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교수님 논문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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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뱅 연구의 최근 경향"
작성자 박경수
조회수 829 작성일 2005-03-14
칼뱅 연구의 최근 경향
Recent Trends in Calvin Studies
박경수
신화 뒤에 가려진 인물
대화 중에 칼뱅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때면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제네바의 신정정치가, 예정론의 주창자, 개신교 운동의 조직자,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한 편협하고 완고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16세기 이래로 제네바는 전투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로마처럼 인식되어 왔으며 칼뱅은 ‘제네바의 교황’처럼 여겨져 왔다.
스토페르(Richard Stauffer)가 지적했듯이, 역사상 칼뱅만큼 오해받고 있는 인물도 없다.1) 칼뱅은 그의 적대자들로부터 비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에게서도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칼뱅에 대한 비방은 그와 동시대인이었던 볼섹(Jerome Bolsec)에 의해 이미 시작되었다. 볼섹은 원래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였으나 개신교 진영으로 전향했다가 후에 칼뱅의 예정론에 반발하면서 다시 로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간 후 볼섹은 1577년에 칼뱅 전기를 출간했는데, 그 책에서 칼뱅은 “야심이 많고, 뻔뻔하고, 거만하고, 잔인하고, 악하고, 앙심을 품은 자이고, 게다가 무식하기까지 한 인물”2)로 묘사되었다. 볼섹 이후로 칼뱅은 로마 가톨릭 측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심지어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조차도 무비판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 중에서 가장 부당한 것이 20세기 중엽 쟝 쇼레(Jean Schorer)와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에 의한 비난이었다. 제네바 교회의 목사였던 쟝 쇼레가 바로 다름 아닌 제네바의 종교 개혁자였던 칼뱅을 대적하기 위하여 츠바이크를 부추겨 칼뱅을 비난하고 그의 적대자였던 카스텔리오를 옹호하는 책을 쓰게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츠바이크의 책 중에서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얼굴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칼뱅은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이 책에서 터무니없이 비난을 당했으며 카스텔리오는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칼뱅의 얼굴은 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형과 닮았다. 저 고독하게 동떨어져 있는 바위의 모습, 그 말없는 폐쇄성 속에는 신이 깃들 수 있을 뿐,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자리 잡을 수 없는 모습이다. 선의도 위안도 나이도 보이지 않는 이 금욕주의자의 얼굴에는, 삶을 풍성하고 충만하고 즐겁게 꽃피우고 따뜻하고 감각적으로 만드는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다. 깡마르고 기다란 타원형 얼굴에 깃든 어떠한 모습도 모두 딱딱하고 추악하고 역겹고 조화가 없다. 좁고 엄격한 이마, 그 아래로 밤을 샌 듯한 두 개의 깊은 눈이 석탄처럼 이글거리고, 날카로운 매부리코는 움푹 꺼진 두 뺨 사이에 지배욕에 불타는 모습으로 높이 솟아 있고, 단도로 자른 듯한 좁은 입술은 아주 드물게만 웃음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깊이 가라앉은, 메마른 잿빛 피부에 따뜻한 살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내면의 불길이 흡혈귀처럼 뺨에 있는 핏기를 다 빨아 먹은 듯, 두 뺨은 주름지고 병들고 창백하다. 이 두 뺨이 격렬한 분노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는 데는 몇 초도 안 걸릴 것이다. 길게 흩날리는 예언자 수염이 이 성마르고 노란 얼굴에 남자다운 힘의 모습을 주려고 하지만 헛일이다. 이 수염도 생기나 풍만감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강력한 모습으로 내려뜨려지지 못하고 얇은 다발을 이루며 암벽에 돋아난 빈약한 관목더미 같다.3)
오늘날 카스텔리오의 초상화는 단 한 장만 남아 있다. 그것도 중간 수준 정도의 초상화일 뿐이다. 이 초상화는 높고 훤히 트인 이마 밑으로 자유롭고 참된 눈을 가진 매우 정신적이고 진지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 칼뱅의 얼굴은 긴장 그 자체다. 초조하고도 고집스럽게 분출을 노리고 있는, 경련적이고 병적으로 응집된 에너지를 보여주는 반면, 카스텔리오의 얼굴은 온화하고 침착하게 기다리는 얼굴이다. 한 사람의 눈길은 불덩어리이고, 다른 쪽은 평온하다. 참을성 없음이 끈기에 맞서 있고, 튀어 오르려는 열의가 끈질긴 신념에 맞서 있다. 광신주의가 인문주의에 맞서 있는 것이다.4)
지금까지 칼뱅은 흔히 예정론의 교리로 무장한 딱딱한 신학자, 철장으로 사람들을 다스렸던 제네바의 독재자, 세르베투스를 죽이고 카스텔리오를 추방한 ‘불관용의 대명사’5)로 묘사되어 왔다. 이것은 일종의 ‘칼뱅 신화’6)가 되었다. 그러나 칼뱅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그동안 신화 뒤에 숨겨져 왔던 칼뱅의 모습을 점차 재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의 칼뱅 연구를 추적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미국 미시간에 위치한 칼뱅신학교에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인 『칼뱅 신학 잡지』(Calvin Theological Journal)를 주목해야 한다. 이 정기 간행물은 매년 11월 호에 한 해 동안 세계 도처에서 발표된 칼뱅에 관한 모든 논문과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가장 최근의 칼뱅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목록 작업은 1971년 Joseph N. Tylenda에 의해 시작된 이래로 Peter De Klerk (1972-97)을 거쳐 현재는 Paul Fields (1998- )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7) 최근의 칼뱅 연구의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한 4년마다 모이는 세계 칼뱅 학회(International Congress for Calvin Research), 2년마다 모이는 미국 칼뱅 학회(Calvin Studies Society)와 미국 칼뱅 세미나(Colloquium on Calvin Studies), 그리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여러 지역의 칼뱅 학회들에서 발행하는 학회지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최근의 칼뱅 연구에 근거하여 이제는 칼뱅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어떤 모습의 칼뱅이 최근의 칼뱅 연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가? 본 논문에서는 최근 칼뱅 연구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칼뱅 상들에 주목하면서 칼뱅 연구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수사학자 칼뱅
최근 칼뱅 연구는 칼뱅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수사학 전통에 서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일찍이 데이빗 윌리스(David Willis)는 자신의 논문 “Rhetoric and Responsibility in Calvin's Theology”를 통해 수사학 전통이 칼뱅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하였다.8) 윌리스는 신학자로서의 칼뱅은 기본적으로 인문주의 수사학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칼뱅 신학에서 조정(accommodation)의 개념이 수사학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고 이해하였다. 윌리스에 따르면, 칼뱅은 계시를 “하나님의 설득력 있는 조정”으로 파악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낮은 수준에 자신을 맞추어 조정하신다. 이 조정의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의 역사이다.”9) 칼뱅의 신학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상황에 자신을 조정하신다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다면, 수사학 전통은 칼뱅 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수사학은 칼뱅 연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사학의 목적은 말하는 사람이 청중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자신의 언어를 조정하고 맞춤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칼뱅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바로 이런 조정의 원리를 사용하시는 “대 수사학자”(the Grand Rhetorician) 혹은 “대 연설자”(the Grand Orator)이시다.10) 그분은 성육신을 통하여, 성서를 통하여, 성례를 통하여, 자연을 통하여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서 자신의 계시를 조정하여 전하셨다. 칼뱅이 사용한 이미지를 따라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유모가 어린 아이에게 말하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우리의 낮은 수준에 맞추어서 자신을 조정하시기 때문이다.11)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회중들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눈높이 교사 즉 조정의 원리를 사용하는 수사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문주의자요 수사학자로서의 칼뱅의 모습은 윌리엄 부스마(William Bouwsma)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헤이코 오버만(Heiko Oberman)이 칼뱅과 중세 신학의 관계를 신학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분석했다면, 부스마는 칼뱅의 인식론과 르네상스 인문주의와의 관계를 노련하게 다루었다.12) 부스마의 핵심은 조직적인 신학자로서의 칼뱅 상 대신에 인문주의 수사학자로서의 칼뱅 상을 제시한 것이었다. 부스마는 그의 책 『칼뱅』(John Calvin)에서 16세기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칼뱅을 분석하면서 그가 신학자라기보다는 수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였다.13) 이러한 시도는 칼뱅 연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것이었다. 부스마의 『칼뱅』에 대해 신학자들은 대체로 실망하였고, 역사학자들은 환영하였다.14) 그러나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칼뱅의 모습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학자들은 신학자들의 소리에, 그리고 신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시린 존스(Serene Jones)가 그녀의 책 『칼뱅과 경건의 수사학』(Calvin and the Rhetoric of Piety)을 통해 칼뱅 연구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수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 존스는 기본적으로 칼뱅을 16세기 프랑스의 인문주의 수사학자라는 맥락 안에서 고찰하였다. 존스에 따르면, 칼뱅은 “초기 근대 유럽의 가장 탁월한 수사학자들 중 한 사람”15)이었다. 칼뱅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하기 위해 수사학적 방법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칼뱅은 그가 상대해야 할 구체적인 청중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이르는 수사학적 전략을 노련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칼뱅의 목표는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기독교적 삶과 믿음과 성향을 가지도록”16)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칼뱅의 『기독교강요』나 다른 저술들의 참된 의미를 탐구함에 있어서 수사학적 방법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학자로서의 칼뱅이라는 주제는 칼뱅 연구에서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칼뱅의 수사학은 앞으로도 칼뱅 연구에서 계속하여 중요한 주제로 남게 될 것이다.17)
주석가이자 설교자로서의 칼뱅
칼뱅에 대한 전통적이며 일반적인 인상은 그가 한 권의 책, 즉 『기독교강요』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칼뱅은 자신을 현대적 의미에서의 조직 신학자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한 사람의 주석가요 설교자로 생각했다. 파커(T.H.L. Parker)는 그의 책 『칼뱅: 그의 전기』(John Calvin: A Biography)18)에서 칼뱅이 자신의 기본적인 사명은 주석과 설교를 통해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여겼음을 강조한 바 있다. 볼터스(A. Wolters)가 말한 것처럼, 칼뱅은 어떤 의미에서 “오직 성서라는 종교개혁 원칙의 화신”19)이었다. 칼뱅이 『기독교강요』를 쓴 목적도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가르쳐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말씀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20)이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강요』는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되고자 하는 소박한 목적을 가진 책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칼뱅이 『기독교강요』에서 의도한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신학적 체계를 세우려는 것이었다기보다는 성서의 의미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만일 칼뱅이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성서의 의미를 밝혀주기 위한 안내서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기독교강요』를 썼다면 당연히 『기독교강요』를 읽을 때에는 그런 그의 동기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칼뱅 연구에서 그의 주석과 설교가 그의 『기독교강요』나 신학적인 저작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고전 전집(Library of Christian Classics)에서 칼뱅의 주석을 편집한 하루투니안(Joseph Haroutunian)은 책의 서론에서 “칼뱅 신학의 모든 특징은 『기독교강요』의 전문적인 주장들에서보다는 주석들의 직접적인 설명들에서 보다 간결하고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21)고 말하였다. 『기독교강요』는 칼뱅의 주석들과 분리해서는 결코 바르게 이해될 수 없으며, 주석들도 『기독교강요』나 다른 신학적 저작들과 분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칼뱅의 전체적인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칼뱅의 『기독교강요』뿐만 아니라 그의 주석과 설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칼뱅 연구에서는 그의 주석에 대한 르네상스라 부를 만큼 주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파커의 책 『칼뱅의 구약 주석』22)과 『칼뱅의 신약 주석』23)은 특별히 중요한 책들이다. 이 두 책은 칼뱅의 주석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제공하여 줌으로써 학자들로 하여금 칼뱅이 주석을 할 때 어떤 방법을 채택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파커의 다른 책 『칼뱅의 로마서 주석』24) 또한 칼뱅의 주석 방법에 대해 매우 중요한 내용들을 시사해 주었다. 최근에 와서는 푸켓(David L. Puckett)이 『칼뱅의 구약 성서 주석』25)이란 책에서 칼뱅의 성서 해석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푸켓의 이 연구는 칼뱅의 주석적 전제들을 밝힘과 동시에 그가 구약 성서를 주석하는 구체적인 절차들에 대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칼뱅의 성서 주석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푸켓은 칼뱅의 주석 방법뿐만 아니라 성서의 본질에 대한 칼뱅의 신학적 견해도 규명하였다. 주석가로서의 칼뱅을 규명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매우 필요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강요』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왔던 종래의 칼뱅 연구에 대한 중요한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석가로서의 칼뱅이라는 주제는 학자들과 학생들을 위해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더욱이 칼뱅의 설교 원고가 Supplementa Calviniana 라는 편집본으로 출간되자 설교자로서의 칼뱅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었다.26) 킹든(Robert Kingdon)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제네바 컨시스토리의 기록들이 재발견되어 칼뱅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칼뱅의 새로운 설교 원고들의 출간은 앞으로 칼뱅 연구에서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스토페르(Richard Stauffer) 교수는 칼뱅의 설교에 대한 연구가 『기독교강요』에 치우친 칼뱅 연구를 보충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칼뱅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교정해 줄 수 있을 것임을 간파하였다. 최근 암스트롱(Brian Armstrong)은 한 논문에서 칼뱅의 설교는 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설교 스타일과 내용이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로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7) 파커의 책 『칼뱅의 설교』28) 또한 칼뱅의 설교 방식을 분석하고 설교의 내용에 대한 균형 잡힌 신학적 견해를 제공하였다. 최근에는 드브리스(Dawn DeVries)가 그녀의 책 『칼뱅과 슐라이어마허의 설교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29)를 통해서 공관복음에 관한 칼뱅의 설교와 슐라이어마허의 설교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설교자로서의 칼뱅을 재조명하였다. 드브리스는 칼뱅과 슐라이어마허 모두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자였으며 말씀에 대한 성례전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설교의 중심은 선포된 말씀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이며, “개혁 교회 전통에서 설교는 단순한 가르침(didactic)이 아니라 성례(sacramental)이다. 이것은 설교가 단순히 교훈의 방법이 아니라 은혜의 수단임을 말하는 것”이었다.30) 그러나 드브리스는 칼뱅과 슐라이어마허 사이에는 공통점만이 아니라 많은 차이점들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31) 칼뱅에게 있어서 설교를 통한 그리스도의 제시가 은혜의 객관적 작용이라면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칼뱅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현존한다는 것은 위격의 일치를 통해 신적인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 반면에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칼뱅과 슐라이어마허 사이의 공통점들은 표면적인 것이었을 뿐이었으며 오히려 근본적으로는 서로 공통점이 없었다. 뮬러(Richard Muller)는 드브리스의 슐라이어마허와 칼뱅에 대한 비교가 그녀 자신의 신학적 이해를 16세기에까지 밀어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32) 그녀의 관심은 분명히 20세기의 것이었지 결코 16세기의 것은 아니었다. 뮬러가 강조한 것처럼 칼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칼뱅을 16세기의 지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지 오늘날의 신학적 관심사를 과거에 투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주석가와 설교자로서의 칼뱅은 앞으로의 칼뱅 연구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목회자로서의 칼뱅
주석가와 설교자로서의 칼뱅 상은 당연히 칼뱅의 경건 혹은 영성이라는 주제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칼뱅의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의 번역자인 포드 베틀즈(Ford Lewis Battles)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칼뱅이 직업적인 신학자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영성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데 특별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신앙의 함의들을 기술하고자 하는 충동에 따라서 『기독교강요』를 썼다. 그는 자신의 『기독교강요』를 ‘신학의 대전’(summa theologiae)이 아니라 ‘경건의 대전’(summa pietatis)이라고 부른다. 칼뱅의 정신적 에너지의 비밀은 그의 경건에 있었다. 그의 경건의 산물이 그의 신학이었으며, 그의 신학에서 그의 경건은 충분히 표현되었다.”33) 칼뱅이 거대한 조직 신학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경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기술하고자 하였음을 잘 지적해 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칼뱅의 의도는 『기독교강요』의 초판(1536) 제목에서도 이미 나타난 바가 있다. 1536년 『기독교강요』의 전체 제목은 “모든 경건의 개요와 구원의 교리를 아는 데 필요한 기독교의 가르침: 경건에 열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최근의 저서”였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칼뱅의 『기독교강요』가 신학이 아니라 경건의 진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기독교강요』를 쓴 목적은 다름 아닌 참된 경건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베틀즈는 그의 서문에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헌트(A. Mitchell Hunter)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헌트에 따르면 “경건이야말로 칼뱅이라는 인물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다. 그는 하나님께 붙잡힌 영혼이었다. 그는 신학 그 자체를 공부하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가 신학에 헌신한 것은 그것이 신앙의 의미를 지지해 주는 뼈대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었다.”34) 따라서 우리는 칼뱅의 『기독교강요』 최종판에 경건이라는 단어가 180회 이상이나 나오는 데 대해서 하등 놀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의 경건 혹은 영성이라는 주제는 여러 학자들로부터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후기 칼뱅주의자들이 칼뱅을 주로 교리적인 신학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던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칼뱅의 영성을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들 중 하나로 요셉 리처드(Joseph Richard)의 『칼뱅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35)이라는 책을 들 수 있다. 이 저작은 칼뱅의 영성의 개념을 중세 후기의 ‘근대적 경건 운동’(Devotio Moderna)의 맥락에서 검토하면서, 칼뱅의 영성이 말씀과 성령의 상호관계에 근거한 영성임을 지적하고 있다. 리처드의 책이 칼뱅의 영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흥미롭고 유익한 공헌들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칼뱅의 경건을 다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파악하고 경건의 공동체적 성격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리처드 이후에는 베틀즈의 『칼뱅의 경건』(The Piety of John Calvin), 존 리스(John H. Leith)의 『칼뱅: 그리스도인의 삶』(John Calvin: The Christian Life), 그리고 부스마의 논문 “칼뱅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등이 목회자로서의 칼뱅의 경건과 영성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출판된 글들이다.36)
특별히 데니스 탐부렐로(Dennis Tamburello)는 그의 책 『그리스도와의 연합: 칼뱅과 성 베르나르의 신비주의』(Union with Christ: John Calvin and the Mysticism of St. Bernard)에서 칼뱅에게 나타나는 신비주의 경향을 재검토하고 있다.37) 그의 연구는 칼뱅과 베르나르의 사상을 비교함으로써 두 인물 사이에서 보이는 유사성을 밝혀 준다. 탐부렐로는 ‘신비적 연합’(unio mystica)이라는 주제에 관해 두 사람이 10가지의 유사점과 6가지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엘지 맥키(Elsie Anne McKee)는 이러한 비교 연구가 칼뱅의 전체 신학에서 ‘신비적 연합’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소 부적절하게 이해하도록 이끈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38) 칼뱅과 베르나르의 신비주의의 유사점을 분석한 탐부렐로의 연구는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한 경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늘날의 상호 대화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교리보다는 영성이 아마도 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실천 즉 행동하는 영성이라는 분야에서 교파적 차이들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39) 이런 측면에서 그의 책은 비단 칼뱅 연구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치와 협력이라는 주제와 관계해서도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프린스톤 신학교 교수인 맥키가 칼뱅의 경건에 관한 책을 편집하면서 유익한 서문을 덧붙였다. 이 책은 칼뱅 자신의 종교적 경험들에 대한 묘사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설교와 가르침을 함께 고찰함으로써 칼뱅의 경건 혹은 영성의 경향들을 추적하고 있다. 칼뱅은 흔히 독재적인 개혁자요 예정론의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논리적인 신학자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맥키의 칼뱅은 “무엇보다도 회중들을 돌보는 목회자요, 목회자들의 교사이며, 그의 경건은 목회적 경건이다.”40) 조직 신학자라기보다는 목회자로서의 칼뱅이라는 개념은 그를 교리의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 경건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맥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경직된 교리의 총화로 여겨지는 『기독교강요』가 사실상은 매우 강한 목회적 방향과 경건에 대한 많은 문구들을 가지고 있다.”41) 칼뱅이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은 적어도 의도에서는 경건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
칼뱅은 분명 신학자였지만 그것은 목회자로서 설교하고 목사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칼뱅이 먼저 목회자였고 그 다음에 신학자였음을 의미한다. Jean-Daniel Benoit는 칼뱅이 인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신학자나 교회의 행정가로서가 아니라, “영혼의 인도자”(director of souls)인 목회자로서였다고 주장하였다.42) 칼뱅의 마지막 유언도 목회자로서의 그의 자의식을 보여주는데, 그는 자기 스스로를 “제네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인 나 쟝 칼뱅”이라고 말하였다. 칼뱅의 사역에서 관심의 초점은 목회적인 돌봄이었고 영혼의 치유였다. 이러한 목회자로서의 칼뱅에 대한 연구는 최근 영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맞물려서 미래의 칼뱅 연구에서도 분명 계속될 것이고 중요한 주제로 남게 될 것이다.43)
여기에서 언급하고 넘어 가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칼뱅을 흔히 제네바의 독재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또한 다분히 칼뱅에 대한 신화에서 비롯된 것임이 최근 연구들에서 드러나고 있다. 내피(William Naphy)는 칼뱅 당시의 시의회, 법원, 컨시스토리 등의 일차 자료들을 검토하여 칼뱅이 결코 제네바의 독재자가 될 수 없었음을 지적하였다. 칼뱅은 1536년 제네바의 개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1538년에 제네바의 시의회에 의해 쫓겨났으며, 1541년에 제네바로 귀환한 후에도 여전히 반대자들의 견제와 제재를 받았다. 내피에 따르면, “1555년 이전 제네바에서 칼뱅의 목회는 계속적인 논쟁, 알력, 명백한 반대로 점철된 것이었다.”44) 예를 들면 1548년이나 1553년의 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다수파는 아미 페랭(Ami Perrin)이 이끄는 칼뱅의 반대자들이었다.45) 칼뱅이 제네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14년의 (1541-1555) 격동을 겪은 후에나 가능하였다. 따라서 칼뱅의 위치는 제네바의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죽기 5년 전인 1559년에야 제네바의 시민권을 획득한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라고 불리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로버트 킹든과 그의 동료들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는 제네바 컨시스토리의 문서에 대한 연구도 칼뱅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하고 있다.46) 제네바 컨시스토리는 칼뱅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제네바로 귀환한 1541년에 설립되었다. 컨시스토리는 제네바의 치리법원으로 12명의 평신도와 12명의 목회자로 구성되었는데, 12명의 평신도는 소의회에서 2명, 60인 의회에서 4명, 200인 의회에서 6명이 선출되었으며, 12명의 목회자는 제네바 시의 목사들이었다. 컨시스토리는 행정장관 중 한 사람이 의장을 맡았으며, 서기와 소환 책임자를 두고 있었다. 컨시스토리는 매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모여서 제네바 시에서 일어난 범죄나 나쁜 행실에 대해 심리하여 공적인 질책에 해당하는 충고(remonstrance 혹은 admonition)를 하였다. 이 충고에는 공적인 용서가 따랐는데 이것은 로마 가톨릭의 고해성사 때에 신부의 사면 선언과 유사한 심리적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컨시스토리의 주례 모임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있다. 컨시스토리의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손으로 더욱이 고대 불어로 속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비하여 학자들의 충분한 주목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전 연구들은 1853년 제네바의 골동품 수집 연구자였던 Frédéric-Auguste Cramer에 의해 작성된 사본들에 의존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크래머의 사본들은 많은 결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사본들은 양에 있어서 컨시스토리 기록 전체의 5% 밖에 되지 않는다. 크래머는 고문서 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잘 읽을 수 없는 부분은 그냥 생략해 버렸고, 게다가 그는 일상적인 대부분의 사례들은 무시해 버리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사례나 엄하게 처벌된 사례들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마치 컨시스토리가 엄격한 종교 재판소인 것 같은 왜곡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킹든과 그의 동료들이 제네바의 공문서 보관소(Geneva State Archives)에 잘 보존되어 있는 컨시스토리의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칼뱅 당시 컨시스토리는 강제적인 잔인한 재판소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교육과 목회 상담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 기구였음이 밝혀졌다. 1542년부터 칼뱅이 죽은 1564년까지의 컨시스토리의 기록들은 현재 21권으로 정리되어 미시간의 칼뱅 신학교에 위치한 칼뱅 연구소인 헨리 미터 센터, 프린스톤 신학교 도서관, 위스콘신-메디슨 대학,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류 대학에 컴퓨터 자료화되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1권은 최근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47) 이 새로운 자료들은 제네바에서의 반성직주의(anticlericalism)나 이혼에 관한 새로운 연구로 선을 보이고 있다.48) 새로운 연구에서 나타나는 칼뱅은 독재자나 신학자라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목회자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자였고, 영혼들을 돌보는 목회자였다.49)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로서의 칼뱅
파거의 책 『칼뱅: 그의 전기』는 다른 칼뱅 전기들과 비교할 때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는 칼뱅을 성서 주석가로 본 것이고 둘째는 칼뱅을 교회의 교사로 본 것이다. 교회의 교사라는 칭호는 보편 교회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헌을 한 가르침을 편 사람들에게 수여된 영예로운 명칭이다. 파커는 칼뱅을 단지 개신교의 개혁주의 전통을 수립한 사람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교회가 공유할 만한 보편적 기독교 신앙의 해설자로 보았다. 존 맥닐(John T. McNeill)도 1973년 이미 “칼뱅: 교회의 교사”(John Calvin: Doctor Ecclesiae)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한 바가 있다.50) 최근 가녹지(Alexandre Ganoczy), 맥도넬(Kilian McDonnell), 오린(J.C. Olin)과 같은 로마 가톨릭 학자들까지도 칼뱅의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칼뱅이 단순히 개신교회를 위한 개혁자가 아니라 보편 교회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51)
보편 교회의 교사로서의 칼뱅이라는 맥락 안에서 칼뱅의 교회, 목회, 그리고 성례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칼뱅의 성찬에 대한 이해를 다룬 저작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인 성찬이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다른 어떤 기독교의 신조나 예전보다 더 신학적 논쟁의 요소였기 때문이다.”52) 제네바의 칼뱅과 취리히의 불링거 사이에서 체결된 『취리히 합의』(Consensus Tigurinus)에 대한 폴 로렘(Paul Rorem)의 상세한 연구는 성례 논쟁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을 통해 두 신학자 사이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잘 포착함으로써 칼뱅 연구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것은 제네바의 교회와 취리히의 교회를 일치시키기 위한 칼뱅의 노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53) 브라이언 게리쉬(Brian A. Gerrish)의 『은혜와 감사』(Grace and Gratitude)는 칼뱅의 성찬론에 대해 주제별로 검토하고 있다.54) 그러나 그는 칼뱅 신학의 역사적 맥락이나 칼뱅의 성찬론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리처드 뮬러도 지적했듯이 게리쉬는 놀랍게도 실제 칼뱅의 성찬론과 다른 교리 형성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던 마틴 부처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게리쉬는 멜란히톤의 가르침과 칼뱅의 가르침을 비교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55) 이것은 게리쉬가 칼뱅의 사상을 교리적으로 고찰하기만 하지 그 역사적 맥락은 외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칼뱅의 성찬 신학에 대한 토마스 데이비스(Thomas J. Davis)의 최근 연구는 칼뱅의 성찬 신학의 발전 단계들을 밝히고 있다.56) 먼저 데이비스는 『취리히 합의』를 칼뱅 성찬론의 “해석학적 필터”(hermeneutical filter)로서 검토한다. 그 다음 세 장에 걸쳐서는 1536년부터 1557년까지의 칼뱅의 성찬론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칼뱅의 성찬론은 불완전하고 가끔은 모호한 개요로부터 보다 통일성 있는 체계로 통합되어 가는 큰 개요”57)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중요한 연구는 크리스토퍼 엘우드(Christopher Elwood)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칼뱅주의의 성찬론과 16세기의 정치 사회적인 논쟁들 간의 관련성을 찾아내려고 하였다.58) 엘우드는 칼뱅주의의 성찬론을 16세기 프랑스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맥락 안에서 검토한다. 이러한 접근은 칼뱅 연구에서 하나의 정당한 방법론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칼뱅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오늘날의 신학적 관심을 과거에 투영하기보다는 16세기의 다양한 상황 안에서 칼뱅을 이해해야만 그를 올바르게 그리고 정당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부각되는 또 하나의 칼뱅 상이 교회일치 추구자로서의 모습이다. 오랫동안 16세기는 교회분열의 시기로만 취급되어 왔으며, 칼뱅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의 거룩한 보편 교회를 깨뜨린 사람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칼뱅이 실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면 그가 교회일치를 얼마나 열망하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칼뱅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칼뱅주의의 가르침에 경도되어 칼뱅을 교회분열의 주범 중 한 사람으로만 취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에큐메니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칼뱅의 교회일치 추구라는 주제도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교회일치 추구자로서의 칼뱅에 관심을 가진 선구자는 미국의 저명한 칼뱅 학자인 맥닐(John T. McNeill)이다. 맥닐은 그의 책 Unitive Protestantism에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교회 일치를 위한 열망과 활동을 폭넓게 다루면서, “기독교 일치의 이상은 개신교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였다”59)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칼뱅이 분열된 개신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개혁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칼뱅이 교회일치를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지는 않았다. 칼뱅에게는 진리와 신앙이 일치와 평화보다 더 중요한 원칙이었음은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일치의 범위는 동일한 신앙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개신교회에 국한되었으며, 로마 가톨릭이나 급진적 개혁자들은 여기서 배제되었다. 맥닐에 이어서 칼뱅의 교회일치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물은 네덜란드 학자인 Willem Nijenhuis의 『칼뱅의 에큐메니즘: 칼뱅과 그의 서신을 통해 살펴본 교회일치』이다.60) 이 책은 칼뱅이 개신교의 울타리 안에 함께 있던 츠빙글리주의자들, 루터주의자들, 그리고 영국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교회일치라는 이상을 추구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책의 부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칼뱅의 서신에 주로 의존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는 베버(Otto Weber)가 칼뱅의 교회일치에 대한 두 논문을 발표하였다.61) 베버는 이 논문들에서 “교회일치에 대한 추구는 칼뱅 사상과 활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62)고 주장하였다. 이들 외에도 스위스 역사학자인 Gottfried Locher, 프랑스의 칼뱅 학자 Jean Cadier도 칼뱅과 교회일치에 대한 글을 발표하였으며,63) 영어로 된 논문들도 W. Standford Reid, T.H.L. Parker, John Kromminga 등에 의하여 발표되었다.64)
그 후 한동안은 이 주제가 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으나, 1980년대에 와서 칼뱅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 대두되면서 교회일치 추구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65) 이러한 최근의 흐름은 칼뱅이 로마 가톨릭과 급진적 개혁자들의 양 극단을 피하고 중도의 길(via media)을 취함으로써, 당시 흩어지고 분열되었던 개신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칼뱅과 교회일치에 대한 연구의 깊이와 폭을 더하기 위해서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주제들을 제시해 본다면 “교회일치에서 칼뱅의 원칙들,” “교회일치에 있어서 칼뱅과 부처의 차이점,” “칼뱅과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 “성찬 논쟁에 나타난 칼뱅의 중도적 입장,” “칼뱅과 ‘취리히 합의’,” “칼뱅과 멜란히톤의 관계,” “칼뱅과 엄격한 루터주의자들의 논쟁점,” “칼뱅과 영국 교회” 등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교회일치 추구자로서의 칼뱅 상은 특별히 교회분열의 상처가 깊은 한국의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일치가 화두가 되어 있는 이때에, 칼뱅이 과연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었고 어떤 태도로 접근했는지를 그의 글과 활동을 통해 밝히는 것은 비단 칼뱅 학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교회 일치운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본다.
맺는 말
칼뱅 연구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최근의 흐름들은 미국 칼뱅 학회 모임들의 주제들을 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칼뱅 학회의 주제들은 “칼뱅과 영성”(1995년), “칼뱅과 교회”(2001), “칼뱅과 목회자회”(2003)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미국 칼뱅 세미나의 주제도 “칼뱅과 성서 해석”(2002)이었다. 칼뱅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들은 최근 여러 지역의 공문서 보관소의 일차 문헌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 16세기의 문헌들에 근거한 연구는 구체적인 지역들과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가능케 하여 풍성한 성과를 낳고 있다. 최근 칼뱅 연구의 다양성과 복잡성 때문에 칼뱅 연구가 부스마의 표현대로 “심연”(abyss)과 “미궁”(labyrinth)으로 빠질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6세기의 역사적 맥락과 문헌 안에서 ‘역사적 칼뱅’을 찾으려고 하는 힘겨운 노력은 계속되어야만 하고 또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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