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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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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오성종, 예수의 영성은 무엇이며 왜 예수의 영성을 추구해야하나/안명준논평
원문 다운

http://theologia.co.kr/cgi-bin/spboard/board.cgi?id=b4&action=view&gul=21&page=1&go_cnt=0



예수의 영성은 무엇이며 왜 예수의 영성을 추구해야하나


오성종 (칼빈대 교수, 신약학)

1. 기독교영성과 ‘예수의 영성’

  최근에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영성’의 주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경향이다. ‘영성’의 이름이 붙여진 운동들과 연구단체들이 이미 여러 개가 생겨났다. 다양한 연구 및 훈련과정들에 참여하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영성을 주제로 한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고 국내의 연구가들의 저서들도 상당히 나와 있기도 하다. 기독교영성에 관한 개론적인 안내서로 다음의 연구서를 참조 바람: 정용석/이후정/유해룡/지형은/최형걸/홍성주, 「기독교 영성의 역사」 (은성, 1997). 이 책 끝(307-317)에는 기독교 영성에 관한 주요 문헌들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기독교 출판물을 취급하는 인터넷 몰에 들어가 ‘영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제목을 찾아보면 금방 300여권의 책이름이 뜨는 것을 보게 된다.

  한편 기성 교계, 특히 보수신학계에서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눈으로 이러한 한국교계에서의 새로운 바람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성”이라 하면 그것은 본래 중세시대부터의 가톨릭의 전통인 데, 왜 갑자기 개혁주의 전통에 생소한 사상과 행동에 대하여 유행을 따르는 식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느냐 하는 비판의 목소리다. 사실 주의를 환기시키는 목소리는 일리가 있는 면이 있다고 보겠다.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새로운 사상과 영적 운동의 도입은 생산적이지 못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특정의 교회와 교리의 전통을 보수(保守)하는 것만을 능사로 할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향은 바로 과거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 카톨릭교회가 범하였던 오류가 아니었던가! 지상의 어느 교회, 어느 교리적 전통도 무오(無誤)하지 않으며 완전하지도 않다. 기본적 교리적․신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항상 열린 자세로 배우고 반성하고 개혁하고 발전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보겠다.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본래 어느 전통에서 나왔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제 그 용어를 가지고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지,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들의 사상이 성경의 교훈에 근거한 것인 지, 그리고 열매가 좋으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여기서 잠간 전(前)장신대 학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창환 박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주최 전국 신학교수 세미나에서 주제강연을 통하여 제시한 신학교육 개혁안 「21세기를 향한 신학교육」의 일부를 인용한다.

    “지성의 발달로 인해 영의 문제를 점차 소홀히 해왔다. 전세계적으로 구미에서 기독교가 퇴색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영성을 무시하고 지성에만 치우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고, 하나님에 대한 지성적인 연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체험과 교통으로 깨닫는 것이기에 영적 체험을 무시한 신학교육은 결국 피상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21세기라고 해서 신학함의 대상이 달라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일 것이니 어디까지나 영성훈련에 더욱 중점을 두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챤 신문」, 1995. 7. 22, 12. 최근 장신대와 한신대, 감신대 등 많은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에서는 “영성신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각기 이 방면에서 가르치면서 활동하고 있다. 신학교육에 있어서의 영성신학의 도입과 강조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Regent College가 가장 특출하다. 이 학교는 이 시대 최고의 영성신학자들인 James Houston, Eugene Peterson, James Packer 등이 설립하여 가르쳐온 신학교이다. 특기할만한 일은 세대주의 신학의 본산지로 성경연구와 강해설교가 전부인양 가르쳐 온 미국의 Dallas 신학교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영성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 신학교에서는 4년간의 Th.M. 과정 중 첫 두 해 동안은 매 학기마다 “Spiritual Formation”이라는 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되어있으며 1학년 첫 학기에는 “Spiritual Life”라는 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참조: Academic Catalog 96-97 of Dallas Theological Seminary, 17.


구미 교회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회의 쇠퇴와 영성의 퇴보 현상이 한국교회와 한국신학교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老)신학자의 간절한 소원을 우리도 함께 나눠 가져야 할 때라 본다. 더욱이 사회적 신뢰도가 현저하게 추락하고 있고 많은 지도자들의 도덕성과 영성이 흐려져 있는 요즈음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우리의 그러한 심정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다.

  현재 개신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영성”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것인 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특히 그 단어가 종종 너무 광범하게 쓰이고 있기도 하고 언뜻 보면 본래 그 출처가 되는 카톨릭 전통의 냄새가 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영성운동 가운데 균형을 잃고 치우친, 약간 위험스러운 경향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치우친 경향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종성, “예배에 있어서 경건과 영성에 대한 신학적 고찰,”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편, 「기독교 영성과 예배」(숭실대학교 출판부, 1998), 124-126 참조.

  그러나 오늘날 “영성운동”을 하는 이들은, 신비주의적이고 은사주의에 치우친 일부의 예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말해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성령충만한 삶을 표준으로 인정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히 본질적으로는 대동소이한 영성개념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카톨릭 영성학자인 오만(Jordan Aumann) 「영성신학」, 이홍근 역 (분도출판사, 1994), 18.
은 “엄격한 의미로 유일하고 참된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그분을 통하여 삼위 하나님께 이르는 영성이다“고 말한다. 영국의 신약학자이면서 영성신학에 관심이 많은 스티븐 바턴(Stephen C. Barton)  「사복음서의 영성」, 김재현 역(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8-9.
은 영성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느낌과 그 임재의 빛 속에서 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이해하면서 이러한 삶은 “외형적으로 예수를 통해 계시되고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아래의 삶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건전한 영성운동가들과 영성신학자들의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오성춘 교수 「영성과 목회」(장신대출판부, 1994), 68-76.
와 함께 기독교 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사중적(四重的) 특성을 말할 수 있겠다: 1. 그리스도의 삶의 구현, 2.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 3. 하나님 내지는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삶, 4. 하나님의 선물. 기독교영성에 대한 적절한 정의와 설명에 대하여 특히 다음의 논문을 참조 바람: Dennis L. Okholm, “Spirituality”, Baker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 ed. by Walter A. Elwell (Grand Rapids, Baker, 2000), 746f.
 그래서 우리는 “영성”이라는 단어 아래 추구되고 있는 다양한 배경의 영성운동들에서, 부분적인 확실한 교리적․실천적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중심성과 성령의 역사로 이뤄지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삶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카톨릭 전통의 이냐시오(Ignatius) 영성 및 수도원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에 “영성”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꺼리는 이들도, 중세 수도원의 기본 이상(理想) 역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imitatio Christi)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열린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참조: 최형걸, “수도원의 역사”, 「기독교 영성의 역사」(정용석 등 공저), 245-247.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영성은 모름지기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성운동이 기본적으로 건전한 것이며, 예수의 영성을 읾어버린 모든 영성운동과 모든 교회, 교파, 그리고 교리적 지식은 아무리 정통과 전통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바른 것이 못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바로 정통적 교리와 전통적 의식은 굳게 지키고 있지만, 바로 예수의 영성을 온전히 형성하기를 추구하지 못한 채 외형적 교회성장에 몰두하다가 결과적으로 여러 병적 현상들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 예수의 영성 ―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럼 ‘예수의 영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다.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 신자는 그를 신자의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한다. 또 신자는 인간인 동시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으로서, 즉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면서도 한 인격을 가지신 독특한 분으로서 어떤 영성을 가지신 분이셨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의 영성은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영성

  영성신학적 측면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다룰 때, 먼저 그의 하나님의 외아들 되심을 고려하여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즉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성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고”(요 1:18; 17:5) 본질적으로 성부와 동등하신 분으로서(빌 2:6; 요 1:1; 요일 5:25) 성부와 하나가 되셨다(요 10:30; 17:22). 그러한 관계 가운데 계신 성자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고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는”(요 8:29),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사랑하시는 아들”이셨다(막 1:11; 마 17:5).
  특히 성자께서는 그가 인성을 취하시고 세상에 오셨을 때 그리고 그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을 때, 그는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셨으며” 성부께 절대적인 순종을 하셨다(빌 2:6-8; 히 5:8).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버림받음과 저주받으심을 택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뜻을 버리고 성부의 뜻을 따르셨다(막 10:45; 14:36; 15:34).
  성자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 새벽에(막 1:35) 그리고 산기도 하시고(눅 9:28; 22:39)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데(눅 3:21; 6:12), 특히 십자가상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눈물로 간구하셨다(눅 22:41-44; 히 5:7). 성부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것(행 2:24; 3:15; 4:10)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것과 그의 경외하심 때문”이었다(히 5:7). “육신이 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자기를 낮추시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요 1:14; 빌 2:6-8)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빌 2:9-11; 행 2:36)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마 28:18) 것이다.

  (2) 구주와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영성

  인간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으며”(히 5:8-9a) 그럼으로써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던”(5:9b) 것이다. 그는 고난을 받으사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다”(히 2:21). 그는 먼저 고난과 십자가 죽음에의 길을 가시기로 하신 구주로서 당신을 믿는 제자들에게 고난과 희생을 무릅쓰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셨다(막 8:31-38).
  구주 예수께서는 서로 높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은 오히려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10:45)고 말씀하셨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는데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요케 되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고후 8:9). 과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서 다윗의 자손 메시아로 세상에 태어나실 때 예수님은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나시되(눅 1:32-33,48-53; 2:24) 갓난 아기로서 구유에 뉘이셨으며(2:7,12), 장성하여서는 친히 목수로 생계를 담당하셨고(막 6:3), 메시아로서 공생애 사역시에도 마땅한 거처 하나 없이 다니셨던 것이다(마 8:20).
  신자들이 고난 중에 인내하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는 예수께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기”(히 12:2-3)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신(마 5:44) 예수님은 당신에게 모욕하고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성부 하나님께 도고하시면서 참으시고 죄인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눅 23:34; 요 13:21-27; 벧전 2:21-24; 롬 5:6-8; 딤전 1:12-16; 히 12:2-3).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예수께서는, 어렸을 때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 의식을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부모에게 복종하여 섬기셨다(눅 2:51). 또 그는 예루살렘에 메시아의 권위와 영광을 가지고 입성하시면서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셨으며(마 21:1-11) 극심한 멸시와 수치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시는 길을 가셨는데(막 10:32-34),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로 다투는 빌립보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과 동등하신 영광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까지 낮아지심을 본받으라(빌 2:1-8)고 권면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자들과 불치병 환자들, 장애인들, 소외된 자들, 죄인들, 여인들, 과부들, 어린아이들, 이방인들을 받아주셨고 제자들에게 이런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한테 긍휼을 베풀라고 촉구하셨다(막 1:40-42; 10:13-16; 마 8:5-13,14-17; 눅 7:11-16,36-50; 8:2-3; 10:30-37; 14:21; 16:19-31; 17:16-19; 18:1-14; 19:1-10; 요 13:29).
  세상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하늘에 보상이 쌓이는 것을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하신(마 5:10-12)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었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던”(히 12:2)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양면에서 완전한 삶을 사셨고 완전한 본을 보여주셨다. 특히 그의 십자가 고난과 처형을 당하실 때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으로서의 인격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그가 가르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셨다.  

  (3) 생명과 주님으로서의 예수를 인격적으로 경험하기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고 그의 성품과 삶이 어떻게 완전하시고 성결하셨는지를 안다는 것과 그의 영성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과는 서로 다른 문제임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성인군자의 인품과 삶을 흠모하며 닮아가는 삶을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은 같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하여 비교하는 일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인간인 그 누구를 추종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일 있겠지만, 인간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닮아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인간 세계에서 상상할 수도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 사실에 대하여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오 우리의 삶과 사역의 주인이시오 능력의 원천이 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거듭난 신자가 주님과 연합되어 주님의 새 생명의 삶을 산다(갈 2:20; 롬 6:5) 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말할 때, 전혀 새로운 가능성의 현실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도덕적 교훈을 따라 완전하고 고상한 인격을 형성시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차원 이상을 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인생의 스승이나 지도자 차원 이상의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신자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요 14:6)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는(고전 1:30) 그런 분이시다.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신자에게 근본적이고 존재론적인 새 창조의 변화를 일으켰으며(롬 6:3-11; 고후 5:17) 가치관의 대전환을 가져왔다(갈 2:20; 빌 3:7-14).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하는데 아래에서 더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다.

3.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수의 영성을 추구해야 하나?

  그런데 왜 꼭 예수의 영성이어야 하나? 구약에도 우리도 똑 같은 인간이면서도 경건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약점과 허물이 있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을 받지 않았던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사무엘, 다윗 등등. 히브리서 11장에서 그들을 바로 우리가 참고하고 본받아야 할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로 추천하고 있지 않은가. 그밖에도 야고보서 5장(5:11,17-18)에서 본받으라고 칭찬하고 있는 욥의 인내와 엘리야의 간구가 있지 않은가.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설교자들과 부흥사들이 즐겨 인용하고 있는 성경의 영성적 인물들은 압도적으로 위에서 예로 든 구약 중의 신앙의 인물들이다. 특히 족장들과 다윗은 설교 예화 중 즐겨찾기 첫 번째 대상이 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순종을 통해 지상적 번영과 형통의 ‘축복’을 받았던 전형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신약시대에 속해 있는 우리가 구약시대의 신앙의 인물들의 영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 다루는 것이 적절할까? 현재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지나치게 구약적인 영성을 말하고 있지나 않은지 또는 지나치게 율법적인 적용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점검해보아야 하리라 본다. 오히려 설교와 교회교육에서 예수의 영성을 훨씬 더 강조하고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옳을 것 같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신약시대의 신자와 교회를 위해서는 구약 인물들의 영성에 대해서는 보조적으로 다룰 것이며 반면에 예수의 영성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영성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약신학적으로 좀 더 구체적인 근거제시가 필요할 것 같다.

  (1) 구약시대의 “영성”?

  위에서 우리는 ‘영성’이라는 용어 사용과 개념이해에 있어서 언급하면서 기독교 영성의 4중적인 본질적 특성, 즉 1. 그리스도의 삶의 구현, 2.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 3.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삶, 4. 하나님의 선물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기독교영성’은 엄밀하게 말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세상에 오시지 않은 시대였고 성령께서 구약시대 성도들 속에 내주하시어 역사하시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구태여 말할 수 있다면 모형론적으로 또는 상징적, 예언적인 의미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후자의 의미에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아래와 같이 구약시대의 영성을 신약적, 본래적 영성의 시각에서 생각해보자.
   ① 구약시대 성도들은 주변 이방인들과는 구별되는, 높은 수준의 경건과 의와 윤리를 특히 율법언약을 통하여 요구받았다(출 19:3-8; 24:3-8). 그러나 극소수의 대표적인 경건한 성도들 ― 히 11장에 나오는 성도들과 같은 이들 ― 외에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② 모든 선민에게 거룩함과 깨끗함이 요구되었다. 특히 제사장, 레위인들에게 있어서는 고도의 거룩함과 깨끗함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그 성결은 많은 부부은 외면적이고 의식적인 면에 치중된 그런 것이었다(레 11:44-45).
   ③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결과 윤리의 기준은 십계명을 중심한 모세의 시내산 율법에 구체적으로 수많은 계명들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 이 율법은 법적(法的)이고 구속(拘束)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 데,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몽학선생(蒙學先生, cf. 갈 3:24)”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④ 하나님과의 교제 및 하나님께의 예배(개인적 기도 포함)는 소수의 선지자들(말씀 선지자와 성전 선지자 포함) 외에는 성막/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통하여 행해지는 간접적이고 의식적(儀式的)이며 상징적인 행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⑤ 이스라엘 민족 중심이었고 타민족에게는 자주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멸절과 보복을 행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7족속과 아말렉 족속의 남녀노소 모두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실행하였다(신 7:1-2, 20:16-18, 25:17, 삼상 15:2-3). 에스더서는 유대 민족의 원수 하만 등 남녀노소 7만 5천 명이 아달 월 13일과 14일에 유대인들에 의하여 도륙되었고 유대인들은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절기(= 부림절)를 지키며 즐거워하였다(7-9장)는 역사를 보도해주고 있다.

   ⑥ 축첩, 여성차별, 이혼, 노예제도, 체벌(體罰) 등이 허용되었다.
   ⑦ 시편은 구약 중에서 좀 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기도와 찬송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시편의 저자들은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고 대부분 다윗이나 아삽, 고라 자손 등의 성전 선지자들이었다. 또 시편에는 많은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저주의 기원들 시 5:10; 10:15; 28:4; 31:17; 54:5; 58:6-7; 59:10-11; 69:22-28; 79:12; 83:9-18; 104:35; 109:6-20; 125:5; 137:7-9; 139:19-22; 140:9-11.
이 들어있다.
   ⑧ 구약시대에도 회개와 영적 각성 운동들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상숭배를 버림, 성전 수리, 유월절․안식일․십일조․이방인과의 혼인 금지 등의 계명 준수 등을 실천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창 35:1-4(야곱과 자녀들), 대하 31장(히스기야), 33:14-16(므낫세), 34-35장(요시야), 스 9-10장(에스라 때), 느 10장, 13장(느헤미야 때).

   ⑨ 에드먼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주장이나 실은 역사와 신약의 증언에 모순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세주가 되십니다. 구약의 신자들은 장차 올 그 구원을 기다리면서 확신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바로 신자들로서의 모범 ― 결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진 의미에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산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 인 것입니다.” E. P. Clowney, “어떻게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전할 것인가?” 윤영탁 역편, 구약신학 논문집(제 6집) (성광문화사, 1992), 60쪽.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구절로 이해하고 있는 많은 구약성구들은, 소수의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의미로 이해되거나 선포된 것이 아니며 선지자들은 그러한 의미의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브라함이나 다윗,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이 받은 계시나 깨달음과 믿음을 보편화시키는 것은 역사의 현실을 무시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cf. 벧전 1:10-12) 예를 들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는 유명한 창 15:6(갈 3:6과 롬 4:3에서 인용)이나 사 53장(마 8:17과 요 12:38, 행 8:32-33, 롬 10:16, 벧전 2:22-25에서 인용)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 예언구절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 우리는 시대착오적인(anachronistic) 해석과 적용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⑩ 한편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구원이 모형으로 나타나 있음을 인정해야 되는 것처럼, 마 2:15; 요 1:29; 2:19-22; 19:14,36; 롬 5:12-21; 고전 5:7-8; 골 2:16-17; 히 7:1-10:22; 벧전 1:19; 3:20-21; 계 5:5-6.
 구약의 인물들의 삶이 신약시대 신자들의 신앙생활 내지는 영성생활의 모형적 교훈 - 모범 또는 경계 - 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예: 하와(고후 11:2-3), 가인(요일 3:12, 유 11), 아벨(히 11:4), 에녹(11:5), 노아(11:7; 벧후 2:5-6), 아브라함(롬 4장; 히 11:8-10,13-19; 약 2:21-24), 사라(벧전 3:5-6), 롯(벧후 2:7-9), 롯의 아내(눅 17:32), 이삭(갈 4:28-31; 히 11:20), 야곱(11:21), 에서(12:16-17), 요셉(11:22), 욥(약 5:11), 모세(히 11:24-28), 발람(유 11), 광야시대의 이스라엘 백성(고전 10:1-13; 히 3:7-4:11; 11:29-30), 라합(히 11:31; 약 2:25), 선지자들(마 5:12; 약 5:10).
 그러나 실은, 하나의 미드라쉬(midrash)로서 독특한 기능을 하는 히 11장의 경우 히 11장의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은, 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어서 본을 보인 자들이 결코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신약시대 신자들이 교훈을 받을 측면이 있다는 뜻에서 예거된 것이다.
와 유대인 신자들을 위해 쓰여진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를 제외하면, 구약의 유명한 성도들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모범으로서 예거(例擧)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약 전체에 있어서 오히려 신자의 모든 삶에 있어서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에서 찾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구약의 인물들 내지는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실패하였고 징계를 받았는지 그들의 행동과 삶과 그들에게 이뤄진 사건들이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본보기”(참조: 고전 10:6,11, τύποι/τυπικώς)가 되어 나름대로의 모형적 교훈(롬 15:4!)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쓴 책으로 예를 들면: 박철수, 「모세오경」 (영성, 1998).


  (2) 영성 문제에 있어서의 구약시대와 대조되는 신약시대의 본질적 특성

  위에서 우리는 신약시대와 비교된 구약시대의 성결과 경건의 특징들을 예거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영성을 주제로 논할 때 신약시대의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구약시대의 성도들에 비하여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차이와 차별이 있음을 확실히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 중요한 특징을 말한다면:
  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계시를 주셨고 마 5:17,21f,27f,33f,39f,43f; 11:25-27; 요 1:18; 히 1:1-2; cf. 갈 1:12-16; 엡 3:2-11.
 종말론적 구원자와 주(主)와 그리스도가 되셨음. 눅 2:10-11; 16:16; 요 1:10-17; 행 2:36; 4:12; 빌 2:6-11.

  ②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놀라운 종말론적 구원의 축복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현세에서 누리고 있으며 또 장차 내세에 더 영광스런 구원의 축복들을 누리게 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음(롬 5:1-11; 엡 1:3-14; 2:7).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의롭게 됨”과 “거룩하게 됨”을 받은 자들이며(갈 2:16; 고전 6:11; 엡 1:7; 골 1:14)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 고전 1:2의 “거룩하여진 자들”은 원문에서 ἡγιασμένοι(“헤기아스메노이”)인데 완료분사 수동태로 이미 과거에 거룩해졌고 현재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거룩해짐의 효력과 상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며 성도라 불리는” 자들이다(1:2). 이 축복은 자신이 행한 바 율법의 의 또는 어떤 의로운 행실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물 되심에 근거하여 단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받아 누리게 된 것이다(롬 3:21-25; 5:1; 고후 5:21; 엡 2:4-10; 참조: 눅 7:47-50).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인”과 “성도”로 변화된 자들뿐이 아니라 또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자들이다. 곧 “옛 사람”이 처리되고 “영원한 생명” 곧 “새 생명”을 얻어(요 3:36; 5:24; 엡 2:1-5; 골 2:12; 3:1-4) “새 사람”(롬 6:3-6; 골 3:10)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고후 5:17) “거듭난” 자가 되었으며(요 1:13; 3:3-5; 벧전 1:3,23; 딛 3:5)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벧후 1:4).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다(롬 6:5; 골 3:1-4; 갈 2:20). 그들은 또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냄”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심”을 받았다(골 1:13). 그들의 대적자 마귀와 그의 세력은 무장해제되고 패배한 자들이 되었다(요 12:31; 골 2:15; 히 2:14-15). 신자는 속박하는 율법에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갈 3:23; 4:4; 5:1; 골 2:14; 롬 6:14). 그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이며(빌 3:20)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요(롬 1:6; 고전 3:23)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고전 1:30)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게 하심”을 받은 자들이다(엡 2:6). 그들은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종말론적인) 복의 유업, 곧 “빛 가운데서의 성도의 기업”을 이미 누리고 있으며(갈 3:6-4:7; 히 9:15; 행 26:18; 골 1:12), 또 한편으로는 영원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성도의 기업”이 우리말 번역어 “유업(遺業)”과 “기업(基業)”은, 원문으로는 κληρονομία(“클레로노미아”)인데, 장차 정해진 때가 되었을 때 받아 누리게 되어 있는, 개인에게 할당된 일정한 몫을 뜻한다. 누가복음 12:13에서는 같은 단어가 “유산”으로 번역되었다. 영어번역에서는 “inheritance”(NIV)로 번역되는 단어다. 신약에서는 대부분 전의(轉義)된 의미로 종말론적인 구원의 축복을 가리켰으며, 현재적 종말론과 내세적 종말론의 양면에 다 같이 적용시켰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자들이며(벧전 1:4, 엡 1:18, 요일 3:2), 그리고 이 땅 위에서도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받지 않고 받아 누리도록 보장받고 있는 자들이다(롬 8:31-39). 그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고(벧전 2:5,9) 그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고후 1:21-22; 엡 1:13-14; 고전 6:·9) 자들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되어(갈 3:26; 엡 1:5; 요 1:12; 요일 3:2) 하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처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이 되었으며(눅 11:2; 갈 4:5-6; 롬 8:15), 그래서 천사들이 신자들을 수종드는(신 1:14), 그런 높고 귀한 신분을 얻게 된 것이다. 이같은 풍성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엡 1:3-14; 딤전 1:14-17; 벧전 1:3-4).

  ③ 그리스도의 몸 마 16:18; 고전 12:27; 엡 1:23; 4:12,16; 5:30; 골 1:24.
과 신부(新婦)된 교회 고후 11:2; 엡 5:27; 계 14:4; 21:2.
, 교회의 성전됨과 교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거하심, 고전 3:16, 엡 2:21-22, 골 1:27.
 그리고 교회에 대한 봉사와 교회의 성숙에의 동참에 대하여 새롭게 계시됨. 롬 12:4-8; 고전 12:26-28; 엡 4:7-16; 5:23-27; 골 1:24.

  ④ 세계복음화가 실현되고 있음. 마 28:19-20; 막 13:10; 눅 24:47; 행 1:8; 2:8-11; 8:4-5,14; 9:15; 11:18; 13장-28장; 롬 1:5-6; 11:25; 15:16,19; 갈 1:16; 엡 3:8; 계 1:11.

  ⑤ 마귀(= 사탄)와 그 세력, 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계시. 마 25:41; 요 8:44; 행 10:38; 26:18; 고후 4:4; 11:2,14; 엡 2:2; 6:11-12; 히 2:14; 벧전 5:8-9; 요일 3:8; 5:19; 계 12:9; 20:2. 구약 히브리어 성경 중에서 마귀를 가리키는 단어인 “사탄”(ןטשׂ)은 모두 18회 나오는 데, 그 중 14회는 욥기의 첫 두 장에서, 나머지는 슥 3:1-2에서 두 번, 대상 21:1 한 번 나올 뿐이다.

  ⑥ 그리스도를 닮음(롬 8:29), 하나님의 성품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을 실천함(마 5:43-48), 온전한 성화의 삶이 모든 신자의 삶의 목표가 됨(살전 3:13; 5:23).

  (3)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추구할 영성: 그리스도 중심의 삶과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는 성장과 성화

   ① 복음서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바 예수께서 친히 교훈하신 말씀들을 먼저 찾아보자.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제자”로 부름받은 자들이며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행하는 자들이다 마 5:3; 7:24; 11:29; 28:19.
. 예수님은 갈릴리의 그의 첫 번째 제자들에게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모세의 율법과 대조시키면서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주장하는 당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선포하셨다. 막 10:1-12;  마 5:21-22,27-28,31-32,33-34,38-39,43-44; 7:28-29; 요 3:31-36.
 메시아 예수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취하러 온” 것임(마 5:17)을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보충한다거나 율법 속에 들어 있는 참 되고 깊은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낸다거나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키도록 한다는 그런 차원의, 말하자면 에스라나 세례 요한이나 선지자 중 하나의 역할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연 메시아로서 그를 따르는 자들이 의지할 새로운 계명들과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는 이라는 것이다. 마 5:17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한 논의와 해석의 바른 방향에 대해서는 특히 귈릭(R. A. Guelich)의 연구(『산상설교 상』, 배용덕 역 [솔로몬, 1994])와 헤그너(D. A. Hagner)의 주석(『마태복음 1-13』, WBC 성경주석 33상, 채천석 역 [솔로몬, 1999])을 참조 바람.

  제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추구하는 (율법준수의) 의(義)보다 나은 의를 행하는 자 되기 위하여 더 높은 차원의 의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여야 한다(마 5:20). 제자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를 쌓기 위해 더 나은 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메시아를 따르는 자들로서 이미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고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은 자들이 되었는데, 마 5:13-16,48; 6:1-4,6,9,14,18,26,32.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제는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의 이상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마 7:13-27)과 ‘양과 염소 비유’(25:31-46)에서의 경고는, 행함의 공로를 통하여 심판 때 구원이 최종적으로 판가름 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메시아의 “말을 듣고 행한” 자들인지 아닌지가 메시아의 참 제자와 거짓 제자에 대한 판결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16-20)는 말씀 역시 열매가 있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참된 선생들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고 열매가 없는 자들은 그 반대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새 시대를 살게 된 제자들은 이제는 하늘로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생명을 얻게 된다. 막 2:18-22; 마 7:25; 28:19; 요 6:63,68; 14:15,21,23-24.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보다도 당신과 같은 고차원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고 “새 계명”을 말씀하셨다(요 13:34-35). 따라야 할 참 선생과 지도자는 그리스도뿐이다(마 22:8,10). 그러므로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막 8:34-38; 10:28-30).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 요 3:31-36; 8:12; 10:25-28.


   ② 서신서와 요한계시록
  사도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신 목적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것”이다(고전 1:9).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롬 8:29).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회자로서 사명수행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목표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골 1:28-29) 내지는 성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닮아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게 하는 것(빌 2:5-16)이라고 고백한다. 신자의 모든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표준이 되셔야 한다. 살전 2:6(환난 가운데서 성령으로 기뻐함); 살후 3:5(인내); 고전 11:1(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고후 10:10-11(온유와 관용); 롬 15:1-7(약점이 있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기쁘게 함); 엡 3:17-19(깊고 넓고 높고 영원한 사랑); 5:2(희생적인 사랑); 5:25(아내에 대한 남편의 절대적인 사랑); 빌 1:8(사모함); 2:5-8(겸손); 골 3:15(마음의 평강).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골 3;17). 주의 일을 염려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독신자는 결혼한 사람보다 그 면에서 헌신적일 수 있으므로 더 나은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전 7:32-34). 신자의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한다(고전 1:30-31; 빌 3:3).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자기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갈 2:20). 바울 개인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은 “새 사람”이 되었다. 롬 6:3-6; 골 2:12; 3:1-4,10-11.
 신자 각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이뤄진 생명적 연합에 근거하여 매일의 삶 속에서 옛 사람의 성품과 행위와 습관을 벗어버리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엡 4:22-24; 골 3:5-8). 즉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사랑의 띠를 매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를 옷 입는” 성화와 성숙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골 3:12-14; 롬 13:12-14).
  또 바울은 아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거하시기 원한다”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드리며(엡 3:17),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므로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으라”고 권면한다(골 2:6-7). 바울은 자신의 모든 궁핍과 고난과 연약함 속에서의 능력있는 사역과 승리 생활의 근원은 그리스도의 능력임(고후 4:7-13; 빌 4:12-13)과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짐으로써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 풍성한 사역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간증한다(고후 4:10-12). 그리고 바울은 모든 신자의 경건과 봉사와 성화의 삶의 소망과 복음 사역자들의 소망은 오직 재림하실 그리스도와 심판 때에 이뤄질 보상임을 그의 여러 편지들에서 반복하여 강조한다. 살전 1:10; 고전 3:6-15; 4:1-5; 15:58: 16:22; 고후 5:10; 롬 6:19-22; 8:29; 13:12-14; 14:10-22; 고전 1:8; 7:34; 고후 11:2-3; 엡 1:4; 4:21-24; 빌 1:10; 2:16; 골 1:22; 살전 3:13; 4:3; 5:23; 담전 4:8; 6:14,17-19; 딤후 4:1-2,7-8.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흘리신 대속의 피를 통하여 속죄의 은혜를 베푸시며 승천하여 성도를 위하여 도고하시는 천상에 계신 영원하신 대제사장 되심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신자들은 그를 힘입어 하늘 지성소인 은혜의 보좌에 시시때때로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가 예배드리며 또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음을 교훈한다. 히 2:17; 4:14-16; 7:25; 9:14; 10:10,19-22.
 이에 덧붙여 예수께서는 죽음의 순간까지 가시는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그런 완전한 구주 되시므로 그 분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히 2:18; 5:7-9; 10:36-39; 12:1-3.

  ‘신약의 지혜문학’으로 불리는 야고보서에서는, 구약의 잠언처럼, 인간관계와 구제, 시험, 욕심, 고난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며, 기독론과 예수의 영성과 관련된 문제는 매우 드물게 언급하고 있고(참조: 2:1) 오히려 구약의 경건한 인물들인 아브라함과 라합, 욥, 엘리야와 같은 이들의 믿음과 인내와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새로워진 신분에 대한 확신 벧전 1:2-4,18-25; 2:9-10,24-25.
 및 내세의 소망과 심판을 대비하는 삶 1:5-9,13; 4:5-6,7,12-14,17-19; 5:4.
을 강조하면서 신앙 때문에 박해와 조롱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결한 삶 1:7,14-17; 2:1-2,4-5,11,21,24; 3:15; 4:1-2.
과 선행을 통한 구별된 삶 2:12,14,20; 3:1-2,6,11,13,16,17; 4:19.
을 살아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의 모범을 따라가는 삶 2:4-8,18-23; 3:18-22; 4:1-2,12-16.
을 권고하고 있는데,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교훈과 같은 정신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후서에서도 베드로전서와 비슷한 영성적 교훈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적(神的) 능력(곧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1:3),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적(神的)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기”(1:4) 때문데, 신자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해야” 한다(1:5-11). 신자는 또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할”(3:12) 것이며, “주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야”(3:14-15a)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8)고 하는 권면으로 편지를 끝내고 있다.
  요한서신에서도 요한복음에서와 같은 영성적 교훈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신자에게 영생은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으며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1:1-2), 그래서 우리가 성부와 성자의 교제를 가질 수 있게 된다(1:3).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행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2:3-6; 4:8,12-13,16).
  묵시문학에 속하는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 생활에 대한 교훈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의 대표인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1:9)로서, 모든 신자와 교회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심판 때를 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격려하며 경고한다(19:7-8; 21:2; 22:10-12,17-21).
  서신들에서도 신자의 구원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온전한 성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4.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의 영성을 배우고 닮아가는 영성적 내지는 성화의 삶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과 교제의 삶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신약의 교훈을 살펴보았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 양면적인 구원의 목적과 목표는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도 확인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과 교제의 삶을 통하여 온전한 영성적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목회의 근본적 목적을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세우는 것”(골 1:28)이며 이 사명수행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1:29)고 증거한다. 또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들을 불러 유언처럼 자기의 에베소에서의 목회사역을 회고하면서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 바울을 이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자기가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증언한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양적 외면적 교회성장을 추구하며 기복신앙적 설교를 하는 예가 일반적임을 생각할 때 신자 개인과 교회로 하여금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이면서 최선을 다한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가는 회복운동이 한국교회, 특히 목회자들에게서 강력하게 전개되기를 소망한다.










오성종 교수의 논문 “예수의 영성은 무엇이며 왜 예수의 영성을 추구해야하나”에                                      대한 논평

                                          안명준(평택대학교)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적인 온전함을 가지지 못한채 외형적 교회성장에 올인하다가 병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결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극복방안 (서울: 이컴비즈넷, 2006)
 설교에서 설교자들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지나치게 구약적인 영성을 말하고 있으며 또 지나치게 율법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동기에서 이 논문은 제목이 보여주는대로 예수님의 영성과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추구해야 가는지에 대한 연구는 시기에 매우 적절하고 그 연구의 가치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본 논문은 예수의 영성의 필요성과 예수의 영성의 특징 그리고 어떻게 영성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지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본문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그리고 성경적 근거를 풍성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논문은 철저하게 예수의 영성에 대한 성경적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논문에 나타난 내용데 대해 저자의 지극이 부족한 소견을 가지고 몇 가지 아쉬움을 먼저 언급한다.

첫 번째는 깊은 노력의 연구가 비 학술적 표현들로 인해 학문적 가치가 손상되어질 수 있다. 관주1번에 보면 “기독교 출판물을 취급하는 인터넷 몰에 들어가 ‘영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제목을 찾아보면 금방 300여권의 책이름이 뜨는 것을 보게 된다.” 2페이지 윗 부분에서 “그 출처가 되는 카톨릭 전통의 냄새가 난다”

두 번째는 논문의 내용에 보면 주로 성경의 본문을 제시하는 점에서 뛰어났지만 영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들이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인용된 글들은 2000년이후에 발간된 것이 많지 않다. 비 전공자인 논평자가 영성관련 참고 서적을 본것도 많이 있는데 구약과 신약에서 영성 관련 서적과 논문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와 비교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세 번째는 저자는 신약신학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데 원문에 대한 논의가 없고 원어에 대한 어원학적인 언급이 없다. 성경학자로서 영성관련 본문들에 대한 주석과 해석 그리고 적용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연구는 매우 가치있으며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에 성경적 연구를 통한 기초석과 방향을 제시하는 점에서 공헌도가 매우 많다. 사실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성경은 언급하지 않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이며 인간학적인 면으로 멀어져가는 현실에서 오성종 박사님을 비롯한 한국의 학자들이 성경적 신학의 중요성을 더욱더 실감나게 한다.

저자는 신약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신학에 매우 깊은 이해를 가지고 기독론을 다루면서 예수의 영성의 양면을 고난, 순종같은 단어를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 조직신학의 틀 속에서 성경신학의 진술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영성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구약의 영성 그리고 바울서신과 계시록까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의 관점을 철저하게 유지하면서 연구를 진행한 점에서 논의의 일관성과 논문의 주제의 정당성을 밝히고 있다.



다음 추후 연구를 위한 제안들입니다.

오박사님께서는 영성의 본질이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고 보시는데, 물론 신구약에 대한 관점이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차이점은 인정되나 과연 구약 시대 성도들의 영성과
신약시대 크리스챤들의 영성이 본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있을까하는 점에서 질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영성은 참된 실재적인 것이 못되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 우리처럼 동일한 영성의 실재를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귀한 영성에 대한 연구가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앞으로는 예수의 고난의 영성, 순종의 영성 등 좀더 깊이있게 연구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구체적인 적용과 사례까지 연구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영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분이 사셨던 그 모습 그래도 따를수 있는 영성 연구의 현재성이 발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바쁘신 교수 사역 속에서 예수의 영성에 관한 성경 본문들의 수많은 출처가 우리에게 강력하게 도전을 준점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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