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칼빈의 신학 속의 ‘인문주의’는 무엇인가
이      름: 오형국
작성일자: 2006.07.24 - 13:01
칼빈의 신학 속의 ‘인문주의’는 무엇인가?
숭실대 오형국 교수, 21일 한국개혁신학회에서 논문 발표
  
 
 
▲종교개혁자 존 칼빈
 
칼빈은 1509년, 프랑스 북부의 노용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 오를레앙, 부르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인문주의’와 인문주의 학자인 ‘에라스무스’의 찬양자가 됐다. 그 예로, 그는 1532년 자신의 첫 저서로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관용론>에 관한 주석을 출판하기도 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칼빈의 회심 이후, 인문주의적 교육이 칼빈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의 배경에는 ‘인문주의’가 ‘인본주의(人本主義)’란 번역어를 함의하듯, 종교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인간중심의 세속주의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한국개혁신학회 제64회 정기학술발표회에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오형국 교수는 “칼빈이 인문주의자란 말은 매우 과격한 표현이지만, 칼빈의 신학은 인문주의의 내용보다는 형식, 즉 인식론과 문헌학적 방법론, 수사학적 언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 교수는 “실제로 인문주의는 ‘중세종교’를 부정하려는 운동이 아니라, 중세의 학문 즉 스콜라주의를 극복하려는 신학문사조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먼저 칼빈은 신앙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정의했다. 이는 신학의 출발점을 ‘신 또는 신성(God or God’s nature)이란 무엇인가?’란 중세적인 신학방법에서 탈피해, ‘우리는 신 또는 신성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란 물음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이러한 칼빈의 지식론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식론적 전환과 궤를 같이 하는 방법인 동시에, 성서에서 발견되는 지식 개념과 조화를 이룬다”며 “또한 칼빈의 성서 해석은 문헌학적 훈련에 의해 가능케 된 것으로, 성서해석의 누적된 오류들을 제거하고 성서의 본래의 의미를 발견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오 교수는 “칼빈은 수사학의 학문정신과 언어적 수련은 성서와 신학의 목적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며 “신학과 수사학의 결합은 이미 고대교회 이래로 기독교회의 전통이었으며, 칼빈의 수사학은 이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오 교수는 “칼빈은 종교개혁의 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견지한 인문주의자였다”며 “이러한 점에서 칼빈은 신학적 인문주의의 가능성을 예시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근혜 기자 khkim@ch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