람에게 있어야 하며, 사랑이 무엇이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자살할 정도로 심각하게 괴로워하는가 등의 문제는 과학이 이제까지 해결해 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해 주지 못할 것 같다. 이미 과학적 지식은 그 적용에 있어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이 점점 더 인식되고 있고, 과학적이 아닌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거짓이란 생각은 오늘 날 그렇게 타당한 생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해체주의 (Post-modernism)는 과학적 방법에 비판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순진한 과학지상주의적 입장에서의 종교적 "진리" 비판은 과거에 비해서 점점 그 설득력을 잃고 있다.
2) 또 하나의 해결방법은 종교적 "진리"를 과학적 지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은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非認知的 (noncognitive) 혹은 非表象的 (nonrepresentative)인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마치 예술적 상징처럼 종교적 언어는 어디까지나 종교신자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 내에 그 의의와 의미를 가질 뿐, 객관적인 존재나 상황에 대한 기술은 아니라고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진리"는 신앙인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하며, 자신이 믿는 바가 옳다는 것을 보강해 주는 역할을 하고, 동일한 상징에 여러 사람이 동일하게 반응함으로 공동체 의식을 생성, 강화하며, 일상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특수한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기능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Randall).
그런 주장은 종교를 순수히 주관적 영역에 한정시키기 때문에, 존재하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과학적 지식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어서, 종교적 신앙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정당화하는데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고, 종교에 대해서 현대적으로 반성하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매우 매력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점은, 그것이 신앙인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입장이란 사실이다. 종교가 단순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면, 종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기능도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때문에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사랑을 명령했다고 믿을 때 사랑할 수 있으나, 신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받아들일 때, 신이란 상징은 사랑의 실천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런 견해는 신앙인의 입장에 전혀 서 보지 못한 바깥 관찰자의 주장이고, 종교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지식의 또 다른 하나의 구별은 그 지식의 종류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양자의 대상이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그들 지식들의 근본적인 목적과 대상, 추구방법은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즉 종교적 진리는 과학적으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고, 과학적 지식은 종교의 주 관심사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의 존재는 과학적인 증명영역 바깥의 사실이요, 원자의 구조는 종교가 관심쓸 문제가 아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의 여부, 신에 의한 우주의 창조, 단세포 생물로부터 인간에로의 생물학적 진화 등의 문제 등은 종파의 입장에 따라 양자의 관심영역으로 계속해서 갈등의 문제로 남을 수 있으며, 그렇게 쉽게 어느 한 쪽의 분명한 승리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많은 실증주의자들처럼 과학에 대해서 특별히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종교와 과학사이의 모든 갈등이 반드시 갈릴레오의 경우처럼 과학의 승리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대학교수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창조과학회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진화론이 증명될 수 없는 가설이요,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 종교적 성격을 가진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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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과 超越
▲손봉호 교수(서울대 사회교육학)
1.헌신적인 믿음과 종교
종교는 인류의 의식적인 문화 활동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된 것 가운데 하나이고, 그 외의 다른 문화 활동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과 19세기 이후 맑스주의자들은 종교는 미신에 불과하며, 인류가 더 이성적이 되고, 과학적 지식이 더 발달되고 확산되며,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소외현상이 해소되면 종교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도 비판을 받고 맑스주의도 퇴색되고 있으나,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오히려 부흥하고 있다.
물론 고등 종교들에 관한 한, 종교가 인간의 다른 문화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된 것이 사실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에 의한 세속화 과정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의 한계와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들이 조금씩 밝혀짐에 따라,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사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 그 사회의 모습을 논하거나, 그 사회를 위한 정책을 세우면서 그 사회에 지배적인 종교를 무시하면 그 논의는 매우 피상적이 될 것이고 그 정책은 비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회에서 종교의 공적인 기능은 약화되고, 점점 더 사적인 삶에 국한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개인의 삶에는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간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공적인 영역에도 그 힘을 발휘한다. 그만큼 종교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종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쉽지 않다.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그들 종교는 어떤 주어진 정의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생겨난 현상들 가운데 비슷한 것들을 한데 묶어서 나중에 "종교"란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종교"란 말은 18세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이제까지 제시된 어떤 정의도 지금까지 땅위에 존재했고 지금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종교현상을 다 포함하기 어렵다. "신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라 하면 무신론인 불교를 종교라 할 수 없을 것이요, "영혼의 구원"이나 "영원한 생명의 추구"를 종교의 핵심이라 하면 내세에 대한 관심이 없는 유교는 종교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인간현상을 종교라 부르고, 어느 정도 이해와 의견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현상에 대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라 부를 수 있는 것들에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어떤 요소들이 우리가 종교라 부르는 현상에 공통으로 발견되는가.
모든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공통점은 獻身 (commitment)적인 믿음이다. 그야 유일신이든, 자연이든, 영원불변한 우주의 법칙이든, 그것이 자신의 삶과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고, 그것에 전 인격적으로 의존하고 자신을 헌신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종교라 부를 수 있다. 다른 요소를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 헌신의 요소가 없으면, 우리는 그것은 종교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헌신은 그 믿음을 가진 신자에게는 근거없는 미신이 아니라, 나름대로 확실한 근거를 가진 지식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신자에게 신앙과 지식의 엄격한 구별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믿고 혁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열광적 사회주의자는 종교적 신앙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헌신적인 믿음은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단순히 하나의 심리적, 혹은 사회적 현상일 수 있겠으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믿음은 당연한 것이고, 그 믿음의 대상인 절대자는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종교를 "절대자와의 관계"로 정의하기도 한다. 헌신적인 믿음과 절대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겠다. 그야 어떤 형태를 취하든 헌신적인 믿음은 절대자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그들이 믿는 내용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지식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계시된 지식이거나, 그런 사람들에게만 증명될 수 있는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원칙적으로는 보편적이지만, 오늘 날 과학적이라고 알려진 방법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대부분의 이데올로기와 구별된다.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철저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버리지 않는다. 이점을 제외하면,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하겠다.
그 외에 특정한 祭儀式, 체계화된 敎理, 經典, 속인과 구별된 司祭, 聖地 혹은 聖所의 존재 등 외적인 요소도 대부분의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모든 종교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유교는 이들 요소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역시 많은 사람이 종교로 취급한다.
迷信과 종교도 엄격하게 구별하기는 어렵다. 특정한 종교에 비판적인 사람은 그 종교가 미신이고, 철두철미 세속화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종교가 미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덕적 요소가 강해서, 사회전체에 긍정적 공헌을 할 수 있으면 종교로 대우하고, 그런 요소가 전혀 없고, 사회전체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칠 때, 우리는 그것을 하급종교 혹은 미신이라고 천대한다. 그러나, 그 기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록 윤리적 요소는 강하지 못하나,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안과 안정을 제공하고, 예술적 상상력에 창조적 기여를 한 무속신앙을 하급종교 혹은 미신이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것이다.
손봉호교수님(서울대 사회교육학)
손봉호 교수의 신과 초월
2. 신학, 종교학, 종교철학
▲손봉호 교수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믿음에 근거하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어느 정도의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 내용의 체계화와 정당성을 증명하는 이론적 장치가 조금이라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교는 자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성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교리(doctrine)의 체계화는 불가피하며,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변증 (apology)이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같은 종교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을 신학이라 부르나, 일반적으로 교의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것은 종교에 개입되는 이론적 반성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요, 종교 내에서의 이론적 반성의 유일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현상에 대하여, 종교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반성하는 작업에는 종교학, 종교현상학, 종교 심리학, 종교 사회학 등과 종교철학이 있다. 그 가운데서 종교철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은 원칙적으로 경험 과학들로써 이들은 종교바깥에서 종교현상을 관찰하고 이론적으로 반성하여 종교의 특징과 종교의 성격, 영향 등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종교철학은 경험과학적 접근과는 달리, 종교에서 사용되는 신, 거룩, 구원, 예배, 창조, 제사, 영생, 贖罪, 輪廻등 개념의 명료화, 삶에 있어서 종교의 의의와 의미, 그리고 종교와 과학, 도덕, 일상생활 등 다른 현상과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반성하는 것으로써, 경험적인 재료를 무시할 수 없으나, 주로 논리적인 반성에 의존한다. 그 가운데서 종교의 본질 혹은 초월자의 존재 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또 다른 입장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해서 가능한 한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오늘 날 종교철학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기능가운데 하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종교철학을 종교적 신앙의 철학적 증명으로 啓示神學(Revealed Theology)과 대조되는 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으로 이해되어, 계시에 의하지 아니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 등을 뜻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신학내의 辨證學 (Apologetics)과 거의 동등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불교나 유교처럼 자연종교라 할 수 있는 동양 종교들의 경우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종교들에게 독특한 교의학과 종교철학을 엄격하게 구별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의 종교에서는 종교적 진리가 신의 계시에 의하여 주어졌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전제로 하는 신학과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철학은 쉽게 구별될 수 있으나, 종교적 진리도 역시 인간의 깨달음이나 경험을 통하여 터득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그리고 그 진식이야말로 가장 포괄적이고 심오한 진리라고 믿는다면, 철학과 종교가 구별되기는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 문화에서의 철학과 유학, 불교 문화에서의 철학과 승가학은 서양에 있어서 신학과 종교철학의 경우에서처럼 그렇게 구별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종교 내적 교의학과 종교외적 종교철학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 내적 교의학은 그 종교의 참됨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것이 왜 참된가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종교외적 종교학이나 종교철학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종교의 참, 거짓에 대해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구분이지, 구체적인 경우에는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 종교를 위한 변증학을 하면서도 엄정하게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그리고 종교현상에 대한 종교외적 반성도 비록 종교적 신앙의 입장이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나, 종교의 핵심이 주관적 신앙에 있는 것이기때문에, 신앙인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 종교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다른 현상에 대한 반성과는 달리 종교현상에 대한 반성은 비록 종교외적인 것이라도 어느 정도 종교 내적 입장에 서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이론적 반성은 "종교내부에 있으면서, 종교적 신앙에 대해서 거리를 둘 수 있는" (detached within) 입장에서만 가능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과연 실재로 가능한지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 사랑에 빠져 있으면서, 사랑에 대하여 이론적 반성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사랑에 한 번도 빠져 보지 못한 사람이 사랑에 대하여 이론적인 반성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손봉호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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