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선사시대 암각화 북방영향 받지 않았다”
입력: 2006년 07월 27일 17:34:11
한반도의 선사시대 암각화 문화가 북방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박사학위 논문이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논문은 또 국내 암각화의 제작 선후관계, 제작 시기 등에서도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논문은 특히 국내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끼치고 있는 원로학자들의 견해를 조목조목 비판, 학계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질지 주목된다.
유명 중견 수묵화가인 김호석 화백(50)은 최근 ‘한국 암각화의 도상과 조형성 연구’라는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내놓았다. 논문은 김화백이 고고·고대사학자 시각이 아니라 창작행위를 하는 ‘화가의 시각’으로 암각화 제작자의 심미적 동기를 고려하며 형상분석을 통해 조형적 특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당대의 문화와 예술·사상·종교 등이 총합돼 ‘그림으로 그려진 역사’로 불리는 암각화와 관련한 논문은 많지만 형상분석을 통해 조형적 특성을 찾아낸 논문은 처음이다.
김화백은 논문을 통해 한국 암각화가 기존 학설과 달리 동북아·우랄알타이 암각화 문화와의 친연성을 찾을 수 없고, 독자적 특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그 근거는 국내 대표적 암각화인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와 북방아시아지역 암각화의 대표인 알타이지역, 몽골 바양얼기 암각화의 비교분석에서 명확해진다. 즉 ▲암각화가 북방지역은 동남쪽으로 흩어진 다수의 바위에 산발적으로 그려졌지만 반구대는 한 바위 면에 집중적으로 그린 점 ▲북방은 운동감·적극적인 형태적 변형을 통한 회화적 특성을 보이는 반면 국내는 동물의 형태·생태적 특성을 단순요약한 형태미가 강조된 점 등이 대표적이다.
논문은 또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선후(先後)관계에서 “면 새김(평면 그림)이 선 새김(선 그림)보다 선행 양식이라는 문명대·김원룡·황용훈·임세권·정동찬·장명수 등의 기존 연구는 결정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화백은 “제작은 가는 선 새김－면 새김－굵은 선 새김－가는 선을 통한 장식성－음·양각에 의한 단순화·양식화 순”이라고 조목조목 논증한다.
‘반구대 암각화’(왼쪽)와 몽골 바양헝거르 비칙팅 암 암각화.
암각화의 제작 시기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신석기~청동기시대’로 봤으나 논문은 암각화의 쪼임면 분석과 제작 도구 확인을 통해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시대’로 본다.
논문은 국내 주요 암각화 유적들의 제작 선후관계도 학계에서 처음으로 제시한다. 암각화의 제작 기법이나 도구, 내용 분석 등을 종합하면 반구대 암각화－천전리 암각화의 육지 동물·추상문－영일 칠포리－‘칠포리형 암각화’－천전리 암각화 하단의 세선각 그림 등이다.
논문에는 이밖에도 청동기시대 미적 의식을 반영한 도형구조로 ‘검파형’ 청동기 의기와 유사한 형태가 새겨져 학계의 관심을 모아온 칠포리 암각화 문양을 새롭게 해석한다. 기존 ‘태양 신상’(임세권) ‘검파형’(송화섭) ‘패형’(이상길) ‘신체문’(신대곤)이란 해석 대신 권력의 상징을 담은 ‘도끼’로 분석한다. 칠포리 암각화는 권력과 힘을 상징화한 것이란 주장이다. 또 ‘상징성을 지닌 기하학 문양’, ‘다산·풍요 등의 주술적 의미의 여성 성기(性器)’ 등으로 해석돼온 천전리 암각화의 문양이 곡신(穀神)·꽃·구근류 식물·도토리 열매 등 농경사회의 의식을 담은 식물문양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지도교수인 정우택 교수(동국대)는 “기존 연구들과 달리 동북아, 우랄알타이 지역에 산재한 암각화를 직접 탐구하고 한국 암각화를 비교분석하니까 보다 심도있는 연구가 됐다”며 “북방아시아 암각화 문화와의 연관성, 한국 암각화의 제작시기, 선후관계 등에서 기존 학설을 새롭게 보도록 한 것은 주목된다”고 밝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임세권 교수(안동대)는 “나와 견해가 다른 부분도, 논리적·설득력이 부족한 곳도 있지만 치밀하고 방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해석하고 이론화시킨 것은 국내 암각화 연구의 고무적인 성과”라고 밝혔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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