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신학의 흐름과 방법 강의요약
이      름: 관리자
작성일자: 2022.04.04 - 13:59
현대신학의 흐름
르네쌍스-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사고의 전환
    파괴와 창조라는 주제

르네상스는 인문주의자들의 방법에 영향
인문주의자들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에라스무스-루터-츠빙글리- 칼빈의 해석학과 신학의 방법들에 영향
로마카톨릭교회의 개혁의 동기는 성경의 권위와 성경해석 그리고 성경연구 방법이다
종교개혁이후 죽은 정통주의에 반발로 경건주의(슈패너, 프랑케)
경건주의에 대항하여 계몽주의의 탄생
이성중심의 계몽주의에 반발하여 낭만주의가 탄생
자유주의 신학은 경건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의 산물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뿌리는 칸트, 헤겔이고 리츨과 하르낙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대표적으로 쉴라에르마허가 아버지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은 성경이 아닌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중심, 낙관주의 주장,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강조하며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을 하다보니, 영적이며 초월적 영역의 기독교 본질적 특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현대신학은 대부분은 이런 경향속에서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바르트(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하였지만 신정통주의로 불리워진다), 불트만(실존주의 해석학과, 비신화화) 등등
현대 유명한 신학자들은 대체로 성경중심보다는 철학의 도움속에서 기독교를 재정립하려고 한다. 조지 린드벡(George A. Lindbeck) 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1984년에 출판된 <교리의 본질>(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이다. 이 책은 큰 영향을 주었고, 후기 자유주의신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책에서 린드벡은 공통된 개인의 경험으로 종교적 진리를 규정하는 근대 자유주의 개신교의 사유를 거부하고, 신앙공동체의 신조와 실천을 종교 이해의 기초로 삼는 문화- 언어적 접근방식을 제시했다. 합리적 논증이나 정서적 경험보다 믿음과 세계관 형성에 강조를 두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인식-명제적 접근과 자유주의의 경험-표현주의적 접근이 포스트모던적 종교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인식한 조지 린드벡은 기존의 두 접근법들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문화-언어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 주장은 종교를 절대적 규범이 아니라 문화나 언어로 이해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이 언어를 배우듯 종교에도 문화-언어적으로 친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교리를 진리로 보지않고 문법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모두가 종교와 교리를 문법적으로 이해한다면 종교 간의 다툼과 충돌의 문제는 사라진다고 한다. 여러 종교가 마치 언어에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이 없는 것처럼 나름대로의 체계 안에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5]
평가
린드벡의 접근법이 종교 상호간에 화해를 가능케 하고, 실행성을 강조하고, 또 성경을 귄위 있는 신학적 텍스트로 삼았다는 점은 중요한 기여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텍스트 자체보다는 교회의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진리를 내적 일관성으로 격하시켰고, 모든 종교를 동일한 가치로 보는 극단적 상대주의와 언어가 종교생활에 필수적이라는 엘리트주의를 조장했을 뿐 아니라 신학적 종말론을 주장함으로써 명제주의로 회귀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린드벡의 문화-언어의 종교이론을 신학적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과 같은 후기 자유주의자(postliberal theology) 후기 자유주의 신학(Post Liberal theology) 혹은 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이란 20세기 후반에 대중화된 기독교 신학이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교회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일관되게 조직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규범적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기독교 믿음을 이야기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지 린드벡을 중심으로 한스 프라이와 스탠리 하우어워스 같은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신학적 영향을 미쳤다.


특징
정승원 교수에 의하면 이 신학은 주로 성경 해석학과 관련하여 발전된 신학으로 이해하는데 신학적 스펙트럼은 좀 더 넓다. 이 신학의 대표적인 학자들은 조지 린드벡을 중심으로 한스 프라이와 스탠리 하우어워스, 가브리엘 팩커(Gabriel Fackre),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 제임스 맥클렌돈(James McClendon) 등이 있다. 이들은 먼저 진리가 어떤 명제적 혹은 논리적 체계로 표현될 수 있다는 기존의 신학 전통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성경은 어떤 철학적 혹은 신학적 체계가 아니라 구속의 역사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이미 주어진 텍스트의 이야기가 이미 해석이 된 이야기요 독자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텍스트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텍스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텍스트, 즉 성경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실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신학자들은 성경 이야기 구조가 실재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건'과 '해석'의 구분을 거부한다. 사건이 해석이고 해석이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이야기체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야기만 읽고 더 이상 신학적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와 신학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학은 이야기를 뒷받침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학은 변치않는 진리의 체계적 설명이 아니라는 것이다.[1]
평가
성경을 교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할 수 있지만, 성경이 주장하는 교리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적인 권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들이다.

신학과 성경해석을 위한 철학이해
소크라테스
플라톤- 정통기독교에 도움을 주고 성경 해석학의 도구로 사용, 오리겐, 알렉산드리아학파신학,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영향을 줌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와 수사학의 장점이 역사적 예수 연구와, 역사적 문법적 해석연구에 영향을 줌,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의 중세 스콜라신학의 발전을 줌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자들을 통해 성경해석방법의 발전을 본다.
에라스무스(1516)-역사적-문법적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성경해석의 발전에서 온다.
루터의 1522년 독일어 성경번역(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의 1519년 재판 사용), 성경강해들 국민일보, 정현욱, 루터의 생애, 1512년 루터 나의 28에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루터의 박사학위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식적인 성경 강해자요 권위 있는 성경 해석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루터는 교수의 다양한 사역 중에서 성경을 주해하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1513년부터 2년 동안 시편을 강해했고, 1515년부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강해하기에 이릅니다. 1517년부터는 1518년까지 히브리서를 주해합니다. 시편과 로마서,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주해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점점 명확한 이해를 갖게 됩니다.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는 그의 신학 중에서 핵심 중의 하나인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중세시대의 학문은 메마르고 지루해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적 신학은 실천적 경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루터는 대학교 수도원의 학습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냈고, 수많은 학생들이 루터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루터가 가르쳤던 1515년부터 1520년 사이 비텐베르크 대학의 학생 수는 두 배가 늘어납니다.

출처 : mytwelve(http://www.mytwelve.co.kr)


츠빙글리의 연속강해 설교-
칼빈의 성경해석방법-로마서 서문, 간결성과 용이성의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