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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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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ahn
Subject   유럽교회7] 칼빈이『기독교강요』를 출판한 바젤-임태수
유럽교회7] 칼빈이『기독교강요』를 출판한 바젤
 
 
임태수(전 호서대 교수)


1. 스위스의 바젤을 향하여

아내와 나는 1997년 4월 8일 아침에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를 떠나, 그날 밤 11시에 독일 국경에 있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라인펠덴(Rheinfelden)에 도착했다. 라인펠덴은 우리가 방문하려고 하는 바젤(Basel)에서 동쪽으로 2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독일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이곳으로 이사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준호 집사 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준호 집사는 내가 독일 본(Bonn) 대학에 유학하던 1980년대에 한인교회에 함께 다니던 집사였다.

나는 4월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 바젤에서 찾아볼 곳들을 점검해보았다. 1. 칼빈이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판한 인쇄소. 칼빈은 Martin Lucianus 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바젤에서 약 1년 정도(1534-1535) 체류하였다.


2. 20세기 세계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의 집(아키브) 3. 바르트와 함께 종교사회주의운동을 펼친 라가츠(L. Ragaz)의 유적 4.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와 자유의지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에라스무스(D. Erasmus)의 유적 5. 체코 출신으로 맑시즘과 기독교의 대화에 크게 기여한 로호만(Jan Milic Lochman) 교수, 민중신학에 관한 글을 쓴 리네만(Christine Lienemann-Perrin) 교수, 구약신학자 자이볼트(Seybold) 등 바젤 대학의 여러 교수들. 내가 계획한 대로 모두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고 집을 나섰다.

2. 바르트, 에라스무스, 라가츠의 유적들

오늘 방문길에는 김준호 집사와, 바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박숭인 전도사가 길을 안내해 주기로 하였다. 맨 처음 칼 바르트(K. Barth)가 살았던 집을 개조해 만든 아키브를 방문하려고 여러 번 전화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방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목사로서 교회를 섬겼던 자펜빌(Safenwil)은 스위스 어느 지역에 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에라스무스의 유적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에라스무스하우스(Erasmushaus)가 Bäumleingasse 18번지에 있다기에 찾아가보았더니, 그 집 앞 작은 간판에 “이 집에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인쇄업자 Froben Hierorymus의 손님으로 와서, 그의 생애 마지막 기간인 1535년 8월부터 1536년 7월까지 살았다"고 씌어있었다. 에라스무스는 1536년 7월 12일에 바젤에서 죽었다. 아마도 이 집에서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집은 지금은 헌책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에라스무스와 관련된 유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에라스무스하우스를 뒤로 하고 우리는 라가츠(Ragaz)가 목사로 시무하면서 설교한 개혁교회인 바젤 대성당(Basler Münster)을 찾아 들어갔다.


교회는 웅장했고 설교단은 교회 앞쪽 오른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설교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개혁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설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교회는 웅장했다. 그러나 이 교회에서도 라가츠와 관련된 흔적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나는 교회의자에 앉아 잠깐 기도한 다음 교회를 떠났다. 이런 웅장한 교회들이 비어가고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교회들, 독일 교회들, 그리고 스위스의 교회들이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유럽교회들이 비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한 것이 이번 순례의 목적이다. 아직까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이번 순례기간 동안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우리는 바젤대학 신학부로 갔다. 바젤대학은 1460년에 세워졌으며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란다.
신학부도 1460년에 세워졌으니 537년의 긴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신학부다. 바르트는 바젤에서 태어나 베른, 베를린 등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바르멘선언 등 나치에 저항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나치가 추방명령을 내려서 어쩔 수 없이 고향 바젤로 돌아와서, 바젤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20세기 불후의 명저 『교회교의학』을 집필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바르트가 교수로 재직한 신학부 건물들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현재 신학부에 속한 학생은 약 150명 정도라고 했다. 신학부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나무로 된 계단과 대들보들이 고풍을 띄고 특이하게 생긴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

바젤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 그리고 두 명의 노벨상수상자들(1950년의 의학분야의 Tadeus Reichstein, 1978년 미생물학 분야의 Werner Arber)을 배출하였다. 우리는 바젤대학 신학부 교수로 있는 리네만(Christine Lienemann-Perrin) 박사를 그녀의 집으로 방문했다. 리네만 교수가 민중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기에 찾아간 것이다. 이분은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었고 그가 지은 책을 한권 주었다. 『남한과 아프리카 교회의 정치적 책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170여 페이지를 한국교회와 민중신학에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3.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출판한 인쇄소

마지막으로 우리는 칼빈이 바젤에서 『기독교강요』를 출판한 인쇄소를 찾아 나섰다. 그 인쇄소 위치를 리네만 교수에게 물어보았으나 알지 못한다고 했다. 더 물어볼 만한 다른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로호만, 자이볼트 교수도 만나지 못하고, 그래서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17시쯤 김준호 집사 댁으로 가려고 신학부를 떠나 길을 가는데, 그 때 마침 개블러 교수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내가 만나보려고 했던 바로 그 교회사 교수였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출판한 인쇄소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신학과에서 얼마 멀지 않은 잘츠만 거리(Saltzmann Strasse)에 있는 한 인쇄소에 칼빈이 머물렀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떠나갔다.

개블러 교수의 말을 듣고 우리는 베드로교회(Peterskirche)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100여 미터를 내려가니, 그가 말한 인쇄소가 있었다. 인쇄소 이름은 크라탄더 인쇄소(Druckerei Cratander)였다. 안에 들어가 한 여직원에게, “16세기에 이곳에서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출판했느냐?”고 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런 일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고 매정하게 말했다. 마침 거기에 그 인쇄소의 역사를 기록한 팜프렛이 있어서 훑어보았더니, 이 건물에 대한 역사가 1447년부터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1528년부터 이곳에서 인쇄소를 운영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칼빈에 대한 언급은 없어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나오려고 하니까, 그 여직원이 실망하는 내 모습이 측은해보였던지, 베드로교회 목사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교회 사택을 찾아갔다. 베드로교회 목사님도 칼빈이 바젤 어디에 살았는지 모른다면서, 어떤 사람이 “바젤의 칼빈”("John Calvin in Basel")이란 제목으로 박사논문을 썼는데 한 번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신학부에 가서 조회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찾던 그 논문이 있었다. 그 논문은 Plath Uwe 박사가 쓴 『칼빈과 바젤: 1552년부터 1556년까지』(Calvin und Basel in den Jahren 1552-1556)이라는 논문이었다. 이 책에 있는 내용 가운데 1535-52년 부분을 복사해 그 내용을 보니, 칼빈이 크라탄더 인쇄소에 머물면서 『기독교강요』를 출판했다고 씌어있었다.

그 주소도 Druckerei Cratander AG Verlag Petersgasse 34, Basel이라고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뛸듯이 기뻤다. 이 책에서 찾아낸 크라탄더 인쇄소가,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들렸던 그 인쇄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직원마저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찾은 인쇄소는 문이 닫혀있었다.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인쇄소 정문 앞에 있는 작은 현판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중세 귀족거주지 쇈킨트호프(Schönkindhof). 최초로 문헌에 언급된 것은 1447년. 쇈킨트호프란 이름은 15세기에 이 땅(Hof)의 소유자였던 쇈킨트란 귀족의 이름에서 유래함. 1528년에 이 땅은 인쇄업자 안드레아스 카라탄더(Anderas Cratander)의 소유가 되었고, 1894년부터 “크라탄더 인쇄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4. 칼빈 선생을 명상하다

스트라스부르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칼빈이 걸어 다니고 책을 출판했던 바젤의 거리와 인쇄소를 보니, 마치 칼빈 선생 자신을 직접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마음과 친근감이 느껴졌다. 역사책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칼빈이 아니라, 집도 없이 가정도 없이, 외롭게 핍박을 받으면서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칼빈 선생이 가슴으로 따뜻하게 느껴지고 전달되어왔다.

프랑스에서 쫓겨나고, 나중에는 루터 지지자들로부터도 쫓기면서 그 놀라운 불후의 명저『기독교강요』와 주석들을 써낸 칼빈 선생, 참고할만한 책도 제대로 없고 거처도 일정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작업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고난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고 느끼고 감사한 칼빈의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이었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도 강조한 칼빈, 그러나 그의 삶이 고난에 찬 삶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어떻게 그런 고난의 삶 속에서“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강조했었는가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여튼 그는 그런 고난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고,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을 경험하면서 감사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아! 그는 정말 위대한 신앙인이었구나! 안정되고 평안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도 몇 배나 더 큰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한 가운데서 산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으니, 그는 진정 신앙의 위인이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도 감격하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했을까?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은 고난과 쫓김의 연속이었는데! 가난한 떠돌이 신세였는데!

이런 면에서 칼빈은 루터와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루터는 영주와 제후들의 후원과 보호를 받으면서 성 속에서 성서를 번역하고 글을 쓰고 종교개혁을 한데 반해, 칼빈은 가난하고 초라한 선비, 그러나 죽더라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모습으로, 망명자, 나그네의 초라한 위치에서 그는 종교개혁을 수행했던 것이다. 루터보다도 칼빈에 대해 훨씬 더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루터에게서는 그의 당당하고 비대한 몸처럼, 육중한 어떤 무게가 느껴짐과 동시에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진 반면, 칼빈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친근감이 느껴졌다. 더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그를 직접 만나본 것과 같은 따스함이 가슴으로 전달되어왔다.

500여년의 시간을 초월해서 그의 인간적인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마치 나의 친구, 동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사책에서 보던, 멀리만 느껴졌던 칼빈이 아니고, 높아만 보이던 칼빈이 아니고, 마치 지금 내 옆에 서 있으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친구처럼 칼빈이 느껴졌다. 500여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오늘 칼빈 선생을 만난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몇 년 전에 성지순례하면서 카이로에서 모세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과 같은 만남이었다. 4. 바젤을 떠나 제네바를 향하여오늘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바르트, 라가츠, 에라스무스의 유적을 방문하고, 현재 바젤대학에 교수로 있는 리네만, 로호만, 자이볼트 등도 만나보려고 계획했었는데, 시간이 충분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준비도 충분치 못해서, 계획에 훨씬 못 미친 결과만을 가지고 바젤을 떠나려고 하니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바젤 사람들도 잘 모르고, 신학교 교수들마저도 잘 모르는,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출판했던 인쇄소를 발견하여 방문하고, 500년의 시차를 넘어서 정신적으로 그를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가는 기쁨과 보람은, 다른 것들을 방문하지 못하고 가는 모든 아쉬움들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크라탄더 인쇄소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었다. 우리가 김준호 집사 집으로 돌아가려고 때 만약 개블러 교수가 우리 옆을 지나가지 않았던들, 크라탄더 인쇄소 직원이 베드로교회 목사를 찾아보라고 알려주지 않았던들, 베드로교회 목사가 칼빈과 관련된 책을 소개해주지 않았던들, 박전도사가 없었던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복사카드가 내가 꼭 필요한 10 페이지를 복사할 수 있는 양이 남아 있지 않았던들, 나는 그 책을 복사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 인쇄소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의 결과라고 생각되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제 칼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제네바(Geneva)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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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22 -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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