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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안명준
Subject   하나님은 누구신가?/안명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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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누구신가?


                    평택대 신학과 안명준교수



    최근 미국의 CNN 토크쇼(CNN. COM. Larry King Alive) 사회자 래리 킹(Larry King)의 인터뷰에 관한 기사가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래리 킹은 지금까지 약 3만 5천명의 유명인사와 인터뷰를 가진 인물이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토크 쇼의 제왕 혹은 마이크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그는 이 대담에서 자신이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역사 속의 인물로서 예수라고 했다. 그가 예수를 만난다면"당신은 신의 아들이냐?"라고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신을 인터뷰 할 수 있다면 "당신에게는 아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유태인 출신이며 불가지론자인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만일 신이 아들이 없다고 한다면 바티칸과 이 모든 세상은 어떻게 될까 라고 하며 매우 교만한 언어적 유희를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불가지론자이며 현대 언론의 상징인 그가 질문한 내용을 통하여 과연 인간이 신에게 그런 내용으로 질문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래리 킹은 마치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 인터뷰의 대상으로서 이것 저것 질문해 가면서 시험해 보려는 방자한 언어의 폭력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구약의 욥기서에서도 이런 무지하고 유치한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말한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며 말씀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오만한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창조주의 위엄으로 지금도 지켜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신이 하신 말씀 즉 성경 계시를 통하여 진정 그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시하실 수 있으며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또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도 말씀 하실 수 있다. 문제는 이성적이며 불가지론적인 사고를 가진 래리 킹과 같은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갖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수준에서 자신이 만든 신에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고서 그것으로 할 일 다했으니 이제 끝이다는 식이다.
    래리 킹 처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를 향하여 당신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인가 라고 마음에 의심을 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구약이 증거하고 선지자와 시편이 증거한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이 피를 흘려가며 그가 메시야 이시며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 성경은 예수에 대하여 하나님이 직접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그는 하나님이었으며 참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사셨으며 다시 오실 세상의 심판주 이시다.


1.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말할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지위, 돈, 이성, 기술 등등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내세울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우리 인간을 참으로 만족하게 못하며, 참된 가치를 주지 못하며, 참된 생명과 영원한 진리를 주지 못한다. 설사 인간은 이런 것들을 모두 가졌다고 한들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고 나의 영혼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인간은 이런 모든 것들로 인하여 만족하지 못하며 행복하지 못한 점들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최근 선박왕으로서 거부였던 오나시스의 손녀인 아티나 오나시스는 많은 재산이 반드시 행복을 주지 못한 점을 어린 나이에 깨달고 많은 유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에 관한 최근 한 일간지의 기사의 내용을 소개한다. 아티나는 만 18세가 되는 2003년 1월 15억달러의 유산을 상속받게 돼 있다. 우리 돈으로 약 1조 6700 억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재산이다. 아티나는 3세 때 어머니 크리스티나가 사망하면서 오나시스의 유일한 상속자가 됐다. 하지만 아티나는 자신의 유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이같이 결심을 한 것은 끊임없는 유괴 가능성에 대한 공포로 경호원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등 불안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아티나가 평소 서섹스주에 있는 마을 학교에 다니면서 많지 않은 용돈을 쓰면서 평범하게 살았던 가수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를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또 재산관리인들과 아버지 티에리 러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법정싸움도 아티나가 유산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아티나-마지막 오나시스’라는 책을 쓴 크리스 허친스는 “아티나가 계모인 개비에게 ‘유산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티나의 결정은 ‘10대의 반항’ 이상의 것이며 엄청난 유산이 손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나시스 가족과 가까운 한 금융전문가도 “아티나는 유산상속보다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 성공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아티나는 평생을 우울증과 약물 복용에 시달리다 88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어머니 크리스티나의 불행이 결국은 많은 재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크리스티나가 71년 25세 때 비행기 사고로 숨진 오빠 알렉산더로부터 아버지의 선박 왕국을 물려받은 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현대인들의 물질 만능주의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된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알 때 참으로 행복을 얻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돈이나 명예보다도 더욱 중요한 인생의 목표이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전에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문, 권력, 심지어 유대교의 종교인으로서도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몹시 싫어하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종교인 이었다. 그런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만나서 완전히 변하여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이신 것을 전도하는 사도가 되었다.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네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제임스 패커는 자신의 책 <기독교를 아는 지식>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하는 것이며, 인간의 참된 목적이며, 인간의 궁극적 성취이다라고 한다.


2. 하나님을 어떻게 알수 있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시도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신을 만나려고 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신이 되려고 시도했다. 종교와 관련하여 칼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의 씨앗을 부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많은 종교가 발생하게 되었다. 종교적인 인간은 그 마음이 본능적으로 신을 향하여 열려있으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죄가 인간을 오?시킴으로써 신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신을 보이는 어떤 형상으로 만들고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종교에 의한 어떤 모습으로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최근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과 우주의 신비함을 날마다 밝히고 있다. 과학은 어느 정도 자연의 원리와 현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으나,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적이며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이해 할 수 없다. 과학은 그분과 인격적이며 영적으로 교제하지 못한다. 단지 과학은 그분이 창조한 세계와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신비한 세계를 체험하지만 그러나 그런 발견이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거나 체험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으로 그를 알 수 있나? 성경은 몇가지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도록 계시(revelation)를 우리에게 주셨다. 어떤 사람은 이 계시를 전달(communication)이라고 부른다. 이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중요한 수단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그에 대하여 생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계시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며, 설령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검증이 어렵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의심스런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최근의 현실도피적인 종말론자들이 계시를 많이 받았다고 주장한 후에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런 의심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가지의 객관적인 계시를 인류에게 주셨는데 하나는 자연세계요 또 하나는 자신의 말씀인 성경이다.
    자연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신 것을 자연계시라고 한다. 자연계시란 자연현상과 인간의 구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보여주는 계시를 말한다. 자연계시는 일반계시라고도 불리어진다. 자연계시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욱이 복된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다(요 17: 3). 그러므로 하     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행복에 이르는 데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마     음속에 이미 말한 바 있는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계시하     셨으며 우주의 전 창조 속에서 매일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눈     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 위에 영광의 명백한 표적을 새겨 놓으셨으며 그것은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     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식하고 둔한 사람이라 해도 무지를 구실로 삼을 수 없다. 그     러므로 예언자는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시 104: 2)라고 아주 적절     하게 외쳤다. 말하자면 이 말은 우주 창조 이래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화려한 복     장으로 자신을 보여 주시기 시작하신 후부터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의 영광     의 훈장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전시해 주셨다는 말과 같다.(기독교강요 1, 5,     1).
    
오늘날 천문학과 생명공학을 통하여 일반계시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최근 블랙홀의 형성과정을 허블호의 망원경을 통하여 천문학자들이 밝혀냈다. 이런 우주의 현상을 보면서 또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보면서 인간을 창조한 신비를 다시 한번 알게된다. 이런 우주의 세계와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통하여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우연히 진화론적으로 발생했다고는 완전히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성을 갖은 인간은 우주의 질서정연한 법칙을 통하여 또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통하여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자연계시를 통하여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구원을 얻기에는 불충분 한다. 자연계시는 바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즉 왜 인간이 죄인이며 죄인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길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 자연계시의 불완전함은 죄 때문에 기인한다. 인간의 죄가 자연의 현상에 나타난 오묘한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인간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성경은 최초 인간이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므로 말미암아 죄가 세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따라서 자연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특별한 계시가 있어야 한다. 특별계시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특별계시는 성경과 동일한 말로 사용된다. 즉 특별계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특별계시로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를 알 수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자기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는데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학을 많이 연구하고 철학과 문학적 소양을 풍하게 가진 신학자들이 성경을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그들만이 성경을 완전하게 해석할 권리가 있고 보통의 사람들은 성경해석의 권리가 없다고 주장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통하여 성경을 간결하고 용이하게 쓰여지게 했다. 평범한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구원을 받는다는 간단 명료한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믿음을 말한다. 믿음은 무엇인가? 사실 유무에 관계없이 어떤 가정된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특별히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자는 그가 살아계시면 그를 찾는 자에게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왜 믿음을 강조하고 이성을 강조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 속에서 실제사건은 역사적이며 이성적으로 이해를 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 영적이며 보이지 않으며 영원한 하나님을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이성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때의 믿음은 어떤 비역사적이며 비현실적인 가상세계의 존재를 가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시고 세계를 통치하시며 지금도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전능한 하나님을 우리가 가시적으로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하심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믿음이란이성의 한계를 넘어 영적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수단이며 도구이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써서 잘 보이듯이 마치 박테리아가 안 보이지만 현미경을 통하여 볼 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의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알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본질상 완전히 동일하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참으로 본 것과 같다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 빌립이란 사람이 예수께 질문하기를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족하겠다고 했다. 예수께서 빌립이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 8-9). 또 예수님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10:30). 이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신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를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철학이나 과학 혹은 종교적 수양을 통하여서 아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자연 속에 있는 신비한 원리와 현상을 통해서도 진정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다. 참으로 그분을 아는 방법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를 올바르게 알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나타내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데 그 계시는 바로 성경이다. 바로 이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단지 문학서적이나 종교서적으로 보았을 때 별로 큰 마음의 도전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계시를 기록한 진리로 받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즉시 영생과 행복이 보장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사건들을 믿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바로 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하여 우리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최고의 선으로서 항상 인간에게 사랑만 베푸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적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멀리 떠나 지금은 사라진 분이라고 한다. 이런 견해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비록 우리가 그 분에 대하여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는 성경에 근거하여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계시하신 이름을 통하여 또 성경에 기록된 그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계시를 표시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의미의 명칭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이 일반적인 명칭은 그의 다양한 형태의 존재를 표현하는 많은 특수한 명칭으로 나뉘어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에서, 곧 자연과 성경에 나타난 자기계시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성경에서 불리어지고 있는 특수한 명칭들, 곧 우리가 현재 하나님에게 사용하고 있는 명칭들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의 여러 명칭들은 그의 여러 본질과 성품을 보여주고 있기에 하나님의 명칭개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먼저 구약의 이름들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지고하시며, 들어 올리우신 분, 곧 초월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이름들 중 El과 Elohim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강하시고 권능 있는 분, 즉 경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를 두려운 마음으로 존경해야 함을 보여준다. 한편 Elyon은 숭고한 자, 곧 존귀와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매우 거룩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Adonai라고 하는 이름은 보통 주 (Lord)라고 번역되는데, 흔히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 사용되었고,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나타내주는 이름이다. 우리는 그를 부를 때 보통 주 하나님이라고 한다. 고대 언약민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주로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자기의 백성과 맺은 약속을 굳게 지키시고 돌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은 숭고한 분으로서 피조물과 친교관계에 들어가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는 다른 명칭들은 족장시대에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된 Shaddai 혹은 El-Shaddai라는 이름이 있다. 이 명칭도 역시 하나님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축복과 위안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의 힘을 지배하시어, 그것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에 공헌케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은 Jehovah(Yahweh)라는 이름에서, 자신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 이 명칭은, 가장 신선하고 가장 탁월한 이름으로 언제나 인정되어 왔다. 이 명칭은 출애굽기 3: 14을 근거하여 히브리어의 '자존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가 하니님에게 이름을 물어 보게 되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자'(I am that I am, I am who I am)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의 불변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것은 신적 존재의 불변성을 뜻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더욱 직접적으로 이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관계에서 불변하시다는 사실을 지적해준다. 이 명칭은 '만군의 여호와'(Jehovah of hosts)라는 강한 형으로 가끔 표현되었다. 이 만군이란, 천사의 많은 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천군 천사에게 호위를 받으며, 그의 백성을 위해서 천지를 통치하시며, 그의 모든 피조물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영광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명칭은 구약의 히브리 명칭과 뜻이 같은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Theos(하나님)라는 이 명칭이 단순히 하나님(God)이란 용어로,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가장 공통적인 이름이다. 그것은 El, Elohim이나 Elyon의 공통적인 번역으로, 후자는 가끔 '지극히 높으신 분' 혹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여기서 지극히 높다는 의미는 공간적인 것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죄많은 인간과 분리된 분으로서 죄와 먼 것을 의미한다. 즉 우주적 공간적이 아닌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Shaddai나 El-Shaddai라는 이름은, 단순히 그리스어의 동의어, 곧 '전능자' 혹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하나님(Theos)은 보통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과 같은 소유격으로 사용된다. 이 이유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이시며, 또 그들 각자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Kurios라는 이 명칭은 주(Lord)라는 말인데,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사용된 이름이다. 그것은 Adonai와 Jehovah를 대신한 이름이다. 만물 특히 하나님은 자기백성의 소유자시요, 지배자로서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주 여호와 하나님(I am that I am)에 관한 근본적인 관념은 가끔 '알파와 오메가' '지금도 계시고, 과거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시작과 끝','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늘 통시적으로 계신다. 아버지(Pater=Father)라는 말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지시는 특수관계를 표현할 때, 이 명칭이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요 그들을 지으시고 세우셨다고 한다(신 32: 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장자라고 성경은 말한다(출 4: 22). 이 아버지라는 명칭은 신약성경에서, 언제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라는 명칭은 하나님을 창시자, 또는 창조주로 말해주고 있다. 또 이 말은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서의 기독신자들에 대한 그의 윤리적 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명칭을 통하여 그가 어떤 분인가를 알았다. 이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 혹은 전달을 통하여 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하려고 한다. 이 정의에 의해서 그가 어떤 분인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적절한 정의는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하려고 시도하지 않지만,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의식하시며, 자기가 모든 일에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즉 인간처럼 인격적이시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격적인 분이시다. 영은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를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가 결정하시는 이성적 존재이시다. 현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믿지 않고, 세계의 보편적인 원리, 우주의 전 포괄적인 목적이 하나님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격적이시다 라는 사실은 성경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다. 지적이며 목적있는 행위의 발자국에서, 인간의 이성적이며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성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격적인 임재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에게 오시며, 인간과 함께 말씀하시며, 인간의 경험 속에 들어가시고, 시험과 고난에서 인간을 보호하시며, 자신을 믿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다. 신약에서 바로 인격적인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인 빌립에게 하신 말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 9)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분의 행위 속에서 나타나고 계신다.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무한한 완전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신다. 그는 어떤 제한이나 불완전한 것 없이 그의 존재에서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며 피조물의 특성과 구별되신다. 그가 창조한 이 세계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완전하신 분인가를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신은 제한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의 발전과 더불어 완전을 향해 스스로 발전해 가는 과정의 존재로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단일하신 분이시다. 그는 하나의 영으로서 여러 다른 부분들로 혼합하여 구성되지 않았고 그의 본질과 특성들은 단일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속성이 자기 이외에 그 어떤 것으로 첨부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다른 요소들로 자신을 혼합하여 힘을 발휘하시고 다른 존재를 받아 들여서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직 그는 스스로 계시며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은 독립된 완전한 한 분이시다. 그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성경은 그를 가리켜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며, 사랑이라고 증거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말했다. 이제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통하여 그가 어떤 분이신 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속성이라는 말은 성품 혹은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인간과 유사한 성품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질 혹은 성품을 통하여 그가 어떤 분이신 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름에서 뿐 만 아니라, 특별히 그의 속성에서도 계시하신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신적 존재에 돌리고 있는 완전성들, 혹은 창조, 보존, 다스리심, 그리고 구원 등 여러 사역에서, 그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발휘하신 완전성들에서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비공유적 속성이 있다. 여기서 비공유적 속성이란, 피조물 중에서 그 분의 특성과 유사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신적 완전성을 의미한다. 이 속성은 하나님의 절대적 특수성, 또는 초월적 위대성을 강조해주는 속성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 누가 하나님을 만들어서 그가 계신 것도 아니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인간이 초자연적 영역에 그 존재의 가치를 자리 매김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기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독립성, 혹은 자존성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독립성(independence), 혹은 자존성(self-existence)을 말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존재의 필연성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 그리고 인간과 같이 외부의 어떤 것에 그의 존재를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존재에 있어서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덕과 행위에 있어서도 독립적이어서, 피조물로 하여금 그에게 의존케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상에서, 의지에서, 그의 능력에서, 그의 계획에서, 그리고 만물에서 독립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독립성 뿐만 아니라, 불변성도 역시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이 존재, 완전성, 목적, 그리고 약속에 있어서 변화하지 않으신다. 그의 이런 성품은 인간을 사랑하는 점에서 나타나고, 우주와 자연의 원리 속에서 그의 불변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변성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에게 동작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내적 존재에서, 속성에서, 목적에서, 행동의 동기에서, 또는 약속에서 불변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하나님의 무한성이란, 일반적으로 그의 성질의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질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의 존재에 속하는 일체를 인간으로서는 전혀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 완전성을 갖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혹은 본질에 관한 하나님의 무한성으로 하나님의 모든 절대적 속성을 자격있게 하는 속성이다. 하나님은 지식과 지혜에서, 선과 사랑에서, 의와 거룩함에서, 또는 주권과 능력에서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성이 시간과 관련하여 생각될 때, 그가 영원하신 분이라 불리어진다. 성경은 보통 그것을 끝없는 연속이라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며, 그의 전 생명을 순간으로 소유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현재가 있을 뿐,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간과 관련하여 생각될 때, 하나님의 무한성은 무변성(immensity)이라 불리워진다. 이 완전성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공간을 초월하시며, 동시에 그의 전존재로서 공간의 모든 지점에 존재하신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하나님의 편재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전 창조 속에 내재하시지만, 그것에 조금도 구속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반대로 인간은 유한하다고 말한다. 이런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무한한 하나님을 인간이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며 자신의 인격과 피조물을 다스리시는데 있어서도 완전히 악과 분리된 거룩한 분이시다(요일 1: 5).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또한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레 19: 2). 하나님은 도적적인 악, 곧 죄와 분리되어 있는 하나님의 윤리적인 거룩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가 자신의 거룩성을 영원히 유지하시며, 죄를 미워하시며, 인간에게도 순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완전성이시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거룩성 때문에 죄많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친히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다.
    하나님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이해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조건적이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서는 잘못되고 불의하며 죄있는 그 자체까지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사랑은 은총과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포함한다. 은총 혹은 은혜란 아무런 조건 없이 거져 주시는 것이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행위도 태도도 없지만 다만 그의 대가를 원치 아니하시고 조건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긍휼이란 죄의 결과로 가련한 상태에서, 비참과 고통 속에서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죄악으로 오염된 인간을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닦아주시며 자기의 자녀들로 받아 주시는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여수반란 사건 당시 동인, 동신 두 아들이 안재선이라는 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후에 안재선은 검거되어 총살형이 선고되었으나 손 목사님의 간절한 부탁으로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또 손 목사님은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이름을 손재선으로 바꾸며 공부까지 시켜주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런 사랑의 위인이었다. 오래 참으심이란 하나님이 완고하고 악한 인간에 대하여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훈계와 경고를 반복하시며, 마땅히 받아야할 심판을 연기해 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그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을, 또 현실적인 사물들과 가능한 사물들 모두를 아신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을 완전하게 가지고 계시는데 이런한 지식은 자신의 영원한 계획의 시행과 관련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의 숨은 본질을 완전하게 아신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전포괄적이다. 그는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건 뿐만 아니라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적인 것까지도 모두 아신다. 그는 홀로 지혜로우신 분이시다(딤전 1: 17).
    하나님은 편재하시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어떤 제한도 구속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모든 곳에 존재하신 분이다. 이것을 편재라고 한다. 그는 모든 세계 안에 계시면서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 분에게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 모든 곳에 계신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완전히 넘어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마 19: 26). 그는 자신이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 인간은 힘이 있기 위해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의 활동에는 이런 것이 필요 없다(시 33: 9).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태양계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능력이 무한 하신가를 엿 볼 수 있다.


4.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가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모든 것을 아무런 계획없이 만들지 않고, 먼저 세상만물을 올바르게 움직이도록 설계를 하신 분이시다. 그가 미리 모든 것들을 준비하셨다는 말이다. 인간들도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하고 설계하고 자료를 준비하고 그 모든 설계도에 의하여 하나씩 순서적으로 건물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신비스런 설계에 의한 창조물이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영원 전에 하셨는가?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미리 되어질 모든 것을 정하셨다. 이것을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하나님께서 장차 발생할 모든 일들을 미리 정하시는 그의 영원하신 계획 혹은 영원하신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인간의 운명이 어떤 각본에 매여 로봇처럼 움직여 가는 숙명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인간은 자율적이며 자기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역사와 세계속에서 사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심지어 자기를 반대하고 자기의 말을 거부할 정도의 인격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만드셨다. 예정이란 도덕적 피조물을 향한 전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인 것이다. 예정 속에는 선인과 악인 즉, 모든 인류, 천사와 마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포함한다. 하나님의 예정은 유한한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성경에 기록된 예정에 대한 내용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활동을 유한한 인간으로서 모두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창조하셨다. 이 창조 안에서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창조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으려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충족함을 가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물의 찬양을 받기 위해 벌려놓은 하나의 허황한 구경거리로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안녕을 촉진시키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찬양하도록 하며, 그들의 영혼으로부터 감사와 사랑과 찬양의 표현을 이끌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롬 9:17, 11:36; 엡 1: :5,6,12,14, 3:9,10; 골 1:16). 인간은 바로 참된 창조의 목적을 바로 알 때 참다운 행복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창조하신 세상을 질서있게 유지하시고 계신다. 이것을 섭리하고 한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며,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시며, 만물을 자신의 정해진 목적에 맞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섭리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곧 보존, 협력, 통치가 있다. 첫째 보존은 존재하는 것에 관계된 것이며, 둘째 협력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활동에 관한 것이며, 셋째 통치는 세상 만물에 대한 그의 지도에 관한 것이다.

5. 오늘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현대를 사는 우리는 사이버 세상에 관심이 있고 먼 우주에 관심이 있으며 인간의 유전자 정보인 게놈프로젝트와 같은 생명공학에 큰 관심이 있다. 이런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날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고, 그분 또한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 같은 존재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의 발견과 우주의 법칙을 알면 알수록 또 인간의 신비함을 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때 더욱더 인간은 겸허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는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우연의 산물이기 보다는 전능한 창조주의 설계에 의하여 오묘하게 만들어 졌으며 지금도 이 우주가 완벽한 원리에 의해서 안전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그렇다. 태양계의 여러 원리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로서 이 지구에 사는 지를 이해하게 된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 지구와 달의 거리, 지구의 자전의 속도, 달의 자전의 속도, 물론 이런 자전과 공전의 속도와 또 방향은 일정하게 회전하고 있다. 태양계의 모든 것들은 질서 있게 일정하게 안전하게 우리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 누구 하나 이 우주의 여행에서 멀리를 하거나 구토를 하는 사람이 없으며 지구가 태양을 빠르게 움직이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요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지구에서 둥둥 떠다니지도 않으며 바다의 파도가 날마다 우리에게 엄습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숨쉬는 신선한 공기와 마시는 물 등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 우리는 바로 완전한 무공해 무연료의 자동시스템으로 구축된 자연의 생태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이 만든 이 아름다운 세계를 날이 갈수록 파괴하고 있지 않는가. 이상하게도 인간의 손을 걸쳐 지나가면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해가 되며, 자연과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가. 이런 인간의 역행의 모습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죄로 오염된 인간의 교만과 죄와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자연에 대한 파괴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위대한 피조물로서 인간은 인간을 향해 싸우며 살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그를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무지의 소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나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고 계신다. 누가 감히 이런 것들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단지 인류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살고 있다. 인간은 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의 첫 장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인간은 자신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될 때 인간은 참으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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